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말로 설명하는 것처럼 소용없는 짓도 또 없다. 제법 전문적으로 대중음악평을 쓰고 있는 친한 선배와 만나 입만 열면 하는 말이다.
이 선율, 이 리듬, 그리고 선율과 리듬 사이 어느 무중력같은 공간에 작은 알갱이처럼 부유하는 느낌. 어떤 음악은 마치 머리 위에서 오로라 같은 것이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온 몸을 젖게 한다. 머리 꼭대기로부터 전기적 자극이 벼락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다.
오선지에 음표를 빌어 그려져 있을 때에도 진짜 음악은 아닌 법인데, 하물며 말로 그것이 어떻게 설명이 되겠는가. 문학에 대해서건 이론에 대해서건 영화에 대해서건 무용에 대해서건 평이란 그 자체로 존재론적 고민을 끌어안고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일이라지만, 음악에 대한 평은 그 중에서도 가장 손에 잡히지 않는 일 같아 보인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음반평은 가수나 연주자의 뒷배경이나 연주이력을 소개함으로 시작하여, 해당 음반의 전작과의 차이점이나 동일점에 대해 몇 가지 지적하고 맺곤 한다. 특히나 음반 속에 포함된 부클릿의 평치고 참신한 것은 정말 없다. (좀 다른 얘기지만, 왜 부클릿을 음반 속에 포장해두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애초에 그 음반을 집어든 사람이라면 그 정도 이야기는 스스로 쓸 수도 있는 것일 텐데 말이다. 부클릿을 밖으로 한 번 포장해보라. 모르긴 몰라도 매출이 늘텐데.)
문체, 비유의 방식, 정보의 깊이, 논란을 부추기는 시각의 극단화 - 어떤 것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클래식 쪽은 조금 사정이 낫다고 생각되지만, 이 쪽은 잘 모르니 뭐.
아주 좋은 음악을 들을 때는 - 지금 듣고 있으니까 이런 글을 쓰게 된 건데 - 이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의 소용없음 때문에 슬프기도 하고 경이감을 느끼기도 한다. 스스로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에 대한 느낌은 음악으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일찌기 깨달은 현명한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