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나무 도적>, 세계 여성작가 페미니즘 SF 걸작선.
제목은 은네디 오코라포르의 <야자나무 도적>에서 따온 것이고,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나사파리 구제법 (체체파리의 비법 이라고 번역되어 있기도 하다)>, 옥타비아 버틀러 <저녁과 아침과 밤> 조안나 러스 <그들이 돌아온다 해도> 등이 실려 있다.
요즘 너무 이런저런 책들에 조금 조금 손을 대고 있어서, 또 그 책들의 기조가 비슷비슷해서
읽다가 어떤 에피소드가 어느 책에 나왔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다.
그래서 이젠 다 읽지 못해도 조금씩 남겨야겠다 싶어 자려고 누웠다가 뛰쳐나왔다.
이런 책들을 읽고 있는데.. 11월이 가기 전에 한 권도 다 읽을 가망이 없어 보인다.
11월엔 기차탈 일이 많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파묻힌 여성>과 <여전히 미쳐있는> 은 무거워서 그럴 땐 <에이스>를 챙겼는데 기차에선 내내 잤고
김장도 하고 2주에 걸쳐 감기와 기타 등등으로 병원 신세를 지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오늘은 미용실에서 <파묻힌 여성>을 읽었고
<여전히 미쳐있는> (주마다 읽을 분량이 정해져 있는데 지난주 분량을 이번주에 겨우 다 읽음) 에 나오는 어슐러 K. 르귄의 단편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 을 읽었다.
오디오북으로도 나와 있는데, 살까 하다가 누군가 좀 별로라고 해서 안 사고..
<야자나무 도적>에서 읽었다.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문젠과 스콧이 남극점을 '정복'하기 전 이미 한 무리의 여성이 남극점에 다녀갔고, 그것을 굳이 공표하지 않았다-라는 이야기다. '위대한 실패' 라고 일컬어지는 섀클턴의 탐험에서 조난된 탐험대원들을 남극반도 근처 엘리펀트 섬에서 구해준 칠레의 예인선 옐초가 여기에도 등장한다 (시기는 좀더 이전이다). 사실 옐초는 쇄빙선도 아니고, 대양을 항해하기에 적합한 배가 아니고, 아마 크기도 상당히 작을 것이다. 그래서 옐초가 물살이 빨라 험하기로 유명한 드레이크 해협 (아래 지도에서 Punta Arenas와 Elephant Island 아래쪽에 있는 섬 몇 개 - South Shetland Islands - 사이의 바다를 뜻한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유명했던 해군 제독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발견하여 그 이름을 땄다) 를 건너는 것만 해도 큰 모험이었을 것인데 (여기 https://academic-accelerator.com/encyclopedia/kr/yelcho-1906 에 보면 '라디오도 없고, 적절한 난방 시스템도 없고, 전등이나 이중 선체도 없는 이 작은 배' 라고 나와있다),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에서는 무려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에서 출발해 남극해의 태평양 부분을 건너 로스해로 간다. 게다가 여름도 아니고 해빙이 꽉 차 있을 10월에 로스해를 뚫고 들어가 빙붕에 사람들을 내려준다. 어이쿠... 이건 좀 많이 무리인 설정인 것 같다.
이 지도는 File:Shackleton Endurance Aurora map2.png - Wikimedia Commons 에서 가져왔고, Punta Arenas는 내가 추가했다. 푼타 아레나스에서 로스해는 남극대륙을 1/3 바퀴 정도 돌아가야 하는 먼 거리다. 물론 칠레에서 뉴질랜드나 호주로 가서 다시 가는 것보다는 덜 걸리겠지만, 옐초호로 가기에는 아주 부담이 되는 거리라는 이야기다. 어느 경로를 택할 지 모르겠으나 남극대륙을 돌고 있는 남극환류를 거슬러 나아가는 것도 작은 배로는 쉽지 않다.
위 지도에 표시된 경로는 섀클턴이 웨델해로 가서 남극 대륙을 종단하고 남극점-Beardmore glacier를 거쳐 맥머도 만으로 가려고 했다가 웨델해에서 표류하여 Elephant Island로 갔던 경로와, 뉴질랜드와 오스트리아에서 로스해로 가서 보급을 맡았던 배의 경로가 표시되어 있다. 섀클턴이 원래 어디서 출발했는지는 여기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웨델해로 갔으니 아마 푼타 아레나스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 처치, 호주의 호바트는 지금도 남극의 3대 관문이다.
탐험대가 로스해로 가야하는 이유는 알겠다 (이전 디스커버리 호의 탐사 기록을 참조한다), 그러면 왜 굳이 이 탐험대가 남아메리카 사람들로 구성되었어야 했을까?
