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비의 컴백 

최근 가수 아이비가 컴백했다. 여러 기사들에서 그녀의 컴백을 두고 왈가왈부하고 있고, 또 그 기사들에는 어김없이 많은 댓글들이 달려있다. 그녀는 2년여 전에 생긴 일로 그 '성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었다. 그리고 돌아온 자신에 대한 세간의 여러 눈을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완전히 뻔뻔해 질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동정심을 호소할 수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찾은 돌파구가, 성녀 이미지를 버린 좀더 적극적인 섹시녀 컨셉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 덧붙여, 인터뷰를 할 때는 "그동안 성숙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나름 '파격'적인 변신을 했고, '성숙'이라는 포장을 했음에도 대중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시원치 않은 듯하다.

그녀에 관한 기사들을 보다가 그녀가 했던 한 인터뷰를 보면서, 참 딱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름 큰 이슈였으니, 나도 대충은 그때의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들었었지만, 사실 그녀가 뭐 크게 잘못했는지를 일단 모르겠다. 양다리를 걸친 게 잘못인가? 물론 두 남자에겐 미안해할 일이겠다. 그러나 양다리를 걸치는 연인보다 더 나쁜 건, 폭력적인 연인이 아닌가? 그녀가 갑자기 떠나려했건, 양다리를 걸쳤건 그건 두 사람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상대방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 놓겠다는 앙심을 품고(나는 동의할 수 없지만, 우리 나라사람들이 하기 좋아하는 표현으로는) '공인'인 연인과의 잠자리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하다니, 누가 더 황당한 것인가? 

2. 복수를 권하는 사회?

그런 꼴을 보다가 문득 <아내의 유혹>이나 <천사의 유혹>이 떠올랐다. 세상에 자신이 받은 상처를 상처를 준 자에게 되돌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다. 용서,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무 문제에 대해서나 복수를 하진 않는다.  

앞에 <막장드라마> 얘기할 때도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그래, 나한테 이런 짓을 하고, 네가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지 두고보겠다."같은 한 서린 마음을 가져볼 뿐 결국엔 그냥 '당하고(?)' 넘어가고, 또 그러다보면 어느날인가엔 그들이 내게 준 상처를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용서하거나 화해하기도 한다. 영화 <애자>에서와 같은 엄마와 딸 사이의 상처와 화해과정. 그런 게 사실 (더 값진) 인생 아닌가? <애자>에서처럼 가족이 아니더라도, <용서>라는 다큐멘터리(SBS)에서처럼 심지어 자신의 자식을 죽인 살인자임에도 용서하기도 하는 훌륭하고 성숙한 인격의 인간들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회는 받은 대로 돌려준다는 '복수'의식이 들끓고 있는 듯하다. <아내..>, <천사..>의 '유혹' 시리즈는 참으로 가관이다. <천사..>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아내..>의 '남자판'이란다. 참..그걸 내세우며 드라마 홍보를 하다니, 세상은  '복수심'은 들끓는 대신 '수치심'은 많이들 버린듯하다. 문화판 뿐이겠는가. 이 정도가 더 심한 정치판도 있다.  

얘기가 한참 빗나갔는데, 하여간, 복수심때문에 택한 그 상대남의 저열한 행동이 사실 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의 '협박'은 규칙위반이다. 복수를 하더라도, 연인간에, 그런 식의 복수는 정말 치졸한 짓이다.

3. 여성 연예인의 동영상 유포 사건 

여성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동영상 유포 사건에 연루되어 한동안 연예계를 떠나야 했던 연예인들이 처음은 아니다. 그 이전에 두 명의 유명 여성 연예인이 진짜 나쁜 놈들때문에, 정말 황당한 손가락질을 받았다. 손가락질을 하는 자들이여, 왜 손가락질하는가? 어쩌다 손가락질을 하게 됐는가? 아, 그거 보셨군요? 그걸 본 주제에 손가락질이라고? 웃기고들 있다. 

여성들은, 여성연예인들은 연애하면, 섹스하면 안되나? '(그들 식으로 말해)미혼'인데 '혼전관계'를 맺은게 잘못이라서 손가락질하는 건가? -어느 시대 분이세요? 아님, 그녀들의 동영상이 너무 야하고 적나라해서 문제인가?-누가 그거 보랬냐?  너 보라고 찍었는줄 아니? 욕먹어야 할 것들은 그걸 유포한 그 놈들과, 그걸 보고 욕하고 있는 모순된 대중들이다.

