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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드 포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레이첼 모랜 지음, 안서진 옮김 / 안홍사 / 2019년 9월
평점 :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의 성매매 여성들의 글, 그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책),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난 뒤 성매매에 대한 나의 입장은 성매매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성매매를 통해 생계를 꾸릴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이 있다면 성매매가 불법화되면서 성판매 여성들이 (한국에서) 더 힘들어진 부분이 있고, 그들에게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도 비슷한 수준의 소득을 마련하는 일도 쉽지 않으므로 그들이 주장하는 '노동권'을 존중한다- 라는 애매한 것이었다. 냉정하게 보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미루고 비겁하게 발을 빼는 입장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전 정희진 선생님이 쓰신 추천사에서 뜨끔했고, 내가 어느 부분에서 성매매를 거부하지 못했는 지를 알게 됐다.
마지막으로 '성노동' '성노동자' 용어에 대한 나의 분노를 분명히 하고 싶다. 이 책에 나와 있듯이 성노동은 미화된 용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노동이다. 성산업에서 종사하는 일은 당연히 노동이다. 그러나 "노동이어야 한다. 노동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은 전혀 다른 논리다. '성노동'은 성매매의 핵심, 즉 왜 이 노동이 여성에게만 부여되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성매매를 성폭력으로 환원시키는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폭력을 행하는 것도 당하는 것도 노동이다. 성산업에서 여성이 하는 일은 중노동이고 위험한 노동이다. 여성이 사망해도, 공권력도 가족도 나서지 않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성노동' 담론이 여성 혐오에 근거한 무지의 산물임에도 한국 사회에서 그럴 듯하게 통용되는 이유는, '노동의 신성화'라는 서구 근대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식민주의 인식 때문이다. (11p. 추천사 중)
요즘 어딘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면 이 통화 내용은 녹음되며, 상담원에게 폭언을 가하는 경우 ~ 할 수 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온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이 2018년부터 시행되었다.
성매매 (성판매-성구매로 구분해서 사용하는 것을 촉구하기도 하더라)는 육체 노동이기도 하지만 감정 노동을 수반한다. 언젠가부터 일터에서의 '갑질' 을 신고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데, 성판매는 학대, 폭행, 갑질이 기본적으로 전제되는 노동이다. 이런 것을 '노동' 이라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니 참으로 부끄럽다. 돈을 지불했다고 해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자신을 버리게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를 읽고 적어둔 글에서 이 문장을 찾아왔다.
"성판매자 인권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당신이 듣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이 요원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문제 해결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페이드 포>는 성매매로부터 벗어난 성판매자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려준다. 집필하는 데 십 년이 넘게 걸렸다는 이 책은 저자에게도, 여성들에게도, 모든 사회의 구성원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힘들게 집필해 준 저자 레이첼 모랜에게 감사한다.
필사하면서 천천히 읽었는데 저자의 글을 곱씹는 데 좋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