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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경쟁
장 자끄 상뻬 지음, 이건수 옮김 / 미메시스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상뻬 책을 최대한 모아보자는 일념 하에 열심히 책을 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내가 상뻬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너무 늦어서인지 절판된 책들이 많았다. 그리고 상뻬를 처음 알게 해 준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구하고 싶은데, 종종 출판사가 갈리는 경우가 있어 망설여지기도 했다. 문의 끝에 미매시스 출판사가 열린책들과 자회사라는 것을 알고 우선 실험 삼아 한 권을 주문해 보았다. 양장에다 재질도 비슷해서 별 차이가 없었지만 책이 조금 작은 것이 아쉬웠다. 상뻬의 데생은 큼지막하게 보는 것이 좋다. 눈에 더 잘 들어올 뿐더러 데생 속에 푹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절판된 책을 이렇게 만난다는 사실이 그냥 고마울 뿐이다.
상뻬 책을 한 권씩 만날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그의 데생을 보고 있노라면 그냥 흐뭇한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다소 엉뚱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유머로 점철되어 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독자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생들이다. 그의 데생집을 보면서 책 제목에 특별한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기 전 제목에 대한 인식을 한다고 해도 데셍을 보다 보면 제목에 대한 의의를 잊고 만다. 종종 제목을 인지하면서 보기도 하지만 미묘한 차이에 제목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다. 오히려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으로 채워졌을지 궁금증이 더 하고, 책을 다 본 후에 왜 이런 제목이 달렸는지 의아해 하는 괴롭힘이 많아 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도 그랬다. 처음에 제목에 무척 신경을 쓰다가 초반의 내용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중간쯤 가서는 제목과 내용의 상관관계를 아예 잊어먹다 마지막에 가서 다시 떠올리는 번복을 했다.
상뻬의 데생은 철저히 과정에서 매력을 느끼기에 다 보고 난 후의 기억은 별로 남는 것이 없다. 한 편의 데생들과 연계된 데생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지 일일이 기록하기란 심히 벅찬 일이다. 그나마 <어설픈 경쟁>이라는 제목에 걸맞은 익살스런 몇몇 데생셍들을 기억할 뿐,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할지 난감하다. 상뻬 특유의 익살과 유머, 발랄한 데생에 관한 칭찬은 이제 물릴 정도니 무엇을 드러내야 할지 몰라 잡담이 난무하다. 그렇다고 상뻬의 데생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글을 마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나의 능력이 부족해 시원스레 이 책에 대해 말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만큼 상뻬의 데생은 설명보다 직접 봐야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직접 보면, 왜 독자들이 흔적을 남기기 어려워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세계를 그려낸 것 같으면서도 색다른 세계를 그려내는 상뻬의 매력에 빠지다 보면, 누구나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꾸 상뻬의 책을 찾게 될 것이다.
상뻬의 데생집의 또 다른 매력은 짤막하게 남긴 글이다. 데생을 먼저 본 다음 충분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대충 이런 느낌으로 글을 썼을 거라 생각하고 읽어보면 상뻬의 생각의 언저리도 가지 못한 내 자신을 발견하기 일쑤다. 이 데생에 이런 글을 붙인다는 사실이 생뚱맞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그의 익살과 폭 넓은 상상력에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그러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데생과 글이 만들어낸 상뻬만의 세계로 빠지기 마련이다. 이 책에는 더 엉뚱한 내용과 무한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데생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랬기에 철저한 과정의 책이라 칭하고 느낌을 남기가 어렵다는 푸념을 더 강력하게 하고 있다.
앞으로 상뻬의 책을 구할 수 있는 데까지 모아 볼 생각이다. 언제라도 부담 없이 꺼내서 휙휙 넘겨볼 수 있기에 너무나 편안하다. 읽을 때마다 느낌이 조금씩 다르므로 그의 책을 꺼내 보는 것은 또 다른 묘미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보다 더 늦게 상뻬를 만날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절판되는 책 없이(절판된 책도 다시 내어주길), 상뻬의 매력에 많은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