근데 그런 황당한 비난에, 그녀들은 울면서 사죄의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한동안 '자숙'하며 지내야 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 그게 우리 나라의 여성연예인에 대한 태도의 실체이다.  

그들에 비하면 아이비 문제는 그렇게까지 비화되진 않았고, 아마, 거기까지 갔더라도, 예전보다는 좀 덜 문제가 됐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조금씩은 변화하니까. 그러나 여전히 여성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의 눈은 싸늘하다. 아이비가 이렇게 '굴욕적'으로 컴백해야했던 것처럼. 

  

4.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여성 연예인들이여, 진짜, 당신들 잘못인가? 

동영상 사건뿐 아니라 여성 연예인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거나,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어야 하거나, 아예 연예계를 떠나야 하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아니,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여성연예인들도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무엇이 그들을 그곳으로 몰아갔는가? 아마 '남성적'이고 '보수적'이고 '이중적'인 대중들의 시선과 그걸 조장하는 언론권력 등이 주범일 것이다. '찌라시기자'들은 그런 '먹잇감'을 절대 놓치는 법이 없고, 그들의 여론조작질에 대중들 역시 폭주해가며 마녀사냥을 해댄다. 그럴때 여성 연예인들은 아직도 울거나, 잠적하거나, 죽는다. 

이젠 그만들 좀 당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받고 있는 비난들 중 많은 부분은 사실 타당하지 않은 것들이다. 비난을 하는 자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서, 무턱대고 해대는 비난들이 훨씬 많다. 그들 앞에서 당신들은 왜 그렇게 작아지는가? 그러지 말아라. 

그러지 않는 첫 걸음은  묻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이 사태에서, 당신은 정말 '죄'를 지었는가? 지금 일어난 일이 '도덕적', '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잘못'이 맞는가? 특히 '도덕적'이라고 할때는 좀더 깊이 생각해보고 답을 찾자. 남자들이 만든 '유교적 윤리'가 그대로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만인에게 평등하고 공정한 윤리기준에 따른 도덕성의 잣대로서 당신이 잘못한 일인지,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 질서에 따른 유교적 룰에 따른 억압에 의해 비난받고 있을 뿐인지, 정확히 따져보라.

그런 뒤에 필요한 태도는 거짓말하지 않는 것. 자신이 했던 일이라면 솔직하게 말하자.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당신 역시 그들의 잘못된 논리 앞에 굴복하는 꼴이니까. 그걸 오래 끌면 사실이 밝혀졌을 때 '거짓말을 한 게 문제'라는 '가중처벌'만 받는다. 침묵은 괜찮다. 대응할 가치가 없고, 해명할 필요가 없는 당신의 지극히 사적인 문제라면, 그냥 생까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거짓말은 당신에게 불리하다. 

그리고 세번째는 그 '자신이 한 일'이 그들의 비난을 받는게 부당하다면, 당당히 맞서라. 왜 당신들이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그들이 잘못된 눈으로 당신을 보고 있을 뿐인데. 그러면서 오히려 그런 기회에 세상을 바꾸는 데에 힘을 보태자. 편견, 이중잣대, 보수성, 남성성...이것들은 누가됐든 앞장서서 바꿔나가야 하는 이 사회의 '악'이다. 그것을 당신에게 닥친 이 '위기'를 통해 오히려 조금이라도 고쳐나간다면, 당신에게뿐 아니라 나같은 여성들에게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떠한 경우라도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나는 그래서 그 예전의 동영상 유포 사건에 연루되었던 두 여성 연예인이 현재처럼 연예계에서 잘 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무척 뿌듯하다.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던 여성연예인들, 싱글맘인 여성 연예인들, 연애후 결별이나 이혼 등의 문제로 주목을 받았던 여성연예인들, 성상납의 권력구조속의 피해 여성 연예인들, 무차별 악플과 허위소문의 피해자들 등...당신들 모두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고 최진실씨가 굴곡진 삶속에서도 다시 연기대상을 받는 등 자살 전 활발한 활동을 했던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고, 그런만큼 그녀의 자살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5. 여성연예인들이여, 페미니즘을 공부하자. 

