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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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대표 한 장면 

"무슨 벼룩시장 기자가 인터뷰를 한 시간이나 해?"

요즘 <해운대>에 이은 '한국영화 대표작'으로 끗발 날리고 있는 <국가대표>. 이 영화에서 스키점프 국가대표 차헌태(하정우 분)를 인터뷰하는 유일한 언론이 바로 '생활정보신문'으로 유명한 <벼룩시장>이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실화 여부를 떠나 성 코치(성동일 분)의 윗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 여기서 '벼룩시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당시 스키점프 대표팀의 초라한 현실을 상징하는 소품일 뿐이다. 국가대표 됐다고 잔뜩 폼 잡고 인터뷰하나 했더니 '고작' 생활정보지였다는 얘기다. 첫 올림픽 출전 뒤 공항 인터뷰 장면 역시 마찬가지.

다른 관객들이야 한번 풋 웃고 넘어갈 장면이었지만, 적어도 내겐 '남 일'이 아니었다. 10년 전 신문기자를 꿈꾸다 대학 졸업한 뒤 받은 내 첫 명함이 바로 '생활정보신문 기자'였기 때문이다.

영화 자체는 감독의 전작인 <미녀는 괴로워>처럼, 코미디와 신파를 적절히 버무려 의도된 감동을 연출하는 먹기 좋은 대중영화였다. 정작 내가 꽂힌 것은 감초처럼 등장한 '벼룩시장 기자' 모습이었다.

관객들은 심지어 이런 의문을 던졌음직도 하다. "벼룩시장에도 기자가 있긴 해?"

적어도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급조된 90년대 후반엔 분명 생활정보신문 기자가 있었다. 

내가 졸업한 98년은 IMF 직후여서 아끼고 나누고 바꿔쓰고 다시 쓴다는 '아나바다 운동'과 더불어 생활정보신문도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내가 일한 회사 역시 벼룩시장, 교차로와 함께 이 바닥 '3대 메이저'로 꼽히던 곳. 구나 시 단위로 매일 나오는 두툼한 타블로이드판 지면은 온통 부동산, 중고차 광고로 가득 차 있었지만 각종 생활정보나 미담성 기사들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인터뷰 때는 사진기자를 늘 대동하긴 했지만 '초짜 기자'인 내 모습도 영화 속 벼룩시장 기자처럼 어리버리하긴 마찬가지였다. 주로 다른 언론 매체에 소개된 미담 주인공이나 아나바다 현장을 누볐지만 자체 발굴한 인물이나 '국가대표급' 유명 연예인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수습을 뗀 뒤 얼마되지 않아 이 '업계'에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중소기업 터전인 생활정보신문 시장에서 한겨레, 중앙일보 같은 '중앙 언론'들이 앞다퉈 뛰어든 것이다. 딱 요즘 동네슈퍼 앞에 롯데나 이마트, 홈플러스 같은 대기업들이 뛰어든 꼴이었다.

지역별 가맹 체제였던 기존 생활정보지로선 상상할 수 없는 자본력과 일간지 제작 노하우를 앞세운 이들은 광고면보다 기사면이 더 많은 '일간 지역신문'을 탄생시켰다. 당시 한겨레리빙이나 중앙타운의 노련한 기자들이 지역 취재 현장을 누비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덩달아 기존 생활정보지들도 기사면을 강화하면서 모처럼 '언론'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굴러온 돌'이 '박힌 돌'에 밀리면서 이들의 시도는 '일장춘몽'으로 끝났지만, 수도권과 지방에선 여전히 수익 기반이 취약한 지역언론과 생활정보지들이 공생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벼룩시장 기자 역시 따지고 보면 당당한 지역언론 일꾼인 것이다.  

