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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쓴 빌 브라이슨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함께 끄덕끄덕.

맞아요. 세상엔 글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문장이나 문체가 중요한게 아니고, 글이 도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글이 나는 무척 좋다.

글쓰는 법은 배울 수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definitely yes, 정녕 있다, 는 것이 내 대답인데, 여기서도 역시 문체나 문장이나 뭐 그런 것이 아니고, 도구로서의 글.

좀 맥락은 다른데, 그래서 과학 글쓰기는 꽤 괜찮은 영역 같다. 전혀 재미없지 않을 것이다. 도구로서의 글쓰기를 가장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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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6-02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이중 관리, 힘드시겠네요.
그러다가 찌리릿-지기님처럼 다중인격으로 변모하시는 거 아닌지...^^;
<김명남>이란 이름이 반가워서, 한 번 와봤습니다.^^ 건강하세요.

starla 2004-06-03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 님/ 반갑습니당~ 별루 안 힘듭니다 -_-;;; 생각날 때, 하고 싶을 때 하면 되는 건데요 뭘. 저한텐 쉴 때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ㅋㅋㅋ 오늘 되게 더운데 건강 조심하셔요~

물만두 2004-06-0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생각난 건데요. 알라딘 님들도 이벤트를 개인적으로 하셔야하지 않나 싶은데... 어떠실지요...

starla 2004-06-03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그럴까요? -.-;; 저희는 워낙 자투리 시간에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ㅠ.ㅠ 오히려 열심히 관리가 안된다는 -_-;;; 뭐 저희 서재 말고도 알라딘 마을에서 콘테스트를 하는 것도 저희 재미이지요 ^^
 

 

 

 

 

 

갑자기 생각이 나서 <빨간 기와>와 <까만 기와>, 이어서 <상상의 초가 교실>을 찾아들었다. 슬프면서도 씩씩하고 무연하면서도 희망적인 이야기가 적량의 카페인처럼 필요한 시점이었다.

차오원쉬엔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가 북경대 교수이며, 중국 국어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사랑받는 적통의 작가라는 것 뿐이다. 그러니까 세 권의 책의 책날개에 씌어진 것이 전부다. 그러나 그런 것 하나도 몰라도 좋다. 이 세 권의 책을 사랑하는 데에는 어떠한 지식도 필요없다. 각자의 조금의 기억만이 필요할 뿐이다. 각자의, 유년에 대한, 아주 조금의 기억들!

<빨간 기와>에 편집자 추천을 준 나와 <까만 기와> <상상의 초가 교실>에 편집자 추천을 준 현재의 문학 담당자 모씨에게는 취향의 공통점이 - 물론 - 있을 지도 모른다. 우리의 기호가 어쩌다 일치해서 차오원쉬엔의 책 3권에 - 그나마가 우리나라에 번역된 전부인데 - 아낌없이 추천이 붙게 된 것인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들 어쩌랴. 차오원쉬엔의 성장소설의 감동은 너무나 깊고 넓은 것이어서, 나는 이제 이 책들의 표지만 보아도 눈 밑이 무거워지며 물이 차오른다. 이 소설들 속의 주인공들을 생각하면 나는 슬프면서도 웃음이 나고 무연하면서도 인생에 대한 기대에 몸이 단다.

성장소설은 복고인가? 분명히 일면 그러하다. 그러나 성장소설은 또한 미래의 구상이다. 아이를 둔 부모든 아니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성장하는 작은 인간들에 대해서 숲에 자라는 작은 풀들에게 느끼는 만큼의 책임감은 느끼게 마련이다.

