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건축 100 테드북스 TED Books 2
마크 쿠시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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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임에도 출근한 남편,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큰 아이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 보니 너무 답답했다. 머리도 아픈 것 같고 아이들에게 짜증만 내는 것 같아서 잠시 시골에 있는 친정집으로 피신을 했다. 어릴 적 추억이 잔뜩 묻어있는 장소와 녹음이 어우러진 곳을 걷다 보니 마음도 편해지고 짜증도 내지 않는 나를 보면서 자연의 치유를 경험했다. 친정 엄마도 자주 보고 이런 자연도 아이들에게 보여줘야겠단 생각을 하면서도 선뜻 그래지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시골집의 불편함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오래전에 지은 집이라 구조의 불편함, 동선의 비효율성, 난방 문제 등등 시골집이 좀 더 효율적이라면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엄마를 보러 오는 이유에 시골집의 구조를 핑계 삼는다는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우리 엄마가 사는 시골집도 좀 더 안락하고 편안했으면 하는 생각이 더 들었다고 말하고 싶다. 저자는 장소가 삶을 형성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같은 풍경이라도 어떠한 구조에서 보는가에 따라 완전히 달리 보일 수 있음을 한번쯤 경험해 봤다면 내가 속한 공간에 대한 구조의 아쉬움을 늘 가질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이유와 제약으로 그런 공간을 만들 수 없고, 과감히 이행할 수 없는 아쉬움이 늘 존재해 노년에는 한적한 곳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속에 내가 원하는 공간을 품고 사는 것. 그것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므로 이 책 속에 나온 건축물을 보면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져보기로 했다.


  저자가 주관적으로 고른 100개의 프로젝트 건축은 소도시에 살고 있는 나에겐 피부에 와 닿지 않은 환상적인 공간으로 여겨졌다. 대도시에 살아서 그런 건축을 봤다 하더라도 나와는 거리가 먼 부유하고 여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내가 그런 건축물 안에 살 수 없고 볼 수 없다고 한탄만 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으므로 저자가 소개하는 건축물은 어떤 모습인지 구경이라도 실컷 하자 싶었다. 정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극한의 환경에 자리한 아름다운 건축물을 포함해서 새롭게 재정비되고 변형시키고 자연에 스며들고 사람을 치유하고 미래를 추측해보는 여러 건축물을 보았다.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런 곳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속한 공간에 대한 답답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건축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면 도대체 이런 공간을 어떻게 구상하고 지어낼 생각을 했는지 건축가들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어떤 방법으로 시야를 키우고 독창성을 길러내는지, 늘 새롭게 지어지는 똑같은 아파트와 신축 빌딩만 봐오다 건축가 혹은 디자이너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정말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들이 그렇게 연구하고 행동한 덕분에 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는 의미 있는 건축물들이 아름답게 보일 정도였다. 나는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해보았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 직전에 다시 시선을 건축으로 시선을 돌렸고, 이상하게 건축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구경하기 좋아하고 관심을 가졌던 오래전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100여 개의 건축물을 순식간에 눈으로 훑어갔고 짤막한 글 속에 담긴 설명과 메시지를 습득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떠올리고 얻었으며 빠져들었다. 자연의 치유를 경험했고 고향집에 대한 아쉬움과 이상을 꿈꾸었고 의미를 지닌 건축물을 보면서 사각형에 갇혀 사는 나를 좀 더 자유롭게 풀어주는 계기도 만들었다. 공간을 바꿀 수 없다면 마음이라도 바꿔보자는 긍정이 솟아났고 내가 속한 공간의 변화가 너무 먼 미래가 되지 않길 바랐다. 그런 바람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건축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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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하루 2016-05-14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마음 조금은 알거 같네요.~
 
