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19
사라 스튜어트 지음, 데이비드 스몰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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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은 차고 넘치는 책들 때문에 책을 더 갖고 싶다는 마음보다 이 책들을 어서 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읽은 책장으로 책이 옮겨가는 과정이 너무 더디다 보니 이 속도론 우리 집에 있는 책들을 언제 다 읽을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이렇게 책이 쌓인 집을 원했는데 문제는 이 책들을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다보면 보람도 느끼고 다른 세계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읽어도읽어도 끝이 없다는 회의감도 밀려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 속의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무척 부럽다. 마르고, 눈 나쁘고, 수줍음 많은 아이인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나의 어린 시절과 닮아 있는 것 같다. 엘리자베스 브라운처럼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배워 늘 책을 본 건 아니었지만 나름 오랜 기간 동안 책이 내 곁에 가까이 있었다고 생각하기에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행동에 공감이 갔다. 하지만 책에 대한 열정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기숙사에 갈 때도 커다란 트렁크에 책을 가득 채워 가고, 수업 시간 내내 낙서하며 책 읽는 것만 생각하고(수업시간에 몰래 읽는 책은 왜 그리 재미난 지!) 친구들에게 도서 대출증을 만들게 해서 책을 빌리는가 하면, 데이트보다 책 읽기를 좋아했다(난 남자친구와 책을 함께 읽는 것도 좋았는데!^^).

  그러다 기차를 타러 나가 길을 잃어버리자 그곳에서 살 집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산다. 오로지 시내에 나가는 목적은 책을 사러 갈 때 뿐, 그녀에게 필요한 건 오직 책뿐이었다. 책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일상은 그야말로 다른 것에는 신경 쓸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물구나무를 서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으니 누가 그녀의 열정을 따라갈 수 있을까? 책에 정신이 팔려서 할 일을 잊어버리고 문설주를 들이받아도 책을 읽는 그녀의 모습이 답답하다거나 책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림 속에 책으로 가득한 집 구석구석이며 그런 집에서 책을 읽는 그녀의 모습이 부러웠다.

  그렇게 열심히 책을 읽어대니 더 이상 집에 책을 들일 수가 없었다. 현관문까지 막아버린 책을 보며 그녀는 법원에 가서 기부 절차를 밟아 전 재산을 마을에 헌납하기에 이른다. 그녀가 살던 집은 ‘엘리자베스 브라운 도서관’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책을 마음껏 본다. 그녀는 친구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친구와 오래오래 같이 살았다고 하는데 여전히 책과 함께 하는 삶이었다. 이번에는 책을 구입하는 것보다 도서관을 택해 매일매일 책을 빌려 걸어가면서까지 읽고 있었지만 말이다.

  개연성을 따지려고 들면 엘리자베스 브라운을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는 표현과 함께 정말 하늘에서 떨어  진 아이를 받는 장면부터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왜 그렇게 책을 읽어대는지에 대한 또렷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한 발짝 물러서서 이 책을 읽는다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온통 책이 내 인생의 전부라 생각한 적이 있었고 이런저런 변심이 있었지만 여전히 책과 함께 하는 나를 보면서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모습은 희망사항이 되기도 하다. 늙어서까지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게 나의 바람인데 그녀는 자신의 삶을 온통 책 읽기에 바쳤기 때문이다. 책을 열정적으로 읽고 책 이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그녀를 보면서 책이 그렇게나 좋을까란 감탄사만 나올 뿐이다. 그녀가 책을 왜 읽었겠는가? 좋으니까, 재밌으니까, 즐거우니 읽었던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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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1-19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제목이 무척 맘에 듭니다. 제 독서 신조거든요. 책을 읽을 때 즐겁다면 그것이 진짜 독서라고 생각해요. ^^

안녕반짝 2015-01-20 00:12   좋아요 0 | URL
저도 책을 좋아하던 초기에는 참 구구절절하게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곤 했었는데요.
지금은 딱 저 한마디만 해요. 책이 재미있으니까 읽는다고요^^
재미 없었음 이렇게 온 집 안에 책을 쌓아둘 일도 없었을 거예요.^^
 