나도 여성이고, 여성주의에 나름 관심이 있다고는 하지만, 현실 속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일은 사실 말처럼 쉽진 않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투쟁'에는 직접 도움이 안되더라도, '자기를 지키는 일'에는 나름 소용이 된다. 남성들과 싸워 세상을 바꾸는 것? 강남부자들을 강북으로 다 이사가게 만드는 것 못지 않게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페미니즘은, 적어도 내가 당하고 있는 지금의 대우가 '차별적인 것', '부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그러한 차별, 부당한 대우에서 '내사(內射)적'인 여성들, 즉 자신의 잘못으로 환원시키는 여성들에게 "이것은 내 탓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게 해줄 수 있고, 자책감과 자괴감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러므로 맞서 싸우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당신들은 아마도 잘만 한다면 여성부 장관이나 페미니즘 학자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명감'으로 잘못된 세상에 맞서, 당당해진다면, 그건 더더욱 좋은 일이다. 최근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동영상 유포 사건에 연루되었던 그 여성 가수가 여성민우회와 많은 일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그 사건이 일어났을때 여성민우회로부터 사태에 대한 여성주의적 해석과 해결방안을 듣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여성민우회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단다. 이런 게 진짜 멋진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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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1-09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주셨어요. 추천 버튼을 안 누른 게 생각나서 다시 왔답니다.^^

somun 2009-11-09 23:14   좋아요 0 | URL
아, 마노아님, 또 들러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추천도 해주셨다니 더더욱 감사..^^사실 저 글에서 못다룬 이야기도 있는 것 같긴 합니다. 그들은 남성적 시선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또 최대의 '수혜자'이기도 하니까요. 그게 그들의 '굴레', '업보'같은 거겠지요. 그 얘기까지 하기 시작하면 너무 길 것 같아 못했지만, 하여간, 그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매일매일 신종플루 관련 속보가 뜨고 있다. 

속보의 내용은 대부분 신종플루 환자의 사망소식인데, 그 소식들의 헤드라인이란 사망자의 연령, 성별, 지역, 고위험군여부 정도이다. 하루에 몇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기사들을 보면서 기분이 묘하다. 도대체 이 기사들은 무엇을 위한 기사인 거지? 하면서. 

그런 기분은 이들 기사를 클릭해보았을 때 더더욱 강화된다. 기사가 내용이 별 게 없다. 우리가 그 기사를 클릭할 때는 무얼 기대하겠는가? 당연히, 신종플루에서 "어쩌다가" 사망에까지 이르렀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왜? 그걸 알아야, 나는 그걸 피하거나 막거나 조기치료를 할 수 있을테니까. 그러나 기사들은 그것에 대한 내용은 없다. 그들이 몇월 몇일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언제 확진판정을 받은 뒤 며칠 만에 사망했는지가 주된 내용이다. 거기에 덧붙여서 그들이 고위험군이었는지, 어떤 병력이 있었는지, 어느 지역 사람인지 정도만 나온다.  

 그런 기사들은 아직 사망하지 않은, 그리고 아직 신종플루에 걸리지 않은(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된다. 정보전달성이 매우 떨어지는 기사이다. 사망자가 고위험군일때에는,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안도감을 줄지도 모른다. 자신은 그러한 고위험군의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나 그 안도감은 너무나 얄팍하고, 매일같이, 아니 하루에도 여러 차례 쏟아져 나오는 신종플루 확진 환자의 사망 기사는 대체로 우리에게 '공포'를 조장한다.  

이런 사람도 죽었고, 저런 사람도 죽었다. 신생아도 죽었고, 10대도 죽었고, 20대도 죽었고, 여성도 죽었고, 남성도 죽었고, 고위험군이 아닌 사람도 죽었고, 신종플루에서 완치됐던 사람도 죽었고, 영남 사람도 죽었고,  대전 사람도 죽었고...그런 정보만 전해준다. 그러한 기사는 계속 축적되어 한국의 전 인구가 모두 자신의 '부류'의 인간들도 죽었다는 것을 인지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거기다 그들의 신종플루 사망자수의 누적통계 방식도 매우 거슬린다. 기한도 없이 계속해서 누적시켜 숫자를 세면,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잖겠는가? 그렇게 따질 거면, 독감, 감기로 사망한 환자 수도 계속 누적해서 말해라. 독감으로 사망한 환자 수인들 그것보다 적을까?  그럼에도 신종플루 환자의 수는 이미 완치된 사람까지 게속 누적하고 있고, 사망자 수도 계속 누적해 나갈 모양이다. 그리하여 전 인구의 신종플루 공포. 그게 그러한 기사들의 결과이자...어쩌면 의도이다. 