차오원쉬엔이 이 소설들을 통해 얼마만큼의 미래의 구상을 보여주었는가, 새삼 생각해본다. 어쩌면 구상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다만 확신하건대, 미래의 어떤 구상 속에서도 아이들은 차오원쉬엔의 아이들과 똑같이 생겼을 것이다. 그의 소설의 아이들은 볼이 붉고 뛰어놀아 숨이 차고 신발에 흙이 가득하다. 그의 소설의 아이들은 금방이라도 종이를 뚫고 나와 내 곁에 있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더 자주 성장소설을 읽을 것이다. 내 인생을 이해하는 좋은 방편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 소설들의 갈피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이 늘 것 같다. 내가 나이를 먹어 다만 어린 시절의 나의 일부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래서 쌓아두는 소설들이 수십권은 될 터인데, 그 중 차오원쉬엔의 것들은 제일 위에 몇 번이고 놓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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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2-2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에게도 성장소설이 필요하다...내 좋은 깨우침이네요. 늘 성장기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하긴 또래가 좋은 이유도 바로 같이 성숙해 가는 세대이기 때문인 이치와 같은가 봅니다.

starla 2004-02-28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피솔님, 차오원쉬엔 책 한번 읽어보세요. 뭉클하답니다. ^^ 누군가 말하길 <내 영혼의 아이들> 중국판이라고 ^^

zooey 2004-03-0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오원쉬엔. 아아,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죠. ㅠ.ㅠ 2월 내맘대로 좋은 책 찜!
 

하는 일 없이 바빴던 12월 12일의 저녁. 밀린 일을 하려고 사무실에 남은 나는, 1시간만 독서를 하면 머리가 맑아질 거라는 근거없는 계산으로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찾아 들었다...만....

애초에 1시간만 읽자고 하면서 어떻게 이 책을 집었단 말인가. 정신없이 읽다보니 시각은 현재에 이르러 -_-; 나는 3시간째 책을 읽고 있고, 야근은 물 건너갔다.

아직 다 읽진 못했으니, 이 훌륭한 저널리스트의 입담이 마지막 장까지 지치지 않을 것인지는 다음 기회에 확인해드리도록 하겠다. 이미 <나를 부르는 숲>으로 알라딘 편집팀 거의 전원의 무차별적 애정공세를 받은 적 있는 빌 브라이슨이다. <나를 부르는 숲>을 읽고 비밀결사에 가입하는 기분으로 조용히 빌 브라이슨을 좋아하기로 했다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은 지금 나는 한국 빌 브라이슨 팬클럽 창단을 선포한다. 선착순 1,000명 한정. 가입비 없음. 회원으로 의심되는 사람과 마주치면 "거의 모든 것을 아십니까"라고 암호를 댈 것.

작년 한 해 애정을 흠뻑 받았던 <엘러건트 유니버스>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좋은 책이다.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서술이 깔끔하게 전개되는 꼼꼼한 책이라 전문가 사이에서도 좋은 개론서로 인정받을 만한 격조가 있었다.

반면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의도적으로 복잡한 부분을 슬쩍 뛰어넘되 그것이 논리의 엉성함을 자초하지 않을 정도라, 전체적으로 빈틈 적은(없는, 이라고 말하기엔 내가 다 모르니까), 그러나 쾌활함이 넘치는 책이 되었다. 엄청나게 공을 들인 것이 분명한 - 그래서 너무 고마운 - 기발한 비유들과 과학자의 사생활이라는 양념을 가한 과학사 서술은 누군가에게는 서비스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갱이다. 그건 읽는 사람 마음.

이런 책들을 만날 때마다 '과학을 계속 할 걸 그랬나' 조금 후회도 해 본다. 주제넘은 생각이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같은 재미난 책을 읽는 이라면 전공에 무관하게 그 누구라도 과학에 매료될 것이고, 진지한 과학자가 되었어도 삶이 즐거웠으리라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하는 법일 테니까.

* 참고: 본문만 500쪽에 육박하는 이 책에는 삽화나 사진이나 표 따위가 하/나/도 없다. 진짜다. 하/나/도 없다. 까치글방 출판사 특유의 가독성은 높되 지극히 평범한 본문 편집에, 그림자료 하나도 없이 글자만 빽빽한 560쪽의 책을 상상하시면 된다. 그러나 그 빡빡한 책이 기똥차게 재미있다는 것도 진짜다.

