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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ㅣ 쏜살 문고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평점 :
100자 평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밑줄은 저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부터 알고 있으므로 조금 더 길게 써보기로 한다. (길게 쓰는 것도 어렵지만, 100자 이내로 쓰는 것도 어렵다)
<제2의 성>에서 '어머니' 라는 제목이 붙은 장은 낙태 이야기로 시작했다. <제2의 성>이란 책이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을텐데, '어머니'라는 장을 시작하는 방식도 그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2의 성>이 출판된 1949년으로부터 14년이나 지난 1963년 아니 에르노는 임신했고, 중절을 했다. 49년과 63년 사이에 상황의 변화는 딱히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책 모두에서 뜨개바늘이란 단어를 볼 수 있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경험을 쓴 책을 2000년에야 냈다.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읽기도 힘든 책을 써내는 것에는 얼마나 큰 용기와 결심 그리고 노력이 필요할까. 아니 에르노는 '재능을 받았지만 낭비해 버린 듯' 한 죄책감을 이 책을 쓰고 지웠다고 이야기했다. 정말 강한 사람이다.
페미니즘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지 3년째다. 많이 읽지 못했고 읽은 것을 잘 기억하고 있거나 활용하고 있거나 나누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제 나는 '임신 중절' 에 관한 책을 읽고 공개된 공간에서 이야기하고, 글을 쓸 수 있다. 이 상태로 만족하지 못하고 여성의 이야기에 목이 마르다. 목이 탄다.
잘 쓰지 못하지만 자꾸 쓰는 이유는 나처럼 목이 마른 사람이 더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반가워하고 또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쓰기를 바라는 때문이다.
+ 그건 그렇고... 대학생이 집에 빨래, 그것도 속옷 빨래를 굳이 가져간다는 것은 조금 놀라웠다.
2주에 한 번씩 간다며..
‘내 배 속에 그것이 생길 수 있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랑과 쾌락을 누리며, 내 육체가 남자들의 육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P16
정의로운 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거의 매번 ‘모든 게 끝났다.‘라는 명목으로 이전 희생자들에게 입 다물 것을 강요한다. 그래서 그 이전과 똑같은 침묵을 일어나게 하는 일들을 다시 뒤덮어 버려도 말이다. - 1970년대의 투쟁들 -‘여성들에게 가해진 폭력‘ 같은 것에 맞선 -이 어쩔 수 없이 단순화한 문구들과 그런 집단적인 관점에 거리를 두면서, 내가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이 사건을 당시의 실재 속에서 과감하게 맞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임신 중절이 이제는 금지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P20
바칼로레아 합격도, 프랑스 문학 학사 학위도, 알코올 중독과 같은 취급을 받는 임신한 여자아이가 상징하는 가난이 물려주는 운명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섹스 때문에 나는 다시 따라잡혔고, 그때 내 안에서 자라나던 무언가는 어떻게 보면 사회적 실패라는 낙인이었다. - P22
그에게 나는 섹스 제안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알 수 없는 여자의 범주에서, 이제 의심할 여지없이 이미 섹스를 경험한 여자의 범주로 이동한 셈이었다. 두 범주 사이의 구분이 엄청나게 중요하고, 여자를 판단하는 남자의 태도에 영향을 끼치던 시절에, 그는 무엇보다 현실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게다가 나는 이미 임신한 상태라 임신할지도 모른다는 위험마저 없었다. - P25
많은 소설들이 임신 중절을 언급하긴 했지만, 그 일이 정확하게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방식에 대해서까지는 세부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여자가 스스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과 이제 더는 임신하지 않은 상태 사이는 생략되었다. - P27
논문을 쓰지 못하는 상황은 중절을 해야만 하는 필요성보다 더 끔찍했다. 논문을 쓸 수 없음은, 보이지 않는 내 타락의 명백한 징표였다. 이제 ‘지식인‘이 아니었다. 다들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일으킨다. - P33
청소년기부터 부모와의 관계는 벌써 일반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상황을 숨기는 일이 고되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전쟁 이전 세대. 그러니까 유리적 죄악과 성적 수치심으로 대변되는 세대였다. 어머니의 신앙심은 신성했고, 나를 당신과 같으리라고 믿어 버리는 어머니이니만큼, 나 또한 그런 어머니의 신앙심을 참아 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대부분 그러하듯. 내 부모님도 틀림없이 탈선의 아주 작은 조짐이라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으리라 생각 했다. 부모님을 안심시키려면 매끈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세탁할 빨래를 가져가고, 필요한 것들을 가져오며 규칙적으로 찾아가면 되었다. - P37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분노나 혐오감을 자극할 수도 있을 테고, 불쾌감을 불러일으켜 비난을 살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이든 간에, 무언가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일을 쓸 수 있다는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한다. 저급한 진실이란 없다. 그리고 이런 경험의 진술을 끝까지 밀어 붙이지 않는다면, 나 또한 여성들의 현실을 어둠 속으로 밀어 넣는 데 기여하는 셈이며, 이 세상에서 남성 우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중 누구도 임신 중절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다. 그것은 언어 속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 P39
우리는 거의 섹스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내 상태 - 나쁜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 -로 비롯된 이점을 누릴 수도 없었기에, 설령 하게 되더라도 서둘러서 끝냈다. 하릴없이 남아도는 실업자의 시간과 자유, 혹은 뭐든 먹고 마실 수 있다고 허락받은 불치병 환자보다 분명 더 나을 것 없는 이점이었으리라. - P47
신생아들은 끊임없이 울어 댔다. 내 병실에는 요람이 없었다. 그런데 나도 똑같이 새끼를 낳았다. 옆방에 있는 여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요람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들보다 그런 사실을 더 잘 안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기숙사 화장실에서 나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잉태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세대를 거듭하며 여성들이 거쳐 간 사슬에 엮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 P72
신성한 무엇처럼 1월 20일과 21일 밤의 비밀을 내 몸속에 간직한 채 거리를 걸었다. 내가 공포의 끝에 있었는지, 아름다움의 끝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자긍심을 느꼈다. 어쩌면 고독한 항해자들, 약물 중독자들과 도둑들, 혹은 다른 이들은 결코 가려고 하지 않는 곳까지 경험해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자긍심처럼 생각되었다. 이런 감정의 무언가가 나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쓰게끔 이끌었다. - P75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이 사건에 대해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유일한 죄책감을 지웠다. 재능을 받았지만 낭비해 버린 듯. ... 그저 사건이 내게 닥쳤기에, 나는 그것을 이야기할 따름이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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