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함께 있을게 웅진 세계그림책 120
볼프 에를브루흐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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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괴로울 때도 행복함을 느끼면서도 문득, 나에게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태어남과 같이 죽음은 선택을 할 수 없기에 종종 불안하면서도 나에게 먼 이야기라고 밀어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화책임에도 책장을 덮고 나니 뭔가 묵직한 느낌이 든다. 마치 유서를 쓰듯 죽음을 대비해야 하는 건 아닌가란 물음이 올 정도로 내 삶, 그리고 나의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오리는 얼마 전부터 누군가 슬그머니 따라다니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냐고 묻자 그는 죽음이라고 대답한다. 지금 자신을 데리러 온 거냐는 물음에 만일을 대비해서 죽 네 곁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 만일은 독감이나 사고 같은 거며 ‘사고가 날까 봐 걱정해 주는 것은 삶’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오리는 죽음만 아니라면 꽤 괜찮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죽음과 스스럼없이 말을 나누고 함께 연못을 가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겠다며 죽음 위에 눕기도 한다. 오리는 그런 죽음과 함께 하면서 눈을 뜰 때마다 살아 있음을 느낀다.

 

  죽었다면 늦잠을 잘 수 없었을 거란 죽음의 말에 쌀쌀함을 느끼면서도 죽음과 함께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한다. 흔히 말하는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를 오리의 세계에 덧대어 나눈다. 하지만 죽음도 그 세계는 알지 못한다. 죽음 그 자체로 오리 곁에 있는 것뿐이지 오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려는 목적은 아니다. 오리도 그걸 알기 때문에 죽음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나무에 올라가 자신이 놀던 연못을 보며 자신이 죽으면 저 연못은 외롭고 쓸쓸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오리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 죽음은 네가 죽으면 저 연못도 없어진다고 말한다. 그 말에 위로를 받은 오리는 괴상한 생각만 든다며 나무에서 내려온다.

  언젠간 오리가 맞이해야 할 죽음이었지만 그런 죽음과 함께 있는 것이 두렵지 않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날들이 연속일 줄 알았다. 하지만 몇 주가 흐르고 오리는 죽음을 맞이한다. 전처럼 죽음과 함께 연못을 나가는 일도 줄어들었고 춥다는 말과 함께 부드러운 눈이 내린 날 조용히 죽었다. 죽음은 그런 오리의 깃털을 매끄럽게 해주고 강 위로 데려가 오리를 뉘인 후 살짝 밀어준다. 그렇게 떠내려가는 오리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밖에 죽음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리고 오리가 보이지 않게 되자 죽음은 슬퍼한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었습니다.’란 문장과 함께 묵직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동화책을 처음 읽었을 땐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게 무슨 어린아이들이 읽는 동화일까 의아해했다. 제목에서 풍겨오는 따뜻함과 표지의 오리가 조금 쓸쓸하긴 해도 뭔가 마음 뭉클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해서 구입하게 만든 지인에게 끝도 그렇고 이상하다고 말했었다. 지인은 자신이 무척 좋아하는 책이며 죽음에 대해 곰곰 생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귓등으로 흘려듣다 다시 읽게 되었는데 이제야 지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동화임에도 정말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더불어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에 대해서도 감사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죽음이 언젠가 내게 다가올 테지만 죽음 자체를 겁내고 있다간 삶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다. 오리가 처음에 죽음을 발견하고 놀랐었지만 이내 죽음의 시선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소소한 행복도 발견하고 자신의 빈자리를 가늠해 보면서 마치 죽음을 준비했던 것처럼, 우리도 어쩜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내게 주어진 많은 것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삶이 이대로만 흘러갈 것 같은 착각에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이렇게 삶을 유지하는 것. 때론 그렇게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날들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를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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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창고 2015-01-18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반짝님 리뷰보니까 삶과 죽음은 친구같아요
어머니가 죽음을 준비하시는 모습에 가끔 울컥하는데 오리가 하늘 쳐다보는게 그렇게 슬퍼보이지않고 오히려 의연해보이기까지하네요
누구나 피해갈수없는 죽음
그죽음이 우리 삶을 걱정해주며 친구해주고있다는 이야기 마음이 따스해집니다

안녕반짝 2015-01-18 16:32   좋아요 0 | URL
정말 동화인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그림책이 좀 커서 그림도 더 와 닿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