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zooey > <하늘과 땅> 중에서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산다. 불멸의 신神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방 안에 혼자 있으면 코를 후빈다. 내 영혼 안에는 인도印度의 온갖 지혜가 자리하고 있지만, 한번은 카페에서 술 취한 돈 많은 사업가와 주먹질하며 싸웠다. 나는 몇 시간씩 물을 응시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뒤좇을 수 있지만, 어느 주간 신문에 내 책에 대한 파렴치한 논평이 실렸을 때는 자살을 생각했다. 세상만사를 이해하고 슬기롭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때는 공자孔子의 형제지만, 신문에 오른 참석 인사의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으면 울분을 참지 못한다. 나는 숲 가에 서서 가을 단풍에 감탄하면서도 자연에 의혹의 눈으로 꼭 조건을 붙인다. 이성의 보다 고귀한 힘을 믿으면서도 공허한 잡담을 늘어놓는 아둔한 모임에 휩쓸려 내 인생의 저녁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고 사랑을 믿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인들과 함께 지낸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의 인간인 탓에 하늘을 믿고 땅을 믿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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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열심히 열심히 모아서 2004년이나 2005년에는 꼭! 티벳을 가리라 마음먹고 있는데, 어제와 그제 MBC에서 창사특집 다큐로 '티벳 대탐사'를 하는 걸 보고 말았다...

아니 다큐 하는 거랑 네가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별 상관은 없지만;;; 왠지 그 수려한 풍광에 반하여 나보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갈 거라고 생각하니 ㅠ.ㅠ 흑~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맞아 중국중부와 티벳고원을 잇는 철도공사가 한창이다. 2008년 전에 티벳을 가고 싶은 이유도 그 때문. 사실은 성도로부터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육로이동을 택하고 싶지만 - 그리고 그 쪽이 고산병에 고생할 확률도 줄여준다 - 언제 일정이 바뀔지 며느리도 알 수 없는 중국여행의 특성 상 그러자면 한달이 있어도 불안하겠기에, 간다면 아마도 성도-라사편 비행기를 이용할 것이다. 뭐 이 글을 쓰면서 곰곰 생각해보니, 2008년 이후 철도를 타고 가는 것도 좋긴 하겠구만 -_-;;;

사람이 드문 곳을 찾는 여행은 항상 죄책감을 일으킨다. 캄보디아 여행도 그랬다.

사람이 없어서 찾아가는 것인데, 내가 감으로써 사람이 더 많아지고, 나는 물을 흐리고 땅을 버리고 공기를 망치고. 내가 돌아오고 나면 그 곳에는 내가 그런만큼 흐려진 물과 버려진 땅과 망쳐진 공기가 남고. 사람이 없던 곳은 더이상 사람이 없는 곳이 아니게 되고.

무엇보다도 그 인적드문 곳에 무수히 버려진 여행자의 에고가 나는 두렵다. 잔뜩 싸짊어지고 떠난 여행자의 에고, 황량한 유적에, 깊은 숲속에, 맑은 강물에 조금씩 털려나간 에고들. 심각한 여행자의 에고가 묻은 땅은 어지럽다.

위안되는 것은 다만, 그렇게 에고를 탈탈 털었던 여행자들이 죽어 없어지고, 그 여행자들의 자손도 죽어 없어지고, 그들의 뼈가 땅 속에서 삭아 없어지는 그 시간 후에도 그 땅이 남아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다. 그러나 그것조차 얼마만큼 말이 되는 기대일지는,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모른다. SF 소설을 쓰는 자도, 애니메이션을 그리는 자도, 운동을 하는 자도, 혼자 사는 이도, 함께 사는 이도,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모른다. 공룡이 없어진 이유가 아직도 일말의 미스터리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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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yukineco > 허영의 책꽂이

책을 읽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나는 '재미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좋은 책의 조건이 뭐냐고 물으면 역시 '재미있는 책'이라고 말한다. 이 대답은 내가 입사면접 때 한 말이기도 하다. 딱히 시간을 들여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나에게 좋은 책은 재미있는 책이다. 당연히 용서할 수 없는 책은 재미없는 책이다.

그런데, 서점에 읽하면서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책을 사지 않는다. 재미있는 책은 '빌려서 읽거나 서점에서 서서 읽고' 좋다고 여겨지는 책을 산다. 사실, 그렇게 산 책들의 운명은 뻔하다. 사서 펼쳐볼 확률 반, 끝까지 읽을 확율은 그 반, 재미있을 확률은 그 반, 그 책을 다시 읽을 확률은 그 반이다. 남 이야기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건 내 이야기다.

그리고 두고두고 기억나고, 어느 날 문득 다시 읽고 싶은 책은 서점에서 서서 읽었던 책 혹은 도서관이나 대여점에서 빌려 읽었던 책이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쉽게 구할 수 없다. 금방 품절되거나 절판이 되니까 말이다. 이른바 명작은 절대로 절판될 걱정 안해도 된다. 그런 책들은 메이저 출판사들에서 주구장창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토록 나올 테니...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스티브 킹 때문이다. 소시적에 이런 대중 소설이라면서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았는데, 지금 땅을 치고 후회한다. 그때 살걸. 번역이 엉망이든 책 편집이 조잡하던, 아니면 대중소설을 내 책꽂이에 꽂아두든(아, 어린 시절의 나는 얼마나 허영과 과식욕에 넘치는 존재였던가)그밖에도 많다. 수없이 절판된 만화들... 이제는 대여점에서 폐기처분된 그 만화를 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샀던 책들은 지금도 대부분 구입할 수 있는 책들이다. 게다가 개정판까지 줄줄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때 안샀던 책들은 지금는 대부분 절판 상태고 다시 나올 확율도 낮은 상태다. ㅠ.ㅠ

