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말로 설명하는 것처럼 소용없는 짓도 또 없다. 제법 전문적으로 대중음악평을 쓰고 있는 친한 선배와 만나 입만 열면 하는 말이다.

이 선율, 이 리듬, 그리고 선율과 리듬 사이 어느 무중력같은 공간에 작은 알갱이처럼 부유하는 느낌. 어떤 음악은 마치 머리 위에서 오로라 같은 것이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온 몸을 젖게 한다. 머리 꼭대기로부터 전기적 자극이 벼락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다.

오선지에 음표를 빌어 그려져 있을 때에도 진짜 음악은 아닌 법인데, 하물며 말로 그것이 어떻게 설명이 되겠는가. 문학에 대해서건 이론에 대해서건 영화에 대해서건 무용에 대해서건 평이란 그 자체로 존재론적 고민을 끌어안고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일이라지만, 음악에 대한 평은 그 중에서도 가장 손에 잡히지 않는 일 같아 보인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음반평은 가수나 연주자의 뒷배경이나 연주이력을 소개함으로 시작하여, 해당 음반의 전작과의 차이점이나 동일점에 대해 몇 가지 지적하고 맺곤 한다. 특히나 음반 속에 포함된 부클릿의 평치고 참신한 것은 정말 없다. (좀 다른 얘기지만, 왜 부클릿을 음반 속에 포장해두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애초에 그 음반을 집어든 사람이라면 그 정도 이야기는 스스로 쓸 수도 있는 것일 텐데 말이다. 부클릿을 밖으로 한 번 포장해보라. 모르긴 몰라도 매출이 늘텐데.)

문체, 비유의 방식, 정보의 깊이, 논란을 부추기는 시각의 극단화 - 어떤 것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클래식 쪽은 조금 사정이 낫다고 생각되지만, 이 쪽은 잘 모르니 뭐.

아주 좋은 음악을 들을 때는 - 지금 듣고 있으니까 이런 글을 쓰게 된 건데 - 이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의 소용없음 때문에 슬프기도 하고 경이감을 느끼기도 한다. 스스로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에 대한 느낌은 음악으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일찌기 깨달은 현명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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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바위 2004-03-30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현의 노래>가 떠오르네요. 김훈이 음악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는 얘기를 듣고 큰 기대를 했는데..... 실망했습니다. 글의 아름다움은 여전했지만, 현의 세계에 대한 묘사에서는 별로 가슴을 치는 바가 없었거든요...김훈이 실패했다면 불립문자의 음악세계를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고 봐야겠죠? 그런데 이 페이퍼를 쓸 때 들었던 `아주 좋은 음악`은 무엇이었나요?
 

 

 

 

 

 

갑자기 생각이 나서 <빨간 기와>와 <까만 기와>, 이어서 <상상의 초가 교실>을 찾아들었다. 슬프면서도 씩씩하고 무연하면서도 희망적인 이야기가 적량의 카페인처럼 필요한 시점이었다.

차오원쉬엔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가 북경대 교수이며, 중국 국어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사랑받는 적통의 작가라는 것 뿐이다. 그러니까 세 권의 책의 책날개에 씌어진 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런 것 하나도 몰라도 좋다. 이 세 권의 책을 사랑하는 데에는 어떠한 지식도 필요없다. 각자의 조금의 기억만이 필요할 뿐이다. 각자의, 유년에 대한, 아주 조금의 기억들!

<빨간 기와>에 편집자 추천을 준 나와 <까만 기와> <상상의 초가 교실>에 편집자 추천을 준 현재의 문학 담당자 모씨에게는 취향의 공통점이 - 물론 -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기호가 어쩌다 일치해서 차오원쉬엔의 책 3권에 - 그나마가 우리나라에 번역된 전부인데 - 아낌없이 추천이 붙게 된 것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들 어쩌랴. 차오원쉬엔의 성장소설의 감동은 너무나 깊고 넓은 것이어서, 나는 이제 이 책들의 표지만 보아도 눈 밑이 무거워지며 물이 차오른다. 이 소설들 속의 주인공들을 생각하면 나는 슬프면서도 웃음이 나고 무연하면서도 인생에 대한 기대에 몸이 단다.

