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산 이야기 - 불황기 10배 성장, 손대는 분야마다 세계 1위, 신화가 된 회사
김성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일상을 지내다 보면 종종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자주는 아니지만, 무언가에 푹 빠져서 내 안에 숨겨진 능력을 끌어 낼 때가 있다. 그 능력이 발휘될 때면 평소에는 만끽하지 못한 뿌듯함을 맛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뿌듯함으로 일상이 이뤄지길 바란다. 내가 원하는 일에 몰입해서 하다보면 즐거워지기 마련이고, 즐거우면 살맛이 나게 된다. 자신에게 꼭 주어진 일에 필요할 때마다 몰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런 나의 게으른(?) 생각을 시원하게 깨트리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일본전산'이라는 회사였다.
 

  내가 몰입을 일상에서 좀 더 자주 갈망했던 이유는 억지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능력을 갖추기 싫고, 손쉬운 방법으로 쉽게 해결하고 싶은 얄팍한 마음도 한몫했다. 그러나 몰입을 끌어내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그런 갈망도 시들해지고 말았는데,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하라!'고 외치는 일본전산의 경영방침에 더 기가 죽고 말았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잘하고 싶은 것에 그 방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하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깊이 각인되는 메시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전산은 네 명의 직원과 세 평짜리 창고에서 시작해 계열사 140개에 직원 13만 명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신화를 이루어 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일본전산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을 터, 그 방법이 궁금해 열심히 탐독했지만 특별한 비법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방법들과 말들이 난무했다. 기존의 방식을 무시하고, 새롭고 독특한 방법들로 직원을 뽑고 자신만의 방침으로 기반을 닦아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무식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학력, 경력, 능력을 다 무시한 채 목소리 크고, 밥 빨리 먹는 사람을 뽑는 기이한 채용방식이 이해 될 리가 없었다. 거기다 신제품 개발도 무조건 될 때까지 노력하는 것뿐이었다. 많이 배웠다는 재원들과 노하우를 알고 있다는 고위급 인사들이 코웃음 치기 좋은 방법들만 시도하고 있는 곳이 일본전산이었다.

 

  하지만 왜 일본전산은 나날이 성장을 하고, 능력과 경력으로 갖추어진 탄탄한 회사들은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하는 것일까.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회장은 독특한 방법으로 회사를 이끌어 갔지만, 기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못할 것'이라는 생각, 관념을 버리게 만들고 직원들을 정열, 열의, 집념으로 똘똘 뭉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밑바닥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모든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화장실 청소' 같은 시험을 한다.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직원들은 나가모리 회장의 방식에 매력을 느껴간다.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 회사에 도움도 되고 존재감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자신감을 천천히 만들어 갔다.

 

