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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오토바이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아버지'라는 이름을 듣기만 해도 '미소'가 번지는 추억들이 하나씩은 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 셋에 딸이 하나인 외동딸에 고명딸, 그것도 장손이셨음에도 아버지의 늦은 결혼으로 얻은 첫 자손이었기 때문에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딸이 하나여서였는지, 집안의 첫 자손이어서였는지,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각별했던 모양입니다. 동생들도 대학을 모두 마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즈음, 이따금씩 집에서 통닭에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우애를 다지곤 했습니다. 그 분위기를 이어 동양화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한결같이 동생들이 느껴온 아버지의 사랑은 누나의 것만 못하다고 생각해 왔다는 것입니다. 세 명의 동생 모두 그렇게 느꼈다며 분명하다, 확신한다는 표정과 그 사실에 사뭇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각기 조금씩 다를 것 같습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 경의(敬意)로운 아버지들의 삶
오늘 소개할 이 조두진의 책, '아버지의 오토바이'에서 말하는 우리들의 '아버지 모습'은 어떤 것인지 함께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지은이 조두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입니다. 특히 '도모유키'와 '게임'으로 수상을 하였으며, 대표작으로 '능소화'와 '유이화', '마라토너의 흡연' 등이 있습니다.
장편소설 '도유모키'는 정유재란 당시 순천 인근 산성에 주둔한 일본군 하급 지휘관 도모유키의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본 소설이며, 이 작품으로 2005년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또한 단편소설 '게임'으로 2001년 근로자문학제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그 이전인 1998년에는 경북 안동의 무덤에서 발굴된 '원이 엄마의 편지'를 주제로 한, 4백 년 전 조선 남녀의 안타까운 운명과 사랑을 재구성하여 장편소설 '능소화'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사건을 통해 현대인들의 삶의 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 단편집 '마라토너의 흡연'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책은 프롤로그부터 에필로그까지 총 10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뺑소니라는 교통사고로 시작되며, 이렇게 주인공 '엄시헌'의 죽음이, 이 장편 소설의 전초(前哨)가 되어 발단이 전개됩니다. 그리고는 큰 사건이나 반전 없이 다큐멘터리처럼 전개, 절정, 결말로 이어지는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입니다.
인적이 드문 김천의 한 지방도로 아래 배수로에서 '엄시헌'이란 한 남자가 주검으로 유기된 채, 발견됩니다. 그의 신원은 30년 가까이 그 곳에서 술집 겸 도박장을 운영해 온 68세의 남자로 밝혀졌으며, 큰 아들 엄종석과 작은 아들 엄종세는 그의 아들이자 법적 상속인이라는 이유로 김천 경찰서로부터 사망에 연루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정확한 사인 파악을 위한 부검을 요청합니다.
아버지는 첫째 아들 엄종석의 선천성 정신질환 증세 치료를 위해 남강이 흐르는 경남의 산골마을에서 서울로의 상경을 결심합니다. 둘째 아들 엄종세는 서울로 이사 온 뒤로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으며, 대기업에 취업하여 부장으로 근무하다가 사내 베트남 관련 프로젝트를 운영하던 중, 책임을 지고 강제 퇴직당해 6개월째 실업자 상태였습니다.
보통의 부자지간이 그렇듯, 명절이나 어버이날, 또는 생신 기간이나 되어야 겨우 통화 정도를 하고 지내는 소원한 사이였습니다. 심지어 빈소에 놓을 영정사진조차 찾기 어려울 만큼 먹고 사는 일에 급금했기에 가족사진 찍는 일은 사치였던 추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렇게 둘째 아들 엄종세는 김천에서 아버지의 장례 절차를 준비합니다. 경찰서에 들른 엄종세는 아버지의 막노동판과 식당의 25-6년 지기 친구, 장기풍'이란 사람을 만납니다. 엄시헌과 장기풍은 처음 공사장의 막노동 인부로 만났는데, 엄종세는 이 장기풍을 통하여 아버지가 벽돌공이나 미장이, 목수 등의 뒤를 따라다니며 허드렛일을 돕던 '디모도'라고 불리는 잡부였음을 처음 알게 됩니다.
또한 장기풍의 증언을 통하여 아버지가 성실하고 정직한 인부였으나, 돈을 모으기 위해 담배도 피우지 않고 자비로 술도 사마시지 않고, 월급날이 되면 받은 돈을 고스란히 집으로 부쳤던 책임감 강하고 희생이 삶이었던 아버지였음을 알게 됩니다. 더불어 장기풍이 유일한 친구이자, 지독한 인간이었으며, 노랭이로 평판이 자자했음을 새롭게 듣고 알게 됩니다.