영화 속에서 하정우를 비롯한 스키점프 국가대표들은 처음부터 철저히 마이너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을 가장 먼저 알아본 언론 역시 방송3사나 조중동이 아닌 벼룩시장 같은 '마이너'였다. <국가대표>란 영화에 뜬금없어 보이는 벼룩시장의 등장이 결코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스키점프와 벼룩시장,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마이너들에게 박수를!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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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 Haeun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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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 파도소리에 숨어 살포시 해변을 걷는 한쌍의 어색한 그림자. 한창 때 해운대에 얽힌 추억 하나쯤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첫키스처럼 설레고 애틋하게 다가오는 그 어렴풋한 속느낌 말이다.

맙소사! 그런 곳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다른 장르도 아닌 재난 블록버스터라니. 행여 대한민국 연인들의 성소에 쓰나미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 영화는 올 여름 최고의 '멜로영화'다. <해운대>라는 제목이 결코 아깝지 않은...

제 아무리 수억 달러를 쏟아부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도, 재난 영화는 일단 휴머니즘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 모든 장면을 초특급 CG로 가득 채울 제작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필수 장치다. '지구온난화 시대' 난데없는 빙하기를 맞은 <투머로우>나 로또 확률보다 낮은 소행성과 충돌한 <딥 임팩트>, 시종일관 쓰나미 뺨치는 파도가 내리꽂히는 <퍼펙트 스톰>에도 '사람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제 아무리 한국형 재난영화라도 이런 공식을 피해갈 순 없다. 아예 한술 더 뜬다. 하나도 모자라 세 쌍의 커플이 등장한다. 배우부터 쟁쟁하다.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에 신예 이민기, 강예원까지. 각각 떼어놓더라도 영화 세 편쯤 거뜬히 만들 만한 화려한 출연진이다. 영화 속에서 저마다 무게감도 대단해서 누가 주연인지 헷갈릴 정도다(요즘엔 출연시간 많다고 주인공은 아니지 않은가).

영화 도입부에 굳이 2004년 동남아 쓰나미를 장황하게 묘사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은 이미 이 영화 끝트머리에 밀어닥칠 재난을 알고 있다. 그리고 제 아무리 사랑스런 연인들이 저마다 장밋빛 미래를 꿈꿀지라도 그들의 미래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님은 초딩도 안다(그래서 12세 관람가 아닌가). 그럼에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건, 갑자기 부모를 잃는 엄청난 참극 앞에서도 해맑게 웃는 세살배기를 보며 느끼는 심정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한없이 어설퍼 보이는 뻔한 러브 라인조차 더 애틋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119구조대 '얼짱' 이민기(최형식 역)와 삼수생 '퀸카' 강예원(김희미 역)의 '로미오 앤 줄리엣'도, 남은 건 딸자식 사랑밖에 없는 돌싱 커플 박중훈(김휘 역)과 엄정화(이유진 역)의 '미워도 다시 한번'도, 철없는 아들 딸린 '이혼남' 설경구(최만식 역)와 '송윤아' 빼닮은 하지원(강연희 역)의 '우리 결혼했어요' 극장판조차도, 뻔한 신파가 아닌 아름다운 '멜로'로 포장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 영화계엔 낯선 재난 영화의 이점이자, <해운대>의 매력이기도 하다. 



제 아무리 CG가 훌륭했던들 이들의 러브 라인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다면, <해운대>는 그저 그렇고 그런, CG 빼면 별로 남는 게 없는 <디워> 같은 괴수 영화로 기억됐을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해운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때 젊은 연인이었거나 곧 그렇게 될 수많은 관객들이 해운대에서 건진 추억의 부스러기들 만큼은 거대한 쓰나미도 어쩔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줬으니까. 


                                                                                              *별빛처럼


(사진 출처: 영화 해운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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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별빛처럼 > 'SF 신성' 테드 창, 한국 팬을 만나다

미국 SF 작가 테드 창이 한국에 왔다. 1990년 데뷔 이후 장편 하나 없이 10여 편의 중단편이 '고작'인 그가 SF 관련 권위있는 상을 휩쓸며 팬들의 주목을 받는 힘의 원천은 뭘까? 지난 7월 18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환상교실에서 만난 그는 그런 '상복'이 단지 행운만은 아니란 걸 보여줬다.  