  그 결과는 회사의 성장을 통해 단박에 드러났다. 오로지 집념하나만으로 일궈낸 기술력은 평소에 경쟁회사라 칭할 수조차 없었던 대형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게 된다. 기본바탕이 잘 갖춰져 있는 직원들은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이미 체험하고 있었기에 당당하게 맞섰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뒤처지지 않았다. 도리어 하찮게 여겨졌던 이름 없는 회사에 뒤쳐지기 시작한 대기업들은 나가모리 회장에게 찾아와 자신의 회사를 도와달라고 통사정을 할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굳혀갔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끝없는 노력으로 일궈낸 일본전산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으므로, 독특한 경영방식과 사고방식이 또 다른 이들에게도 큰 용기를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의 키워드는 '노력'이었다. 다른 중요한 것도 많았지만 능력, 학벌, 개인의 성격을 능가하는 처절한 노력이있었다. 노력을 바탕으로 일본전산의 직원 한 사람 한사람은 자신의 필요존재에 대해 자신감을 얻어갔고, 일본전산의 성장을 도왔다. 필요할 때마다 몰입하면 된다는 나의 얄팍한 생각은(물론 몰입도 중요한 요소이긴 하다.) 성실한 노력 앞에 꺾일 수밖에 없었다. 주먹구구식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에 충실하고 인간 본연의 충실함을 따라가고자 했던 사람들의 노력이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충분히 느껴보길 바란다.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이 캐내어 나가모리 회장의 방침대로 '즉시, 반드시, 될 때까지 하라!'를 실행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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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경쟁
장 자끄 상뻬 지음, 이건수 옮김 / 미메시스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상뻬 책을 최대한 모아보자는 일념 하에 열심히 책을 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내가 상뻬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너무 늦어서인지 절판된 책들이 많았다. 그리고 상뻬를 처음 알게 해 준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구하고 싶은데, 종종 출판사가 갈리는 경우가 있어 망설여지기도 했다. 문의 끝에 미매시스 출판사가 열린책들과 자회사라는 것을 알고 우선 실험 삼아 한 권을 주문해 보았다. 양장에다 재질도 비슷해서 별 차이가 없었지만 책이 조금 작은 것이 아쉬웠다. 상뻬의 데생은 큼지막하게 보는 것이 좋다. 눈에 더 잘 들어올 뿐더러 데생 속에 푹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절판된 책을 이렇게 만난다는 사실이 그냥 고마울 뿐이다.
 

  상뻬 책을 한 권씩 만날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그의 데생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흐뭇한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다소 엉뚱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유머로 점철되어 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독자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생들이다. 그의 데생집을 보면서 책 제목에 특별한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기 전 제목에 대한 인식을 한다고 해도 데셍을 보다 보면 제목에 대한 의의를 잊고 만다. 종종 제목을 인지하면서 보기도 하지만 미묘한 차이에 제목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다. 오히려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으로 채워졌을지 궁금증이 더 하고, 책을 다 본 후에 왜 이런 제목이 달렸는지 의아해 하는 괴롭힘이 많아 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도 그랬다. 처음에 제목에 무척 신경을 쓰다가 초반의 내용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중간쯤 가서는 제목과 내용의 상관관계를 아예 잊어먹다 마지막에 가서 다시 떠올리는 번복을 했다.

 

  상뻬의 데생은 철저히 과정에서 매력을 느끼기에 다 보고 난 후의 기억은 별로 남는 것이 없다. 한 편의 데생들과 연계된 데생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지 일일이 기록하기란 심히 벅찬 일이다. 그나마 <어설픈 경쟁>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익살스런 몇몇 데생셍들을 기억할 뿐,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할지 난감하다. 상뻬 특유의 익살과 유머, 발랄한 데생에 관한 칭찬은 이제 물릴 정도니 무엇을 드러내야 할지 몰라 잡담이 난무하다. 그렇다고 상뻬의 데생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글을 마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나의 능력이 부족해 시원스레 이 책에 대해 말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만큼 상뻬의 데생은 설명보다 직접 봐야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직접 보면, 왜 독자들이 흔적을 남기기 어려워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세계를 그려낸 것 같으면서도 색다른 세계를 그려내는 상뻬의 매력에 빠지다 보면, 누구나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꾸 상뻬의 책을 찾게 될 것이다.

 

  상뻬의 데생집의 또 다른 매력은 짤막하게 남긴 글이다. 데생을 먼저 본 다음 충분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대충 이런 느낌으로 글을 썼을 거라 생각하고 읽어보면 상뻬의 생각의 언저리도 가지 못한 내 자신을 발견하기 일쑤다. 이 데생에 이런 글을 붙인다는 사실이 생뚱맞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그의 익살과 폭 넓은 상상력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그러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데생과 글이 만들어낸 상뻬만의 세계로 빠지기 마련이다. 이 책에는 더 엉뚱한 내용과 무한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데생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랬기에 철저한 과정의 책이라 칭하고 느낌을 남기가 어렵다는 푸념을 더 강력하게 하고 있다.