내 몸속의 우주 - 질병부터 성격까지 좌우하는 미생물의 힘 테드북스 TED Books 4
롭 나이트.브랜던 불러 지음, 강병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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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든 아이를 볼 때마다 신기하다. 어쩜 저렇게 나를 안 닮아서 예쁜지(으응?), 어떻게 저런 아이가 내 뱃속에 있었는지 신기하고 신기하다. 처음엔 아주 작았는데 뱃속에서 자라서 때가 되어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내가 이 아이를 낳았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두 아이 모두 위험한 상황이라 제왕절개를 해서 진통의 고통도, 바로 아이를 안아보는 기쁨도 못 누리고 인큐베이터 안에서 만나서 그런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와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이들의 피부의 미생물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좀 걱정이 되긴 한다. 아이 이야기를 하다 뜬금없이 웬 미생물 얘기냐 하겠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우리의 몸에 이렇게 많은 미생물이 사는지 나 역시 전혀 몰랐다.


 

  임신했을 때는 내 몸이 신비롭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는데 출산을 하고 나면 신비감은 사라지고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병이 든 건 아닌지 노심초사해지는 일이 많았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쓸데없는 없는 걱정이긴 한데 내 몸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데서 오는 불안감이 아니었나 싶다. 자연스레 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의 출산은 없다고 생각하니 내 몸이 죽음을 향해 간다는 생각만 자꾸 드는 것이다. 그래서 내 몸에 대한 소중함보다 당연하고 익숙한 나를 만나는 거라고 치부하고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고 생각한 적도 없었던 미생물이란 존재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여름마다 모기가 나만 물어 대서 내 피가 맛있어서 그러나보다 했더니 피부의 미생물 때문이라는 것도, 미생물을 변화시키는 식단을 바꿔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너무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보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가 더 건강하다는 것과 성격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모든 게 미생물 때문이라고 하면 여전히 믿기지 않는데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자의 말마따나 ‘미생물은 인간의 의미를 재정비’하고 있는 셈이었다. 우리 몸속에는 약 1.3 킬로그램의 미생물이 존재하고 인간 유전자는 2만 개지만 대략 200만에서 2000만 개의 미생물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하니 ‘유전자로 치면 우리는 인간이라기보다는 99퍼센트 이상 미생물인 셈’이란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출발 된 미생물 이야기는 많은 연구로 인해 정확히 드러난 것도 있고 아직은 확신할 수 없지만 가능한 것들도 있고 이제 시작에 불과한 연구를 드러내는 이야기도 있다. 과학이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면 앞으로 우리 몸속 미생물들이 이끌어 낼 무궁무진한 일들에 기대되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 이면엔 부작용도 있을 테지만 발전과 동시에 부작용에 대한 연구도 진행될 거란 희망을 가지면서 아직 닥치지 않은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생제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에 구입한 육아에 관한 책에서도, 그리고 이 책에서도 항생제의 내성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있는데 약 처방을 받을 때 좀 더 세심한 상담을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항생제를 쓰더라도 끝까지 쓰지 않았을 때 오히려 균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약을 먹다 증상이 나아지면 약을 바로 끊어 버렸던 과거의 일들이 생각나서였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았기에 자연분만으로 난 아이와 미생물이 다르다는 사실을 걱정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같은 환경에서도 개인마다 완전히 다른 미생물을 지닌다는 사실을 알고 앞으로 커나갈 아이들의 음식과 환경 등등의 중요함을 느꼈다. 너무 전전긍긍하지 않고 느긋한 마음을 갖기로 했고 그건 이 책 속에서 이야기한 내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깊이 읽으면 읽을수록 제한적이란 느낌이 강했는데 저자도 이 분야가 만만치 않으며 갑자기 희망적인 의료 소식이 들려온다면 미생물총 유전자의 복잡성을 상기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은 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내 몸을 구성하고 있는 미생물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크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당장 바뀌는 건 없겠지만 좀 더 흥미롭게 내 몸을 바라보게 되었고 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보다 고마움을 느껴 내 몸이 좀 더 친숙해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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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
파트릭 모디아노 글, 도미니크 제르퓌스 그림,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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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아이 책꽂이 정리를 하다 이 책을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 ‘저자가 이런 그림책도 출간했었나?’며 바로 꺼내서 읽었는데 전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만난 기분이었다. 묘사가 주를 이루고 줄거리는 두루뭉술한 그의 소설만 읽다 개가 등장하는 그림책을 읽고 나니 같은 저자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 저자 이름을 무시하고 읽었더라면 더더욱 연관성을 찾기가 힘들었으리라. 작품의 완성도가 아닌 작품의 색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책은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야기였다.