 환상교실 강연. 그의 작품을 번역한 김상훈씨가 진행했다. 

"제가 테드 창씨 작품은 읽어보지 않았는데요..."

2시간 가까운 대담(?)을 마친 뒤 이어진 Q&A시간. 맨 앞 줄에서 손을 번쩍 든 첫 질문자의 첫 마디에 강연장은 뒤집어졌다. 이어진 질문 역시 만만찮았다. 테드 창 작품과 직접 관련없는 조금 일반론적인 질문. 진행을 맡은 김상훈씨도, 통역자도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 때문이었을까? 다음 질문에 앞서 진행자가 "테드 창 책 읽어보신 분만 질문해 달라"고 주문하자 다시 장내에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첫 질문자로선 무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잠시 뒤 그는 슬며시 자리를 떠났다. 테드 창도 낌새를 챘으리라. 통역자와 소곤소곤 몇 마디 주고 받던 테드 창의 말은 뜻밖이었다.

"제 책을 안 읽은 분도 질문해도 좋습니다. 이 자리는 '테드 창 페스티벌'이 아니니까요."

이 행사가 자신의 '팬미팅'이 아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페스티벌)'의 공식 섹션이라는 걸 새삼 떠올리면서, 자칫 멀어질 수 있는 자신과 청중 사이를 좁히는 한편 앞선 질문자와 진행자까지 배려한 한 마디였다. 낯선 외국인 작가의 '그릇'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중국계 이민2세인 테드 창. 아시아인 특유의 감수성이 느껴진다.

 
앞서 대담에서도 자신의 '색깔'은 분명히 하면서도 지나친 경계 짓기를 피하며 청중과 거리감을 좁히려 애썼다. '하드SF 서사의 논리와 글쓰기의 미학'이라는 딱딱한 '공식' 제목 대신 'SF적인 논리, 사고방식'이라는 비공식 제목을 정한 것부터 그랬다. '하드SF'란 말 자체가 생소한 데다 이를 어렵게 느끼는 SF독자들도 많다는 걸 알았으리라.

"<스타워즈>는 SF가 아니다!"

이 한마디와 함께 그는 먼저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SF'가 무엇인지 풀어놓기 시작했다. 흔히 SF와 혼재되는 '판타지'란 우주의 일부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가정하에 이를 신이나 마법으로만 설명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미래를 다룬다고 해도 '옛날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게 '스타워즈'와 같은 우주모험활극. 반면 SF(과학소설)란 우주를 (과학적)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한다.

그는 '세계 3대 SF 작가'로 꼽히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죽은 과거>란 작품을 예로 들었다.

이 작품에는 먼 고대 시대를 탐사할 목적으로 개발한 '시간탐사기'란 신기술이 등장한다. 정부는 이 기술을 감추려 하지만 주인공은 끝내 시간탐사기 기술을 스스로 발견하고, 이 기술로 100년 이상 과거는 볼 수 없다는 것과 사실은 정부의 '감시장치'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개발한 기술이 일반에 노출되면서 누구나 '시간탐사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되고 개인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사회가 되고 만다는 스토리.

테드 창은 여기서 SF란 장르의 특색으로 '시작과는 곳과는 다른 곳에서 결론이 맺어지는 것', 즉 '새로운 기술로 인해 세계는 변화하지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꼽았다.