그렇게 보면 내 책꽂이는 내 허영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실, 그 허영은 내게 도움이 되기는 했다. 그 허영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고전의 맛을 몰랐을 거다. 사서삼경, 도덕경, 한비자, 셰익스피어니 초서니, 그리스 로마 신화, 실러, 괴테, 도스토예프스키..아.. 솔직히 고백해 처음에는 너무 재미없었다. 지적 욕구만큼이나 더 무서운 것은 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내 허영의 욕구였다. 그 결과 나는 고전을 이제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전공까지 고전을 하게됐고...^^;;

 요즘 책을 정리하다 보면 정말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책'을 들고 다녔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아, 왜 나는 솔직하지 못했던가. 지금은 재미있는 책도 사고, 그럴듯한 책도 산다. 언젠가는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책은 현재를 위해서도 사야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도 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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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la 2003-12-0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여기저기서 공감하는 소리 마구 들립니다.
 



원칙은 하루에 한시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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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ky 2003-12-06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하루에 한시간씩 하여 벌써 저만큼을 하다뉘! 대체 퍼즐 할 시간은 어디서 나오는 게요.

Laika 2003-12-10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이거 몇 피스 짜리예요? 나두 이런거 해보고 싶었는데...

브리즈 2004-01-11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잔의 정물을 퍼즐로.. ^^ 퍼갈게요..
 

 

 

 

 

나는 추리소설을 각별히 좋아한다.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는 언젠가 서재의 방명록에 길게 쓴 적도 있다. 말도 안되는 이유라서 다시 쓰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추리소설이 좋다.

추리소설과의 인연의 처음으로 기억되는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학급문고에서 발견하고 읽은 엘러리 퀸의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이었다. 이집트 십자가란 위쪽의 튀어나온 부분이 없는 T자 모양의 것이라는 뒷표지 설명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쓸데없는 상식에 집착하고 '퀴즈가 좋다' 프로 같은 것에 매우 흥분하는 성정에는 변함이 없다.

좌우간, 그 T자 모양의 십자가라는 것이 사람 머리통을 잘라낸 시체를 예수님 모양으로 갖다붙여 생긴 것이라는 대목에 이르러 경악하고 말았다. 그것이 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잔혹이다. 그 후로 엘러리 퀸과 아가사 크리스티를 섭렵하고, 틈나는대로 이런저런 안락의자 탐정 이야기를 읽었다.

고등학교 때인가, 비로소 하드보일드와 만났다. 레이몬드 챈들러와 대쉴 해미트와 그보다 덜 유명한 이런저런 탐정의 이야기를 수소문해가며 읽었다. 허기를 채울 길이 없자 영어소설을 사서 읽는 버닝단계에 들어선 것도 이 때다.

그런데, 왠지 한국 추리소설이나 현대 추리소설은 읽게 되지가 않았다. 친구 중에 김성종을 좋아한 이가 있어 (그 친구는 왜 고등학생이면서 김성종 같은 작가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지금 생각하면 의아하다. 그 친구는 <여명의 눈동자>는 읽지도 않고 <제5열> 이런것도 아니고, 김성종의 순수한 추리물을 읽었다.) 몇 권 강제로 시도당한 적이 있긴 한데 그 뿐이었다. 도서관에서 <올해의 한국추리소설> 이런 책을 보면 당연히 가져다 읽긴 했지만 흐으..음? 하고 말았달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가장 큰 장벽은 '추리소설에는 특정한 배경이 필요하다'는 나의 선입관이었다. 정통추리물이라면, 신사들은 파이프담배를 물고 숙녀는 모자를 쓰고 - 여행은 기차로 하고 운동은 승마로 하는, 1900~1930년대 영국이나, 많이 봐줘서 유럽과 신대륙이 배경이어야지! 뭐 이런 생각 말이다. 물론 느와르라면... 말 안 해도 다들 알겠지. 금주법 시대, 갱단과 마피아와 카지노, 스포츠카에 탄 금발의 여인, 콜트권총... 뭐 이런 거다 =_= 이런 배경을 벗어난 곳에서의 범죄와 추리는 아무래도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혹시 아직도 그 때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헤닝 만켈 시리즈를 읽어보시길 바란다. 물론 추리소설의 황금기의 배경을 벗어나서도 얼마든지 많은 소설이 있었고, 그중 좋은 것 또한 많지만, 2000년대의 감성에 잘 맞기로 헤닝 만켈의 책 만한 것이 없다. 단순히 추리로 훌륭하다, 라거나 재미가 있다, 라는 것보다도 어떤 의미로는 '쿨'하다고나 할까.

아... 원래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발란더 아저씨의 매력을 전도하는 글을 쓸 양이었는데... 아무 상관없는 내용만 잔뜩 쓰고 말았다. (내가 원래 그렇지 뭐. 주제에 몰두하지 못하는 -_-;;;)

발란더 아저씨의 매력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뇌수까지 구석구석 파헤치기로 하고, 이 글에선 현재 알라딘에서 헤닝 만켈 시리즈를 30% 할인하고 있다는 정보로 마무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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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ey 2003-12-06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마지막 문장 너무 좋아요. 헤닝 만켈은 왜 아무리 해도 안 팔리는 거야. ㅠ.ㅠ 다음 페이퍼 기대할께요! 더불어 하고 계신 번역도 모쪼록 마감하시길. 헤헷. (고등학교 중간고사 기간에 세로줄로 된 여명의 눈동자 열 권을 읽어치우던 기억이 나는군요. 으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