아, 물론 과학책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재미 같은 것을 찾는 것이 아닌 분에게 말이다. 이름 외우기 어려워도 조금만 참고 읽으면 감동을 얻을 수 있는 러시아 작가들의 소설처럼, 나열되는 과학적 서술들에 한 줌의 인내만 베풀어주시면 우주와 지구와 생명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일별하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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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la 2003-12-15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과 얘기를 나누다가, 이 책의 홍보문구에 <시간의 역사>가 언급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시간의 역사>는 이 책에 비하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말로 일반인을 위한 책이다. <시간의 역사>나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사실 일반인을 위한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최소한 고등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것을 잊지 않고 있거나 과학 언저리를 전공한 사람들이라야 편하게 몰입할 수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정말 쉬운 책이다. 뒤로 갈수록 짜임이 흐트러진 곳도 보이긴 하는데 (<대부> 이야기에서도 적었던 것과 같은 '너무 많은 취재의 오류'가 간혹 있다) 어쨌든 침대에 누워서 자기 전에 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읽는 기분은 너무나 신비롭다.

배바위 2003-12-24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클럽 가입 지원합니다. 내일모레 라디오방송국에 나가서 올해의 책 한 권을 추천해야 하는데 이 책을 추천하렵니다.

starla 2003-12-27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조선일보 선정 2003년 올해의 책에 꼽혔네요. 음 의외이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뭐 좋네요 하하하 ^^

Smila 2004-01-02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다놓고 아직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이 <이브의 일곱딸들>에 비판적이라면서요? (명남님이 리스트에 적어놓으신 코멘트는 보았거든요.) <이브의 일곱딸들>은 제가 너무 좋아했던 책이라,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집니다...

starla 2004-01-03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스밀라님. 뒷부분 생명에 관한 이야기에서 유전자에 대해 얘기할 때 거론이 됩니다. 어여 보세요~ ^^ <이브의 일곱 딸들>은 제 생각에도 조금은 '신화적'으로 내지는 '감동받을 마음가짐'으로 읽게 되는 책인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저는 쓴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러한 형태의 책을 썼을까 참 궁금했었죠. 아무튼 재미있는 책인데, 조오금 어려웠어요. ^^

그러고보면, 어떤 책이 어떤 출판사를 만나느냐도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브의 일곱 딸들>은 따님에서 나왔죠? (아마;;; 대략 기억 정확치 않습니다만) 만약 사이언스북스에서 나왔다면 어땠을까 갑자기 상상해보게 되네요. 책의 내용 자체가 달라질 리야 없겠지만, 홍보의 포커스가 확 달라졌겠죠, 아마... 따님은 당연하게도 유전학 연구에서의 여성주의적 경향 (사실 특정 유전형질의 - 설령 그것이 유전학의 역사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중요한 것이고, 지질학으로 따지자면 방사성동위원소 기법과 맞먹을 혁신을 가져오는 것이라 하더라도 - 모계유전이라는 팩트에서 모종의 여성주의적 함의를 끌어내려는 것 자체가 노골적으로 주장될 경우 '오버'일 위험이 있습니다만) 을 은근히 강조하며 프로모션했는데요, 사이언스북스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 같군요. 흐흐...

저는 <이브의 일곱딸들> 중에서 동아시아 인에 대한 유전적 분석 얘기가 한 문단인가 -_-;;; 나왔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헉, 아닐지도 -_- 대략 이 대목에서도 기억이 가물가물 ㅠ.ㅠ) 스밀라님의 글을 본 김에 집에 가서 오늘 다시 읽으렵니다 ^^ 스밀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Smila 2004-01-04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아시아 인에 대한 유전적 분석 얘기 나왔던거 맞아요^^ 따님에서 그런 쪽을 강조하며 홍보했었다면 어쩐지 오버같군요.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제 입장에서는) 전혀 그런 식으로 생각 안했었으니까요. 전 그저 남자이건 여자이건 '먼 조상'의 존재란 걸 그렇게 실감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전까진 조상이란 걸 정말 우습게 알았는데... 나의 조상 누군가가 그 험한 시절을 살아내고 씨를 뿌렸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감동이었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책두께 땜에 엄두를 안내고 있었는데,(저 두꺼운 책 무지 싫어해요^^;;) 어여 읽어봐야 겠네요.
 

