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 이승편 상.하 세트 - 전2권 신과 함께 시리즈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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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저승편을 읽고 나서 다음편을 기다릴 정도로 팬이 되었지만 이승편을 읽고 나서 한참 동안 리뷰를 쓸 수가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너무 우울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승편에서는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모습을 가혹하게 다뤘다. 재개발로 인해 쫓겨날 위기에 있는 여덟 살 동현이의 삶은 차마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회의 그늘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사고로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는 집을 나가고 할머니마저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를 굶기지 않기 위해 파지를 열심히 주워 보지만 삶은 여전히 팍팍하기만 하다.

  동현이가 처한 환경만으로도 이렇게 우울하고 마주보기 어려울 정도인데 당사자인 동현이는 해맑다. 아이들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천성적인 밝음과 웃음이 상대방의 기분까지 좋게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도저히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씩씩한 동현이를 보고 있으면 어른들이 만들어 내는 세상이란 곳이 참으로 부끄러워진다. 그런 동현이에게 할아버지까지 데려가려는 저승사자. 정말 할아버지까지 바로 데려갔다면 힘겹게 읽어 나갔던 이 책을 바로 덮어 버렸을 것이다. 우울한 이야기를 극도로 싫어하기에 그 후환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다행히 가택신들이 막아주었지만 동현이를 위협하는 건 그 뿐만이 아니다. 개발되어질 집에서 나가야 하는 것, 학교에서 만난 다른 친구들과 자신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마음 아팠다.

  재개발을 둘러싼 일들을 보면서 용산참사가 떠올랐다. 과연 우리에게 인권이 있는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사건. 사회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싫었다. 모두가 잘 살 수 없고 모두가 행복할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비극과 슬픔을 겪으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기쁜 일도 환희도 많지만 왜 그렇게 비극은 자주 일어나고 가슴을 헤집어 놓는지. 세월호 참사만 봐도 우리가 현재 당면해 있는 이 사회라는 곳의 비극이 얼마나 처참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어딘가에 돕는 손길이 분명 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도 끊임없이 드러내고 있다. 집을 지키는 신들이 규율까지 어겨가며 집주인까지 지키는 일을 감행하다 보니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그로 인해 현실은 더 우울하게 흘러간다. 동현이는 어떻게 될지, 여덟 살 난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켜보는 것밖에 할 것이 없어 답답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답답한 건 만화에서 나오는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현실에서 이런 아이와 이런 환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과연 나는 잘 살고 있는가, 그런 사람들을 향해 먼저 손 내밀고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에게 인간의 온정을 전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 시리즈는 책장에서 종종 꺼내서 보는데 이승편은 쉽게 펼쳐지지 않는다. 그만큼 나의 마음을 심하게 어지럽혔던 책이고 지금도 현실은 달라진 게 크게 없는 것 같아 회피하고 싶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현실의 아픔까지 반영하는 이야기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 요즘 같이 마음 아픈 이 때,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너무나 버겁다.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도 힘들다고 말하는 데 그 모든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난 도저히 그네들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하겠다. 그저 미안하다고 고개만 떨구고 한숨만 쉴 뿐, 나의 어쭙잖은 위로가 오히려 사치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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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테르마이 로마이 1~3 세트 - 전3권
야마자키 마리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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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갈 때면 순간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늘 상상했었다. 집과 학교의 거리가 무려 1시간 정도였고 버스 시간도 맞지 않아 늘 걸어 다녔다. 6학년이 되기 전까진 동네 언니 오빠들이라도 있었는데 다들 졸업을 하고 나자 나 혼자 남아 늘 되돌아가야 하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늘 순간이동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러다 어른이 되자 무언가 내 맘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잠재력이 툭 튀어나오길 바라게 되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바라게 되는 초능력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런 힘이 존재한다면 빌리고 싶은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이 책의 주인공 루시우스도 그랬다. 고대 로마인인 그는 목욕탕 건축기사지만 아이디어 고갈로 인해 직장에서 쫓겨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여행을 가거나 술을 마시거나 칩거했겠지만 그는 직업이 직업인지라 목욕탕에 가는데 그곳에서 현대 일본의 목욕탕으로 순간이동을 하게 된다. 목욕탕 바닥의 구멍을 통해 현대 일본의 목욕탕으로의 시간여행. 그 일로 인해 루시우스는 영감을 얻게 되지만 다시 로마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목욕탕에서 현대의 일본으로 순간이동을 했던 것처럼 그가 로마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 또한 물이었다. 물에 빠지면 그는 고대 로마와 현대의 일본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가고 싶다고 물에 빠지는 게 아니라 그가 무언가를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얻어야 할 때, 물에 빠졌고 이동했으며 영감을 얻었다. 현대의 일본 목욕탕에서 본 것들을 로마에 접목 시키면서 그는 유명해진다. 그래서 황제의 총애를 받기도 하지만 승승장구하는 그를 무조건 축하하고 추앙하는 무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를 시기질투하고 그가 만든 목욕탕 때문에 다른 목욕탕이 장사가 안 된다며 아우성이고 황제는 지친 육신을 쉬게 할 더 나은 목욕탕을 원했으며 그 외에도 일중독에 빠진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아내는 떠나는 일 등 이런저런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목욕탕을 만들어야 하는 일과 현대 일본으로 건너가 영감을 얻는 일들도 계속 일어났다. 1권은 목욕탕 시간여행이라는 점에서 신선했고 2권에서는 이런저런 현실적인 문제들과 그 안에서 나름 잘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주류였지만 3권에서는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 자주 물에 빠지고 이동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현대 일본인과 너무 쉽게 의사소통이 통하는 것 등 조금 느슨해진 느낌이 들었다. 거기다 고대 로마의 목욕탕을 재연하려는 일본인 건축기사에게 영감을 주었던 모습에서는 심히 오글거리기도 했다.

