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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
조르주 뒤비 지음, 채인택 옮김, 백인호 외 감수 / 생각의나무 / 2006년 10월
품절
☜ 추억의 사회과 부도... 세계가 있고 꿈이 있었습니다
중고교 시절, 가장 좋아하는 교과서는 사회과부도 혹은 지리부도였다. 보고만 있어도 흐뭇할 뿐더러, 거기에 나온 낯선 나라나 수도 이름을 새기고 외우느라 바빴다. 이제 거기에 그려진 지도 모양도 색깔도 제법 많이 바뀌었겠다 싶다. 구소련의 붕괴로 유럽과 아시아 경계선이 확 바뀐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석유 자원 고갈에 대비해서 무식하다 싶을 만큼 바다를 통째로 메워 지도를 바꾸는 두바이 같은 나라도 있다.
☜ 인터넷을 접한 이래 최대의 즐거움 “구글 어스”
나이가 들고 테크놀로지가 급격하게 진보하면서 어린 시절 지도를 보며 헤하고 입이 벌어지던 녀석은 이제 구글 어스를 통해 말 그대로 세계를 제 집 안마당 들여다보듯(조금 과장;) 관찰할 수 있다. 가히 인터넷을 접한 이래 최대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하면 사내의 입장에서는 적어도 입에 침은 한 번 발라야지 싶지만, 어쨌든).
☜ 불을 켜면 우주에서 본 지구가 연출되는 궁극의 지구본
신혼 초에 문방구에서 판매하는 돼지 저금통 중에 가장 존재감 있어 보이는 커다란 녀석을 하나 장만했다. 이른바 포부는 500원짜리 동전으로 돼지를 가득 채워서 표면이 엠보싱되어 있는 럭셔리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구본을 구입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저 입에 풀칠하기 바쁜 그저 그런 일상에 밀려, 돼지 저금통의 500원 더미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느 한 때의 생활비로 충당되었지 싶다.
☜ “메이저리그 홈 투어 맵”은 지도에 대한 로망이자 야구에 대한 동경이었다
그 후로 6년 여의 시간이 흐르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럭셔리 지구본을 구입하는 꿈은 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지도라면 좋아하는 메이저리그의 구장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메이저리그 홈 투어 맵”을 샀을 만큼 나름 소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150년 역사가 채 못 되는 메이저리그 구장들의 지도도 어떤 구장은 이름이 바뀌고, 어떨 때는 구단 이름이 바뀌며, 또는 이사를 하거나, 없어지고 새로 생기고 해서 적어도 몇 년에 한 번쯤은 바꾸어 내야 할 텐데, 인류가 그 오랜 세월 동안 땅에 새겨온 기록은 어떠할까.
☜ 세계의 지리를 그리는 속에 역사까지 담은 지도책, 또 다른 로망이 시작 된다
이제 한국에서 언제나 만날까 고대하던 책을 드디어 만났으니, 그게 바로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보는 세계사》이다. 10년이 멀다 하고 변하는 세계의 지도 가운데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인 변화와 세계사의 장면만을 포착해서 담았다는 책. 지도 자체만의 로망은 아무래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옥스퍼드, 혹은 더 타임즈에서 쇄를 거듭하며 찍어내는 《아틀라스 오브 더 월드》이겠지만, 세계의 지리를 그리는 속에 시간까지 새겨 넣었다니, 역시 새로운 로망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
☜ 무게가 무게다보니, 손에 잡히는 대로 휘두르다 보면...!
예약판매를 통해 주문해 받아본 책은 일단 역시 무겁다. 페이지는 400페이지가 채 못 되는데, 판형이 워낙 크고 빳빳한 종이를 쓰다 보니 3킬로그램짜리 덤벨을 한쪽 손에 들고 다른 쪽 손에 들어보아도 그 무게를 견줄 만하다. 듬직한 무게로 보았을 때 손으로 턱, 들고 보기는 무리이겠거니와, 적당히 사이드 테이블 한켠에 이래저래 펴놓은 상태로 올려놓고, 한 페이지도 빠짐없이 담겨 있는 지도를 진득하니 들여다보면서 감상하는 것이 제 맛이겠다. 하지만 확실히 이 정도의 무게면 덤벨 대신 활용하면 운동 효과도 꽤 될 듯하다.
☜ 책의 세로 길이가 35센티미터를 넘다 보니 일반적인 책꽂이에 세워지지가 않는다
책의 크기는 가로가 27센티미터 세로가 36센티미터에 두께가 4센티미터 정도이다. 가장 작은 책 크기에 속하는 영어 페이퍼백 원서를 4권 정도 붙여놓은 크기이며, 흔히 신국판이라고 하는 가로 152밀리미터 X 세로 225밀리미터 크기의 책이 약 2/3 정도를 점하는 크기이다. 여기서 사소한 문제점이 생겨나는데, 보통 일반 가정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책꽂이는 약 30센티미터 정도까지의 책을 보관할 수 있도록 규격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처럼 비규격(?)의 위용을 자랑하는 책들은 맨 밑 칸에 따로 모아 눕혀서 보관해야 한다는 점이 있다.