 

  앞으로 상뻬의 책을 구할 수 있는 데까지 모아 볼 생각이다. 언제라도 부담 없이 꺼내서 휙휙 넘겨볼 수 있기에 너무나 편안하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조금씩 다르므로 그의 책을 꺼내 보는 것은 또 다른 묘미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보다 더 늦게 상뻬를 만날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절판되는 책 없이(절판된 책도 다시 내어주길), 상뻬의 매력에 많은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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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은행통장>을 리뷰해주세요.
엄마의 은행 통장
캐스린 포브즈 지음, 이혜영 옮김 / 반디출판사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시골에 혼자 계신 엄마한테 책 한권을 보내드렸다. 마당 둘레에 화초를 심기 시작한 엄마한테 타샤 할머니 책을 구입했다. 일부러 큰 책에다 글씨가 적은 책을 보냈는데, 막상 보내놓고 전화 한 통 못하고 있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우연히 <엄마의 은행통장>을 읽고 보니 엄마가 그 책을 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설명을 해주려고 했었는데 그것마저 못하고 있다가 이 책을 보니 엄마 생각도 나고, 내가 보낸 책 생각도 났다.
 

  저자가 첫 책을 출간하고 받은 원고료를 엄마에게 주며, 은행통장에 넣으라고 하자 엄마는 은행통장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고백을 한다. 그 고백을 듣는 순간, 도대체 이 책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의아했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에 엄마의 은행통장을 바라보며 희망을 키웠을 한 가족의 이야기가 이대로 끝나거나, 헛된 기대를 품고 살아온 과거가 드러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은행통장이 없었다는 고백으로 인해 한 가족의 희망과 삶이 무너져 버렸을 거란 생각은 무척 위험했다. 저자로부터 흘러나오는 가족 이야기는 삭막해져 가는 현대사회에 과거를 떠올리며 추억을 떠올리기에 바빴다.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살아온 시절이 얼마나 많았던가. 한 가족의 삶을 통해 잠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저자이자 맏딸인 카트린을 통해 자신의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노르웨이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이민자인 그들은 모든 것이 힘겨웠다. 익숙한 것을 모두 남겨둔 채 낯선 곳으로 와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던 카트린 가족은 많은 어려움에 처한다. 다행히 아빠가 목수 일을 할 수 있어 바로 일자리를 구하게 됐지만, 늘 쪼들리는 경제적 상황과 식구들의 병치레는 암담하게 만들었다. 이러다 가족 중 누군가가 떠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조마조마 읽어 내려갔지만, 그때마다 '엄마'의 기지는 늘 발휘되었고 듬직하기까지 했다. '엄마'의 존재는 모든 이에게 가슴 아프게 다가오고,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그런 엄마의 이미지 때문인지 책 속의 '엄마'에 대해서 미처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했다. 우리네 엄마들처럼 희생하고 사랑을 나눠주며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좀 더 명랑한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17개의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족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에피소드 중심으로 시선이 맞춰져 있다. 엄마의 시선이 아니라 카트린의 시선이었기에 더 아련했다. 엄마의 힘든 모습, 엄마의 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고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져서 이면을 그려볼 수 있었다. 형제자매들의 성장과 아버지, 엄마의 이모들의 이야기도 펼쳐졌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엄마'이다. 엄마의 활약상이 그려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정의 대소사에 엄마의 역할은 참 컸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빠가 큰 수술을 할 때, 농장으로 이주해서 다시 도시로 돌아 올 때, 이모와 이모할머니의 사이를 조율해 줄 때나 엄마의 역할이 컸다. 학교에서 난처한 일에 빠졌을 때도 엄마가 구원자가 되어 주었다.