파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
시마자키 도손 지음, 노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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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은데서 오는 감동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소소한 기쁨이다. 내가 맛볼 수 있는 일상 속의 사치는 책을 통해 맛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소통도 잘 하지 못하고 여행을 좋아한다거나 타인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지도 못하는 나에게 책이란 매개물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답답해진다. 그래서인지 전혀 기대하지 않은 책에서 진한 감동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뿌듯하다. 작가도 낯설고 책 제목도 들어본 적 없었던『파계』.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맛본 충실함이 결말에선 조금 흐트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이 소설이 내 마음속에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속 인물을 곰곰 생각해 보면 평범하고 실수도 하고 특별한 능력이 없다가도 어떤 신념을 향해 올곧은 길로 가려 하는 인물들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인물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한권의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인물에 기대어 내면의 듬직함을 키워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우시마쓰는 그런 조건을 충분히 가진 인물이었다. 신분이 철폐되었음에도 여전히 신분 차별이 남아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는 평민 칭호를 얻었지만 차별을 받고 있는 존재였다.

 

  사범대학을 나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존경까지 받고 있는 그였지만 절대 신분을 밝히지 말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랐기에 교사가 될 수 있었다. 신분이 들통 날까 늘 조심하고 조심한 터에 여전히 그가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자라왔는지 모르지만 차별 받는 사람들을 보면 늘 마음이 무거웠다. 똑같이 그들을 차별하면서도 자신이 신분을 숨기고 있다는 것에 굉장한 고뇌와 스트레스를 갖고 있었다. 평생 그 사실을 감추자니 내면이 너무 괴로웠고 그것을 드러내자니 아버지가 살아내야 했던 신분제의 처절했던 시절의 고생과 자신은 그런 세상에서 살게 하지 않게 하려 했던 마음이 겹쳐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유부단하고 온통 신분이 들통 날까 겁내 하는 겁쟁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비겁하다고 몰아붙일 수 없는 것이 그가 신분을 밝히는 순간 일어나게 될 일들이 너무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유언도 유언이지만 그가 과연 그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를 지켜보는 내 마음도 그냥 그렇게 숨기고 살길 바랐다. 굳이 자신의 신분을 밝혀 삶을 뒤집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늘 무언가에 쫓기듯, 아버지의 유언에 억눌리듯 살아온 그는 진짜 자신을 못 만나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이념의 아버지’ 이노코 렌타오의 사상에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으며 그런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며 존경을 받고 있었다. 우시마쓰는 몰래 그의 저서를 읽다 용기를 얻어 자신을 짓눌렀던 신분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는다. 자신이 어떤 신분인지를 밝히면서 아버지의 유언을 못 지켰다는 무거움도 잠시, 그제야 자유를 얻게 된다. 자신을 가뒀던 틀 밖으로 나오자 더 나은 삶,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의 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응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노코 렌타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소한 인물로 주변의 감화가 될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그가 신분을 밝히면서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지고 예전처럼 지낼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떠남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간 가졌던 신분에 대한 고민과 번뇌, 밝히기까지의 과정들을 생각하면 도피성으로 보여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우시마쓰를 통해 당시 신분제도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그에 순응해가는 인간들, 비난하며 괴롭히는 인간들, 그에 맞서는 인간들을 다양하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신념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 같다. 타인의 비난을 극도로 싫어하며 두려워하기까지 하는 나에게 우시마쓰 같은 용기는 없겠지만 그를 지켜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지며 힘을 얻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게 주어진 인생이니 내 맘대로 살 것이 아니라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울림이 다시 한 번 내면에 일렁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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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5-01-18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습니다. 멋진 서평 잘 읽고 갑니다.^^

안녕반짝 2015-01-19 14:17   좋아요 0 | URL
끝이 조금 허무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기대하지 않아서 그런지 전 좋았어요.
 