  만화는 만화이기에 너무 꼼꼼하게 따지면서 보지 않으려 해서 나름 재미나게 읽었던 편이다. 중간중간 저자의 에피소드와 설명이 곁들어 있어 실재했던 로마의 목욕탕과 일본의 목욕탕 문화를 꽤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문득 내가 직장인이었을 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쥐 뜯을 때 루시우스처럼 순간이동을 해서 영감을 얻어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루시우스처럼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간절했던 그때. 지금은 방바닥에 누워 이 책을 보며 낄낄대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심히 낯설다. 하지만 목욕탕에 가면 이 만화 내용이 떠오를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또 다른 추억이 생긴 것 같아 나쁘지 않다. 책 내용이 내 경험이 되어가는 것. 그것도 나름대로 보람 있고 재미있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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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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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을 읽고 슬로 리딩이 나에게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었다. 책이 좋지만 더 많은 책을 읽고 싶고 더 많은 책을 소유하고 싶었던 욕망이 한창 들끓을 때 책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충고는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기 힘든, 나에게는 금기 사항 같은 것이었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해 권수에 치중해 읽었던 책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나는 이러이러한 독서를 하고 있노라고 얼마나 부끄러운 자랑을 많이 했었던가. 예전보다 천천히 읽는 편이긴 하지만 슬로 리딩에 대한 충격과 필요성을 동시에 느꼈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슬로 리딩을 온전히 실천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런 와중에 슬로 리딩에 좀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소설 읽는 방법』이란 책을 만나보니 그간 소설을 읽고 남겼던 나의 느낌들이 참 서툴렀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소소한 독자이고 글쓰는 사람도 아니니 어쩜 그런 서투른 느낌들이 당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많이 읽었다고 드러내면서 여전히 표현력은 진전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간 내가 남긴 소설에 관한 느낌들을 살펴보면 처음엔 너무 돌직구로 솔직하게 드러내다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드러냄 그리고 타인을 염두에 두지 않은 내가 느낀 그대로 쓰는 느낌으로 변화해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변화가 그렇다는 것이지 타인이 보았을 땐 중구난방으로 남긴 것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한 권의 책을 똑같은 느낌으로 읽을 수 없듯이 내 나름대로 읽어냈다는 것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양면이 존재함을 인정해야 했다.

 

  책을 읽는 방법도, 소설을 읽는 방법에도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개인적인 배경도 느낌도 모두 다르기에 그것이 큰 매력인 반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읽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좀 더 풍부한 책 읽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 나온 저자의 방법이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어도 소설이 어렵다거나 제대로 읽고 있는지 점검해 보고 싶을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부 ‘소설을 읽기 위한 준비’ 기초편에서는 소설을 읽기 위한 기본적인 도움을 간결하게 설명해 준다. 저자는 소설(小說)을 한자 뜻 그대로 '작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곱씹어보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적어도 소설이 주는 어려움과 부담스러움,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떨쳐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란 의미부여가 됐다.