 

  이 책의 엄마의 이미지는 명랑하고 밝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비춰진다. 가족들이 돈 걱정을 할까봐 은행통장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던 엄마였던 만큼 가족의 듬직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그런 엄마가 있었으므로 오남매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잘 자라 주었고 낯선 땅에서 정착할 수 있었다. 엄마란 존재가 빛을 발하지 않았다면 팍팍했을 살림살이에 더 팍팍한 삶을 연명했을 것이다. 그만큼 엄마는 단순히 나를 낳아준 존재를 떠나,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아이들이 불안해 할까봐 은행에 통장이 있고, 그 안에는 큰돈이 들어 있을 거라 착각하고 살았지만 그건 속임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통장은 엄마만큼이나 정진적인 지주가 되어주어 한 가족을 삶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엄마의 지혜와 사랑이 녹아 있는 은행 통장. 무형의 존재는 가족들의 가슴에 유형의 존재로 남아 의지할 곳을 마련해 주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이 아련해지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보다는 직접 집에 가서 책을 같이 보며 설명해주고 엄마의 마당을 가꿀 때 참고해 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힘들었던 순간이 참으로 많았는데, 이렇게 잘 키워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해주고 싶다. 엄마가 만들어준 울타리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듬직했다고.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편안하고 훈훈한 가족소설이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가족의 사랑을 되찾고 싶은 이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어린애들이 불안해 하고 겁을 먹는 건 좋지 않잖니?"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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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의 노래>를 리뷰해주세요.
굼벵이의 노래
황원교 지음 / 바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자연이 아름다운 계절에는 좀 더 현실적인 책이 읽고 싶어진다. 현실적인 책에는 여러 장르가 있겠지만, 수필이나 산문이 현장 독서에 안성맞춤이다. 한 구절을 읽다가 그대로 고개를 들면, 책 속의 세상이 펼쳐지는 자연 앞에서 늘 내 존재가 작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경이로움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런 시기에 내게 적절히 와준 한 시인의 산문집. 우선 국내 작품을 마주한 사실이 반가웠다. 생소한 작가였지만 오랜만에 산문을 읽으며 파릇하게 피어난 봄과 함께 만끽하고 싶었다.

  그러나 책장을 열자마자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되었다는 저자 소개 때문이었다. 순간 자연을 만끽하며 읽을 수 있는 산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했지만, 책을 향해가는 내 손길을 멈추기 싫었다. 신체적으로는 정상인 내가 갖게 되는 편견에 저자를 가두고 싶지 않았다.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자는 생각에 짤막한 산문 몇 편을 읽다보니, 역시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발견할까 두려워 피하고 싶었는지 몰라도, 지극히 소소하고도 진솔한 저자의 내면이 펼쳐졌다. 오히려 한 문장씩 읽어나가다 보면, 소박한 언어의 유희에 감칠맛을 느낄 수 있었다.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저자이기에 마우스 스틱으로 이 글을 써나간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갔다(가족이 받아 적어줬는지도 모르지만). 모음과 자음의 조합을 해나가면서 문장을 만들어야 했기에 정신을 흩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깊이 생각하고 가장 적절한 단어들을 써나가야 했기에 이토록 문장들이 여리고 꼼꼼할 수밖에 없으리라.  


  언어의 유희에 취해 있다 보면 어느새 저자의 처지도 잊은 채 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누워서 삶을 연명해야 했던 저자의 내면은 결코 평안하지 못했다. 한참 혈기왕성할 서른의 나이에 전신마비가 되고, 자신을 7년 동안 병간호 해주던 어머니마저 급작스레 돌아가시자 식구들에게 짐이 된다는 사실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특히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너무도 죄스러워서 살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치욕적이었지만, 제 목숨 하나 맘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흘릴 것은 눈물뿐이었다. 동생 내외와 연로하신 아버지, 어린 조카들 덕에 최악의 황폐함은 면했지만, 늘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갖는 죄스러운 마음은 사그라질 줄 몰랐다. 네 개의 단락으로 나뉘어 있는 글의 곳곳에서 그런 저자를 만나노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의 신세가 처량하면서도 크나큰 공감이 들지 않은 것은 지켜보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보다 히스테릭한 글이 아닌 담담하면서도 진솔한 글을 통해 독자와 교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글 앞에서 그를 이해한다, 안타깝다는 섣부른 마음을 드러낼 수 없음은 당연했다.  