내가 함께 있을게 웅진 세계그림책 120
볼프 에를브루흐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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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괴로울 때도 행복함을 느끼면서도 문득, 나에게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태어남과 같이 죽음은 선택을 할 수 없기에 종종 불안하면서도 나에게 먼 이야기라고 밀어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화책임에도 책장을 덮고 나니 뭔가 묵직한 느낌이 든다. 마치 유서를 쓰듯 죽음을 대비해야 하는 건 아닌가란 물음이 올 정도로 내 삶, 그리고 나의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오리는 얼마 전부터 누군가 슬그머니 따라다니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냐고 묻자 그는 죽음이라고 대답한다. 지금 자신을 데리러 온 거냐는 물음에 만일을 대비해서 죽 네 곁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 만일은 독감이나 사고 같은 거며 ‘사고가 날까 봐 걱정해 주는 것은 삶’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오리는 죽음만 아니라면 꽤 괜찮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죽음과 스스럼없이 말을 나누고 함께 연못을 가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겠다며 죽음 위에 눕기도 한다. 오리는 그런 죽음과 함께 하면서 눈을 뜰 때마다 살아 있음을 느낀다.

 

  죽었다면 늦잠을 잘 수 없었을 거란 죽음의 말에 쌀쌀함을 느끼면서도 죽음과 함께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한다. 흔히 말하는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를 오리의 세계에 덧대어 나눈다. 하지만 죽음도 그 세계는 알지 못한다. 죽음 그 자체로 오리 곁에 있는 것뿐이지 오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는 목적은 아니다. 오리도 그걸 알기 때문에 죽음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나무에 올라가 자신이 놀던 연못을 보며 자신이 죽으면 저 연못은 외롭고 쓸쓸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오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죽음은 네가 죽으면 저 연못도 없어진다고 말한다. 그 말에 위로를 받은 오리는 괴상한 생각만 든다며 나무에서 내려온다.

  언젠간 오리가 맞이해야 할 죽음이었지만 그런 죽음과 함께 있는 것이 두렵지 않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날들이 연속일 줄 알았다. 하지만 몇 주가 흐르고 오리는 죽음을 맞이한다. 전처럼 죽음과 함께 연못을 나가는 일도 줄어들었고 춥다는 말과 함께 부드러운 눈이 내린 날 조용히 죽었다. 죽음은 그런 오리의 깃털을 매끄럽게 해주고 강 위로 데려가 오리를 뉘인 후 살짝 밀어준다. 그렇게 떠내려가는 오리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밖에 죽음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리고 오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죽음은 슬퍼한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었습니다.’란 문장과 함께 묵직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동화책을 처음 읽었을 땐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게 무슨 어린아이들이 읽는 동화일까 의아해했다. 제목에서 풍겨오는 따뜻함과 표지의 오리가 조금 쓸쓸하긴 해도 뭔가 마음 뭉클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해서 구입하게 만든 지인에게 끝도 그렇고 이상하다고 말했었다. 지인은 자신이 무척 좋아하는 책이며 죽음에 대해 곰곰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귓등으로 흘려듣다 다시 읽게 되었는데 이제야 지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동화임에도 정말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더불어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에 대해서도 감사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이 언젠가 내게 다가올 테지만 죽음 자체를 겁내고 있다간 삶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다. 오리가 처음에 죽음을 발견하고 놀랐었지만 이내 죽음의 시선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소소한 행복도 발견하고 자신의 빈자리를 가늠해 보면서 마치 죽음을 준비했던 것처럼, 우리도 어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내게 주어진 많은 것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삶이 이대로만 흘러갈 것 같은 착각에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이렇게 삶을 유지하는 것. 때론 그렇게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날들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를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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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5-01-18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반짝님 리뷰보니까 삶과 죽음은 친구같아요
어머니가 죽음을 준비하시는 모습에 가끔 울컥하는데 오리가 하늘 쳐다보는게 그렇게 슬퍼보이지않고 오히려 의연해보이기까지하네요
누구나 피해갈수없는 죽음
그죽음이 우리 삶을 걱정해주며 친구해주고있다는 이야기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안녕반짝 2015-01-18 16:32   좋아요 0 | URL
정말 동화인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림책이 좀 커서 그림도 더 와 닿았고요.
 