이는 판타지의 일반적 '패턴'과 다르다. 판타지에선 평화로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악의 세력'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이에 맞서 승리함으로서 다시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즉 현상유지란 측면에서 "기존의 것이 좋았다"라는 보수적인 정치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반면 SF의 패턴은 '익숙한 세상에 새 기술이 나와 세상은 변화하고 그 결과는 좋을 수도 나쁠 수도, 그 두가지가 공존할 수도 있지만, 어쨌듯 과거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변화는 불가피한 것이다"라는 진보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 즉 "SF는 변화의 문학"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로 분류되곤 하는 테드 창의 일부 작품들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 SF라 봐야 한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강연 뒤 따로 진행된 팬미팅에서 자신의 미발표 작품을 낭독하는 테드 창. SF마니아 등 150여명의 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죽은 과거>를 '진보적 SF'의 예라고 강조하는 그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주라기 공원'을 상반된 사례로 꼽았다. '가설 기술'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SF처럼 보이지만 주인공이 인류를 지키려 '신기술'을 파괴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진보적 SF와는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주라기 공원>에선 과거 공룡들을 되살리는 기술('유전자 복제기술')로 인한 부작용(인류 살상)을 부각시킴으로써 '기술은 악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것.

자신은 이러한 크라이튼의 관점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했다. 특히 크라이튼의 다른 소설에선 '지구 온난화'를 마치 과학자들의 음모로 묘사함으로서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려는 정치적 메시지가 강하다고 비판했다. 크라이튼이 부시 대통령 때 백악관에 초대된 일을 거론하며(미 공화당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협약 가입을 거부해 왔다), 소설가로서 '이런 태도'를 취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SF 기반이 '기술의 민주화'를 의미하는 산업혁명임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판타지에 등장하는 마법사의 '크리스탈 볼'이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희귀하고 가치있는 것인 반면 SF에 등장하는 '시간탐사기'는 그 기술만 알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놀라운 기술을 사람들이 누구나 받아들인다는 사실'임을 강조한다. SF 작가라면 2가지 접근법이 가능한데, 우선 새로운 발명품이나 기술을 경이롭고 값진 것으로 설정한다면 판타지에 가깝고, 그 기술이나 발명품을 누구나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사회를 그린다면 SF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100년 전 지금의 자동차를 소재로 누군가 SF소설을 쓸 때 가장 빠른 자동차를 가진 영웅이 여자주인공을 위험에서 구하는 모습을 그릴 수도 있지만(판타지), 자동차가 지금처럼 보편화돼 교통 체증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건(SF)을 그릴 수도 있다는 것.


                                                  사인회. 팬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는 테드 창.
 


이어 존 발리의 1976년 작 <캔사스의 유령>을 예로 들어, SF란 현재와는 다른 세상을 작가와 독자들이 머릿속에 그려보는 일종의 '사고 실험'임을 언급했다. 이 작품은 사람의 기억과 인성을 일종의 은행에 백업해 뒀다가 지금 육체가 수명을 다하면 새로운 육체에 복제하는 기술이 보편화돼 '죽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현실에선 실험 단계일 뿐인 '복제기술'에 대한 독자들의 철학적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

앞서 <죽은 과거> 역시 누구나 시간탐사기를 가질 때 세계는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을 독자 스스로 하게 만드는 일종의 '사고 실험'인 셈.

그는 비록 '시간탐사기'는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지만, '감시장치'의 등장은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실증한다. 우선 20년 전에 비해 PC 데이터 저장 비용이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고, 검색엔진 기능이 급속도로 향상된 점을 감안할 때, (지금의 유튜브나 블로그가 진화돼) 앞으로 20년 뒤엔 자신의 인생 하나하나를 녹화한 뒤 저장해 뒀다 검색엔진을 통해 자신의 과거 일거수 일투족을 되돌아볼 수 있고, (해킹 등을 통해) 타인이 이를 훔쳐보게 돼 사생활과 비밀이 모두 사라질 가능성 역시 충분하다는 것이다.

한때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던, 정부가 수억대의 CCTV를 설치해 국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일 역시 비디오 카메라의 가격이 계속 떨어질 경우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는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와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이런 '사고실험'을 통해 사람은 자신과 자신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게 되고 사고의 틀을 넓히게 되며 미래에 벌어질 문제들에 미리 대비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이런 사고실험들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님을 설파한다.

