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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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을 읽으면서 참 많이 생각하고 공감했던 시간들이 오랜만인 것 같다. 타인의 글을 읽으면서 나 혼자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 그리고 표현하지 못했던 복잡한 마음들을 대신 읽을 수 있었던 명확함. 이 책을 통해서 그런 감정들이 나에게 들어왔다. 저자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그의 음악도 들어보지 않은 채 오로지 입소문으로만 접하게 된 산문집. 책을 다 읽고 보니 그의 마음이 내 마음에 많이 와 닿았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술술 읽혔지만 생각보다 페이지가 가볍게 넘어가지 않았다. 음울하고 어두운 내용들도 너무 진솔하게 그려져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내가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은 깊은 밤인데 그 시간에 읽으니 마음이 더 착 가라앉아서 정말 조금씩 읽어나갔다. 그러다 마음이 동하면 집중해서 읽고 마음이 무거워지면 책장을 덮기를 여러 번. 처음 들었던, 글이 내 마음을 너무 가라앉게 만들어서가 아닌 자꾸 멈칫하며 곱씹게 되는 문장이 더 많아졌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던 마음들, 차마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 깊숙한 곳의 비밀까지 모두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일평생 유년의 기억에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은 불행일까 행복일까. 그리움에 젖어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으로만 보면 불행일 것이고, 그리워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또한 행복일 것이다. (70쪽)

  조금씩 나이를 먹을수록 유년시절의 기억은 더 지배적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기억들 가운데 내가 편할 대로 기억하고 형상화 시키는 기억이 분명 존재함에도 좀처럼 그 기억의 허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저자의 생각을 듣고 있노라면 정답이라 할 수 없지만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의 중심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이렇듯 어떠한 것도 명확한 정답이 있을 수 없음에도 손이 닿지 않는 등 한가운데를 긁어주는 듯한 시원함이 있다. 그 주제가 소소한 일상일 때도 있고, 결코 정답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내면의 깊은 이야기도 있고, 내가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무관심의 분야도 있다.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면서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건 꾸미지 않은 진솔함 때문이었다.

  내 안엔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내가 겪은 것도 있고 삶을 지속시키면서 얽히고설킨 수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내가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모두 끌어안고 살다 보니 때론 마음이 너무 무거워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버겁고 어려운데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초반에 자꾸 책장을 덮었던 것이고 우울함이 나를 지배할 것만 같아 지레 겁을 먹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만 들여다보다간 병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님을.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 때론 함께 살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도 섞여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기가 더 겁난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겁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모양은 다르지만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저자처럼 한때 특별하면서도 암울한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마음 가운데 비밀이 있고 타인에게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속내가 있다. 저자의 글을 보면서 저자의 깊은 속까지 다 들여다 본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차마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속에 적당히 마음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모든 걸 드러내면서도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았다고 해야 하나? 저자의 이야기를 또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앞으로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 나보다 조금 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뭔가 후련하면서도 안도감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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