그러한 기사를 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매일 다니는 직장, 학교를 때려치우고, 아무와도 접촉을 안할 것인가? 차도 돈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자가용을 몰고다니며 대중교통을 피할 것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살던 대로, 해야하는 일 해가면서 사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얼마나 무기력한 공포감에 시달리겠는가? 매일매일 신종플루 환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거기에 비례해 많은 수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런다고 개인이 할 수 있는 대비책은 거의 없으니. 개인이 신종플루에 걸리지 않으려면 언제까지, 어떻게 막아야 할지 방법은 전혀 알수가 없다. 그래서 그냥 두려워하면서도 그대로 사는 것이다.  

딱 한 가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백신접종. 이제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고 한다. 일차적으로 의사, 간호사들에게 접종을 시작했는데,  일부 의사, 간호사들조차 백신 접종을 꺼린다고 한다. 아직 안정성이 확보되기엔 임상기간이 너무 짧을 테니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심이 너무 크면 별수 없이 가서 맞게 된다. 그리고 그 공포심은 언론이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무척 화가 난다. 다시 말해, 언론 등이 조장한 신종플루 공포때문에, 우리는 백신을 맞아야만 하게 된 것이다.

난 백신 맞기 싫다. 아직 그 백신의 안정성을 못믿겠다. 그러나 신종플루 걸리는 것도 물론 싫다. 그래서 난 다른 정보를 얻고 싶다. 일반적인 신종플루 예방을 위한 생활수칙은 알고 있다. 그것 외에, 사망자 소식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해서 신종플루로부터 사망에까지 이르렀는지 그 증상의 진행과정을 알고 싶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커져서 사망을 하게 됐는지, 구체적이고 명료한 정보를 알고 싶다. 어떤 사람이 몇 명 죽었는지, 말고, 왜 죽었는지를. 그러기 전까진, 난, 언론과 정부와 백신회사, WHO가 뭔가 우리를 조종하고 있단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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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30%대 드라마 2-막장드라마

막장드라마라는 말은 <아내의 유혹>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장드라마는 단지 <아내의 유혹>을 통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스토리, 설정들...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들은 그 이전에도 주기적으로 드라마시장에 논란을 일으키며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1. 임성한, 서영명,  김순옥 

사람들에 따라 '막장드라마'의 기준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가장 막장 드라마의 대표주자로 생각하는 작가는 <인어아가씨>와 <왕꽃선녀님>, <하늘이시여>를 만든 임성한과 <아름다운 죄>와 <밥줘>의 서영명, 그리고 <아내의 유혹>을 만든 김순옥 등이다.이 세 사람의 드라마를 보다 보면, 기가 막히다 못해 약간은 경외감까지 든다. 어떻게 이렇게 막 갈 수 있는가, 하며.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복장을 터지게 하고, 화가 나게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 드라마는 '중독성'이 있다. 나는 가끔 "이런 드라마들은 봐 주면 안된다!"며 '저항'을 하지만 주변에는, 특히 울 어무니나 이모, 고모, 숙모들을 비롯한 중년 이상의 아주머니들은, 욕을 직싸게 하면서도 꾸역꾸역 종영때까지 드라마를 봐준다. 나는, 이들의 드라마때문에 드라마매니아들이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쓰레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그러나 욕만 하는 건 얼마나 쉬운가? 나와 같은 드라마를 아끼고 사랑하는 드라마홀릭자라면, 이런 막장드라마들도 '왜?' 인기가 있는지, 이들의 매혹의 요소는 무엇인지, 알고 대중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들 드라마에도 어떤 '미덕'이 있다면, 그건 인정해주어야 한다. 

 

2. 복수의 플롯 

이들 드라마가 대중을 매혹하는 최고의 이유는, 역시 '처참한 배신-화려한 복수'의 서사구조이다. 이것은 드라마와 같은 연속성이 있는 서사물이 시청자들을 지속적으로 유혹할 수 있는 최고의 '미끼'이다. 드라마 초반에는 처참하게 짓밟히는 여자주인공들의 이야기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청자들은 기구한 주인공의 인생에 혀를 끌끌 차기도 하고, 그녀를 그렇게 만든 악역들에 대해 '갈아 먹어도 시원찮을..'이라며 욕을 해대고, 때때로는 그녀의 인생이 남일 같지 않아서 공감도 하며 드라마를 지켜본다. 

