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 읽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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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읽기 - 쇼펜하우어의 재발견
랄프 비너 지음, 최흥주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풍자와 여유의 미학을 사랑했던 우리 선조들을 생각하면, 우리 누리꾼들의 익살이나 해학이 담긴 재치있는 글은 필수여야 한다는 생각을 종종 해 봅니다. 그런데 저도 실제로는 매번 그런 기대에 미치지를 못해서 개인적으로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사실 제일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심지어 따로 공부를 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가까운 이웃지기님들 가운데 Kay~(케이)님이 있습니다. '비앤아이(Blog N Internet)'라는 대문 이름을 걸고 블로그와 관련한 정보와 수입 경로, 맛 여행 등 실제적인 정보들을 소개하는 블로그입니다. 거의 매달 블로그의 수익 결산을 모범적으로 공개하고 있는데, 지난 11월을 결산하면서 발행 글 수와 댓글 수, 방문자 수 등을 솔직하게 공개한 글을 보았습니다.
그 가운데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는데, '댓글 남긴 이웃' 순위(10명)에 제 이름이 10번째인 맨 끝에 걸려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정말 반갑고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미안한 마음에, "우와~ 턱걸이를 했네요, ㅎㅎ 팔이 아파요."라는 댓글을 남겼더니, 주인장인 케이님의 "초하님은 농담을 잘 못하시는 줄..."이라는 답글로 화답한 것입니다.
쇼펜하우어의 '인생'에 대한 재치있는 익살과 유쾌한 탐닉
실제로 저는 농담을 좋아는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어서 쉽게 못하는 편이기는 합니다. 케이님 말씀대로 아--주 소심한 A형이기도 하지만, "온전히 진지해질 수 있는 사람일수록 더 유쾌하게 웃을 수 있다."고 말한 쇼펜하우어의 말과 그 마음, 생각을 믿기 때문이며, 그 진지함 속의 유쾌함을 끌어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의 일생에 있어서, '익살과 해학, 재기발랄함'이 넘치는 철학자로서의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독일, 1788-1860)를 강조한 책을 오늘 소개하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염세주의 철학자라고 알려져 있지만, 또 다른 낙관주의적인 면을 발견하고 나름의 재치와 풍자로 풀어내었고, 그의 통찰력을 그려내고 있는 '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 읽기'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오랜만에 소개하는 철학 책입니다.
이 책의 지은이 랄프 비너(Ralph Wiener)는 법학에서 철학까지 공부한 철학자입니다. 발표한 저서로는, '이래도 되는 거야?(Gehoert sich das?, 1972), '나의 간이 옷장에는 아직도 금빛 잎이 붙어있다(Ein goldenes Blatt haengt noch in meinem Spind, 2002)' 등이 있습니다. 1960부터 1990년까지 순회 문학 강연회 활동을 하기도 하였으며, 현재 잡지 '익살꾼(Eulenspiegel)'과 '빈 매거진(Wiener Magazin)'에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랄프 비너의 '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 읽기'는 총 10단원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가장 큰 특징은 각 장의 제목들이 더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점입니다. 평소에 홀로 의미 없이 생각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논제들에 대한 신랄한 재치와 독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1단원,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력을 겸손으로 위장한다"에서는, 쇼펜하우어가 가졌던 자부심의 증거 문구들을 찾아 열거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그의 독특한 유머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나타남을 보여줍니다.
제2단원, "진정한 예술의 원리는 자연이 증명한다"에서 랄프 비너는, 쇼펜하우어가 음악을 포함한 예술에 대해 매우 독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즉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오페라의 근원은, 핵심은 선율이라는 점과 가사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는데, 선율에 먼저 매료되는 제 입장에서는 충분히 와 닿는 주장입니다. 또한 삼류 작가는 사람들의 미적 감각을 점점 타락시켜 시대의 진보를 저해한다고 강력히 비판하였고, 음악, 철학, 문학, 예술 작품은 쓸모를 위한 물건은 아니라는 그만의 생각을 자신있게 피력합니다.
