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 대한민국 스토리DNA 4
강경애 지음 / 새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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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수 한국 근대 여성 단편소설을 읽었고, 6월에는 지난 기수에 읽었던 소설 <소금>의 작가 강경애의 <인간문제>를 읽었다. 위 표지에 보면 (아마 띠지일듯 - 나는 전자책으로 읽었지만)



인간 문제는 '몸'의 문제, '돈'의 문제, '사랑'의 문제다



라고 쓰여있다.



이 소설은 1934년 8월 1일부터 12월 22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고 (검열 때문인지 중간에 갑자기 중략된 부분이 있다), 강경애 소설의 특색인 극한적 빈궁 문제에 대한 관심의 표명과 여성적 감각의 인도주의가 잘 나타나는 대표작이라고 한다.




카프 KAPF Korea Artista Proleta Federacio (에스페란토어 표기라고) 라는 단체를 중고등학교 때 들어봤던 것 같다. 이 단체는 1925년에 결성되었던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문학가들의 실천단체인데, 이때쯤 (아직 해방은 멀었지만) 지식인들 사이에서 해방된 조선은 어떤 국가여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KAPF에 속한 사람들은 당연히 사회주의 국가가 되기를 바랬을 것 같다. 강경애도 그런 작가 중 하나였다.




<인간문제>는 일제강점기 농촌 (강경애의 고향인 장연)과 경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부쳐먹을 논이 없어 남의 집 일을 하는 첫째 (이름이 아닌 것 같지만 이름이 맞다), 구걸을 하여 먹을 것을 가져오는 이 서방, 매춘을 하는 첫째의 어머니가 한 집에 산다. 첫째는 지주 덕호가 춘궁기 질이 낮은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 후 좋은 곡식을 이자까지 쳐서 빼앗아감에 분개하여 대들었다가 덕호가 면장이 된 뒤로는 일을 얻기가 어려워져 절도 등으로 연명하다가 도시로 떠난다. 덕호의 집 일을 봐주는 마름 민수는 돈을 받으러 갔다가 만난 한 가족의 곤궁한 모습에 (자기 돈이 아닌 덕호의) 돈을 조금 쥐어주고 오는데, 그 일로 덕호는 화가 나서 산판을 민수에게 던지고, 민수는 앓아누웠다가 허망하게 죽게 된다. 민수의 딸 선비는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어렵게 살아가다가 어머니마저 병으로 돌아가시면서 지주 덕호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첫째는 어릴 적부터 선비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고 떠나기 전 선비 어머니의 병에 좋다는 나무 뿌리를 캐어다 준다. 선비는 첫째가 갖다준 나무 뿌리는 다락에 밀어두고 덕호가 주고 간 돈은 잘 챙겼는데, 후에 이를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덕호는 아들을 얻기 위해 그동안 첩을 여럿 두었고 그 중에는 선비의 친구 간난이도 있었다. 덕호의 하나뿐인 딸 옥점이는 경성에서 공부를 하다가 방학 때 스승의 아들인 신철과 함께 돌아온다. 모두가 신철과 옥점이 결혼을 할 거라 생각하지만, 신철은 옥점은 잠깐 함께 놀 여자로 생각하며 선비에게 반해서 선비를 경성으로 데려갈 방법을 궁리한다. 덕호는 마수를 선비에게까지 뻗치기 시작하고, 선비는 처음엔 두려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유린당했지만 덕호의 부인이 눈치를 채자 경성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는 간난의 소식을 물어 경성으로 도망친다. 신철은 옥점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가출하여 사회주의 운동을 지속하고자 하나 일하지 않고 생계를 이어가기는 힘들고, 인천으로 가서 막노동을 해보았으나 쉽지 않아 좌절하고 노동자들에게 전하는 쪽지를 만드는데 전념하게 된다. 노동 현장에서 만났던 신철에게 첫째는 사회주의 이론을 배우고 본인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여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경성으로 도망친 선비는 간난과 만나 인천의 방적 공장으로 가게 되는데, 간난은 알고보니 신철과 아는 사이였고, 공장 내의 여공들에게 공장의 부조리함과 실제 현실을 알리는 쪽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신철은 하던 일이 발각되어 감옥에 가서 고문을 받고, 간난도 그 소식에 공장에서 도망친다. 신철은 나약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전향하여 돈많은 여자와 결혼한다.선비는 공장에 혼자 남아 있다가 결핵에 걸려 죽고, 첫째는 뒤늦게 선비를 찾아가나 주검이 된 선비를 보게 된다. 그러면서 외친다.



(줄거리 요약 반쯤 하다가 이걸 왜 시작했나 후회... 뒷 부분은 대충 마무리 ㅠㅠ)




이 인간 문제!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인간은 이 문제를 위하여 몇천만 년을 두고 싸워 왔다.

그러나 아직 이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앞으로 이 당면한 큰 문제를 풀어 나갈 인간이 누굴까?





여성 운동가이자 노동 운동가였던 강경애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소설을 썼지만, 사회주의 여성 운동가들이 흔히 그랬듯이 여성 문제보다는 노동자의 문제를 더 중요하게 다뤘던 것 같아 좀 아쉽기는 하다. 그래도 당시 남성 작가들 혹은 다른 여성 작가들의 소설에 주로 이상화된 여성 (희생하는 어머니나 여동생, 부인) 이나 피해자로서의 여성이 주로 등장했다면 여기에선 스스로 행동하는 여성, 또 스스로 생계를 꾸리는 여성 그리고 실제 민중의 삶이 묘사되어 있는 것 같다. 비슷한 시기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이기영의 <고향>과 비교해보면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지 않았고, 줄거리만 인터넷에서 대충 봤지만)




<고향> 에서는 동경에서 유학하고 온 남성지식인이 중심이 되어 농촌에서, 여성 지식인의 도움을 받아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인간문제>에서는 지식인인 신철은 모범이 되는 존재라기보다는 나약한 인간이고 (사회주의 운동을 한다면서 부잣집 딸내미랑 몇 달을 노닥거리는 등) 보다는 첫째나 간난이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차이가 있다. 심훈의 <상록수>도 1935년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다고 하는데, <상록수>도 <인간문제>에 비하면 고루해 보인다. 뒤늦게라도 강경애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 참 뿌듯하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이런 작품이 소개되면 좋겠는데, 이북에서 주로 활동한 작가라 어떨지 모르겠지만...




