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발적인(?) 제목 - 미쳐있고 괴상한은 그렇다 치고 '오만하고 똑똑한' 이라는 수식어를 여성에게 붙이는 일이 흔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렇다. 특히 오만한이라는 수식어 - 의 책은 (미괴오똑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많이 들었고 그 전에도 한국일보인가 한겨레에서 하미나 작가의 칼럼을 봤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란 생각은 했는데, 이 책은 읽어봐야 할 것 같으면서도 또 손이 가볍게 가지 않아서,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에는 많은 한국 20-30대 여성이 앓고 있는 우울증에 관한 전방위적인 내용과 여러 여성들과의 인터뷰 내용이 담겨 있다. 왜 여성에게 우울증이 많은가, 그 원인은 무엇인가부터 시작하는데, <완경 선언>에서 완경이 되면 아픈 이유를 호르몬 변화 탓으로만 생각하고 에스트로겐을 맞으면 된다 생각하는 것처럼 (그래도 이 경우는 아예 틀린 것은 아닌데), 남성보다 여성에게 우울증이 많은 것 역시 여성 호르몬으로 설명한다고 한다. 딱히 근거도 없으면서, 그냥 남성과 여성이 신체적으로 다른 게 그것 뿐이니까. 그런데 정신의학 교과서에서 남성의 우울은 여성의 우울과 달리 성호르몬보다는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설명한다고. 남성에게만 사회문화적 요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의학에서 남성의 몸을 표준으로 생각하기에 병의 원인을 남성의 몸 바깥에서 찾으려는 경향 때문이라고 한다. 여성은 정상이 아니니까, 여성의 몸 안에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고.
여성의 우울과 관계된 사회문화적 원인에는 뭐가 있을까. 출산과 육아, 외모와 관련된 압박, 성폭력과 가정 폭력 등.. 그건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여자아이는 정서 인식 발달을 저해받으며 자란다고 생각해요.
'친절하다', '사근사근하다'라는 말처럼 사회친화적인 모습을 보이도록 강요받죠.
그러니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도 이를 표현하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일어납니다.
엄마와 딸이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난장에서 함께 미쳐 뒹구는 동안,
아빠는 난장의 원인을 제공했으나 그곳에 개입하지 않는 방식으로 비난의 화살을 피해 간다.
다양한 맥락 속에서 발현되는 정신질환을 가족 내의 문제로 납작하게 환원하는 것 또한 사회가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히스테리아를 앓는 여러 여성 환자의 면담을 통해 1896년 <히스테리아의 병인학> 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프로이트는 아동기 성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로 인해 히스테리아가 발생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후 자신의 이론을 수정했다고 한다. 당시 여성들 사이에 히스테리아가 만연했고, 그렇다면 그 가해자는 누구인가? 남성들이 가해자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수정된 내용은 '환자들은 아동기에 성적 욕망을 억압당하는 과정에서 성학대 경험을 상상해 낸다. 그들의 경험은 지어낸 것이다.' 였다고..
프로이트에 대해 잘 모르긴 하는데 그 잘 모르는 와중에도 무의식 상태의 성적 욕망으로 많은 걸 설명하는 건 알고 이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들어봤다. 그때도 잘 이해가 안 되었다. 아무리 무의식이라고 해도 난 아버지를 상대로 그런 욕망 없는 것 같은데? 상상도 안하는데? 이제야 그게 왜 이해가 잘 안되었는지 알 것도 같다.
'우울증'은 미국으로부터 일본으로, 또 한국으로 제약회사에 의해 (항우울제를 팔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고 한다. 미국의 우울증에 대한 진단기준을 도입해서 한국에서 적용하고 있지만, 이것은 주로 백인 기준이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보통 분노가 동반되는데 미국의 경우 그렇지 않아서 큰 차이가 있고, 그래서 '우울증' 이라는 병명만으로는 한국 여성의 감정과 증상, 사회적인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한다. 또 같은 진단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미국과 한국에서의 기준 점수가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진단이 어려운데, 그래도 진단을 받으면 고통을 인정받을 수 있어서 해방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고통을 계속해서 호소하는데도 반응하지 않는 사회에서 오래 홀로 버티던 사람에게 누군가의 '알아줌'은,
그것이 설령 신자유주의 시대 감정 관리의 결과이며 다국적 제약 회사의 자본주의적 책략이라 할 지라도 소중한 것이다. 증상만 나아진다면, 고통만 경감된다면 무엇이든 못 할까?
