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운대 - Haeunda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3564193471575.jpg)
한여름 밤 파도소리에 숨어 살포시 해변을 걷는 한쌍의 어색한 그림자. 한창 때 해운대에 얽힌 추억 하나쯤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첫키스처럼 설레고 애틋하게 다가오는 그 어렴풋한 속느낌 말이다.
맙소사! 그런 곳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다른 장르도 아닌 재난 블록버스터라니. 행여 대한민국 연인들의 성소에 쓰나미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적어도 내가 보기엔 이 영화는 올 여름 최고의 '멜로영화'다. <해운대>라는 제목이 결코 아깝지 않은...
제 아무리 수억 달러를 쏟아부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도, 재난 영화는 일단 휴머니즘을 앞세울 수밖에 없다. 모든 장면을 초특급 CG로 가득 채울 제작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필수 장치다. '지구온난화 시대' 난데없는 빙하기를 맞은 <투머로우>나 로또 확률보다 낮은 소행성과 충돌한 <딥 임팩트>, 시종일관 쓰나미 뺨치는 파도가 내리꽂히는 <퍼펙트 스톰>에도 '사람냄새'가 빠지지 않는다.
제 아무리 한국형 재난영화라도 이런 공식을 피해갈 순 없다. 아예 한술 더 뜬다. 하나도 모자라 세 쌍의 커플이 등장한다. 배우부터 쟁쟁하다. 설경구, 하지원, 박중훈, 엄정화에 신예 이민기, 강예원까지. 각각 떼어놓더라도 영화 세 편쯤 거뜬히 만들 만한 화려한 출연진이다. 영화 속에서 저마다 무게감도 대단해서 누가 주연인지 헷갈릴 정도다(요즘엔 출연시간 많다고 주인공은 아니지 않은가).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3564193471576.jpg)
영화 도입부에 굳이 2004년 동남아 쓰나미를 장황하게 묘사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은 이미 이 영화 끝트머리에 밀어닥칠 재난을 알고 있다. 그리고 제 아무리 사랑스런 연인들이 저마다 장밋빛 미래를 꿈꿀지라도 그들의 미래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님은 초딩도 안다(그래서 12세 관람가 아닌가). 그럼에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건, 갑자기 부모를 잃는 엄청난 참극 앞에서도 해맑게 웃는 세살배기를 보며 느끼는 심정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한없이 어설퍼 보이는 뻔한 러브 라인조차 더 애틋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119구조대 '얼짱' 이민기(최형식 역)와 삼수생 '퀸카' 강예원(김희미 역)의 '로미오 앤 줄리엣'도, 남은 건 딸자식 사랑밖에 없는 돌싱 커플 박중훈(김휘 역)과 엄정화(이유진 역)의 '미워도 다시 한번'도, 철없는 아들 딸린 '이혼남' 설경구(최만식 역)와 '송윤아' 빼닮은 하지원(강연희 역)의 '우리 결혼했어요' 극장판조차도, 뻔한 신파가 아닌 아름다운 '멜로'로 포장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 영화계엔 낯선 재난 영화의 이점이자, <해운대>의 매력이기도 하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3564193471577.jpg)
제 아무리 CG가 훌륭했던들 이들의 러브 라인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다면, <해운대>는 그저 그렇고 그런, CG 빼면 별로 남는 게 없는 <디워> 같은 괴수 영화로 기억됐을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해운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때 젊은 연인이었거나 곧 그렇게 될 수많은 관객들이 해운대에서 건진 추억의 부스러기들 만큼은 거대한 쓰나미도 어쩔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줬으니까.
*별빛처럼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3564193471578.jpg)
(사진 출처: 영화 해운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