 

 

 

 

나는 추리소설을 각별히 좋아한다.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는 언젠가 서재의 방명록에 길게 쓴 적도 있다. 말도 안되는 이유라서 다시 쓰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추리소설이 좋다.

추리소설과의 인연의 처음으로 기억되는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학급문고에서 발견하고 읽은 엘러리 퀸의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이었다. 이집트 십자가란 위쪽의 튀어나온 부분이 없는 T자 모양의 것이라는 뒷표지 설명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쓸데없는 상식에 집착하고 '퀴즈가 좋다' 프로 같은 것에 매우 흥분하는 성정에는 변함이 없다.

좌우간, 그 T자 모양의 십자가라는 것이 사람 머리통을 잘라낸 시체를 예수님 모양으로 갖다붙여 생긴 것이라는 대목에 이르러 경악하고 말았다. 그것이 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잔혹이다. 그 후로 엘러리 퀸과 아가사 크리스티를 섭렵하고, 틈나는대로 이런저런 안락의자 탐정 이야기를 읽었다.

고등학교 때인가, 비로소 하드보일드와 만났다. 레이몬드 챈들러와 대쉴 해미트와 그보다 덜 유명한 이런저런 탐정의 이야기를 수소문해가며 읽었다. 허기를 채울 길이 없자 영어소설을 사서 읽는 버닝단계에 들어선 것도 이 때다.

그런데, 왠지 한국 추리소설이나 현대 추리소설은 읽게 되지가 않았다. 친구 중에 김성종을 좋아한 이가 있어 (그 친구는 왜 고등학생이면서 김성종 같은 작가를 좋아하게 된 것일까? 지금 생각하면 의아하다. 그 친구는 <여명의 눈동자>는 읽지도 않고 <제5열> 이런것도 아니고, 김성종의 순수한 추리물을 읽었다.) 몇 권 강제로 시도당한 적이 있긴 한데 그 뿐이었다. 도서관에서 <올해의 한국추리소설> 이런 책을 보면 당연히 가져다 읽긴 했지만 흐으..음? 하고 말았달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가장 큰 장벽은 '추리소설에는 특정한 배경이 필요하다'는 나의 선입관이었다. 정통추리물이라면, 신사들은 파이프담배를 물고 숙녀는 모자를 쓰고 - 여행은 기차로 하고 운동은 승마로 하는, 1900~1930년대 영국이나, 많이 봐줘서 유럽과 신대륙이 배경이어야지! 뭐 이런 생각 말이다. 물론 느와르라면... 말 안 해도 다들 알겠지. 금주법 시대, 갱단과 마피아와 카지노, 스포츠카에 탄 금발의 여인, 콜트권총... 뭐 이런 거다 =_= 이런 배경을 벗어난 곳에서의 범죄와 추리는 아무래도 어색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혹시 아직도 그 때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헤닝 만켈 시리즈를 읽어보시길 바란다. 물론 추리소설의 황금기의 배경을 벗어나서도 얼마든지 많은 소설이 있었고, 그중 좋은 것 또한 많지만, 2000년대의 감성에 잘 맞기로 헤닝 만켈의 책 만한 것이 없다. 단순히 추리로 훌륭하다, 라거나 재미가 있다, 라는 것보다도 어떤 의미로는 '쿨'하다고나 할까.

아... 원래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발란더 아저씨의 매력을 전도하는 글을 쓸 양이었는데... 아무 상관없는 내용만 잔뜩 쓰고 말았다. (내가 원래 그렇지 뭐. 주제에 몰두하지 못하는 -_-;;;)

발란더 아저씨의 매력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뇌수까지 구석구석 파헤치기로 하고, 이 글에선 현재 알라딘에서 헤닝 만켈 시리즈를 30% 할인하고 있다는 정보로 마무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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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ey 2003-12-06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 마지막 문장 너무 좋아요. 헤닝 만켈은 왜 아무리 해도 안 팔리는 거야. ㅠ.ㅠ 다음 페이퍼 기대할께요! 더불어 하고 계신 번역도 모쪼록 마감하시길. 헤헷. (고등학교 중간고사 기간에 세로줄로 된 여명의 눈동자 열 권을 읽어치우던 기억이 나는군요. 으악)
 

대부, 마리오 푸조 지음, 이은정 옮김, 늘봄 펴냄.