그러나,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고생만 하는 이야기라면,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슬슬 드라마를 떠나게 된다. 가끔 그래서 망한 드라마들도 있다. 고난, 수난의 서사가 과도하게 길면 시청자들은 외면한다. 최근에 했던 드라마 중 그래서 망한 드라마를 꼽자면, <잘했군 잘했어>를 들 수 있다. <잘했군 잘했어>에서 채림은 자신이 과외를 했던 연하의 남자(엄기준 분)에게 수년에 걸친구애를 받는다. 그런데 그녀는 비혼모이다. 그리고 엄기준의 어머니(정애리 분)는 채림의 회사 사장이고, 채림은 엄기준의 모친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처음의 이러한 설정은 이 드라마의 무게가 그다지 무겁지 않을 것을 예측하게 했다. 씩씩한 비혼모가 약간의 장애물을 거쳐 알콩달콩한 사랑과 결혼에 골인하는 내용-그런 것일 거라 예상했다. (편의상 모든 인물은 실제 배우 이름으로 대신하겠다.)

그러나...이 드라마는 갈수록 '독해'지기 시작했다. (1)시작은 채림과 엄기준이 사귄다는 사실에, 채림이 무언가 감추는 게 많고, 채림의 부모들이 번듯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정애리가 그들의 결혼을 과도하게 반대하는 데서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들이 하도 우기니 약간 승낙을 할까말까..할때 (2) 정애리의 가장 친한 친구의 딸(김정화 분)의 약혼자가 채림의 첫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문에 거의 남매와도 같은 엄기준과 김정화의 사이에 문제가 된다며 채림을 도로 반대한다. 좀더 강렬하게. 그러다가 또 다시 (3)채림이 '미혼모'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를 알게 된 정애리는 더더욱 심하게 반대하고, (4) 그 아이가 김정화의 약혼자(김승수 분)와의 사이에서 낳았다는 걸 알게 된다. (5)김승수가 채림이 자신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을 알고 채림에게 돌아가려 해서 이들의 사이를 방해하고, (6)김승수와 채림이 같이있는 장면들을 보며 김정화나 정애리는 거의 광기를 보이며 이들을 탄압한다. 

이와 같은 수도 없이 많은 장애물, 시련들 앞에서 채림은 매일매일 눈물만 짜냈다. 한번에 터져도 될 비밀들이 하나씩 하나씩 터지면서 그때마다 채림은 점점 강도가 센 역경들을 만나고 그래서 드라마는 매우 피로했다. 이 드라마는 결국 애국가시청률과 10%시청률 사이를 오가다가 막을 내렸다. 당연한 결과였다. 이렇게 계속 여주인공이 당하는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끝까지 붙잡아 둘 수가 없다. 

따라서 적당한 시점에선 이제 주인공의 복수, 반격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중들은 희망을 품는다. 저렇게 당하기만 하던 여주인공도 다시 잘 살 수 있고, 자기를 짓밟았던 사람들에게 되갚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시작하면 대중들은 좋아한다. 특히 좋아하는 것들은, 지지리 궁상이던 여주인공이 갑자기 세련되고 예뻐지는 것. 그래서 젊은 다른 남자들에게 사랑받는 것. 특히 헌신적이고 돈도 많고 능력도 좋고 잘생긴 연하남이 그녀의 새로운 안소니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런 로맨스 사이에서 여주인공은 차근차근 복수의 활로를 닦는다. 이게 왜 그렇게도 재미있는지, 드라마들마다, 특히 막장드라마들은 빼놓지 않고 이 플롯을 활용한다. 

사실 복수의 플롯은 단순히 막장이어서만 쓰는 것은 아니다. 박찬욱감독도 좋아하는 게 복수극 아니던가?(복수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박찬욱과 막장드라마를 같은 급으로 취급하잔 말은 아니다. 그건 박찬욱에게 좀 미안한 일이니까.) 인간에게는 자신이 당한 억울한 일에 대해 언제나 되갚아주고싶은 본능이 있다. 그러나..현실은 과연 그러기 쉬운가? 아니다. 대부분은 억울한 사람들이 또 억울하게 산다. 그게 우리 인생이다. 나에게 못되게 군 인간들, 내게 상처준 사람들은 벌도 안받고 또 떵떵거리고 산다. 그런 실제 삶으로부터 벗어나 '인과응보', '사필귀정'을 실현해보는 것, 거기서 대리만족을 하는 게 대중이다. 그런 마음을 보듬어준다는 점에서 막장드라마에게도 나름의 역할이 있다. 

 

2. 투명성(?) 

이것 또한 중요하다. 막장드라마들을 볼 때는 아무 것도 짐작하거나 추측할 필요가 없다. 얼마나 명쾌하게 지금의 행동들을 왜 하는지를 설명해주는지...어떤 이상한 행동, 의미심장한 행동을 한지 3분도 안돼서 그 행동의 이유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때로는 그 행동을 한 인물의 독백이나 마음속 말 나래이션으로, 때로는 다른 인물들이 대신 설명을 해주는 방식으로. 그러니 얼마나 깔끔한가? 여백이 전혀 없다. 드라마에서 말해 진 대로 사건은 진행되고, 인물들간의 관계는 형성된다.  