  총 네 단락으로 나뉜 글은 일상에서의 소소한 경험과, 자신의 인생,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등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주제별로 묶다보니 시간순서가 조금씩 얽히기도 했지만, 부담 없이 편안히 읽을 수 있는 글들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어그러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마 꿋꿋이 삶을 살아준 저자에게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몸이 불편할 뿐, 나보다 더 충실한 삶을 살아온 것 같아(혹독한 시련과 극복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부끄러울 뿐이었다. 감히 처지를 뒤바꿔서 생각해 볼 수 없었고, 구경꾼으로써 훔쳐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느지막이 아내가 생겼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고 행복해 보여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지켜보는 것이 참 쉬우면서도 무거워지는 시간이었다. 특별한 인생이면서도 평범함이 흘러 나왔기에 느끼는 평안함도 많았다. 자신의 처지를 보며 드러내는 고뇌는 보통 사람들이 갖는 모든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는 것이나,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마음들이 어찌 그 뿐이겠는가. 제한된 삶의 영역에서 오는 당연한 깨달음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누구나 그러한 마음들을 갖고 살아가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보다 조금 신체가 자유로울 뿐, 오히려 더 주눅 된 삶을 살아가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용기가 될 수 없겠지만 오히려 배우는 것이 더 많으니 지금처럼 꿋꿋하게 삶을 향해 나아가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지극히 보통사람인 우리가 더 살맛이 난다고 조심스레 말을 건네 보고 싶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언어의 유희와 한 전신마비 시인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누구나 편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마음이 조금 불편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극히 정상적인 것에 대해.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타오르는 것은 산뿐만이 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우리들 마음속의 또 다른 희망이란 것을.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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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버핏과 함께한 점심식사 - 오마하의 현인에게 배우는 가치 있는 성공을 위한 6가지 지혜
고수유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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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퇴근길에 카페에 들렀다. 오랜만에 커피 한 잔과 쿠키를 곁들인 풍성한(?) 혼자만의 만찬을 즐기고 돌아왔다. 커피값이 그다지 저렴한 편이 아니라서 자주 가지 못하는 카페에 들른 이유는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워렌 버핏과 함께한 점심식사>를 읽고나니 무언가 잡힐듯 말듯한 느낌을 정리하고 싶어 카페에 들른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책 내용을 떠올리며, 체크해 놓은 부분을 종이에 옮기는 작업을 했다. 손으로 직접 써보니 의미전달이 새롭게 되는 것 같았고, 다시 한 번 그 내용들을 파악해 보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남겨진 질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꿈꿔야 하는가. 내용정리를 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카페로 향한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 멤돌던 생각이었다.

 

  이 책을 본 순간 대충의 스토리가 머릿속에 그려졌음에도 워렌 버핏과 어떠한 점심식사를 했는지 궁금했다. 날로 나른해져가는 따스한 햇살을 쬐며 둥그런 야외 테이블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욕망. 그런 욕망이 나를 일깨웠을지라도 어떠한 내용으로 채워졌는지 알고 싶었다. 워렌 버핏이라면 워낙 유명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그와의 점심식사라는 제목에는 의구심이 들었다. 알고보니 저자는 워렌 버핏과의 섬심식사가 거액에 낙찰되었다는 기사를 접한 후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워렌 버핏과 점심식사'라는 모티브를 제외한 전체 스토리는 저자의 창착물이라는 설명과 함께.