성장소설은 복고인가? 분명히 일면 그러하다. 그러나 성장소설은 또한 미래의 구상이다. 아이를 둔 부모든 아니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성장하는 작은 인간들에 대해서 숲에 자라는 작은 풀들에게 느끼는 만큼의 책임감은 느끼게 마련이다.

차오원쉬엔이 이 소설들을 통해 얼마만큼의 미래의 구상을 보여주었는가, 새삼 생각해본다. 어쩌면 구상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다만 확신하건대, 미래의 어떤 구상 속에서도 아이들은 차오원쉬엔의 아이들과 똑같이 생겼을 것이다. 그의 소설의 아이들은 볼이 붉고 뛰어놀아 숨이 차고 신발에 흙이 가득하다. 그의 소설의 아이들은 금방이라도 종이를 뚫고 나와 내 곁에 있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더 자주 성장소설을 읽을 것이다. 내 인생을 이해하는 좋은 방편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 소설들의 갈피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이 늘 것 같다. 내가 나이를 먹어 다만 어린 시절의 나의 일부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래서 쌓아두는 소설들이 수십권은 될 터인데, 그 중 차오원쉬엔의 것들은 제일 위에 몇 번이고 놓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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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2-2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에게도 성장소설이 필요하다...내 좋은 깨우침이네요. 늘 성장기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하긴 또래가 좋은 이유도 바로 같이 성숙해 가는 세대이기 때문인 이치와 같은가 봅니다.

starla 2004-02-28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피솔님, 차오원쉬엔 책 한번 읽어보세요. 뭉클하답니다. ^^ 누군가 말하길 <내 영혼의 아이들> 중국판이라고 ^^

zooey 2004-03-0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오원쉬엔. 아아,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죠. ㅠ.ㅠ 2월 내맘대로 좋은 책 찜!
 
위철리 여자 동서 미스터리 북스 46
로스 맥도날드 지음, 김수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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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탐정을 논할 때 루 아처를 빼놓으면 섭섭하겠지. <위철리 여자>는 루 아처 시리즈 중에서도 정말 멋진 작품이었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짜임도 탄탄하고, 사건 자체도 상당히 현실적인 가족문제라(연애사인가?)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 않았다.

소설 자체의 재미나 질로 따지자면 별 다섯 만점을 주고 싶은데, 굳이 하나를 뺀 것은 번역 때문이다. 크게 잘못된 부분이나 오역은 없는듯 보인다. 하지만 하드보일드 특유의 비장하고도 쓸쓸하며... 왠지 모를 '후까시'있는 그런 분위기가 잘 살지 않는다. 하드보일드에서는 분위기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 추리소설 팬들이라면 공감할 것. 특히 주인공들의 대화에서 긴장감이 느껴져야 하는데, 지나치게 평면적인 번역이라 원작의 깊이를 살리지 못했다. 아쉽다, 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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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의 랑데부 동서 미스터리 북스 54
코넬 울릿치 지음, 김종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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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리쉬를 (코넬 울리히나 윌리엄 아이리쉬나 같은 사람이다) 꽤 좋아한다. <환상의 여인>을 처음 읽었을 때는, '뭐 이런 추리소설이 다 있어'한 적도 있긴 했다. 그 때만 하여도 안락의자 탐정의 이야기만이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락의자 탐정의 이야기는 트릭을 알면 그 순간으로 재미가 사라지기 쉽지만, 아이리쉬의 소설은 소설 자체로도 다시 읽을 만한 재미가 있다. 문장이 결코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굉장히 서정적이고, 심리묘사가 섬세하다. 솜뭉치를 두른 권투 글러브로 얼굴을 때리는, 부드럽지만 묵지근한 느낌이랄까.

<상복의 랑데부>도 내용이야 크게 트릭이 있는 건 아니다. 50% 정도 읽으면, 추리 자체의 긴장감은 좀 떨어지는 구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이란! (작은 살인사건 여러개로 구성되어 있다) 그 화려한 세부묘사란! 단어 하나하나가 읽는 동안 포만감을 주는, 그야말로 '볼 만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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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롤란토 > 그런데 레닌이 누구야?

"너무 재밌다...그런데 레닌이 누구야? 주인공은 알렉스잖아."
<굿바이 레닌>을 보고 나온 20대 초반 여성 관객의 멘트다.
지난해 FILM2.0에 실린 '말말말'중 단연 으뜸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레닌을 모른다고 탓할 수도 없지만,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엔
뭔가 엄청난 문화적 재앙이 도래할 것만 같다.