어머니의 장례식 때에도 오고간 사이였으나 엄종세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장기풍은 월남전 참전 용사로 파견되었다가 고엽제의 후유증을 앓면서 가족들에게 피해주지 않겠다는 무지한 생각으로 집을 나와 생이별하며 살고 있던 노인이었습니다. 그곳 식당을 동업하던 '미스 정'이라는 여인과의 인연도 거부하던 가장이었음을 알게 되며, 경찰서에서 열쇠도 받아 식당과 금고도 살펴보게 됩니다. 이따금씩 생전의 아버지와 통화할 때마다 엄종세의 주민등록 뒷자리 번호를 묻던 아버지의 이상한 습관을 기억해 내고, 더불어 금고의 비밀번호도 추측해 내게 됩니다.
엄시헌의 갑작스런 죽음과 엄종세의 실직으로 인하여 빈소는 썰렁하고, 수사 임무를 띤 형사들만 들러서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이 있는지 묻습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내일 내려오기로 하면서 엄종세의 부탁으로, 장기풍의 아버지에 대한 빈소 담화는 계속됩니다.
서울로 이사온 그 해 겨울,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것도 철공소에서 전기용접 기술을 배우기 위해 보호경을 쓰지 않고 맨눈으로 불빛을 쳐다볼 만큼 무모하고 가족을 위해 용감했기 때문이며, 재래시장과 뒷골목들을 돌아다니며 야채행상을 나선 것도 아들의 새 가방을 사주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신발 공장을 다니며 발에 꼭맞는 형과 험종세의 고급스런 헝겊 운동화를 신고 뽑내는 동안, 아버지의 얼굴에 번졌던 미소의 의미를 이해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죽음의 순간에도 무언가 꼭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사람처럼,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사내벤처 베트남 프로젝트에 동참했던 입사 4년 후배 김경한의 복직 소식을 듣게 되고, 사내 직원 자격으로 함께 조문 온 김경한은, 자신의 복직에 동의, 어떤 법적 대응도 하지 않겠다는 자필 동의서를 요구합니다. 그 날 자정 쯤 출근을 핑계로 직원들이 떠나고 장기풍과 엄종세의 아버지 삶에 대한 빈소 대담은 계속됩니다.
아버지 식당에서 노름을 하느라 땅문서, 집문서를 날리고 고향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며, 노름 자금을 빌려준 이자 수수료를 냉정하게 챙겼던 아버지의 몰인정한 모습이며, 다음 날 노름꾼의 부인이 집 문서 내놓으라며 식당에 찾아와 악을 썼고 결국 경찰들이 해결했던 일이며, 땅문서를 달라던 박만길이라는 자와 우격다짐을 했던 일, 그 부인의 진단서까지 제시했던 일, 1991년 부동산 특별조치법에 시행에 의해 임자 없던 빈 땅을 문서로 등기해 꿀꺽했던 일, 그리고 청주 영해병원에 있던 형 엄종석의 병문안 만큼은 빼먹지 않고 매주 갔던 일 등 아버지의 생전 모습을 이야기로 듣게 됩니다.
또한 역대 경찰서장이나 파출소장을 진심으로 깎듯이 모시고, 친하게 지냈던 모습과 자식들 공책을 위해 자신의 용돈은 만원도 안 썼던 삶, 그래서 집에는 자주 오지도 못했던 이유를 차차 깨달아 갑니다. 그리고 장기풍의 입을 통하여 아버지가 깨끗하게 산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버지 기준에서 정의란 세상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는 것'이었다는 대변을 듣고 위안을 받습니다. 동업자였던 미스정이 갑작스럽게 식당을 떠난 상황에 대해 자세한 설명도 듣고 물으며 생전의 모습과 자취를 추적, 더듬어 갑니다.
이따금씩 아버지와 편지로 소식을 주고 받았던 추억, 금고에 통장이나 보험증서, 땅문서들과 함께 보관되어 있던 그 소중한 편지의 내용들을 다시 듣고 보았으며, 장기풍은 아들인 너만큼은 아버지의 빈소 앞에서 울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한 형사가 빈소로 찾아와 사고현장의 교통감시 카메라를 확인, 용의 자동차를 확보했으며, 부딪친 앞 범퍼까지 조사 중이므로 범인을 잡은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고, 엄종세는 사건이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는 생각에 안도합니다. 그리고 회사 4년 선배였던 최종기가 빈소로 찾아와 회사가 엄종세의 벤처팀, '베트남 프로젝트'를 중단하게 된 사연과 징계 절차, 자신에 대한 앞으로의 부정적인 전망을 전해 듣습니다.
