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기록장을 정리하다 문득, 읽었지만 리뷰를 기다리는 책들이 몇 권인지 궁금했다.
나에게 리뷰는 책을 읽고 난 뒤에 다시 한 번 책을 곱씹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꾸역꾸역 리뷰를 남겼다. 그리곤 잊어버렸다. 리뷰가 남아 있다는 안도감 때문에 언제든지 기억하고 싶으면 리뷰를 찾아보면 된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뷰에 되도록 스포일러를 하지 않은 탓에 다시 읽어봐도 결말을 모르는 책들도 있고, 내가 쓴 글이 낯설게 느껴져 감정에 휩쓸리는 등 부작용도 심심찮게 드러나고 있다.
내 독서기록장은 중학교 3학년 때인 1996년 11월에 시작되었다. 중학교 2학년이던 1995년에 국어 과목을 가르치던 담임선생님께서 독서록을 남겨보라고 하셨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선생님은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전근을 가셨고, 거의 일 년이 지난 후에 기록장을 남겨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입학할 고등학교가 정해진 뒤였고, 시간이 남아돌아 어쩔 줄을 몰랐다.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기특하게 미리 공부를 당겨서 하는 학생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시간들을 책으로 때웠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지금처럼 평준화가 아니었다. 성적으로 학교가 정해지던 때라 입학 할 고등학교가 정해진 뒤에는 대부분(?) 자유를 만끽하기 바빠서 내가 독서기록장을 기입할 당시는 그야말로 교실은 어수선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그 시간에 책을 읽었다. 그때부터 책에 대한 허세가 있었고, 그 허세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말 그대로 기록장이었다. 번호, 책 제목, 지은이, 출판사를 기록하고 간단한 줄거리를 남겼다. 대부분 책 뒤표지에 있는 요약을 참고해서 적었고, 내 느낌을 간단히 남겼다. 그래서 1997년 1월에 읽은『노인과 바다』는 한 줄짜리 기막힌 리뷰가 탄생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을까 하는 것과 왜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며칠 밤을 새우며 잡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독서기록장에 기록된 이 글을 읽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촌철살인인데?’ 감탄을 했다가 2008년에『노인과 바다』를 재독하고 그제야 작품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이 소설은 그저 아름다웠다는 것. 그 사실을 이해하기엔 17살의 나는 너무 어렸다고 말이다. 그렇게 20대 초반까지 기록으로, 짧은 단상처럼 독서기록장을 유지하다 본격적으로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리뷰라고 하기에도 모호한, 독후감에 불과한 글들이었다. 그럼에도 내 스스로에게 놀랐던 건 750권까지 손으로 일일이 노트에 기록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기존의 기록을 모두 블로그에 다시 옮겼고, 751권부터는 블로그에 바로 리뷰를 올렸다. 그 리뷰가 현재 1,956권이 되었다.
독서를 하면 무조건 리뷰를 남겼기에 독서량과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았다. 리뷰를 남기지 못하면 독서를 못할 때도 있었고, 일부러 리뷰를 쓰기 위해 내달리는 독서를 멈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책과 관련된 일을 시작하면서 독서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리뷰가 따라가지 못했다. 순진하게도 올해 중순까지 언젠가 읽은 책에 대한 리뷰를 모두 남길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러다 11월에 읽은 책읽기 기록장을 정리하면서 ‘불가능하겠구나!’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럴 바에는 지금까지 읽은 책이라고 번호를 붙여보자 싶어서 블로그며, 파일에 따로 보관중인 개인 기록장까지 모두 뒤졌다. 한참을 뒤지고 있는데 2010년 7월부터 2012년 12월까지의 기록이 없었다. 아무래도 전에 썼던 노트북에 기록이 저장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꽤 오랫동안 썼던 노트북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고, 수리를 차일피일 미루다 현재 쓰고 있는 저렴한 노트북을 구입하면서 그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자료가 뭔지 아예 잊어버렸다. 하지만 읽은 책에 대한 리뷰를 대부분 남기지 못한 게 작년부터였으므로, 세세한 기록은 없지만 기록되어 있지 않은 시기에 읽은 책에 대한 리뷰는 모두 남겼을 거라 생각한다. 기록이 누락되었던 시기는 이직으로 바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내 삶을 재정비하던 터라 이후에 차근차근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으로 기억한다. 내 책장은 읽은 책, 안 읽은 책, 읽다 만 책, 리뷰를 써야 할 책을 철저히 구분하고 있으므로 아마 나의 예상이 어느 정도 맞을 듯싶다.
빠진 기록을 제외하면 읽었으나 리뷰를 남기지 못한 책은 2016년 이전까지 8권, 2017년에 7권, 2018년에 54권, 2019년 11월까지 153권으로 총 222권이다. 현재 기록이든 리뷰를 남긴 책은 1,956권이므로 1997년 11월부터 2019년 11월까지, 꼭 23년간 읽은 책은 2,178권이다. 물론 정확하지 않은 기록이고, 그저 개인 기록이기 때문에 크게 의미 있는 것도 아니다. 작년부터 한 해에 읽은 책이 200권을 넘어가기 시작했으므로 23년간 읽은 책의 평균을 내보면 약 96권이 된다. 그저 23년 동안 기록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숫자일 뿐이다. 내 스스로 얼마나 게으르고 끈기가 없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이렇게 오랫동안 기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다.
*오지랖 넓은 친구가 내가 읽은 책 1,000권에 대해 정리해준 기록이다.
누락된 222권의 리뷰를 모두 다 남길 수 없다. 그리고 모두 남긴다고 해서 내게 엄청난 의미로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읽은 책 기록장 앞에라도 번호를 붙여보려고 한다. 해가 바뀔 때마다 1번부터 다시 시작하는데, 어렵게 찾아낸 2,178이라는 숫자부터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한다. 계속 밝혔듯이 ‘나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책을 읽었소!’ 라고 젠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개인의 기록일 뿐이다. 23년간, 나름의 독서 끝에 얻은 교훈은 보여주기 위한 독서, 권수를 위한 독서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책 내용을 기억하고 저장할 순 없지만 한 권의 책이 얼마나 진득하게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는지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읽었던 책을 최근에는 다시 꺼내 읽는 횟수가 잦아졌고, 그런 책들은 대부분 장기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은 책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는 중이다.
2,178이라는 숫자를 끌어내기 위해, 그리고 왜 그 숫자를 쓰기 시작하려는 이유가 많이 거창해졌다. 꼭 23년이 된 독서기록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리 개념이니 괘념치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