두서없이 받아적은 내용을 정리하다보니 정작 테드 창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은 빠뜨리긴 했지만, '진정한 SF'란 화두 하나만으로도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10여 년 전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방문에 흥분하던 일조차 뇌리에 또렷할 정도로 외국 SF 작가의 방한은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그만큼 우리 SF 시장 자체가 협소한 탓도 있겠지만, 귀하디 뒤한 토종 SF 작가의 전복적인 상상력조차 '불온소설'로 오인되는 분단국가의 뿌리깊은 한계도 느껴진다.

"SF소설을 읽다보면 내가 흥미로워 하는 부분을 써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기존 작가들이 써주지 않아 내가 직접 쓰게 된 거죠. 많은 작가들이 이런 식으로 되지 않나요?"

SF 팬에서 작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부디 테드 창의 약발이 SF 마니아 양산에만 머무르지 않고 '테드 창이 썼으면 하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작품으로 만드는 토종 SF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20여 년 전 테드 창이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들을 탐독하며 느꼈던 것과 똑같이 말이다.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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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마친 뒤 사인회를 하면서도 독자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는 배명훈 작가


"전 작가와의 만남은 처음인데요. 원래 이렇게 편한 건가요?"  

오죽했으랴. 1시간 남짓 작가의 완벽한 '자문 자답 인터뷰' 탓이다. '예상질문'이 바닥 났으니 독자의 질문 역시 예상을 벗어날 수밖에. 첫 질문부터. "작가가 생각하는 행복은 뭔가요?"   

"지금 행복해요. 국책연구기관에 비정규직으로 있다 작년 10월 그만뒀거든요. 그 뒤에 회사 사람들 만났더니, 얼굴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뭔가 철학적인 답변이 나올 법한 애매모호한 질문에 웃음 띤 천진난만한 대답. 분위기는 금세 풀어졌다. 작가가 편하니 독자도 편할 수밖에 없는, '훈남'  작가와의 만남. <타워> 작가 배명훈이 독자들은 만난 건 출근길 게릴라성 호우가 한바탕 쏟아진 지난 목요일(7월 2일) 저녁이었다.

다행히 오후부터 활짝 갠 날씨 덕에 대학로 웅진씽크빅 카페엔 정시에 맞춰온 20명 남짓한 젊은 독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0대 초반 작가와 20대~40대 독자들이 지면을 넘어 처음 만나는 시간. 뭔가 조마조마하고 설렐 법도 한데, 첫 대면의 흥분도 잠시 동년배들 답게 쿨하게 마주한다.  

알라딘 연재 때 달린 댓글이나 독자들의 서평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보고 영향도 받는다는 '소심한' 그. 가장 맘에 들었던 서평은 무엇이었을까? 

"SF가 이런 거라면 SF 팬이 돼도 괜찮겠다는 서평이었어요." 

동감 백 배. SF소설로 포장 안한 탓도 있겠지만 <타워> 독자 가운데 SF 마니아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평소 SF나 판타지를 '외면'했거나 낯설어했던 독자들이 적지 않았다. 

"저 역시 SF작가가 아닌 배명훈으로 평가받아 좋아요." 

스스로 SF 마니아가 아니었다고 털어놓는 그. 초등학생 시절 시를 쓰기 시작해 일찌감치 문재가 틔었지만 13살 때 '상 탈 만한 시'를 쓰라는 지도교사의 '지도'에 발끈해 '절필'하기도 했단다. 그 뒤 대학 시절 다시 쓰기 시작한 글은 시가 아닌 '소설'이었다.  

"저는 그냥 쓴 건데, 심사평에서 '이건 SF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는 'SF작가'가 '분류'됐다. 하지만 여전히 장르 신경 안 쓰고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단다. 그런 탈 장르적 성향은 674층짜리 타워를 이루는 글들 '층간' 곳곳에 배어있다. SF 마니아를 실망시킨(?) 오해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권력의 정점에 개가 있다?' 