이 책을 읽고 알게된 가장 충격적인 것 중 하나는, 우울증 치료제로 쓰이는 약들이 어떤 기작을 통해 정신에 작용하는지를 모르면서도 널리 쓰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증상에 맞춰 약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약이 개발된 후 우연히 특정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되면 치료에 쓰인다고. (약에 대해 잘 모르는데, 정신이 아닌 신체적 증상의 치료약도 이럴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고..)
우리가 먹는 정신과 약 대다수는 그 작용기전(약이 신체에서 작용하는 방식)이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다.
약의 역사는 너무도 많은 우연과 실수, 뜻밖의 발견과 직감, 그리고 제약회사의 마케팅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성 중 왜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많은지를 연구하면서 항우울제 임상 시험은 대다수의 여성을 대상으로 시행되었고, 그 결과 우울증의 질병 규정 자체가 여성을 기준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즉, 우울증은 여성에게 흔한 질병이 아니라, 여성의 증상을 기준으로 정해진 질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우울증 진단 기준으로는 남성의 우울증을 짚어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여성에게 주로 나타나는 증상으로 진단한 우울증을 앓는 사람 중 여성 비율이 높다는 건 당연한 말 아닌가. 뭐가 원인이고 뭐가 결과인 건가?
이삼십대 여성은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과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 사이의 균열이 가장 큰 세대, 그래서 추락하기도 쉬운 세대' 라고 한다. 이건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고, 똑같은 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었는데 갑자기 여성은 결혼하고 출산하고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부딪히는 것은 비슷할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사회 변화가 급격하다보니 세대간 갈등도 커졌고, 정치인들이 청년 남성들을 달랜다고 성별 갈등을 조장하고, 디지털 성범죄도 만연하고.. 하다 보니 더 좌절이 큰 것 같다. 또 지금의 이삼십 대 여성들은 어린시절 IMF 외환 위기를 겪었고, 사회에서 '고개숙인 가장' 을 이야기할 때 가정 안에 만연했던 폭력에 노출되었던 사람이 지금 이삼십 대 인거다. (실제로 가장 폭력 발생 건수가 외환 위기 후 훨씬 높아졌다고) 또 코로나 시기에 젊은 여성들의 자살율이 특히 높았다. 그건 우울만이 아니라 가난, 또 젊은 여성이 가난할 때 성매매로 내모는 사회구조도 큰 영향이 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는데, 검색 결과에 다 성매매 아르바이트만 나오는 거야.
토킹바, 룸, 조건 만남 이런 것들.
이십 대 초반 여자 계정으로 포털에 로그인해 놓은 상태였으니까 그런 것만 뜨는 거야.
이때 진짜 압도적인 충격과 함께 이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는지, 가난한 여자들을 어디로 내모는지 느껴지더라고.
...
여자인 이상 어떤 스펙이 있든, 어떤 신념을 가졌든 '가난하면 성매매를 해야 한다'
이게 세상이 어린 여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같았어.
다시 읽고 쓰면서도 괴로운 내용이 많다. 이렇게 복잡하고 많은 내용을 모으고 생각하고 다룬 것도 좋았는데, 이 책이 더 좋았던 건 이 많은 내용을 다루는 작가의 태도 때문이었다.
독자들이 이 글에서 여성을 우울하게 만든 정확한 원인과 이를 폭로하는 증언을 듣기를 바란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발견한 것은 그보다는 어떤 모순, 혼란, 복잡성, 양가성 등이다.
나는 사람들이 명료해지기보다 함께 흔들리길 바란다. 연루되길 바란다.
선 긋고 피해자와 자신을 분리하는 대신 자신이 이미 선 안에 있던 존재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이것은 더 어려운 일이겠지만, 세상에 많은 좋은 것들이 그렇듯 더 보람찰 것이다.
누가 어떤 결론을 내려주기를 바라면 안 되고, 각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자신의 고통을 돌아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또 다른 사람의 고통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
신기하게도 나의 이야기를 쓸 때 부끄럽기도 하면서 마음이 후련해지는 걸 많이 경험했다. 내 밖으로 꺼내면서, 그걸 말로 글로 표현하면서 인정하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도 경험했고.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작가님 인스타를 팔로잉하고 있는데... 책을 더 많이 써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