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인의 초상, 그리고 나......
얼마 전 어떤 분이 책을 내놓으셨다. 두 번에 걸쳐 내놓으신 걸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알게 되어 내놓으신 책 목록을 봤는데 윤대녕의 '지나가는 자의 초상'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1996년 중앙일보사에서 나온 책. 급히 알라딘에서 검색해봤지만 이미지도 뜨지 않았다. 다른 인터넷서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분명 1번만 찍어내고 출판을 중지한 책인가보다. 생각을 하고 도서관에 갔다. 다행히 도서관에는 책이 있었다. '지나가는 자의 초상'은 '남쪽 계단을 보라'에 실려있는 중편소설이었다.
윤대녕 좋아한다고 입으로 떠들어댈 줄만 알았지 읽은 건지 안 읽은 건지조차 기억해내지 못하면서... 순간 너무 창피했다. 토요일 밤 책꽂이에 꽂혀있던 윤대녕 책들을 다 늘어놓고 봤다. 2002년에 종로바닥 어느 서점에선가 윤대녕의 소설이라는 것에 혹해서 무심코 사들고 와서 '남쪽 계단을 보라'에 들어있던 거라는 걸 알고선 자책을 하다가 그저 책꽂이에 모셔두기만 했던 이 책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워우워~ Listen to the music 워우워~ Listen to the music all the time ♬
관심있는 사람은 두비 브라더스의 Listen to the music을 들어보길... 아니면 쇼팽의 녹턴을...
조선희가 사진을 찍었고, 윤대녕의 소설은 달랑 1편만 들어있다. 책을 펴서 윤대녕의 얼굴을, 조선희의 시원한 모습을,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뭔가 의미심장해 보이는 조선희의 사진을, 독특한 책 편집을 보는데 "그래, 이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늘 그렇듯이 완전한 이해는 힘들다.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덧붙여놓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 멋진 사진을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3년 정도를 책꽂이에만 꽂혀 있었지만, 그래도 여지껏 갖고 있었던 내가 장하다!
그때는 전화요금이 40원이었다. 국제선이 김포공항에서 뜨던 시절이었다. 항상 소설 속 주인공을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은 특히 그 느낌이 심했다. "이건 소설을 빙자한 본인의 이야기일 거야." 하지만, 그 예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는 화자와 작가를 동일시하는 그다지 좋지 않은 독서태도를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밤의 사막 한가운데 낡은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거기 누군가 앉아서 쇼팽의 녹턴 8번에서 10번까지를 치고 있다.
아마도 죽은 내 친구겠지?
피아노소리는 사막의 구석구석으로 물주름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그 소리를 따라 사방에서 백합들이 투둑투둑 피어나기 시작한다.
넌 밤늦게 앉아 아직도 캔버스에 백합을 그리고 있는 중이겠지?
낮게 엎드려 있는 나는 등이 가렵구나.
왜냐고?
비로소 내가 사막과 같아져 피아노와 백합을 등에 지고 있기 때문일 테지.
그래, 그런 때문일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