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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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주에 알라딘에서 A3 용지 크기로 공기 포장된 커다란 택배 물건 하나를 받았습니다. 겉보기에는 크기만 달랐을 뿐, 평소 받던 책 포장 같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받아보는 낯선 크기와 낯선 제본의 형태에 흥미롭기도 했지만, 다소 놀랐습니다.
뜯어보니, '출판사 창비'에서 7월 1일(수), 오늘 출간 예정인 신작을 알라딘 서평단으로 활동 중인 독자들에게 보낸 것이었습니다. 창비의 안내문과 함께, A3 용지에 앞뒤로 인쇄된 가제본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미리 접하는 홍보용 독서 체험이라고 해도 이런 책은 처음 보는 것이었습니다.
안개 낀 무진시의 진실은 악몽일까, 희망일까
그리고 다음 날, 위드블로그에서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특별 체험단들에게만 보내진 가제본이라는 안내와 함께, 출간 사전 리뷰어로서 생생한 감흥과 다양한 해석을 바란다는 부탁의 글이었습니다. 그래도 사전 양해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이렇게 제본부터 먼저 보내놓다니, 의아스럽기도 하고 이상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공지영 장편소설, "도가니"와의 첫 대면은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앞 뒤로 인쇄가 되어 있어서 넘겨가며 붙들고 읽기에는 제본 책을 덮는 순간까지 내내 불편함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출판사와 작가 사이에 어떤 홍보 계획과 전략이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선 지급받은 독자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혜택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개개인들에게 그동안의 독서 습관이 있을 것이기에 갑작스런 이런 변화가 그리 달갑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우선 지은이 공지영은 1990년대에 가장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나 가부장적인 시대의 여성 이야기를 소설로 썼던 작가입니다. 2001년 21세기문학상과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소설문학상, 2004년 오영수 문학상, 2006년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2007년 제10회 가톨릭문학상(장편소설부문) 등을 수상했던 중견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1985년에 대학을 졸업하였고, 1987년 12월에 제13대 대통령선거 당시 구로을구 개표소 부정개표 반대시위에 참가했다가 용산경찰서에서 1주일 동안 구류를 살았습니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 첫 소설이 "동트는 새벽"입니다. 이 작품이 198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실리면서 문단에 데뷔하였고, 이후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착한 여자",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즐거운 나의 집"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집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별들의 들판"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상처 없는 영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등이 있습니다.
이 소설책, '도가니'는 단원이 따로 나뉘어져 있거나 제목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용과 시간, 사건의 구별에 따라 번호 1~119 까지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개인적인 소감과 감흥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대체로 묘사는 섬세합니다.
첫 장은, 주인공 강인호가 이삿짐을 싣고 베일에 싸인 듯 해무(海舞)가 밀려드는 무진시(舞津市)를 찾아간 첫 일요일 풍경에 대한 인상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무진시의 철길이 한 소년의 붉은 피로 물드는 장면을 깊은 물 속의 꿈처럼 허공 속에 그려냅니다. 자애학원 전민수의 동생이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강인호는 6개월의 실업자 생활 끝에 아내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자애학원이라는 청각장애인를 포함한 농아인 특수학교 기간제교사로 발령을 받아 무진으로 가는 길입니다. 학교발전기금이라는 명목으로 5장의 현금을 내놓는 오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모욕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적응합니다.
그 날, 퇴근길에 여자 화장실에서 들려오던 비명소리에 이끌려 확인하러 갑니다. 안에서 잠긴 문을 확인했으나, 다시 조용해지자 무시하고 귀가합니다. 다음 날, 연두라는 자기 반 학생이 출석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찾아나서 참견했다가, 학원 설립자(이사장)의 아들로 교장 이강석의 쌍둥이 동생인 행정실장 이강복에게 오물통에 푹 잠진 듯한 기분의 핀잔을 듣습니다.
그날 밤, 무진 인권운동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선배, 서유진이 연두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와 '연두가 교장에게 화장실에서 성추행을 당했고 6년 동안 그래왔다'며, 아이들은 오래 전부터 선생에게 얘기했지만 묵살되어 왔다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사건을 논의합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설립자 이범준이, 박정희의 쿠테타 정권과 같은 시기에 법인 소유로 설립되었으며, 전 자애학원의 터가 지금의 무진 경찰서의 터라는 은밀한 관계와 내막을 알게 됩니다.
연두 어머니의 의사로 경찰에 고발, 수사를 의뢰했으나 검찰을 들먹거리는 경찰과 교육청, 시청 사회복지과의 자애학원과의 유착관계만을 확인합니다. 결국 장애인 성폭력상담소장과 수화통역사, 인권운동센터 간사, 그리고 연두와 함께 성추행을 당했던 유리를 불러 사건 정황을 듣고 비디오카메라로 녹화합니다. 교장과 행정실장, 그리고 박보현 생활지도 선생이 거의 매일 이들의 성폭행을 진술한 이 자료를 근거로 언론사와 서울의 방송국, 국가인권위 등 각종 관련 기관에 도움 요청을 합니다.
권력자의 인권과 장애아의 인권 사이의 불편한 진실
다행히 방송국과 국가인권위에서 자애학원의 성추행과 폭력문제, 열악한 식생활문제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국민들의 동정과 자애학원 선배들의 성폭행에 대한 양심선언이 이어졌고, 마침내 경찰이 이 세 피의자를 연행합니다. 그렇게 교장측과 학생측의 법정 공방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돈과 권력으로 뭉친 더럽고 추잡한 인권은, 피해 학생 부모들의 합의으로 포장되기에 이릅니다.