이것 역시 대중들에게는 참 편한 부분이다. 영화나, 잘 만든 드라마들일 수록 대사는 함축적이고, 서사 속 여백이 많다. 그 부분들은 보는 사람이 채워가는 것이며, 그 맛에 영화를 보고 웰메이드 드라마를 즐기는 시청자들,관객들도 많다. 그런데 그건 그만큼 머리를 많이 쓰며 시청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능동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쟤 왜 저러는 거야?" 라는 질문에서 답을 찾기 힘들다. 그런 오리무중...뭔 얘기인지 모르는 드라마나 영화들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막장드라마들은 그런 게 없다. 생각, 머리, 전혀 안써도 된다. 그 드라마가 말해주는 대로 졸졸졸 따라가면 무슨 얘기인지 다 알 수 있다. 제일 심했던 것은 <아내의 유혹>이다. 그 드라마는 제작비나 촬영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인지 마음속 말까지 배우들이 그 자리에서 직접 말로 하는 정말 기이한 방식의 독백, 내래이션을 매우 자주 썼다. "어떻게 된거지? 저 남자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거야? 내가 아까 한 말을 엿들은 건가?" 뭐 이런 식의 대사를 입벌리고 혼자 있는 방에서 중얼거린다. 보통 예의상, 드라마들은 그런 이야기는 입은 안벌리고 눈을 굴리며 궁리하는 배우의 모습에 따로 더빙을 한 목소리를 입혀서 속엣말임을 표현하는 정도의 성의는 보인다. 그러나 <아내의 유혹>에서는 그것도 없이 그냥 그 자리에서 다 말로 해주는, 무성의한 편집, 연출방식을 즐겨 썼다.  

3. 두고두고 씹힐 만한 말도 안되는 설정이나 캐릭터 한 개 

마지막으로, 막장드라마가 되려면 한 줄로 요약되면서 두고두고 씹힐 만한 말도 안되는 설정이나 인물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 이건 독이 될 것 같지만, 사실 의외로 엄청난 홍보효과를 낳는다. 막장 드라마를 씹는 수많은 기사, 비평들에게 매우 편리하게 그 드라마들을 언급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구구절절하게 스토리와 여러가지 인물관계도를 설명해 가며 어떤 드라마가 어째서 문제다...라고 말하게 만들면 기사, 평론에서 자주 씹기가 힘들다. 그러나 한 줄로 딱 요약되는 말도 안되는 설정이 있으면 언론에서 비판적으로 언급할 때도 손쉽고, 대중들 사이에서도 그 드라마가 자주 입에 오르내리기도 쉽다. 

예를 들어, <아내의 유혹>의 가장 말도 안되는 설정은, 장서희가 자신을 버린 남편 변우민에게 복수를 하는데, 과거와 달라진 점은 머리를 잘랐다는 것과 얼굴에 점을 하나 찍었다는 것 뿐이다. 점 하나 찍었다고 수년을 함께 살았던 전처를 몰라본다? 말이 되는가? 그러나 이 말도 안되는 설정은 <아내의 유혹>의 트래이드 마크가 됐다. 그래서 <내조의 여왕>에서도 김남주에 의해 "당신 바람피우면 내가 코 밑에 있는 요 점 빼고 나타나서 당신한테 복수할거야"라는 패러디, 희화화거리로 등장했다.  

<인어아가씨>는 자신의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에게 딸이 복수를 하면서 아버지와 아버지의 현재 아내의 뺨을 때리는 장면으로, <왕꽃선녀님>은 멀쩡하던 주인공이 어느날 신이 내려져서 무당이 되는 설정으로, <하늘이시여>는 어렸을 적 버린 딸을 자신의 의붓아들과 결혼시키는 엄마의 이야기로, <밥줘>는 조강지처가 남편과 남편의 애인이 함께 사는 집에서 밥과 청소를 하며 지내는 설정으로 물의와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논란거리는 욕을 먹기도 하면서도, 그걸 다시 욕하면서 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말도 안되는 그러한 설정들을 욕하고 비웃으면서도 은근히 즐기는 사람들의 묘한 심리를 막장드라마들은 십분 이용하여 점점 더 독하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나간다. 

  

4.그래서? 

