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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박완서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평점 :
전에 일기를 읽은 적은 있어도 작가 박완서의 수필은 처음인 것 같다.
이 산문집에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치울 통신'이 제일 마음에 들었고, 뭔가 밑에서 차고 올라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곳에서 살 거라는 꿈을 꾸고 있기에 동경하는 마음이 커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작가가 어느 정도 삶을 관조하게 된 후에야 아치울로 보금자리를 옮긴 데에는 어릴 적 살던 개성 근처의 시골에 대한 향수가 컸다.
손에 흙을 묻혀가며 푸성귀를 손질하노라면 같은 흙을 묻혔다는 걸로 그걸 씨 뿌리고 가꾼 사람들과 연대감을 느끼게 될 뿐 아니라 흙에서 낳아 자란 그 옛날의 시골 계집애와 현재의 나와의 지속성까지를 확인하게 된다.
아치울에 사는 다른 이들은 물론이고, 그 곳을 오가는 장사꾼의 이야기까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참 흥미롭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것도 여비가 많이 드는 남미 어디라나. 그런 말을 퍼뜨린 이는 조금은 아니꼽다는 투로 말했지만 어중이떠중이가 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 풍요한 나라의 휴가철, 그 아저씨야말로 마땅히 휴가를 즐길 자격이 있는 어중이떠중이 아닌 적격자가 아니었을까.
이건 트럭에 채소를 싣고 와서 파는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다.
하찮은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야말로 그가 겉만 번드르르한 멋쟁이가 아니라 진짜 멋쟁이인 까닭이다.
그리고 이건 동네에 살다가 먼저 유명을 달리 한 화가 손혜경의 이야기다.
다른 이야기들도 꽤나 흥미로웠는데 나는 '아치울 통신'에 정이 많이 간다. 자꾸 읽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 문학평론가로 늙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는 김윤식 교수 얘기도 재미있었고, 일제 치하에서 우리말을 잃은 설움을 제대로 겪은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지만 '아치울 통신'이 좀 더 길었으면, 아니 욕심을 더 부리자면 이 산문집 전체가 '아치울 통신'이었으면 하는 아쉬움 때문에 별 하나를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