조례시간. 오늘은 야간자율학습을 정말 자율로 실시하겠다고 칠판에 썼다. 오늘 하루만은 내 허락 받지않고 원하는 장소에서 스스로 공부해보라고. 그/러/나/ 반드시 8교시 보충은 하자고. 그게 나의 조건이라고. 그리고는 하루 종일 한 명도 내려와서 보충수업 빠지겠다고 이야기하는 아이가 없어서 내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나보다 여겼다.

7교시 정규수업 후... 어쩔까 하다가 아무래도 직접 올라가 출석체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아이들을 못 믿은 건가.. 아무튼 올라가는 계단에서 우루루 도망치는 우리 반 녀석들 한 무더기와 부딪혔다. 째려보며 “당장 올라가라” 그리고 교실에 들어갔더니 반이 빈자리다. 이건 아니다 싶어 인상 팍 구기며 남아있는 녀석들에게 “문자 넣어서 빨리 오래고 해라” 한 명 두 명 들어오는 녀석들.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야자 자율로 해주면 보충도 째고 싶은 거가? 정말 느그들... 너무한 거 아니가?”라고 푸념을 늘어놓은 뒤, 미수에 그친 녀석들을 째려보았다. 보충시작 종이 울려서 교실을 나오는데 반장 ㄷ원이와 녀석과 친한 ㅇ정이가 올라온다. 나를 보며 배시시 웃는다. 순간 기분이 팍 상했다. 반성하는 표정을 잔뜩 짓고 있어도 용서할까 말까인데 웃어? 그동안 내가 너무 편하게 해줬나? 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야, 정원, 반장이 그래도 되는 거가? 샘이 뭐라데? 니 권리 찾기 전에 니가 해야할 일 똑바로 해야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그러면서 무슨 비판을 하고 무슨 권리를 찾겠단 말이고? 다른 녀석들이 다 가도 반장 부반장 느그 세 명은 남아있어야하는 거 아니가? %^&*(%^니 학년 초에 그런 각오도 없이 반장 출마했던거 아니제? 아니제?”
내일이 시험인데 이렇게 야단을 쳐서 되겠나? 싶어 결국 나중에는 목소리를 낮췄다. 녀석의 눈꼬리가 새초롬해진 것도 내 언성을 낮추는데 영향을 미쳤다. 분명히 삐진게다. 아휴~~
 

결국 문제는 보충수업시간을 자습시키는 것이 사단이다. 지난번에도 ㄷ원이가 반장으로서 담임에게 문제제기를 했었고 내 조언대로 자습주는 샘께 가서 말씀도 드렸다는데 '중간고사 이후에나 수업을 하실 거고 중간고사 기간까지는 계속 자습을 줄 계획'이라고 하셨단다. 그러니 중간고사 바로 전날인 오늘 같은 날, 아이들이 한시라도 빨리 하교해서 부족한 과목 시험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왜 들지 않으랴. 그리고 솔직히 보충을 아이들이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닌 이런 상황에서 담임이 무조건 아이들의 선택, 책임운운하기에는 너무 웃기는 것이다. 아무튼 아이들의 입장...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용서는 안 된다. 아니 '용서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대한민국 학교에서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일을 처리하게 되면 사사건건 아이들을 '지나치게' 이해하고 용서해버리게 되고 결국 담임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동료교사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 아이들에게까지 들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한다. 오로지 '공부'의 명목으로 아이들을 '잡아주어야'하는 것이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담임이 해야하는 가장 큰 임무인 것이다. 아이들도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아이들은 이율배반적이다. 잡으면 잡는다고 놓으면 놓는다고 불만인 것이다. 나는 그런 비판과 욕을 감내할 용기가 없다. 하여 올해는 교묘하게 잡는 시늉을 하면서 갈등이 첨예해지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자율'을 인정해주는 '척'하고 있다. 한 마디로 약아진 것이다.

 

그나저나 조만간 관리자님께 ‘보충수업은 자습 주면 안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러니 자꾸 아이들이 보충수업시간에는 도망을 가고 담임입장에서 지도하기가 힘이 드는데 어쩌지요?’하고 넌지시 문제제기를 해봐야겠다. 사실... 보충수업시간에 들어가지 않는 샘들도 있다는 풍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공부에 대한 불안감을 은근히 유도하여 자율을 빙자한 타율로 아이들 대부분을 참여하게 하는 보충. 그 보충을 도망간다고 길길이 날뛰는 담임. 철저히 수익자 부담을 원칙으로 하기에 보충시간에 자습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그런 샘들의 주의를 환기시켜달라고 관리자에게 건의하는 모습은 사실 이런 시스템이 더 오래 유지되도록 도와주는 행위가 아닐까. 문제가 곪도록, 그래서 저절로 터져서 치유되도록 내버려두는 방법을 선택해야하는 걸까? 그동안 아이들이 아픈 건 어떻게 하고?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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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10-10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을 넘기면 안 될 것 같아 아침에 교감샘께 말씀을 드렸다. 교감샘께서도 '정규수업시간에야 진도 다 나가고 시험전에 자습줘도 되지만 보충은 그러면 안 되는데... "하셨다. 이 때다 싶어 '사실 저희 반 반장도 지난 번에 문제를 제기했었었고.. 아이들이 그러한데 학부모님이야 당연히 문제라고 생각할 겁니다.'라는 말까지 살짝 덧붙였다. 금요일 아침 직원회의 시간에 말씀하겠다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