  제목처럼 이 책의 주인공은 개 ‘슈라’이며, 사람처럼 책도 읽고 학교에 다니고 나름대로의 취향도 있다. 굉장히 현대적인 집에 살면서 마치 사람처럼 생활하고 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주인의 서재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하고 읽게 된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이 배경인 책인데 슈라는 그 이야기에 빠져 관련 영화까지 보게 된다. 그렇게 그 책의 감흥에 흠뻑 젖어 있을 때 주인이 슈라를 기숙사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기숙사로 가기 싫어하던 슈라는 책의 저자인 남작부인에게 편지를 써 사정을 이야기하고 남작부인이 보낸 자동차를 타고 그의 저택으로 간다.


  남작부인은 슈라를 반갑게 맞이하고 그 전 주인에게도 편지를 써주겠다며 그를 비서로 채용한다. 그리곤 슈라의 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느긋한 생활을 하게 된다. 남작 부인의 친구들과 식사를 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파티에서 춤도 추고, 취미로 수상스키도 즐긴다. 그리곤 영원히 바캉스를 즐기며 살 것이며, ‘좋은 집에서 개가 되어 사는 것보다 더 나은 팔자는 세상에 없’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좀 황당해서 당황스러웠다. 저자의 이름 앞에 붙은 노벨상 수상작가라는 타이틀 때문에 더 신경 쓰며 읽어서인지 슈라가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 년 쯤 지나 다시 읽어 보니 저자 이름은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슈라의 이야기와 슈라의 일상을 그린 그림에 더 관심을 갖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 그림을 보는 듯한 화풍에 슈라가 우스꽝스럽게 등장해서 이 이야기가 더욱 비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슈라가 사람과 같이 행동하고 사람들은 그를 묵과하거나 받아들이는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어색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좀 더 특별한 개 슈라의 이야기라고 치부하자니 슈라의 삶이 부럽기까지 했다. 스스로도 말했듯이 좋은 집 개로 살아가는 것 치고는 그의 취미 생활과 취향들이 너무 느긋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인간이나 동물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일까? 어쨌거나 그의 느긋함이 한껏 부러워지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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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강 두레아이들 그림책 2
프레데릭 백 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두레아이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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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라던 시절과 내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지금을 비교해보면 환경이 많이 파괴되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온 들판을 들쑤시고 다니며 눈과 비를 맞고 목이 마르면 수돗물이 아닌 시냇물을 먹었음에도 20대가 될 때까지 병원에 입원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다. 30대 중반인 내가 과거를 언급하는 것도 이젠 고리타분할 정도로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방관해도 건강에 이상이 없을 정도로 자란 나와 방관하고 싶어도 자주 아픈 내 아이들을 보면 내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연을 마구 쓴 것이 몹시 미안해진다. 언제까지 이 자연이 버텨줄지에 대한 불안감을 늘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저 인간에 의해 파괴된 하나의 강에 대해 이야기하겠지 싶어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캐나다 퀘벡을 끼고 흐르는 세인트로렌스 강에 대한 이야기인데 강이 인간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고 문명에 의해 터전을 잃어버린 인디언들의 이야기가 씁쓸했다. 나부터도 과거보다 나아지는 문명에 쉽게 적응하며 살면서도 그 대가를 제대로 치르고 있는지, 문명을 만끽할 권리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냥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나 혼자 생각해봤자 이 자연을 온전히 보존하기 힘들다는 사실과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냥 무관심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더 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인트로렌스 강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고 싶은 현실을 말하고 있다. 그 강에 살아가던 ‘인디언들은 자신들이 먹을 만큼만 물고기를 잡았고, 신이 창조하신 위대한 자연 속에서 동물도 인간의 형제라고 여’기며 살고 있었다. 그런 곳에 문명의 발전을 끼고 다른 대륙의 사람들이 건너왔고 그런 인디언들마저 타락 시켰다. 인디언들은 서로 다른 유럽 국가와 손잡고 부족끼리 싸웠다. 그 안에서 동물들은 죽어갔고 자연은 피폐해져갔으며 자연을 경외하며 살았던 순수한 인디언들의 마음도 황폐해져갔다. 그렇게 자연을 파괴해가며 얻어간 것들은 돈으로 바뀌었고 강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 버렸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로 자연에게 행한 일이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피하고 싶었던 이유는 세인트로렌스 강이 머나먼 다른 나라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랜 과거를 뒤질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도 그런 이야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버리면서도, 성실히 분리수거를 하면서도 저렇게 쌓인 쓰레기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질 때가 있다.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러 가면서 가끔 개인 컵을 가져가지만 쉽게 쓰고 버리는 일회용 용기들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이렇게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이런 마음인데 내가 겪지 못하고 보지 못한 곳곳에서 벌어지는 참상은 얼마나 많을까? 물론 잘 걸러지고 보존되는 곳도 있겠지만 그런 곳보다 훼손되어 가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자주라서 실천할 곳 없는 죄책감만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세인트로렌스 강의 참상을 말하면서 책의 말미에 정녕 그 강은 생명을 잃어버린 것인지 묻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부하게나마 희망을 갖고 싶었다. 인간이 파괴한 강이지만 그런 인간이 다시 회복시킬 거라고 말이다.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이라곤 깨끗한 자연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그 강을 비롯한 자연 곳곳을 재생시켜낼 거라고 믿고 싶다. 너무 허황된 희망일까? 그렇더라도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아름다운 자연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내가 성장할 때처럼은 안 되겠지만 아이들이 덜 아프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우리에게 맡겨진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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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단도 문학동네 시인선 53
정철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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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개 같은 신념』을 무엇에 홀린 듯 읽고 난 뒤 시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시들이 묶여 나온 이 시집을 마주하면서 뭔지 모를 기대와 평안함이 있었다. 전작에서 보여준 분위기를 기대하는 것은 독자의 욕심이지만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한 것은 분은 분명한 듯하다.