똥배 보배 반달문고 29
정연철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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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름을 좀 더 어릴 때 인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른이 된 지금도 다른 사람과 내가 다름을 인정하는데 너그럽지 못함을 느낀다. 모든 사람이 제각각 다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세상을 향한 모순 때문일까? 나와 좀 다르거나 조금 튀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내 불편함을 느낀다. 가까이 하기를 꺼려하고 오직 나와 마음 맞는 사람만을 곁에 두려는 심보. 어쩌면 어릴 때보다 지금이 더 그런 갈림을 심하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 다닐 때 나와 조금 다른 아이들을 향해 독한 말을 하거나 왕따를 시킨 경험, 물론 있다. 그리고 나도 피해자가 되어 왕따를 당해 본 기억이 있다. 동창이 8명뿐인 조그마한 분교에서도 왕따를 시키고 왕따를 당하곤 했는데 아이들이 많은 곳에서는 그 일들이 얼마나 심할까? 왕따를 시키거나 무관심 하거나 둘 중 하나였을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왕따를 시키는 일이 정말 별거 아닌 것에서부터 이유 없음까지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심한 화상을 입고 엄마 아빠도 없이 할머니 집으로 온 보배는 어땠을까? 왕따를 당하기에 너무 많은 이유를 갖고 있는 아이였다.

  동네에 여자 아이가 귀해 새로 여자 아이가 온대서 잔뜩 기대하던 경식이는 보배를 보고 실망한다. 예쁘지도 않고 화상을 입고 게다가 뚱뚱하기까지 하다. 그런 보배에게 경식이는 당연하단 듯이 못되게 구는데 그럼에도 자신을 따라다니자 경식이는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새침데기인 은조를 좋아하는 경식이. 은조 말이라면 깜박 죽는 경식이는 은조가 모범생 상호를 좋아하는 것이 영 마뜩찮다. 상호의 마음을 얻지 못한 은조는 경식이에게 더 못 되게 굴고 경식이는 그걸 보배에게 되풀이하고 있다. 어른도 쉽지 않은데 나와 다른 아이를 인정하고 감싸주는 건 역시 아이들에게도 기대하기 힘든 일일까?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통해서 왕따를 목도하게 하면서도 그 아이들의 마음이 서서히 풀려서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과정이 그래서 더 따뜻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자주 마주치면 정이 든다고 했던가. 경식이는 보배에게 못되게 굴고 귀찮아하면서도 자신에게 애정 어린 마음을 표현하는 보배를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든다. 정말 처음 보배를 봤을 때 너무 놀라 그런 보배를 똑같이 싫어하는 은조를 더 좋아하면서도 바른 말만 하는 상호가 더 미웠었다. 보배를 그나마 있는 그대로 보려는 상호가 이해 안가는 건 경식이 뿐만 아니라 은조도 마찬가지였는데 상호를 보면서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게 나 역시 쉽지 않음을 알고 많이 부끄러웠다. 나였다면 앞서서 보배를 두둔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보배를 싫어하는 일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중간한 상태로 이리저리 묻어 다니려는 마음. 그런 마음을 가져보고 여전히 지니고 있기에 소설 속의 제각각인 아이들을 보면서 뭐라 비난을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온전히 순수하지 않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른보다는 분명 더 순수하고 여린 마음이 더 많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다. 그래서 서서히 보배를 감싸고 보배의 마음을 알아주려는 아이들의 모습에 부끄러움도 느끼면서 뭔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단번에 나와 다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는 건 힘들지라도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다름을 인정하고 왜 그렇게 됐는지 이해하게 된다면 아이들도 풍부한 인관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아이들에게 더 많은 점을 배우면서도 지난 과거에 나의 자잘한 잘못들도 떠올라 마음이 무거운 부분도 있었다. 늘 어이없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되뇌며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나와 좀 다른 삶을 살았거나 뭔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더 너그럽게 가지는 게 나에게 더 필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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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5-01-18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안녕반짝님 글로 맑아집니다
저도 아이들이 어른보다 더 순수하고 여린마음이 더많다고 생각하고 믿고있습니다
 
셋이서 쑥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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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차기작은 어떤 만화가 나올까 내심 기대하고 있던 작가였다. 그런데 육아 만화를 출간하다니! 이렇게 상큼 발랄할 수가!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고 있다면 시큰둥하게 아이가 생기니 이런 만화를 그렸나 보다며 무심코 넘겨 버렸을지 모른다.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했던가. 아이를 낳아보니 정말 이 만화 속 이야기가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고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에 대한 두려움에 조금 덤덤해진 것 같다.