- FILM2.0 162-163 합본호 <편집장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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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la 2004-01-30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구나. 역시 film2.0의 편집장이니까 이 일화에서 '문화적 재앙'을 예감하는 구나, 싶어서 재미있기도 하지만 - 재앙으로 말하자면 어디 문화적 재앙 뿐이겠는가... 그보다도 대체 저 관객은 어떻게 [굿바이 레닌]을 볼 생각을 했던 건지... 뭐가 그리도 재미났는지가 불현듯 궁금해졌다. 흐흐흐...

▶◀소굼 2004-01-30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단순히 통일독일을 숨긴다는 것만으로 웃기다고 한걸지도;으음, 달력에 15일 굿바이레닌DVD출시라고 써놨었네요...그냥 지나쳤으면서;

땡구 2004-01-31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그래도 “문화적 재앙”운운은 좀 오바...인네...싶네요. 필름2.0 편집장이 누군지는 몰라도 그렇게 겸손하지 못하게 말하면 안되죠. 저로 말할거 같으면 대학 3학년 영미비평 수업시간에 후배 여학생이 발표하면서 계속해서 ’미셀 포컬트(Michel Foucault)‘, ’미셀 포컬트‘ 할 때 이후로 그런 부분은 웃으면서 덮어주자!.... 했다면 당연히 거짓말이겠고, 가만 생각해 보니 저 역시 [푸코의 추]를 읽기 전까지는 움베르토 에코와 미셀 푸코를 잘 구분하지 못했던거 같기도 하고... -_-;;

여튼... 레닌..하니 91년도 겨울에 어찌 어찌해서 모스크바에 갔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삭풍이 불던 붉은 광장, 테트리스 성을 등지고 왼쪽의 레닌묘에 늘어선 관람객 만큼이나 오른쪽에 길게 줄지은 맥도날드 입장 행렬! 음식이 입에 안맞아서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레닌묘 입장 행렬의 맨 끝에서 찰칵 사진 한 장만 찍고 바로 맥도날드로 달려갔던 기억이 나네요. 햄버거 먹고 조금 더 돌아다니니...묘지 뒤켠에 멋드러진 레닌 동상이 있어서...이야 반갑다! 하면서... V 하면서 사진 찍고 그랬죠. 아...근데.. 오래된 객지 생활에 그 사진들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찾고 싶은데....흠흠..

비로그인 2004-01-31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7년 여름이었던가 러시아에 갔었는데... 그 때는 이미 레닌 동상은 고사하고 조그만 석고 흉상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레닌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 한방 찍고 기념품 하나 사가야지 했던 바램이 여지없이 무너지나 싶던 순간... 시장을 돌다 티셔츠 가계에 레닌 얼굴이 크게 찍힌 여름 반팔티를 발견하고는 막 달려갔죠.

그런데 가까이서 보니 레닌 머리 위로 노란색 아치가 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Mac Lennin"이라고 써 있더군요. 그 때야 황당하고 서글프고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자본주의의 포식성이 섬뜩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좀더 예의바르고 정갈한 자본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요...쩝...


▶◀소굼 2004-01-31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색 아치의 레닌은 깨는군요-_-;;언제 어디서나 어떻게든 맥도날드인건가;;

starla 2004-01-31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c lennin 이라 ㅠ.ㅠ

실상 모든 문화적 체험의 생산자는 듣는 대상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는 거겠죠. [굿바이 레닌]을 그냥 본 저 관객은 나름대로 레닌에 대한 추억들까지(!) 간직한 위의 댓글러;;; 들과는 다른 대상이었고, 그 관객이 뭐라고 한다고 [굿바이 레닌]의 문화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의미에서 정말 '문화적 재앙'이란 표현은 좀 오버인지도 흐흐... 책에도 그런 책은 많아요. 정말 재미있는데, 이 유머의 코드는 스키마를 필요로 한다, 라고 판단될 때. 아무리 재미있어도 그런건 내가 누군가의 스키마를 통째로 알지 못하는 이상 추천하기 어렵잖아요. 이럴 때는 마구잡이로 추천하고는 이해 못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문제겠죠...

아 횡설수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