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을 마친 뒤 사인회를 하면서도 독자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는 배명훈 작가


"전 작가와의 만남은 처음인데요. 원래 이렇게 편한 건가요?"  

오죽했으랴. 1시간 남짓 작가의 완벽한 '자문 자답 인터뷰' 탓이다. '예상질문'이 바닥 났으니 독자의 질문 역시 예상을 벗어날 수밖에. 첫 질문부터. "작가가 생각하는 행복은 뭔가요?"   

"지금 행복해요. 국책연구기관에 비정규직으로 있다 작년 10월 그만뒀거든요. 그 뒤에 회사 사람들 만났더니, 얼굴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뭔가 철학적인 답변이 나올 법한 애매모호한 질문에 웃음 띤 천진난만한 대답. 분위기는 금세 풀어졌다. 작가가 편하니 독자도 편할 수밖에 없는, '훈남'  작가와의 만남. <타워> 작가 배명훈이 독자들은 만난 건 출근길 게릴라성 호우가 한바탕 쏟아진 지난 목요일(7월 2일) 저녁이었다.

다행히 오후부터 활짝 갠 날씨 덕에 대학로 웅진씽크빅 카페엔 정시에 맞춰온 20명 남짓한 젊은 독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30대 초반 작가와 20대~40대 독자들이 지면을 넘어 처음 만나는 시간. 뭔가 조마조마하고 설렐 법도 한데, 첫 대면의 흥분도 잠시 동년배들 답게 쿨하게 마주한다.  

알라딘 연재 때 달린 댓글이나 독자들의 서평을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보고 영향도 받는다는 '소심한' 그. 가장 맘에 들었던 서평은 무엇이었을까? 

"SF가 이런 거라면 SF 팬이 돼도 괜찮겠다는 서평이었어요." 

동감 백 배. SF소설로 포장 안한 탓도 있겠지만 <타워> 독자 가운데 SF 마니아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평소 SF나 판타지를 '외면'했거나 낯설어했던 독자들이 적지 않았다. 

"저 역시 SF작가가 아닌 배명훈으로 평가받아 좋아요." 

스스로 SF 마니아가 아니었다고 털어놓는 그. 초등학생 시절 시를 쓰기 시작해 일찌감치 문재가 틔었지만 13살 때 '상 탈 만한 시'를 쓰라는 지도교사의 '지도'에 발끈해 '절필'하기도 했단다. 그 뒤 대학 시절 다시 쓰기 시작한 글은 시가 아닌 '소설'이었다.  

"저는 그냥 쓴 건데, 심사평에서 '이건 SF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는 'SF작가'가 '분류'됐다. 하지만 여전히 장르 신경 안 쓰고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단다. 그런 탈 장르적 성향은 674층짜리 타워를 이루는 글들 '층간' 곳곳에 배어있다. SF 마니아를 실망시킨(?) 오해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권력의 정점에 개가 있다?' 

<타워>를 '2009년 국방부 지정 불온소설'로 분류케 만들 뻔한 이 자극적 문구는 글쎄 '오해'였단다. '동원박사 세 사람_개를 포함한 경우'를 읽어보신 분은 고개를 끄덕일 테지만 그 개는 '권력의 정점'이 아니라 그 과정에 걸쳐 있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 그러니 특정 권력자를 비판했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알리바이는 확실한 셈이다.  

빈스토크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란 것도 오해?  

굳이 따지자면 빈스토크는 대한민국 가운데서도 수도 서울, 그 한복판에 있는 셈이니, 우리는 고작해야 '주변국'일 뿐이라는 것. 우리는 아직 들어갈 수 없는, 그러나 들어가고 싶어하는 '욕망'의 진원지랄까? 

작가는 착할 것이라는 것도 오해? 

사진작가가 '눈 안 나온' 사람 좋아보이는 사진만 골라 실은 탓이란다. 실제로는 술만 마시면 '개'로 변하는 아랫집 아저씨나 이웃집 벌레 죽이는 '딱딱이' 때문에 항의하곤 하는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란다. 이 책 주인공들도 마찬가지. 이유없이 착한 사람들이 아니라 털면 털리는 '먼지가 묻어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

작가의 '뮤즈' L씨는 '그분'?

책 속 '작가의 말'에 밝힌 자신에게 영감을 준 'L씨'의 실체에 대한 실마리도 던졌다. 재기발랄한 '그분'이란다. 다들 그분 이름 영문 이니셜 두 자에만 익숙했으니 성 이니셜일 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으랴. 

'광장의 아미타불'에서 크레인으로 코끼리 들어올리는 장면 역시 그 '뮤즈'의 작품이란다. 대형 기중기에 들린 용산의 컨테이너를 기억하시는지.   

광화문 사거리를 가로막은 컨테이너 장벽을 보고 자기는 즐거웠단다. 전쟁을 겪지 않고선, 5.18을 겪지 않으면 평화로운 세상에서 작가 되기 어렵겠구나 생각했는데 요즘 '그분' 덕에 쓸 거리가 많단다. 

자신의 작품도 냉각기 지나 다시 읽어보니 '재밌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그. "글쓰는 순간이 가장 자신감 넘치고 빛난다"는 말이 그냥 너스레로 들리진 않는다. 차기작 홍보가 빠질리 없다. 8월초에 마무리될 예정인 첫 장편소설은 <타워>보다 더 재밌단다. 그에게 첫 상을 안겨준 '테러리스트'의 주인공 '은경'이 다시 등장하는데 "연기력이 이번에 대단하다"니 한번 기대를 걸어봐? 

'상상의 원천'을 묻는 독자 질문에 '생활'이라고 말하는 그. 그래서 조만간 다시 직업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할 판이란다. 회사 뛰쳐 나올 때 '욱함'이 원천이었는데 책 쓰고 행복해지니 '욱함'으로 못 돌아간단다. 도대체 천진한 건지, 성격이 꿍한 건지 모르겠지만, 계속 '욱해서' 통쾌한 작품이 많이 튀어 나오길 바랄 뿐이다.  

아, 대학로 둘둘치킨 뒤풀이에서 건진 수확. '엘리베이터 기동연습'의 그 기발한 소스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철도 수송 계획이란다. 대학원 석사 논문 일부인데, 수평적 철도를 수직으로 세워 놓으면 엘리베이터가 되는 거라나. 알고보면 참 쉽지만, 안 다고 다 소설가가 되는 건 아닌 걸 어쩌랴. 

                                                                                  *별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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