이런 세 가지 요소들을 그냥 비판만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막장드라마를 즐기는 대중들의 마음도 끌어안고 보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왜 복수플롯에 열광하고, 명쾌한 스토리에 끌리며, 말도 안되는 설정들을 즐기는가...특히 위와 같은 막장드라마들은 대체로 일일연속극들에서 자주 등장한다는 점. 중장년 여성들이 채널권을 가진 시간대에 그러한 드라마들이 많은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들에게 아마도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이나 저녁의 일일연속극 시간의 드라마들은 전혀 진화하지 않는다. 독한 설정만 점점 강해질 뿐, 늘 가족 이야기이고, 고부간의 갈등이고, 못된 년놈들의 파멸기-착한 주인공의 성공기이다. 그러한 드라마들이 동시간대에 방송사마다 동일하게 방영이 되는데, 시청자들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그 중에 가장 자극적이고 명쾌통쾌한 드라마로 채널이 돌아갈 수밖에. 

'대안'을 고민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일일연속극 시간대에는 이런 '막장'스타일이 아닌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인기를 못끌어서 드라마 도중에 억지로 '막장'이 되어 갔던 드라마도 많다. 안 그러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서. 방법은, 그러한 막장 스토리에서 벗어난 좋은 대본과 스타급 배우들의 과감한 출연결정이 아닐까? 지난번에 이야기 한 <솔약국집 아들들>만 해도 막장스러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지만 올해의 최고 흥행 드라마가 되었다. 적당한 판타지가 있기는 했어도, 그 정도의 '꿈'은 드라마로서 용납가능하다. 그런 이야기틀에(아마 <솔약국집..>은 일일연속극으로 했어도 매우 인기있었을 스토리이다.) 그정도 급의 배우들-현재 아주 잘나가지도 않지만 한때 스타였고, 앞으로 크게 될 스타들인-이 자신의 과거의 '영화'를 생각하며 '모냥 빠지게 일일연속극?' 하며 거절하지 말고, 출연해야 한다. 그것이 자극적 소재를 이길 수 있는 길이다.  

<하얀 거짓말>(안 봐서 모르는데  이 드라마도 꽤나 막장이었던 듯 싶긴 하지만)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이런 아침 드라마에 나올 것 같지 않은 신은경이라는 배우가 과감히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던 점이기도 하다. 최근에 <무릎팍도사>에 나온 안재욱의 '사람들이 제가 한국에 있다는 걸 잘 몰라요'란 고민에 강호동이 "일일연속극에 출연해라"라고 처방해준 것, 나쁘지 않은 얘기라고 생각한다. 딱 그 정도의 배우가 일일연속극에 나오면, 막장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채널을 돌려줄 것이다. 그럴 때 좋은 이야기, 복수 대신 용서, 억지 설정 대신 삶의 깊은 진실을 담은 스토리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 그래서 그런 드라마들이 성공하고, 이걸 계기 삼아 일일연속극 시장도 진화하는 것...그게 막장드라마들을 사라지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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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0-2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대안이 솔깃합니다. 강호동이 내렸던 그 처방이 웃으란 얘기가 아니라 정말 설득력 있는 얘기네요.

somun 2009-10-22 08:06   좋아요 0 | URL
아, 마노아님, 반갑습니다.^^

기인 2009-10-2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요즘 신소설 읽으면서 겹치는 부분도 많네요.. '복수극' 흠. '신소설'과 요즘 드라마들의 공통점이랄까.. 이런것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somun 2009-10-22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그게 제가 신소설을 처음 연구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지요.

janeDoe 2010-01-13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중원 소설은 어떤가 찾아보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네요 ^^.

임성한은 단지 '막장'이라고만 정리할 작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산층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 가족을 지탱하는 여자들의 욕망과 사고방식은 무엇인지 너무 적나라하게 잘 보여주는 작가가 아닐까 싶어요 ㅋ 하늘이시여까지의 임성한의 인물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진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고 다들 적나라한 욕망에 불타고 있는데, 그 정도로 솔직하니,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통쾌한 기분마저 들거든요.

게다가 등장인물의 속셈을 마음속의 독백대사로 다 읊어서 '들려'주는 방식은, 배우의 미묘한 표정이나 미쟝센으로 함축적으로 처리하는 영화적으로 '보여'주는 방식보다 촌스럽고 유치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주부들이 TV라는 매체를 시각매체라기보단 라디오에 가깝게 접한다는 점, 살림을 하면서 왔다갔따하면서 거의 반쯤은 '듣는' 것을 중심으로 드라마를 본다는 점을 생각하면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장르적인 특성이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임성한은 단지 자극적인 설정으로 롤러코스터 태우는 데만 재능이 있는 작가는 아닌듯...