친구 결혼식 참석 목적으로 부산에 내려오다. 저녁 6시 55분 기차를 예매하고는 "걸어서 십분인데 뭘"이란 마음가짐으로 회사에서 뭉개다가 결국 6시 40분에야 헐레벌떡 역으로 출발. 가까스로 50분에 도착했으나, 아뿔싸, 고속철 공사 때문에 승강장이 신역사로 옮겨졌다. 신역사에서 헤매느라 5분 소요. 어찌나 다행인지 열차가 5분 출발지연한 덕에 겨우 탑승했다.

저녁을 못 먹어 배고프고... 다섯 시간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출발 1초 후부터 지루하고... 잠을 청하자니 특수 상황으로 (요즘 좀 그래) 머리가 어지러워 희귀한 불면증세가;;; 오랜만에 책이나 읽으라는 건가 하며 p모씨의 서가에서 강탈해 온 <대부>를 펼치다.

<대부>를 읽다. 1장을 다 읽다. 몇 장이나 있나 세어본다. 9장까지 있다. 재미있군. 장을 나눈 것은 작가의 의도이므로 좀 자제를 하고 쉬다가 읽어보자. 책을 덮고 지나가는 홍익회 이동매점을 쳐다보다가... 앞자리에 앉은 시끄러운 네 아가씨들을 흘겨보다가... 아... 쓸데없는 저항이었다. 30초도 못 되어 2장을 펼치다.

2장을 읽다. 여기 어디냐. 대전이냐.. 3장을 읽다. 4장을 읽다. 동대구네... 5장을 읽다. 6장을 읽기 시작하다. 앗 벌써 삼랑진이라니. 낭패다.

최근 들어 난독증의 증후를 표출할 기미를 보이고 있는 나다. 그런 나의 '책 안 읽고 인터넷 서점 편집팀 근무하기' 신공 - 거의 주화입마 수준이라고 본다 - 은 어디 가고 책 덮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끙끙대며 책장을 잡고 있는 내가 있다!

특히 가수 조니와 니노의 에피소드가 나는 좋다. 조니는 꽤나 그럴싸한 캐릭터인데... 이 캐릭터에 실제 모델이 있을까?

좋다가도 좋지 않은 것은 시칠리아섬에서 마이클과 아폴로니아의 에피소드다. 마피아로 변신 이후의 일그러진 마이클에 대해서도 떨떠름하게 읽었다. 특히나 우리의 돌아온 케이에 대해서 푸조는 더 애정을 쏟아주어야 했다. 애초에 여성 캐릭터의 현실성에 대해 바라는 게 무리인가.

아차, 라스베이거스 호텔에서 소니의 정부 루시와 의사 줄스의 사랑 에피소드는 좋았다. 역시 작가는 취재를 해야 한다. 취재를 너무 많이 해서 "아 취재한 게 아까워" 이 지경이 되면 시칠리아 섬에 대한 묘사 대목처럼 펜 끝에 '가오'가 묻어나는듯 한데, 라스베이거스의 의사 줄스는 아슬아슬하게 그 수준을 모면한 정도로만 그려져서 좋다.

집에 도착해버려서 7장부터는 아직이다. 영화를 보았으니 대강 끝은 안다. 어차피 뭐 결말이 궁금한 것은 아니니까. 갑자기 이탈리아식 이름들에 마구 친근감을 느끼고 있다. (이탈리아 근처에도 가본 적 없고 기껏해야 두 주에 한번 정도 스파게티 먹는 게 이탈리아와 나의 관련의 전부인 주제에 무슨 문화적 친근감이 있다고 오버... -_-)

아무튼 대단한 소설이다. 역시 인생은 소설보다 대단하고, 그래서 소설은 취재를 하면서 써야 하는 건가 보다. 결론이 뜬금없군. ^^

*****

마이클이 웃음을 띠며 말했다. "신참내기라니, 무슨 뜻이야? 나도 형만큼 아버지 말씀 열심히 들었어. 형은 내가 그 정도 머리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 두 사람은 함께 웃었다.