제3단원, "바보로 태어난 자는 바보로 죽는다"란 다소 무서운 정의의 단원에서 비너는, '쇼펜하우어가 소음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그러운 것은 대개는 머리가 아둔하고 비었다는 표시이며,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혹독하다'고 한 말을 인용하면서 '사람이 참을 수 있는 소음의 양은 그의 지적 능력과 반비례한다'는 쇼펜하우어의 주장을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침묵이라는 나무에는 평화라는 열매가 열린다'고 한 그의 주장으로 침묵의 중요성과 내면의 음성에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4단원, "부패한 언어의 속삭임에 속지 마라"에서 비너는, '형편없는 많은 작가들이 신간이 아니면 읽지 않으려는 독자들의 어리석음 덕분에 먹고 산다'는 그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저널리스트들을 '날품팔이'라고 강력히 비판하였으며, 주제와 사상, 경험이 있는 글이 아닌 돈을 위한 저술가들을 비난하였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비너는 쇼펜하우어가 그럴 수 있을 만큼 부유했다고 덧붙입니다. 심지어 원서들을 개작하거나 번역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라며 제발 내버려 둘 것과 평범한 생각을 거창한 표현이나 멋을 부린 드문 어법으로 거들먹거리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 쇼펜하우어의 강직한 초상 사진
이 말을 그대로 수용하자면 이 책 역시 그의 생각을 편집, 부연 설명하고 있으므로, 저자 비너 역시 쇼펜하우어의 생각을 거스르는 책을 쓴 것이며, 쇼펜하우어의 인용을 빌리자면 망할 놈의 상놈의 짓을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저자 비너는 이 책은 학문 서적이 아니고 학술 잡지에 발표하는 글이 아니며 아주 많이 팔리는 책도 아니기 때문에 인용했다며 해명을 하는 우스운 대목이 나오기도 합니다.
제5단원, "인간은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에서 비너는, 쇼펜하우어가 강조한 '생의 의지'에 대해 언급하는데, 쇼펜하우어는 '중력'에 대해 '우주의 천체들이 서로 어울리고 탐하듯이 바라보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구의 화음에 맞춰 춤을 추는 의식, 또는 의지의 직, 간접적인 작용'이라며 사람과 동, 식물을 포함한 우주만물의 의지를 존재 충동, 또는 생명력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인간은 완전한 자유를 갖고 있으며, 도시를 박차고 넓은 세계로 뛰어들 의지의 자유도 갖고 있으므로 특히 유신론자들은 모든 행위를 결정짓는 성격과 도덕성을 다스리라고 강조합니다.
제6단원, "죽으면 지성도 사라진다" 에서는 표상과 인지 지성에 대한 주장을 모아 설명하는데, 쇼펜하우가가 말하는 '표상은 주변의 모든 것들이 벌어지고 나타나는 현상'이며, '인지 지성은 그 표상된 물질을 보고 느끼고 인식하는 분별력'이라고 정의합니다. '주관 없는 객관은 없다'는 개념 아래, 관념론과 실재론의 대립은 인식 대상, 즉 객관과 관련된다고 인식했으며, 유심론과 유물론의 대립은 인식 주체, 즉 주관과 관련된다고 구별하여 설명함으로써 살아서 인식해야 할 지성에 대해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육체와 영혼'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현존은 물질과 주관이 서로 의존하고 있으므로 대화에 끼려면 뭔가 배운 것이 있어야 한다고 일침을 놓습니다.
제7단원, "피히테, 셸링, 헤겔은 엉터리 문사다"에서 쇼펜하우어는 신랄한 비평과 거친 독설을 퍼붓고 있는데, 이런 입장에 대해 지은이 랄프 비너는 일종의 유머로 받아들이라는 주문이라고 호의적으로 설명합니다. 심지어 이 세 학자들은 철학 연구의 진지성과 저직성이 없기 때문에 단지 궤변가에 불과하며, 철학자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합니다. 그들이 추구한 것이 진리가 아니라 세속적인 영달(榮達), 곧 출세며, 인류에 공헌한 명예로운 사상가들이나 선민인 참된 철학자들 가운데에 낄 자격이 없다고 단정 짓습니다.
제8단원, "어리석은 사람은 유희를 탐닉하라"에서는, 자연이 여자보다 남성에게 지력, 체력, 큰 키, 아름다움, 힘의 지속성이란 장점을 주었으며, 성애(性愛)에서도 자연은 남자에게는 즐거움을, 반면 여자에게는 그와 결부된 임신, 진통, 수유와 함께 양육의 부담도 져야 하는 편애를 보인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에 근거하여 무엇보다 믿기 어려운 주장은, '영아나 유아의 보육자이자 양육자로서 여자들이 적합한 이유는 여자가 유치하고 어리석고 근시안적이며 아이와 진짜 사람인 남자 사이에 있는 일종의 중간 단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전혀 근거 없는 논리에 저자 비너가 말하는 풍자나 해학이 아니라, 사실은 어이 없기 짝이 없는 코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저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겠지만, 현대에 이런 말을 했다면 아마도 돌 맞아 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웬 말인가? 허 참!
