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헛되지 않아요 - Suffering is Never for Nothing
엘리자베스 엘리엇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통은 세상 누구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다. 그리고 이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살면서 한 번쯤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몸부림치는 불가사의다. 28쪽


 

그렇기에 누구나 고통이라는 불가사의로 들어가기를 싫어한다. 들어가기는커녕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게 고통이다. 그런데 저자는 ‘고통은 헛되지 않아요’ 라고 말하고 있다. 어렴풋이는 알고 있다. 고통이 결코 이유 없지 않다는 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늘 내 안에 있었다. 그런데 ‘고난은 원치 않은 것을 갖거나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라며 ‘모든 고난을 망라’하는 이 말 앞에서는 맥이 탁 풀려버렸다. 고통은 고난에서 비롯되었기에 꼭 엄청난 고통이어야만 고난을 받고 있다고 여겼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내 삶의 곳곳에 고난이 진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다 인정해버린 것처럼 고통이, 고난이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고통은 헛되지 않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큰 교훈은 대개 가장 큰 고난에서 얻은 것이다. 38쪽

 

결혼한 지 27개월만에 선교를 위해 들어간 에콰도르 인디언들에게 남편이 살해되고, 당시에 10개월 된 딸이 있었음에도 남편을 죽인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곳에 다시 들어가 사역을 했던 저자. 16년 뒤 미국으로 돌아와 신학자와 재혼을 했지만 3년 반 만에 암으로 또 다시 남편을 잃었다. 세 번째 남편은 현재 살아 있지만 저자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도 저자는 고통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그렇게 큰 고난 속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자신보다 더 큰 고통을 받은 사람들 앞에서 나는 겪어보지 못했기에 이해한다는 말을 섣불리 할 수 없다며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그런 저자를 보면서 난 아직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이다 혹은 두렵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럼에도 어떻게 저렇게 하나님을 향한 충실한 믿음을 지킬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욥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의 고난과 전혀 상관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수만 가지 질문을 품고 있었고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59쪽

 

욥처럼 저자도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자신을 외면하지 않으실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고, 수만 가지의 질문을 하고 깨달아갔다. 그리고 어떠한 순간에도 반응이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반응은 감사여야 한다.’고, 즉 감사와 수용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이다. 배우자를 두 번이나 잃는 극심한 순간에도, 자신보다 더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을 알게 될 때에도 저자는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 납득하기는 힘들지만 하나님의 섭리이며,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며, ‘그 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나와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주 작은 것에도 불평과 불만이 쏟아지고 신세한탄이 되는 나와는 달리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만 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고난을 당하신다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기에 내가 고난을 당하면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나를 위해, 내 안에서 고난을 당해 주신다. 내가 고통을 당할 때 그 분도 고통을 당하신다. 173쪽

 

저자는 오랜 생각 끝에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온 고통을 받아들였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단지 고백하고 받아들였다고 했다. 우리에게 닥친, 닥칠, 닥치고 있는 모든 고통을 이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적어도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그리스도는 스스로 지나신 곳보다 더 어두운 곳으로는 나를 인도하시지 않는다.’ 라는 사실만 인지해도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