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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벵이의 노래
황원교 지음 / 바움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자연이 아름다운 계절에는 좀 더 현실적인 책이 읽고 싶어진다. 현실적인 책에는 여러 장르가 있겠지만, 수필이나 산문이 현장 독서에 안성맞춤이다. 한 구절을 읽다가 그대로 고개를 들면, 책 속의 세상이 펼쳐지는 자연 앞에서 늘 내 존재가 작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경이로움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런 시기에 내게 적절히 와준 한 시인의 산문집. 우선 국내 작품을 마주한 사실이 반가웠다. 생소한 작가였지만 오랜만에 산문을 읽으며 파릇하게 피어난 봄과 함께 만끽하고 싶었다.

  그러나 책장을 열자마자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가 되었다는 저자 소개 때문이었다. 순간 자연을 만끽하며 읽을 수 있는 산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했지만, 책을 향해가는 내 손길을 멈추기 싫었다. 신체적으로는 정상인 내가 갖게 되는 편견에 저자를 가두고 싶지 않았다.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하자는 생각에 짤막한 산문 몇 편을 읽다보니, 역시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발견할까 두려워 피하고 싶었는지 몰라도, 지극히 소소하고도 진솔한 저자의 내면이 펼쳐졌다. 오히려 한 문장씩 읽어나가다 보면, 소박한 언어의 유희에 감칠맛을 느낄 수 있었다.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저자이기에 마우스 스틱으로 이 글을 써나간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갔다(가족이 받아 적어줬는지도 모르지만). 모음과 자음의 조합을 해나가면서 문장을 만들어야 했기에 정신을 흩트릴 수 없었을 것이다. 깊이 생각하고 가장 적절한 단어들을 써나가야 했기에 이토록 문장들이 여리고 꼼꼼할 수밖에 없으리라.  


  언어의 유희에 취해 있다 보면 어느새 저자의 처지도 잊은 채 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누워서 삶을 연명해야 했던 저자의 내면은 결코 평안하지 못했다. 한참 혈기왕성할 서른의 나이에 전신마비가 되고, 자신을 7년 동안 병간호 해주던 어머니마저 급작스레 돌아가시자 식구들에게 짐이 된다는 사실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특히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너무도 죄스러워서 살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치욕적이었지만, 제 목숨 하나 맘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흘릴 것은 눈물뿐이었다. 동생 내외와 연로하신 아버지, 어린 조카들 덕에 최악의 황폐함은 면했지만, 늘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갖는 죄스러운 마음은 사그라질 줄 몰랐다. 네 개의 단락으로 나뉘어 있는 글의 곳곳에서 그런 저자를 만나노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의 신세가 처량하면서도 크나큰 공감이 들지 않은 것은 지켜보는 입장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보다 히스테릭한 글이 아닌 담담하면서도 진솔한 글을 통해 독자와 교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글 앞에서 그를 이해한다, 안타깝다는 섣부른 마음을 드러낼 수 없음은 당연했다.  


  총 네 단락으로 나뉜 글은 일상에서의 소소한 경험과, 자신의 인생,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등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주제별로 묶다보니 시간순서가 조금씩 얽히기도 했지만, 부담 없이 편안히 읽을 수 있는 글들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어그러질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마 꿋꿋이 삶을 살아준 저자에게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몸이 불편할 뿐, 나보다 더 충실한 삶을 살아온 것 같아(혹독한 시련과 극복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부끄러울 뿐이었다. 감히 처지를 뒤바꿔서 생각해 볼 수 없었고, 구경꾼으로써 훔쳐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느지막이 아내가 생겼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고 행복해 보여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지켜보는 것이 참 쉬우면서도 무거워지는 시간이었다. 특별한 인생이면서도 평범함이 흘러 나왔기에 느끼는 평안함도 많았다. 자신의 처지를 보며 드러내는 고뇌는 보통 사람들이 갖는 모든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는 것이나,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마음들이 어찌 그 뿐이겠는가. 제한된 삶의 영역에서 오는 당연한 깨달음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누구나 그러한 마음들을 갖고 살아가노라고 말하고 싶었다. 당신보다 조금 신체가 자유로울 뿐, 오히려 더 주눅 된 삶을 살아가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것이 용기가 될 수 없겠지만 오히려 배우는 것이 더 많으니 지금처럼 꿋꿋하게 삶을 향해 나아가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지극히 보통사람인 우리가 더 살맛이 난다고 조심스레 말을 건네 보고 싶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 언어의 유희와 한 전신마비 시인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 누구나 편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마음이 조금 불편해질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극히 정상적인 것에 대해.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 타오르는 것은 산뿐만이 아니라 봄을 기다리는 우리들 마음속의 또 다른 희망이란 것을.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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