제9단원, "자연은 철저하게 귀족주의적이다"에서는, 비너가 주장하는 풍자스러운 쇼펜하우어의 문장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조국 독일은 나를 애국자로 키우지 못했다. 독일인들을 칭찬하라고? 내가 받은 몫을 보면서도 그런 조국애를 나에게 요구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런 자신감 넘치는 글이 자만하기 그지 없는 자로 보이게 합니다.
또한 ''만일 어떤 신이 이 세계를 만들었다면 나는 그 신이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비탄이 나의 가슴을 찢을 것이기 때문이다."와 같은 재치있는 농담도 보입니다. 이 정도가 지은이 랄프 비너가 쇼펜하우어에게서 발견한 최대의 풍자요, 예리한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독자로서 바라볼 때 비너가 발견한 모순이자 역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10단원, "참된 가치는 죽은 후에 비로소 드러난다"에서는,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는 철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초월'에 두면서도 동시에 항상 현세의 '생의 의지'를 강조했고 죄가 있는 세상은 이미 지옥같은 것이 있다고 말하는 솔직한 철학자였음을 덧붙여 설명합니다. 또한 죽음에 대해 관망하는 듯, 초월한 듯, 죽음도 삶만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노래(p. 283)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른다.
나는 온다. 그러나 나는 내가 어디서 오는지 모른다.
나는 간다. 그러나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 즐거우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지은이 비너가 부록으로 소개한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웃음론>"에서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웃음이라는 현상은, '개념과 실제 대상, 즉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사이의 불일치를 갑자기 깨닫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어떤 개념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해당 상황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상황 외에 그 일반적인 개념 아래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은 매우 이질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어야 하는 한 예(p. 309)를 소개합니다.
베를린 극장이 모든 즉흥 연기를 엄격히 금지했을 때의 일이었다. 배우 운첼만(Unzelmnn)이 말을 타고 등장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가 막 무대에 나왔을 때 말이 똥을 쌌다. 관객들은 이미 웃음을 터뜨렸지만 운첼만이 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자, 그들은 훨씬 더 크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너 도대체 뭐하는 거야? 즉흥 연기는 금지되어 있다는 걸 몰라?"
이와 같이 쇼펜하우어의 글들을 모아 편집하고 설명함으로써 그의 재치있는 익살과 풍자, 예리한 통찰력을 선보이고 강조하려고 했던 랄프 비너의 철학 책을 모두 정리합니다. 그 책 <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 읽기>에 대해 느낀 소감과 생각을 아래와 같이 8가지로 총정리합니다.
기분 나쁠 정도로 직설적이고 솔직한 쇼펜하우어의 독설
첫째, 이 책은 랄프 비너가 쇼펜하우어의 철학 가운데 익살스런 재치와 웃음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내용들을 중심으로 모아 소개하고 설명한 철학입니다. 하지만 책 제목에서도 밝힌 것처럼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으며, 곳곳 신랄한 독설들이 많이 발견되어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직설적인 철학이었습니다.
둘째, 이 비너의 글들은 다소 어려운 철학책이었습니다. 철학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일반 독자들을 배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글과 철학을 풀어 설명한 비너의 글이 독자들에게는 결코 친절하지 못합니다. 그 설명이 오히려 독자들의 이해에 더 혼란을 야기시키는 책이어서 아쉽고 더 안타까웠습니다.
셋째, 책의 겉 모습은 반양장 표지이며, 길이도 328쪽이고, 크기는 223×152mm (A5신)인 가장 일반적인 형태입니다. 그래서 내용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평소 많이 생각하지 못하는 낯설고도 철학적인 주장이 많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에게는 읽는 속도도 느려지고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를 좋아하거나 철학을 선호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철학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철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나 철학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과 고등학생, 또는 일반인들에게 권할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합니다.