자애학원의 장애 아이들과 검사, 인권운동센터, 그리고 강인호를 중심으로 양심선언을 한 선생님들의 끈질긴 저항과 싸움은 어렵게 진행됩니다. 주인공 강인호의 전교조 기입이 불리한 증언이 된데다, 군 입대 전 사귀었던 제자 명희의 자살 사실이 강인호의 책임으로 들춰지고, 선배 서유진의 출입까지 문제 삼으면서 더욱 어려운 인권차별의 벽을 실감합니다. 이렇게 법정 공방은 거짓과의 투쟁, 이사장의 인권과 귀머기리 아이의 인권 사이의 투쟁으로 대치합니다.
하지만 결국 강인호는 해고, 즉 기간제교사 계약해지 통고를 받았으며, 전관예우 운운되던 보수 판사의 최종판결은, 지역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며 전과가 없고, 피해자의 보호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참작을 들어, 이강석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이강복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박보현 징역 6개월이라는 충격 자체였습니다. 10여 년간 수십명을 성폭행한 전과자들에게 전과가 없다는 결론이 난 것입니다.
학생들의 교육청에 '공립 자애학원 설립'과 '부당하게 해고된 교사의 복직', 그리고 '복직된 성폭행 교사의 해고'에 대한 요구 역시 묵살됩니다. 그 학교에 자녀들을 그냥 둘 수 없었던 부모들은 임시로 천막학교를 열어 칠판을 걸고 수업을 시작하고, 지역 교회와 집을 빌려 숙식을 해결합니다. 그러나 강인호의 고민과 함께 아내가 찾아 내려옵니다.
결국, 천막학교의 강제 철거 소식과 무진 민주화운동 28주년 기념식 참가 준비에도 불구하고, 강인호는 연락도 인사도 없이 아내를 따라 서울로 올라오고 맙니다. 천막은 찢어지고 칠판은 박살났으며, 철거용역반의 몽둥이질 아래 아이들은 연행됩니다. 그리고 6개월 뒤, 선배 서유진이 연락도 되지 않는 강인호에게 메일을 쓰는 것으로, 공지영은 그녀의 장편소설을 맺습니다.
서유진은 도로교통법과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으며, 벌금 150만원의 벌을 받았고, 아이들의 항소는 기각되었으며 자애학원과의 고소 사건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전합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그만 두고, 연두의 집과 통역사의 집을 빌려 기숙사로 꾸몄으며, 근처 일반 중학교에 특수학급을 허가받아 모두 전학했다는 소식과 함께 그동안의 싸움에서 꼭 진것만은 아니라는 위로를 보냅니다.
이로써 지은이 공지영은 '도가니'라는 새로운 장편소설을 통하여 인간 본질에 대한 존엄성과 진실과 희망의 소중함을 주시하고 잊지 말자고 외칩니다. 지금의 우리 시대에 잊지 말아야 할 아름다운 정신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소설, '도가니'를 읽고 느낀 소감과 생각을 아래와 같이 6가지로 정리함으로써, 이 독서 후기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거짓과 진실의 싸움에서 최종 승리자의 희망
첫째, 이렇듯 '도가니'에서 공지영은, 이 세상의 진실과 거짓, 이사장과 귀머거리 아이들의 인권에 대한 차별을 직시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죄책감이 곰팡이빛깔의 종양처럼 오래도록 우리 내장의 틈에서 자라고 있음을 깨달으라고 반복합니다.
256쪽에서 "그날 이후 오래도록, 그의 늑골 아래 깊숙이 하나의 죄책감이 커다란 종양처럼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오래도록 그의 내장의 틈에서 자라온, 곰팡이빛깔의 종양, 그 종양의 이름은 장명희였다."라고 공지영은 고백합니다. 이는 독자들과 곧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습니다.
둘째, 모두 읽고 난 '도가니'에 대한 총평은, 다소 안타깝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장편이라기 보다는 중편이나 단편에 가까운 내용의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소 무거운 내용이나 무겁지 않고, 또 결코 가벼울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주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소설 '도가니'는 극의 전개 과정이 극히 단순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인간의 인권과 관련한 실제 사건을 주제로 전개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전개 과정에서의 절정에서 긴장감과 흥미가 떨어지는 아쉬움은 큽니다.
넷째, 단 한 곳의 잘못 인쇄된 쉼표(,)를 제외하고는 오타나 수정할 부분이 없는 점은 만족스럽습니다. 창비의 편집은 완벽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섯째, "선생님이 아빠 같아요."라고 말한 유리의 고백과 "연두가 말입니다. 어머니를 보고 싶어합니다.(p. 57)"라고 말한 강인호의 전달처럼, 인간 군상의 외로움을 서로 달래길 바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가, 사회가, 학교가, 개인이 보듬어야 하는 책임과 의무, 곧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내용 전개와 각 그 표현에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다소 부담스러운 소설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시작하여 읽는 내내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란 소설이 머릿속을 맴돌며 비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공지영 작가를 사랑하거나 관심 많은 독자들이 읽기에 좋은 소설로 추천합니다. 진지한 고민과 그 고민을 받아 들일 넓은 가슴이 필요한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