 

  아이를 낳아 기르려면 몇 억이 드네 어쩌네 그런 말들이 많지만 부모의 능력보다 부모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가진 게 많다면 더 좋은 거 더 나은 걸 해주겠지만 내가 아이를 낳으면 내가 가진 한도에서 꼭 필요한 것만 해주자고 다짐했다. 첫 고민이 산후조리였는데 아이를 빨리 낳는 바람에 병원에서 9일 정도 입원을 하고 홀로 퇴원을 해서 조리사를 불러 집에서 했다.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어서 비용은 10만 원 정도 밖에 들지 않았다.(저자는 아내와 함께 고른 조리원에 들어가는데 그곳 원장님의 수유 마사지에 감탄하는 부분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원장님의 손길이라면 저자도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는 장면이란!) 그리고 퇴원해서 올 아이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했는데 선물 받고 얻은 게 많아서 크게 들어간 건 젖병 소독기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괜히 기저귀용 백팩에 꽂혀 비싼 걸 주문하고 지금은 처박혀 있는 것만 빼면 육아용품을 사서 크게 실패한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저자는 유모차를 이리저리 알아보고 구입했음에도 실패했다고 한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비웃을 수 없는 게 육아용품을 구입하는 건 정말 신세계에 입문하는 것 같은 느낌을 나 역시 받았기 때문이다. 검색만 하면 쉽게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종류도 많고 애매모호한 평들에 더 헷갈리게 했다. 첫 관문이 유모차였는데 아이가 10킬로그램이 넘어가자 도저히 아기띠로는 감당이 안 되고, 얻은 유모차는 주니어용이라 8개월 때 구입했다. 그것도 친구가 절반 보태줘서 구입했지 나라면 쉽게 구입하지 않았을 금액이었다. 유모차 종류도 너무 다양하고 금액도 천차만별이라 고심하던 끝에 국산에 그나마 저렴한 유모차를 구입했다. 나름 만족하며 쓰고 있고 이제는 유모차 없는 외출은 생각지도 않을 만큼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그 이외에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너무 많다. 목돈이 들어가는 유모차를 구입했다면 그 다음은 카시트다. 카시트도 얻어서 쓰다 적립금을 받을 일이 있어 6만 원 정도 보태서 새로 구입했다. 그에 비해 옷은 거의 사지 않았던 게 물려받은 옷이 있어서 많은 부분이 절약됐다. 또 아이가 커 나갈 때마다 장난감에 고민하게 되는데 큰 금액을 넘지 않은 선에서 한 개씩 구입해주고 중간 중간에 선물로 받아서 그럭저럭 때워나가고 있다. 다행히 돌이 되기 전에 쓰는, 부피가 큰 타는 장난감부터 바운서까지 모두 얻어 써서 그 시기를 알차게 넘겼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면 아이 키우는 게 별거 아니다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더 커감에 따라 부차적으로 들어가는 돈이 아니라 아이 존재 자체에 대한 노력과 고민이 더 필요함을 알고 있다. 저자도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그 기쁨을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지만 이래저래 겪게 되는 육아에 관한 에피소드와 고민들을 쏟아내고 있다. 부부가 모두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면서 일해야 하는 고충, 아이도 소중하지만 부부가 먼저여야 한다는 깨달음, 아이 존재 자체로 인해 밝아지고 다투기도 하는 관계 등 보통 부부라면 겪는 일들을 그려내고 있기에 많은 부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우고 고민해도 쉽지 않다는 것. 험한 세상에 내어 놓아야 한다는 두려움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셋이서 잘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 그 모든 것이 어찌 저자만의 고민이겠는가.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계획 중이거나 이미 장성하게 키웠음에도 눈 감을 때까지 그런 고민을 놓지 못하는 게 부모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이야기는 유쾌하고 찡하고 공감가기도 하는 다양함을 지니고 있다. 아내의 이야기를 많이 듣기도 했지만 아빠의 시선으로 녹아낸 게 더 마음에 들었고 내 남편에게도 읽히고 싶었다. 다른 아빠랑 비교하려는 게 아니라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 표현해 달라고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 냄새가 폴폴 나서 그런지(아니면 아기 냄새?^^) 전작과는 색깔이 확연히 다르지만 나름 재밌고 마음 찡하게 읽었던 것 같다. 특히 아이를 낳고 보니 다른 아이들도 보이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는 부분은 완전 공감했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아이도 소중하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인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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