금고에 들어 있던 아버지의 일기장도 발견하는데, 엄종세의 어릴 적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알고 추억합니다. 돼지를 선물해 주어서 아침, 저녁으로 먹이를 챙기며 즐거워하던 엄종세의 모습도 그려져 있고, 뇌성마비와 정신지체, 간질 증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형의 증세에 대한 이야기, 서울로 이사오기 전 날 돼지를 잡던 아버지의 심경, 운동회에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등을 넘겨 읽으며 아버지의 젊은 날을 그리워합니다.
아버지를 화장하고 눈물로 보낸 뒤, 엄종세는 청주 정신병원의 형을 찾아갑니다. 병원 뒷 쪽에 별도의 정원과 건물에서 살고 있던 엄종석을 만나면서 형에 대해 부담갖지 않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배려를 다시 한번 더 실감합니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형을 찾아와 오토바이에 형을 태우고 운동장을 돌았으며, 사가지고 온 인삼비누로 목욕을 시키고, 사온 컵라면을 함께 먹었던 발자취를 따라가며 우리 아버지들의 삶과 온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아버지의 모습이 그랬듯이 자신의 아이들 역시 엄종세 자신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모든 장례절차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 엄종세는 갓길에 자동차를 세우고 눈물을 흘립니다. 오랜 세월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과 젊었던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배수로에서 자식을 생각하며 눈도 제대로 감지 못했던 부정을 떠올립니다. 이상으로 이 책을 읽고 느낀 소감과 생각을 아래와 같이 7가지로 정리함으로써, 이 독서 후기 글을 끝내고자 합니다.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는 것이 목표고 정의였던 우리들의 아버지
첫째, 이 책은 대작 장편소설은 아니지만, 잔잔한 이야기와 훈훈한 아버지의 온정이 살아 있는 감동적인 소설입니다. 읽는 내내 자식에 대한 지극한 "부정(父情)"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으며, 아버지의 온정이 더욱 그리워졌고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이미 돌아가셨거나 최근에 두 분의 장례를 치뤘던 분들은 코눈물 범벅이 되어 이 책을 읽었을 것 같습니다. 가정의 평안과 아버지를 회고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더없이 좋을 소설로 추천합니다.
둘째,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과는 또 다른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 그린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세심하거나 애절하지는 않지만, 변함 없는 산과 같은 묵직하고 든든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소설 전개 구성과 전체적인 내용을 볼 때, 극적이거나 큰 감동이 있지는 않지만,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인 구성으로, 실제 아버지상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셋째, 책의 길이 267쪽으로, 이 책은 지은이 조두진이 에필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어릴 적 기억과 경험을 재구성한 소설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조두진의 생각과 글솜씨로 쉽게 잘 다듬어낸 감동적인 소설입니다. 방학을 보내는 중, 고등 학생들이 읽어볼 만한 소설로 추천합니다.
넷째,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며, 오타나 수정할 부분은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지난 6월 22일에 초판 1쇄로 발행한 예담 출판사의 출간 준비와 편집은 완벽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섯째, 인간의 인권과 관련하여 개방된 사회적 인식을 엿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 더 좋았습니다. 주인공 엄시헌의 첫째 아들 엄종석의 주요 무대는 청주 영해병원인 정신병원입니다. 최근에 소개한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나 공지영의 '도가니' 역시 주요 무대가 정신병원이었음을 감안할 때, 요즘 소설들의 주요 배경이 '정신 병원'을 다루고 있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정유정 소설의 주요 무대는 '정신병원'일 뿐만 아니라 공지영 소설의 주요 배경은 지능과 청각 장애를 가진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했던 '장애인 학교'였습니다. 물론 이 조두진의 소설도 주요 주제는 아니지만,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큰 아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이 시대, 우리들의 아버지 상(狀)에 대해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여섯째,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으며 궁금증 한 가지를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아버지의 오토바이'일까 하는 점입니다. 그 것은 바로 큰 아들 엄종석을 태워주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준비한 유일한 놀이기구였던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을 찾아갈 수 있었던 아버지의 마음이자,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일곱째, 그러므로 누구나가 읽을 수 있는 부담없는 소설 책으로 추천합니다. 이 무더운 여름에도 별 다른 신경 쓰지 않고 편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방학을 맞은 학생과 청소년들을 비롯하여 주부나 직장인들까지 꼭 읽어볼 만한 소설책으로 추천하며 이 글을 모두 정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