넷째,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오타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번역된 책이어서인지 단지 어법에 어색한 부분과 편집 과정에서 띄어 쓰기가 잘못된 부분이 몇 군데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거의 2-3단원까지 읽는 내내 더 헷갈리게 만드는 '일러두기(p. 1)' 때문에 더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 글을 그대로 옮기면, '2. 이 책의 본문은 저자의 글과 저자가 인용한 쇼펜하우어의 글을 구분하기 위해 각 부문의 색을 달리하여, 저자의 글은 검은색으로, 쇼펜하우어의 글은 별색으로 처리하였다.'입니다. 그런데 실제 책에서의 별색(약간 붉은)은 쇼펜하우어의 글이 아닌, 저자 비너의 글이었기 때문에 책의 첫 부분에서 이해하고 적응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똑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출판사에서 이런 불량을 점검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선체험을 목표로 마케팅한 책이어서 불량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제공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런 불편이 이 책의 이해를 오히려 더 방해하였고 독자의 불편을 가중시킨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얼마 전인 2009년 11월 6일에 초판 1쇄로 발행된 최근의 신간입니다. 그런데, 이런 독서 후기에 대한 책임이 따르는 책이 아니었다면 아마 저도 초반에 여러 번 벌써 포기하지 않았을가 싶습니다. 그러므로 '시아출판사'의 이런 출간 준비와 수정, 편집, 관리는 많이 아쉬웠다고 생각합니다.
다섯째, 한 가지 개인적으로 더 아쉽다고 생각한 부분은 번역한 내용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출세'라는 쉬운 단어를 요즘은 잘 사용하지도 않는 '세속적 영달(榮達)(p. 179)'로 표현하였다든지, 본문의 옆이나 아래에 본문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는 '각주'를 요즘 잘 사용하지 않는 '방주傍註)'라고 쓴 경우 등은 무척 당황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물론 본래의 원 책, 쇼펜하우어의 글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 문장이 5줄 분량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경우는 정말 그 문장을 읽으며, 얼덜덜한 기분이 들었고, 차라리 원서를 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길래 이렇게 길게 옮길 수밖에 없었는지 다소 아쉬운 의문이 들었습니다.
여섯째, 또 한가지, 이상한 기준의 첫 글 들여쓰기가 역시 혼란을 가중시킨 결과로 작용하였습니다. 저도 이런 식의 구별은 처음 보는 책이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계속된 것으로 보아, 이는 단연(斷然) 독자들을 배려하려는 출판사의 적극적인 의도로 보입니다.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말해서, 책의 각 단원 속 문단에서 첫 줄이 아닌, 지은이의 글이든 쇼펜하우어의 글이든 내용이 길어질 경우, 두번 째나 세번 째 문단의 첫 줄만을 들여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저도 이런 들여쓰기 방법은 처음 만나는 양식이라 읽는 내내 더 헷갈리고 이상하게만 생각되는 배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곱째, 이 책을 홍보하고 마케팅한 곳의 소개에 따르면, 쇼펜하우어를 유머와 재치, 위트가 넘치는 재기발랄한 철학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머가 넘치는 글들을 주로 모아 그의 철학 사상을 염세주의가 아닌 낙관주의 철학자라고 시종일관 주장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철학자를 자칭하는 자들이 나를 평가하면서도 철학자 행세를 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표정으로 기만을 떨면서 말이다. 더욱이 이 자들은 심지어 40년 동안 나를 살피시는 수고도 하지 않고 나같은 것은 거들떠볼 필요도 없다는 투였다. 자, 국가도 자기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테니, 철학교수 조롱 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은 어떨가?
이처럼 위 이런 해학의 절정(p. 183)이라고 랄프 비너가 소개한 부분을 예로 들어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시종일관 이런 종류의 글로는 낙관주의라거나 유머가 넘친다거나 재치 발랄하다고 주장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무슨 재치와 해학이 이런 정도로 만족할 수 있다더냐 ?
그런 면에서 지은이의 이런 글투와 주장이 독자의 쇼펜하우어에 대한 이해를 더 어렵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궁금한 분이 있다면, 먼저 그가 직접 쓴 책으로 순수하게 읽고 이해할 것을 강권(强勸)하고 싶습니다.
여덟째, 다만 맨 마지막에 부록으로 편성한 쇼펜하우어의 '웃음론'은 예상하지 못한 남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지은이의 설명 없이 순수한 그의 글이어서 오히려 이해도 더 쉬웠고 좋았습니다. 방학을 맞이하여 쇼펜하우어의 '웃음'에 대한 철학이 궁금한 학생이 있다면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합니다.
이로써 이 '유쾌하고 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 읽기'에 대한 독서 후기를 모두 갈무리합니다! 날씨가 혹독할 정도로 매섭고 가혹합니다. 들러 가시는 분들 모두 건강에 더 유의하고 오늘만큼은 더 따듯한 하루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