☜ 깨알 같은 포인트 9의 글씨지만 이의로 읽기가 불편하지는 않다
본문에 처음 들어가면 처음 눈에 띄는 것은 물론 지도지만, 그 아래로는 지도에 대한 일종의 보충 설명격의 글이 달려 있다. 깨알 같다. 포인트 9. 언젠가부터 그만한 글씨의 책은 거의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의외로 읽기에 불편하지가 않다. 설명이 놀라울 정도로 간명하고 깔끔하기 때문이다. 공부 아주 잘하는 애, 노트 정리 끝내주게 잘하는 애가 특기를 십분 발휘한 듯 정연하기 이를 데 없다.
깨알 같은 글씨가 부담스럽다면, 우선 지도와 그 안의 색깔, 기호만을 보면서 역사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재구성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허나 밑에 있는 글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술술 읽히며 무엇보다 지도의 내용을 알차게 지원해 주니, 역시 함께 읽는 것이 좋겠다.
☜ 지도의 색깔도 꽤 다채로워지면서 흥분을 자아내는 고대 그리스 이야기
앞부분에 발음하기도 힘든 인류의 조상 얘기가 다소 버겁게 느껴지면, 조금 익숙해지는 부분, 가령 유럽 같은 경우에는 고대 그리스 이야기부터 읽어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지도의 색깔도 꽤 다채로워진다. 파노라마의 첫 페이지가 열리는 흥분이 느껴진다.
☜ 로마의 이탈리아 반도 점령
시오노 나나미가 썼던 게 족히 십수 권은 넘었던가. 그 로마 역사가 십수 페이지의 지도와 글로 압축된다는 게 무모하기도 하고 불경스럽지 않은가 싶지만, 수십 장의 지도에 녹아 있는 그들의 역사에서 오히려 시적인 압권을 맛볼 수 있다. 《로마인 이야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걸 읽을 때도 몇 십 페이지의 글 뒤에 그들의 행로와 흔적을 정리해 준 지도를 보는 것도 큰 재미였다.
☜ 중부 유럽의 새로운 국경선(1919 - 1921년)
세계사 속에서 국경이 바뀌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한지를 생각해 보라. 어제는 프랑스어를 쓰던 지방이 오늘은 독일어를 쓰고, 내일은 이탈리아어나 네덜란드어를 쓴다. 같은 알파벳을 쓰는 문화권에서 발음이 바뀐다는 뜻이다. 역자나 편집자들의 노고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느껴지는 대목이 여기다. 저 지도에서는 저런 발음이었을 것을 이 지도에서는 이런 발음으로 바뀐 것을 일일이 확인하고 표기해야 했을 테니까.
☜ 한국전쟁 발발 당시부터 판문점의 휴전까지
제목에 세계사라는 말이 있고 그 세계 속에는 한국도 있으니, 한국에 대한 내용이 얼마나(어떻게 보면 ‘어떻게’ 그리느냐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기도) 나왔는지 찾아보고, 역시나 이내 실망을 하게 된다. 이 책도 저자가 프랑스인이다 보니, 프랑스 역사가 로마 제국 1000년 역사보다 더 풍성하고 드라마틱했다는 것에 동의할 사람은 얼마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역사에 대해서는 통계지도까지 실을 정도로 책의 짧은 분량에 비해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사실 어떤 세계사 책을 보아도 한국의 존재감에 만족을 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동북공정에 부르르 떠는 것만이 역사를 제대로 보는 길이 아니고, 지금 세계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공정하게 되새겨보자는 시선이 힘을 얻어가고 있으니까, 그런 입장에서는 이 책을 보는 마음이 불편함으로만 채워질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이 책의 저자가 아날학파의 거두인 조르주 뒤비이고 보면, 부족한 사료를 정치적 상상력으로 메우라고 하기에도 무리가 아닐까?
☜ 19세기의 아프리카. 지도는 그래도 말보다는 거짓말을 덜 한다
어떤 시대, 어떤 역사적 상황에 대한 지도를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는 남지만, 지도는 그래도 말보다는 거짓말을 덜 한다. 누가 어디 땅을 가졌고, 누가 어디로 갔는지는 지도 속에 거짓말로 표시해 놓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세계사를 한 과목으로 배우는 학생들이 또 하나의 교과서로 한껏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진상이야 어떻다 치고, 최대한 사심 없이 사실을 그린다는 것이 아날학파가 말하는 공약인 바에야, 여러 관점을 접해 본 성인들에게도 그렇겠지만 역사를 처음 느껴보려는 학생들에게는 아주 좋은 참고서가 될 듯하다.
☜ 1868년 - 1939년의 일본. 뻗어 나가는 화살표는 당시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보여준다.
이 책은 지도로 말하는 책이다. 구구절절이 기술하자면 세계의 역사란 게 이만한 책 100권, 1000권을 가지고도 모자를 터이지만, 중고교 6년 동안 받는 여섯 권의 얄팍한 책에서는 도저히 담을 수도 없고 담을 생각도 없는 내용이 지도와 함께 튼튼하게 짜여져 있다.
☜ 번쩍 번쩍... 꽂아 놓으면 빛이 난다고나 할까요...! ^^;;
2002년 개정판을 판본으로 삼았다고 하지만, 초판이 1970년대에 나온 책으로 비주얼적인 면에서 지금의 감각을 완전히 만족시켜 준다고 하기에는 힘들다. 4년의 편집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본문이 완전무결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가 독자 서평을 통해 말했듯이, 몇 가지 만족스럽지 않은 점이 이 책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사를 할 때마다 그 번거로움에 책을 소장하려는 욕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데, 그런 욕심에 대한 성찰마저 잊게 해주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