 

  의외로 재미있게 읽히는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니, 오히려 평상시의 책 읽는 속도보다 더 천천히 읽고 있었다. 주인공 박찬우라는 남자와 나는 그다지 공통점이 없어 보였는데, 그는 우리의 '분신이다'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박찬우라는 인물이 어떤 상황에 처해졌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걸까. 그는 미국의 유명한 대학을 나와 소신껏 선택한 광고회사의 유능한 팀장으로 팀을 잘 이끌어 가고 있었다. 늘 열심히 일을 했지만 갑자기 순조로웠던 일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국장 승진에서 탈락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와닿은 문제는 팀원들과의 갈등이었다. 자신을 잘 따르던 팀원들이 갑자기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자신이 승진에서 탈락하자 그런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다른 사람이 모함한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 처해진 박찬우는 우연한 기회에 워렌 버핏에게 이메일을 쓰게 된다. 답장을 기대하지 않고 쓴 메일이지만, 막상 점심 식사를 제안하는 워렌 버핏의 메일이 오자 무척 당황한다. 자신에게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 삶과 일에서 성공할 수 있을가요?"라고 물었기에 박찬우를 초대한 것이다. 현재의 상황을 볼 때 그리 유쾌하지 않았으므로 박찬우는 휴가를 내고 워렌 버핏을 만나러 오마하로 날아간다. 

 

  그렇게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가 이루어졌다. 세계 최고의 투자자인 워렌 버핏과 6번의 점심식사라니. 소문대로 워렌 버핏은 소박한 차림으로 나타났고, 그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스테이크, 콜라, 아이스크림을 만찬으로 즐겼다. 늘 박찬우의 얘기에 먼저 귀를 기울였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짚어주었으며 좀더 깊이 들어올 수 있도록 다양한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였다. 삶과 일에서 성공하고 싶은 한 청년에게 워렌 버핏은 자신이 겪어온 경험을 통해 스스로 자각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의 점심식사는 그렇게 이루어졌고, 남은 기간 동안 박찬우는 워렌 버핏이 들려준 이야기를 곱씹으며 자신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파악해 가며 귀한 가르침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워렌 버핏과의 만남이 쌓여갈수록 쏟아지는 생각들도 많았고, 배워가는 것도 많았다. 워렌 버핏의 명성에는 철저한 노력, 공부, 겸손,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무언가 특별한 비밀이 숨겨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싱거울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충고들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거쳐온 한 사람의 성공한 인생이 있었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명성과 부가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만드는 열정, 하루가 즐거워질 수 있는 인생에 대한 사랑은 기본적인 것에서 흘러 나왔다. 박찬우는 매주 만날 때마다 일과 인생에 대한 가르침이 맞물려가고 있음을, 자신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깨달아갔다.

 

  그런 만남이 이어질때마다 내 안에서도 무언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미뤄버린 일, 지루한 일상, 망상으로 그쳐버리는 꿈. 그 모든 것이 관심좀 갖어 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었다. 워렌 버핏이 박찬우에게 충고해준 것들이 나에게 온전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없지만, 기본에 충실한 충고였기에 나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6주간의 만남은 끝나기 마련이었고, 그 만남은 알차게 채워질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만남을 지켜본 내게 과연 무엇이 남을까.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이 책을 읽은 의미가 무엇일까. 많은 생각들이 오갔기에 퇴근길에 카페까지 들렀건만, 한 권의 책을 정리하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카페에서 정리한 내용은 내게 와닿는 글을 옮겨 놓은터라 협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글 속에서 꿈틀대는 메세지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메세지 안에는 워렌 버핏의 일대기가 채워져 있었고, 박찬우가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에 대한 그림도 그려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구경꾼으로 남아 있었다. 유명한 멘토와의 점심식사가 현실로 이뤄지기는 어렵겠지만 분위기 있는 카페에 앉아 차를 한 잔 하며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나를 갉아먹는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에 대한 해답이 필요할 때, 워렌 버핏과 점심을 먹는다 생각하고 고민을 호소해 보길 바란다. 한 편의 소설처럼 촘촘히 짜인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조그마한 대답이라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구경꾼으로 남지 않았다는 자신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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