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치게 하는 바다 - 한국 대표 사진작가 29인과 여행하는 시인이 전하는 바다와 사람 이야기
최민식.김중만 외 사진, 조병준 글, 김남진 엮음 / 예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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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제 구입했든, 언제까지 독서와 감상을 미뤘든 상관없다. 이 책을 펴들고 읽기로 작정했고, 계속 읽고 있는 중이라면 글과 사진을 보는 내내 자신의 바다 기행이 떠오를 것이다. 그 시퍼렇던 바다가, 잔잔했던 바다가, 비바람치던 바다가, 무더운 여름의 목욕탕 같은 해운대 바다가 마치 어제의 일처럼 눈앞에 아른거려 가슴이 벅차오르고,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다고 크게 상심하지 말자. 우리가 책을 보면서 이런 경험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어릴 때 여름이면 그 많은 식구가 자가용 한 대에 이리저리 끼어 앉아 바다로 몰려갔다. 강릉 경포 앞바다에서 정말 커다란 문어를 삶아먹던 기억, 여름이면 대중목욕탕처럼 피서객들로 들끓던 해운대 앞바다, 목포까지 차를 끌고 가서 차까지 카페리호에 싣고 꿈에 한껏 부풀어서 떠난 제주도 여행. 페리호 갑판에 서서 바닷바람을 온 몸으로 맞던 중 바다는 나의 언니가 쓰고 있던 모자를 빼앗아가고 말았다.

기억은 여기서 끊어지고, 어느새 나는 훌쩍 자라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시절 모꼬지를 갔던 강원도의 이름을 잊어버린 해수욕장, 우리는 거기서 말뚝박기를 했었고, 나는 짝사랑하던 남자친구와 함께 어색한 포즈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4학년 여름방학 막바지였나, 개강 후였나. 친한 친구 셋이 모여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동해의 정동진(正東津)에 찾아갔다. 뭐, 그냥 1시간쯤 시외버스를 타고 내린 그 동네는 바닷가 마을이 아니었다. 초로의 노인도, 개 한마리도 지나다니지 않는 그런 한적한 마을이었다. 그런 마을을 걸어가니 마치 꿈처럼 정동진 기차역이 나왔다. 그 곳은 이미 조금 유명해져 기차역에 들어가 구경하는 우리 같은 관광객들에게 100원씩의 입장료를 받았다. 기차 선로가 놓여있던 그 옆에는 소나무가 외로이 한 그루 서 있었고, 그 밑은 바다였다. 거기서 어떤 마음씨 좋은 이가 찍어 준 폴라로이드도 갖고 있다.

하지만, 내가 정동진을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바다다. 그렇게 청청한 바다를 처음 구경했기 때문이다. 에메랄드빛이라 해야 할까? 아무튼, 우리는 그 물에 들어가 걸어다녔는데 그 바다색이 내게는 전설처럼 남아있다.

가을 답사차 갔던 울릉도. 동해시 묵호항에서 배를 타고 떠난 울릉도행. 그 날의 설렘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도동항에 내려 예약해둔 민박집을 향해 언덕을 올라갔고, 우리는 울릉도 여행객의 대부분이 겪는 '유배'를 당했다. 폭풍이 몰려와 예정보다 며칠 더 머물렀다. 과 친구 중에 속초 토박이가 있어 그 친구는 바다에서 잡아들인 생선을 회치기에 바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바로 성인봉에 올라갔던 기억이다. 성인봉에 오르는 일은 참으로 힘들었다. 어쩜 그렇게도 날씨가 오묘한지,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저쪽으로 가면 해가 반짝 비치고,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면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시꺼먼 구름이 잔뜩 몰려다니기 일쑤였으니... 그런 날씨를 헤치고, 돌아가자는 교수님을 회유해 드디어 다다른 성인봉은 정말로 정말로 내 두 눈에 고스란히 박혀 있다.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가 평생 본 가을하늘 중 가장 예뻤던 빛깔로 하늘은 뒤덮였고, 하늘과 맞닿은 저동항에는 손톱 끝보다도 작게 보이는 배가 떠 있었으니... 내 인생의 가장 호사스런 나날이었다.

아, 다시 못 올 그 날을 나는 그리워한다. 여기 다 적지 못한, 내가 가봤던 그 많은 바다들을 나는 그리워한다.

바다는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희망을 준다. 가슴 탁 트이는 청량감을 안겨준다. 내가 아직 나이를 많이 먹지 않아서인가. 다음의 글귀가 특히 마음에 와닿는다.

당신들 뭐야? 한심하고 무모한 청춘들이었답니다. 미쳤어? 네, 바다에 오고 싶어 미쳐 버렸답니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 그 시절엔 죽고 싶은 날도 많았답니다. 바다에 갔다 오면 살 것 같았답니다.(30쪽, 나를 미치게 하는 바다 中)

당신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는가? 홀로 낯선 바다에 가서 그 푸른 저녁 속에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뭉개지고 한순간에 당신 인생의 모든 아픈 순간들이 고속필름처럼 돌아가는, 하나가 된 바다와 하늘 속으로 나는 눈물이 되어 흘러가는, 그래서 하늘의 물과 바다의 물과 내 몸의 물이 모두 하나가 되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73쪽, 마하발리푸람, 내 영혼의 무게가 가벼워진 곳 中)

이 책, 정말 내겐 특별한 경험이다. 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더욱 크게 하도록 만들어 주었으며, 많은 사진작가의 사진과 조병준 시인의 글은 죽이게 궁합이 잘 맞는다. 이런 멋진 사진과 글, 뿌듯하고 사랑스럽다.

이 책과 어울리는 음악 : Home Sweet Home / Bittersweet Symphony by Limp Bizk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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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1-02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죠^^

하루(春) 2006-01-02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맞춤법 고치는 사이 오셨군요. 네, 정말 좋네요.

sorkrksmsrlf2 2006-01-0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아요?

sorkrksmsrlf2 2006-01-02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잘 모르겠어용
나 한테 버거운 그런 것이다

파란여우 2006-01-02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 서재질을 뜨문뜨문 멈추다 보니 님의 리뷰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동해, 묵호, 정동진..이름만 들어도 설레입니다.
제 고향 바다를 그립게 만든 리뷰입니다.

하루(春) 2006-01-0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가는길2님, 호호 제가 님의 닉네임 번역했어요. 갖고 계신 책이라면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시죠. 느낌이 분명 다를 거예요.
파란여우님, 고향이 그 쪽이세요? 새삼 반갑습니다. 저는 고향은 아니지만, 제 2의 고향이라 할 만한 곳이죠. 강릉, 동해, 속초 등등.. 대설주의보가 내린 대관령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던 고속버스.. 또 그리워지네요.

파란여우 2006-01-0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제 고향은 인천인데요...멋대가리 없는 월미도라도 가고 싶어집니다 그려.

하루(春) 2006-01-02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세요? 하하하 월미도 하면.. 그 땅과 거의 직각으로 서곤 하던 바이킹을 빼먹을 수 없죠. 그 때도 대학생이었는데, 친구와 그거 타다가 까만색 눈물을 흘렸어요. ^^;

Kitty 2006-01-03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파란여우님 제 고향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인천에 사시는데..반갑습니다!
하루님 그 바이킹 진짜 무서워요 ㅠ_ㅠ

sorkrksmsrlf2 2006-01-03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하루님 제가 아직 철이 안든 아이에요 ㅎㅎ
그래서 아직 생각하는 능력이 없어서에요,,

sorkrksmsrlf2 2006-01-03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구 잘 해석 하셨어요....
내가가는길2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