<타워>를 '2009년 국방부 지정 불온소설'로 분류케 만들 뻔한 이 자극적 문구는 글쎄 '오해'였단다. '동원박사 세 사람_개를 포함한 경우'를 읽어보신 분은 고개를 끄덕일 테지만 그 개는 '권력의 정점'이 아니라 그 과정에 걸쳐 있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 그러니 특정 권력자를 비판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알리바이는 확실한 셈이다.  

빈스토크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란 것도 오해?  

굳이 따지자면 빈스토크는 대한민국 가운데서도 수도 서울, 그 한복판에 있는 셈이니, 우리는 고작해야 '주변국'일 뿐이라는 것. 우리는 아직 들어갈 수 없는, 그러나 들어가고 싶어하는 '욕망'의 진원지랄까? 

작가는 착할 것이라는 것도 오해? 

사진작가가 '눈 안 나온' 사람 좋아보이는 사진만 골라 실은 탓이란다. 실제로는 술만 마시면 '개'로 변하는 아랫집 아저씨나 이웃집 벌레 죽이는 '딱딱이' 때문에 항의하곤 하는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란다. 이 책 주인공들도 마찬가지. 이유없이 착한 사람들이 아니라 털면 털리는 '먼지가 묻어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

작가의 '뮤즈' L씨는 '그분'?

책 속 '작가의 말'에 밝힌 자신에게 영감을 준 'L씨'의 실체에 대한 실마리도 던졌다. 재기발랄한 '그분'이란다. 다들 그분 이름 영문 이니셜 두 자에만 익숙했으니 성 이니셜일 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으랴. 

'광장의 아미타불'에서 크레인으로 코끼리 들어올리는 장면 역시 그 '뮤즈'의 작품이란다. 대형 기중기에 들린 용산의 컨테이너를 기억하시는지.   

광화문 사거리를 가로막은 컨테이너 장벽을 보고 자기는 즐거웠단다. 전쟁을 겪지 않고선, 5.18을 겪지 않으면 평화로운 세상에서 작가 되기 어렵겠구나 생각했는데 요즘 '그분' 덕에 쓸 거리가 많단다. 

자신의 작품도 냉각기 지나 다시 읽어보니 '재밌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그. "글쓰는 순간이 가장 자신감 넘치고 빛난다"는 말이 그냥 너스레로 들리진 않는다. 차기작 홍보가 빠질리 없다. 8월초에 마무리될 예정인 첫 장편소설은 <타워>보다 더 재밌단다. 그에게 첫 상을 안겨준 '테러리스트'의 주인공 '은경'이 다시 등장하는데 "연기력이 이번에 대단하다"니 한번 기대를 걸어봐? 

'상상의 원천'을 묻는 독자 질문에 '생활'이라고 말하는 그. 그래서 조만간 다시 직업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할 판이란다. 회사 뛰쳐 나올 때 '욱함'이 원천이었는데 책 쓰고 행복해지니 '욱함'으로 못 돌아간단다. 도대체 천진한 건지, 성격이 꿍한 건지 모르겠지만, 계속 '욱해서' 통쾌한 작품이 많이 튀어 나오길 바랄 뿐이다.  

아, 대학로 둘둘치킨 뒤풀이에서 건진 수확.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의 그 기발한 소스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철도 수송 계획이란다. 대학원 석사 논문 일부인데, 수평적 철도를 수직으로 세워 놓으면 엘리베이터가 되는 거라나. 알고보면 참 쉽지만, 안 다고 다 소설가가 되는 건 아닌 걸 어쩌랴.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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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배명훈 지음 / 오멜라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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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회적 과학소설? 날카로운 사회적 통찰? 이런 말의 성찬은 일단 좀 제껴 놓자. 이 소설은 그냥 재.밌.다. 재미란 걸 느끼는 지점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책을 읽는 도중 지하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아쉽고, 읽고 난 뒤엔 가슴 깊은 곳에 뭔가 한방 맞은 느낌을 받을 때 난 '재미'라고 한다.  