 

  2부 실천편에서는 9편의 소설을 예로 꼼꼼히 읽어나간다. 다양한 소설인 만큼 다양한 시각으로 보고 있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를 깨닫기도 했다. 소개된 소설 중에 내가 읽은 소설은 두 편 뿐이었는데도 내 느낌과는 판이하게 다른 시선을 보기도 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이기에 나의 시선이 잘못 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조금 설렁설렁 읽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어 다시 읽어보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한 권의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나에게도 드물기에 책을 읽을 때마다 집중해서 천천히 읽으려는 노력을 한다. 그 다짐이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이어지는 건 흔치 않은 게 문제지만 말이다. 하지만 꼭 이 책에 소개된 작품이 아니더라도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소설 혹은 앞으로 만날 소설을 이런 시선으로 따라서 읽어본다면 그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다른 세계가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꼼꼼히 읽으려고 신경 쓰다 보면 오히려 독이 되어 편안하게 읽을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저자의 의도라든가 메시지, 그 다음 상황과 흘러감에 정신이 팔려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지 못했던 기억들. 지금도 나에겐 그런 평정이 많이 부족하다. 결혼하기 전에는 평정을 운운하며 책 속으로 어떻게 하면 더 집중해서 들어갈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책을 읽을 수 있을까가 관심사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보니 긴 호흡의 책들은 읽지 못하고 언제라도 끊어 읽고 부담 없는 책들에게 손이 간다. 예기치 못한 단점들이 발견된다고 해도 저자의 시선을 따라 한 호흡에 꼼꼼히 읽어보고 싶은 욕망. 지금 나에게 가장 큰 소망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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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10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호흡으로 읽는 책에서 많이 멀어졌죠. 육아와 가사에 의해^^
마지막 문장에 공감합니다
 
마지막 숨결 - 개정판
로맹 가리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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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가벼운 소설을 읽다 보면 무겁더라도 생각할 거리가 있는 소설이 읽고 싶어진다. 거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책장을 한참 바라보다 이 책을 충동적으로 꺼내 들었다. 로맹 가리란 작가의 작품과 그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음에도 제대로 만난 적이 없다는 데서 오는 의아함 때문이었다.『자기 앞의 생』은 정말 흡인력이 있었음에도 읽다가 덮어 버렸다. 소설 주인공이 처한 환경이 암울해서였다. 그런 뒤에『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책장에 들여놨음에도 그 두 권의 작품이 아닌 이 책을 꺼내든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두 작품보다 그나마 덜 들어본 작품이었고 미발표 유작이 있어서 더 끌렸는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지도 않았으면서 미발표 유작에 끌린다는 사실이 조금 부조화스럽긴 말이다.

 

  첫 단편「폭풍우」를 읽으면서 이 책을 읽게 된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렬하면서도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마력이 나를 사로잡았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작품을 접한다는 우쭐한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단편집이 주는 블랙홀에 금세 빠져 버렸다. 단편집은 장편이 주는 긴 느낌 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여러 이야기를 만나다 보면 이야기를 모두 떠올리기도 힘들고 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특성도 들춰내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푹 빠져 드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떤 작가를 처음 대면하는데 그 작품이 단편집이라면 다음 작품을 읽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상당한 고민이 든다. 더군다나 어찌어찌하여 책을 다 읽었다고 해도 느낌을 남기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애로사항 중의 하나다.

 

  이 단편집을 읽었지만, 첫 단편집을 읽고 단박에 마음에 들어 다음 이야기까지 읽어나갔지만 단편집이 주는 다양함의 늪에 빠져버렸다. 순문학의 광활함이라고 해야 할까? 이야기를 읽어나가고 있지만 시간에 점령당한 듯한 느낌에 젖어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지나치게 많은 단어들이 쏟아지곤 한다. 형용사가 빗발치고 부사가 무더기로 쏟아져 내린다. 그건 로맹 가리가 지닌 매력의 일부이다.’ 라는 서문의 말에 공감하듯이(미처 형용사와 부사를 구분 짓지 못하고 뭔가 집중이 안 된다고만 느꼈을지라도!), 로맹 가리의 매력에 빠지기 전에 표현의 늪에 빠진 것 같았다.