첫째가 마지막에 이야기한 인간 문제는 당연히 아직도 풀리지 않았고, 누군가가 풀어 나가고 있겠지만. 잘 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뒤표지에



이 세상에 돈만큼 무서운 것이 없어.

기억해, 결국 우리를 구원할 사람은 우리 자신뿐이야.




라고 쓰여있는데, 책 본문에 저런 문장은 없었다. 어디서 가져온 문장일까...


어쨌든 그때도 지금도 돈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전향한 신철이에 대해 첫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신철이는 그만한 여유가 있었다! 그 여유가 그로 하여금 전향을 하게 한 게다.

그러나 자신은 어떤가? 과거와 같이, 그리고 눈앞에 나타나는 현재와 같이 아무러한 여유도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신철이는 길이 많다. 신철이와 나와 다른 것이란 여기 있었구나!




얼마전 들었던 팟캐스트 <정희진의 공부> 6월호에서 페미니즘 공부가 가장 필요한 여성은 중산층 여성이 아니고 이화여대 여성학과 학생도 아니며 나이많은 여성, 그리고 성매매 여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매애는 가능하지 않다'고 하셨다. 가부장제에 속해서 살고 있는, 기혼여성이자 어머니인 나는 왜 페미니즘 공부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 공부로 뭔가 바꿀 의지를 갖고 있나 (꼭 뭘 바꾸려는 의지가 있어서 공부하는 것 같진 않지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자매애'에 희망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좀 좌절하게 하는 발언이었으나.. 그 분의 삶과 경험으로부터 나온 말이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더라.



중산층 여성으로서 내가 왜 페미니즘 공부를 하고 있는가, 나는 그래서 뭘 하려고 하는가... 나는 나를 어떻게 구원하려고 하는가 (이럴 때 삐딱하게 꼭 구원을 해야하나? 라는 생각도 하지만) 를 생각해보게 해준 소설 <인간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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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7-09 16:5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줄거리 요약하다가 급 후회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골드문트 님은 이렇게 하더라고요. “안 알랴줌” 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7-09 18:46   좋아요 1 | URL
아하! 좋은 팁이네요. 감사합니다 ㅎㅎ

책읽는나무 2023-07-09 22: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매애는 가능하지 않다!
저도 좀 듣고서....쩜쩜쩜
저는 자매가 없어서 올케들이랑 자매 맺어볼까? 싶었는데...ㅋㅋ
그리고 5월호였는지? 6월호였는지? 좀 헷갈리는데요. 여성들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하셨잖아요. 무조건적인 연대는 안된다! 듣고도 쩜쩜쩜이었네요.
여적 생각해왔던 의식을 확 깨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셔서 계속 쩜쩜쩜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건수하 2023-07-10 09:21   좋아요 2 | URL
오늘 7월호 부분을 들었는데.. 납득할만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페미니스트라고 다 좋은 사람은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희진샘은 여성들이랑 많이 일을 하셔서 환상이란 게 적은 듯도 하더군요. 필리스 체슬러도 그런 말 했었고...

남성이 자원을 독점하고 있고, 여성은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연대라는 건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남성들도 결정적일 때는 자기 이해에 따라 행동할 거라서. 여성이 그런건 구조적 문제다 라고 생각하면 뭐 괜찮았습니다.

그치만 누군가 팟캐스트에 댓글로 달았다고 하듯 ‘그것 마저 없으면 어떻게 사냐‘ 는 생각이 좀 들긴 하지요 ^^
나무님 얼른 들어보세요, 7월호 들으면 좀 나아지실 겁니다 :)

단발머리 2023-07-09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강경애라는 이름만 알았는데 <인간문제>가 강경애님 작품이군요. 찾아서 꼭 읽어봐야지 싶어요. 우리나라 여성주의의 선봉에 섰던 분들의 글은 많이 안 읽어봐서 항상 숙제처럼 남아있습니다. 수하님은 힘드셨겠지만 저는 줄거리 요약 야무지게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 두 문단.... 저도 항상 고민되는 지점이라서요. 그러게........ 우리는 왜 읽는 건가요? 공은 다시 수하님에게....

건수하 2023-07-10 09:24   좋아요 2 | URL
사실은 뭘 하려고 읽는다기보단 읽지 않을 수 없어서 읽는다는 게 가장 정확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지식욕이 있는 사람이고, 책도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고... 그렇기에 다른 걸 하기보다 책을 읽게 된 거지만요.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책을 이렇게 열심히 읽어서, 그걸 어디에 써먹을 것인가 생각하면 꼭 써먹어야 하나? 나의 심적 안정으로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결실이나 영향력이 있으면 더 보람찰 것 같긴 합니다.

그래서 결론은 저도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으로.


난티나무 2023-07-10 0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내용이었군요. 담아만 놓고 사지도 읽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수하님 덕분에 어떤 내용인지 알게 되었어요~ 👍

건수하 2023-07-10 09:25   좋아요 0 | URL
난티님 엄청 진지한 내용이지만... 나름 지루하지 않고 재미?도 있습니다. 단편 <소금> 도 정말 강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