'타워'는 그런 소설이다. 바벨탑 같은 674층 빌딩 국가와 주인공 대신 '감정'을 전하는 로봇, 사막에 떨어진 사람도 찾아내는 위성기술을 등장시켜 과학소설 분위기를 살짝 풍기기도 하고 열반에 들려는 코끼리처럼 판타지적 요소도 버무렸지만 아주 그럴듯한 '뻥'이기에 억지스러움은 없다.  

한편으론 고급술병에 전자태그 붙여 권력 지도 그리기, 좌우파 뺨치는 수평주의-수직주의 이념 대결 등 사회 풍자적 요소가 짙지만, 가자지구 폭격을 연상시키는 빈스타워의 테러와의 전쟁, 용산사태처럼 엘리베이터 증설 진압 과정에서 죽는 철거민, 박연차 수사 같은 권력자의 정적 먼지 털기 수사, 시청 광장 앞에서 벌어지는 시위대와 경비대의 혈투 등 너무 직접적이서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소설 6편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앙증맞은 소품 같은 4편의 부록까지, 소설가 박민규의 추천사처럼 굳이 100년 뒤를 기다리지 않더라도 내겐 충분히 고마운 소설이건만 안타깝게도 옥에 티는 있다. 바로 책 말미에 붙은 소설가 이인화의 서평이다.   

이인화에 대한 개인적 선입견 탓이라고 치부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 서평은 이 책과 너무 동떨어지고, 무엇보다 재.미.없.다.  

'날카롭고 불온하다'는 첫 화두는 그렇다 치자. '불온하다'는 평가도 조선일보가 하냐, 한겨레가 하냐에 따라 전혀 상반되게 들리기도 하니까. 하지만 적어도 '작품 소개'는 제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비판소설을 쓰다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의 '먼지 털이'가 두려워 자연주의로 전향한 작가 K의 이야기를 다룬 <자연예찬>. 이 시대 소설가라면 마땅히 뜨끔했을 이 작품에 대해 이인화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예찬>에서처럼 아무리 자본의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계에서도 우리 존재의 어머니인 가이아, 지구의 생태적 모성을 지키고 싶은 희망은 사라지지않는다." 

한마디로 뜬금없다. 결국 '먼지 털리기'를 각오하고 빈스토크 권력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작가 생명을 마감한 K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초고층빌딩에 갇혀 자연에 발을 디딜 수 조차 없으면서도 '자연예찬'을 강요받아야 했던 K의 모습만이 담겨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같은 소설가로서 이를 직설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겨웠을까? 

이 서평 만큼은 노무현 서거 뒤에 쓴 글인 모양이다.  

"대통령이 자살하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자주 비통한 무감각 속에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한다. 세상은 본래 어지럽고 비현실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허구라는 안경을 쓰고 간신히 현실을 본다. 좀처럼 믿기지않는 거짓말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다른 작가 책 말미에 붙는 서평임을 감안하더라도, 이 대목에서 작가 K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현상만 볼 뿐 그 근저에 깔린 권력의 비정함은 애써 외면하는, 뭔가 있는 듯 적당히 얼버무리기. 거꾸로 배명훈 소설에선 날카롭게 드러냈던 그 '날 것' 말이다. 

그래서 이인화의 훈수 역시 마뜩치 않다. 

"배명훈의 흥미진진한 알레고리들은 앞으로 보다 따뜻해져서 현재의 날카로운 사회적 통찰과 함께 가승 뭉클한 인간적 감동으로 확대되어가리라 생각한다." 

불편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후배 작가의 날 것을 본 노회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시각에서 그 날카로움은 계속 닳고 닳아 '보다 따뜻해져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다가가는 작품이 나오길 바라는 게 현실적인 충고였을 것이다. 그게 작가란 직업인으로서 살아남는 이땅의 법칙이기에.  

그런 닳고닳은 베스트셀러보다는 이처럼 덜 다듬어진 날 것을 더 즐기는 걸 보니 난 너무 가학적이거나 어쩔 수 없는 '골수 수평주의자'인 모양이다.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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