남극점에 아문젠보다 먼저 도달한 이 한 무리의 여성들은 페루, 아르헨티나, 칠레 사람들이다. 북반구 (스콧, 섀클턴, 아문젠) 의 남성 탐험가들과 대조적으로 설정한 걸까? 다른 것보다도 (실질적으로 대장 노릇을 한) 화자가 페루인이고 '최고의 잉카인' 이라고 불렸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유럽 사람들이 멸망시킨 잉카 문명의 후예. 더 문명화된 북반구와 대조적인 남반구. 르귄이 살았던 북아메리카가 아닌 남아메리카. 그러나 이 여성들의 이름은 거의 다 유럽식이고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거의 유럽인들이 지배한 나라인데?
"어느 과학 분야도 교육을 받지 않았고, 그런 훈련의 기회도 전혀 없었으니, 무지 탓에 나는 남극에 관한 과학적 지식의 총합에 내가 뭔가를 보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 우리 목표는 관찰과 답사로 제한되었다. 우리는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기를 희망했고, 가능하다면 조금 더 뭔가를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 외에 우리 목표는 그저 가서 보는 것이었다. 단순한 야망이었고, 기본적으로 겸손한 야망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582)
"영웅적 행위의 뒷면은 오히려 비참할 때가 많다. 여자들과 하인들은 그 뒷면을 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그들의 영웅적 행위 자체도 그럴지 모른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업적은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작다. 정말 큰 것은 하늘과 땅과 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배가 다시 동쪽을 향해 가면서 돌이켜본 그 정신이었다." (590-591)
"우리는 뭐가 됐건 표식이나 기념물을, 눈 더미나 텐트 고정 막대나 깃발을 남기는 것에 관해 토론했지만 그렇게 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 같았다." (601)
"나는 그때에도 우리가 그곳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뻤다. 자신이 처음이 되고자 갈망하는 어떤 남자가 어느 날 그곳에 갔다가 그걸 발견하고는 자신이 얼마나 바보였는지 깨닫고 상심할 수도 있으니까." (602)
이 이야기에도 나오지만 남극의 지명은 그 지역을 '발견' 한 사람의 이름, 배의 이름, 그 탐험대를 지원한 왕의 이름 등의 고유명사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남극에는 원래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지만) '정복'이나 '(신대륙) 발견' 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전에 있었던 사람들이 이름을 붙이지 않고 자신의 발견을 알리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를 읽으며 얼마전 단발머리님이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5057233 이 글에서 언급하신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의 차이가 생각났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생존을 거절하고 섹스를 거부했다. 흑인들은 살아남았다.
르귄의 이 이야기에 나오는 여성들은 그런 처지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아메리카 원주민과 같은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이들은 남극점에 도달할 만큼 충분히 강인하지만, '그저 가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었으니까.
나는, 섹스에도 관심이 없지만 성취에 있어 이들과 같은 입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정복' 이라는 것에도 거부감이 있다. 그래서 공감이 되기는 했는데. 이들이 남극 탐험을 하기까지는 엄청난 금액을 후원한 후원자가 있었고, 이 여성들은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수녀원에서 수련을 해야한다는 핑계를 대기도) 6개월 정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게 어느 곳의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은 아니지 않나? 그렇게 힘들게 돈도 쓰고 시간도 투자하고 힘든 여정을 보냈는데,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너무 가혹한 것 같았다. 가끔은 페미니즘이 여성들로 하여금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있다. 여성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 <여전히 미쳐있는> 6장 - 사변 시, 사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페미니즘적 도전 행위는 반드시 비밀이나 자살로 끝나야 하는 걸까?
르귄이 어떤 생각으로 이 소설을 썼는지 알고 싶다. 그런데 르귄의 소설은 보통 작가의 의도가 (내가 느끼기에)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아서, 어렵다. 번역이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어 (짧은 단편이기도 하고) 원서를 찾아볼 생각을 하고 있는데, 원서를 읽어보더라도 그런 뉘앙스는 파악하지 못할 것 같다. 역시 에세이집을 읽어봐야겠다..
+ 아, 얼마전 다락방님이 남극 꿈을 꿨다고 하셨지.
다락방님, 여기 남극 나와요!! 그런데 이 책 엄청 두껍고 이 소설은 엄청 짧아요.
++ <정복하지 않은 사람들> 의 원 제목은 <Sur> (스페인어로 '남쪽') 이었다. 나는 서구권의 함축적인 제목을 대개 더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번 경우는 번역이 멋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예라고 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