 

  문학이라는 영역 내에서 로맹 가리는 일종의 사륜구동 자동차와도 같았다. 그는 온갖 장르를 누비고 다녔다. 그는 소설, 자서전, 대담, 드골에서 바치는 송시, 두 차례의 콩쿠르 상, 영화 시나리오, 한 번의 속임수와 여려 개의 필명을 남겼다. (서문 중에서)

 

이 표현이 딱 맞다 싶을 정도로 단편집임에도 온갖 이야기를 누비는 느낌이었다. 두 편의 단편이 완성된 단편소설이 아니라 미완 소설의 초고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때론 섬세하게 때론 거칠고 모호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에 혼미해진 게 사실이다. 전쟁의 추억담을 이야기하다가 십 년 뒤 전쟁이 끝난 뒤를 상상해서 쓴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고 더 헷갈리고 의문을 가졌던 이야기(「십 년 후, 혹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냐마 중사’란 인물의 존재여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는 이야기(「냐마 중사」, 그리고 무엇보다 결말이 궁금해 미완성 소설이라는 게 너무 아쉬웠던「그리스 사람」까지 이야기 속을 헤매고 다녔다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이 단편집과 만나면서 로맹 가리의 작품을 드디어 읽었다는 후련함도 있었지만 숙제가 더 많아진 느낌이 든다. 내 책장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대표작을 만나는 일. 그 두 작품을 만난 뒤 이 작품을 읽었다면 조금 더 이해하면서 친근하게 읽었을지 모르나 저자의 독특한 매력이 어떠한 것인지 충분히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 그 독특한 매력에 빠지느냐 한발 물러서느냐는 앞으로 만날 작품 속에 달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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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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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을 읽으면서 참 많이 생각하고 공감했던 시간들이 오랜만인 것 같다.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나 혼자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 그리고 표현하지 못했던 복잡한 마음들을 대신 읽을 수 있었던 명확함. 이 책을 통해서 그런 감정들이 나에게 들어왔다. 저자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그의 음악도 들어보지 않은 채 오로지 입소문으로만 접하게 된 산문집. 책을 다 읽고 보니 그의 마음이 내 마음에 많이 와 닿았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술술 읽혔지만 생각보다 페이지가 가볍게 넘어가지 않았다. 음울하고 어두운 내용들도 너무 진솔하게 그려져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내가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은 깊은 밤인데 그 시간에 읽으니 마음이 더 착 가라앉아서 정말 조금씩 읽어나갔다. 그러다 마음이 동하면 집중해서 읽고 마음이 무거워지면 책장을 덮기를 여러 번. 처음 들었던, 글이 내 마음을 너무 가라앉게 만들어서가 아닌 자꾸 멈칫하며 곱씹게 되는 문장이 더 많아졌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던 마음들, 차마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 깊숙한 곳의 비밀까지 모두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일평생 유년의 기억에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은 불행일까 행복일까. 그리움에 젖어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으로만 보면 불행일 것이고, 그리워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또한 행복일 것이다. (70쪽)

  조금씩 나이를 먹을수록 유년시절의 기억은 더 지배적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기억들 가운데 내가 편할 대로 기억하고 형상화 시키는 기억이 분명 존재함에도 좀처럼 그 기억의 허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저자의 생각을 듣고 있노라면 정답이라 할 수 없지만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의 중심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이렇듯 어떠한 것도 명확한 정답이 있을 수 없음에도 손이 닿지 않는 등 한가운데를 긁어주는 듯한 시원함이 있다. 그 주제가 소소한 일상일 때도 있고, 결코 정답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내면의 깊은 이야기도 있고, 내가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무관심의 분야도 있다.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면서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건 꾸미지 않은 진솔함 때문이었다.

  내 안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내가 겪은 것도 있고 삶을 지속시키면서 얽히고설킨 수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모두 끌어안고 살다 보니 때론 마음이 너무 무거워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버겁고 어려운데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초반에 자꾸 책장을 덮었던 것이고 우울함이 나를 지배할 것만 같아 지레 겁을 먹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만 들여다보다간 병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님을.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 때론 함께 살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도 섞여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기가 더 겁난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겁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모양은 다르지만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저자처럼 한때 특별하면서도 암울한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마음 가운데 비밀이 있고 타인에게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속내가 있다. 저자의 글을 보면서 저자의 깊은 속까지 다 들여다 본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차마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속에 적당히 마음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모든 걸 드러내면서도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았다고 해야 하나? 저자의 이야기를 또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앞으로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 나보다 조금 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뭔가 후련하면서도 안도감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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