  일기를 보는 듯했다. 시인의 일상을 따라 내면을 낱낱이 들여다본다고나 해야 할까? 평범한 아빠의 모습도 있고 중년 남자의 모습도 있으며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도 있다. 그 모든 게 어우러져 시인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각기 다른 모습이지만 자신임을 부인할 수 없는 수많은 형태의 나. 그런 나의 모습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 흐름에 따라가다 보니 평소처럼 좋은 구절은 없는지 기웃거리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시구는 없다. 책을 읽을 때 좋은 구절을 찾으려 하고 거기서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끼워 넣었던 적도 있었다. 마음에 평안을 주는 시들만 적혀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한 사람의 삶을, 그 삶의 굽이굽이를 넘나들다 온 기분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의미부여도 어설픈 메시지도 넣지 않아서 편안하게 읽었다. 이런 읽기에 잔여물이 남지 않는다고 해서 한 권의 시집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도 아니므로, 오히려 이런 읽기가 때론 마음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경험한 셈이다.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시인은 시 속에 그런 경험을 자연스레 녹여냈다. 오히려 그런 차분함이 이런 삶을 살아온 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세계의 사람 같다가도 경이롭게 바라보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나였다면 진작 나가 떨어졌을 절망과 고독 속에서 저자는 묵묵히 시를 통해 기록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가 아닌 이러한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 말이다. 눅진하게 들러붙는 그의 시, 그의 삶이 또 다른 목소리로 들린다면 여전히 지켜보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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