헤이건이 모두를 위해 술잔에 술을 따랐다. 다소 울적해 보였다. 정치가가 전쟁터로 가야하듯 변호사는 법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좋아, 어쨌든 이제 우리 한탕 하는 거야." pp. 213~214

*****

헤이건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몸이 떨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악마에게 간청하듯 두 팔로 무릎을 감싸고 앉아 머리를 푹 숙였다.

헤이건은 자신이 전시의 콘실리에리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는 다섯 패밀리가 표면적으로 겁을 내는 모습에 완전히 속은 것이다. pp. 417

헤이건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그럴 수가 없는) 캐릭터이지만, 그래도 가장 감정이입하기 좋고 매료되기 좋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특히 그 소니의 죽음 이후 대부를 대신하여 장의사에게 전화를 하는 씬에서의 대사, 원츄~!!!

*****

그는 이탈리아인이라기보다는 잡지에 나오는 요트를 즐기는 백만장자처럼 보였다. 트라몬티 패밀리는 도박 사업으로 재산을 모았는데, 회의에서 한번 본 바로는 그가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얼마나 잔인한 방법을 썼는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었다. pp. 436

'잔인한'은 <대부> 키워드의 하나인데, 흥미롭게도 소설의 초반부에서는 그다지 인상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소설이 펼쳐져가면, 그러나, 이 흔한 단어의 진정한 피비린내를 맡아낼 수 있게 된다. 대부가 언제나 어느 정도의 가장을 중시여겼던 것과 같다.

*****

회의장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열렬히 박수를 치며 돈 코를리오네와 돈 타탈리아의 새로운 우정을 축하해 주고, 자기들도 서로 악수를 교환했다. 이것은 아마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따뜻한 우정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때 서로 카드 한 장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최소한 서로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그 정도도 우정이며, 그것만 있으면 족했다. pp. 457

내 세계에서는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우정은 족하다! -_- 내가 지금 구사하고 있는 '지방결혼식 참석'은 우정 10점 만점 중 10점인 최고난이도 스킬이랍니다.

*****

돈 코를레오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란 차가울 때 가장 맛있는 음식과 같다. 나도 화해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pp. 632

*****

그 순간 테시오는 모든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체념했다. 그는 온 몸에 힘이 쭉 빠졌지만 간신히 몸을 추스려 헤이건에게 물었다. "마이클에게 사업상 그렇게 되었다고 전해주시오. 그를 좋아한다는 것도."

헤이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도 알고 있습니다."

테시오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간청했다. "톰, 날 좀 살려주시오. 옛정을 생각해서."

헤이건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안됩니다."

테시오는 경호원들에게 잡혀 기다리고 있던 차에 태워졌다. 헤이건은 마음이 아팠다. 테시오는 코를레오네 패밀리에서도 가장 유능한 카포레짐이었다. 돈 코를레오네는 루카 브라시를 빼고 그를 가장 신임했다. 그렇게 영리한 사람이 인생의 말년에 이처럼 치명적인 오판을 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pp.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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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리릿 2003-11-29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에 가셨군요. 저는 대문에 '부산 사투리 필'라고 하길래 무슨 소린가 했습니다. 아... 정말이지 편집장님의 사투리는 짱이에요. ^^ 예전에 야근할 때 편집장님이 친구분이랑 전화통화할 때 전 너무 황홀했어요. (그때가 언제더라... 한 2년전쯤인가..) 그때.. 제가 많이 서울촌놈처럼 살 땐데.. 제 속으로.. '야.. 서울 아가씨들도 사투리 잘 하네..'했답니다. 아..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부산 사투리~ 다시 한번만 더 들려주세요~

zooey 2003-11-29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니의 모델은 아마 ''프랭크 시내트라''였을 걸에요. 그렇게 기억함. 으음, 대부는 영화도 굉장하지만 소설로도 퍽 흡족하게 읽을 수 있는(무엇보다도 두께가!) 책이지요. 헤이건 캐릭터도 무지 맘에 듬. ^^
(아아, 나도 난독증을 잃어버릴 정도로 몰두할 만한 책을 만나고 싶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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