순옥킴의 경우는 롤러코스터 재능도 그 정도면 거의 경외감을 느낄정도구요(도대체 한 회차 안에서 반전이 몇개인지) ㅋㅋㅋ

somun 2010-01-14 00:1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제인님.^^

네..그렇게 보실 수 있죠. 주부들의 드라마가 '듣는' 매체에 가까운 형식을 취한다는 지적은 신선하고 적절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저도 임성한은, 다른 '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죠. 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감추고 싶은 욕망까지 '까발겨주는'면. 그 원초적 욕망의 재현이 통쾌한 것 사실입니다.

저 역시 이 글을 쓰면서 기본적으로 가졌던 태도는, 그런 드라마들을 비난하거나 무시하기만 해선 안된다. 그런 드라마들을 왜 사람들이 즐겨보는가는 이해하고 보듬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임성한, 김순옥, 문영남 등의 작가들은, 저는 점점 피하게 되지만, 그들의 시청자를 '매혹'하는 '재능'은 인정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서영명은 좀 많이 다르죠...그 작가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정말 '서사의 파탄'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 드라마들이 '좋은' 드라마가 아닌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그러한 드라마들은 우리에게 무얼 얘기해주는 걸까요? 그냥 시간이나 때워라? 집안 일 하면서 심심하니 켜 놓고 일하기에 좋으면 된다? 세상에 고민하고 안타까워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분노하고 변화시켜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 안되는 '출생의 비밀', '고부간 갈등', '불륜', '복수'얘기의 복제품들만 보면서 있어야 하나 싶거든요.

특히 그 중심에는 여성들끼리의 싸움이 있다는 게 제일 마음에 안 듭니다. 대부분 여자의 적은 여자들입니다. 왜 같은 여자들끼리 말도 안되게 서로를 음해하고, 괴롭히는 이야기를, 여성 시청자들이 보면서 욕을 하고 있어야 하나요? 그게 현실 속의 여성들 사이의 갈등까지도 자꾸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요? 그런 '갈등'을 드라마를 통해 학습해서, 각 여성들 사이의 '관계'속에서 '실천'하게 만드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방법,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줄 '착한', '예쁜' 드라마를 바라는 게, 제가 단순히 '계몽적' 태도라서만은 아니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요...제인님은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1. 참여연대에 걸린 김제동 사인

참여연대 사무실에 처음 갔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좀 생뚱맞게 걸려있는 김제동의 사인지였다.
음식점같은데에 연예인 사인이 걸려있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참여연대 사무실에 연예인 사인이라니.

 
그게 생뚱맞아 보이지 않으려면, 좀 많은 연예인의 사인지가 걸려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다른 건 없었다. 달랑 그의 사인이 하나.
그가 어떤 정도로, 어떤 이유로 그곳과 인연을 맺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걸린 그 사인지는, 생뚱맞으면서도 동시에, 참 그.답.다.

  

2. 정치하는 개그맨?

'그답다'는 이유는 뭐 열심히 설명하지 않아도 요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그가 스타골든벨 MC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을 가지고
정치적 외압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약 50%나 된다는 것 만으로도
그의 행보가 정치판의 눈에 '거슬릴' 여지가 있는 일이었다는 점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는 노무현을 추모하고, 진보신당 일에 참여하며,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를 다니고, 참여연대에 사인지를 남기는, 그런 사람이다.
여당과 정부 입장에서 곱게 보이지 않을 '짓'을 자-꾸 하고 다니니,
스타골든벨 하차문제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3. 스타골든벨 하차, 정치적이거나 말거나

그런데 50% 조금 못미치는 숫자의 사람들이'나'
그의 하차를 정치적 '보복'으로 보는 거라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겨우' 50%도 안되는 사람들만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왜 나머지 50%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건...설문응답자의 정치적 입장이 친이, 친여적이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가 사실 '한 물 간'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최근 여러 프로그램에서 제 자리를 못잡고 있었다.
'야심만만-예능선수촌'에서도 하차했고, '노다지'도 곧 폐지된단다.
그 이전에도 '연예가중계', '간다투어' 등의 프로그램이라든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프로그램들 속에
그가 진행자로 끼어 있었던 적이 여러번이다.

 
거기다 그는 사실 밖에 나가서는 그런 '좌파'적 행보를 함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내에서는 거의 전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스타골든벨의 하차가 단지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그냥 신선미가 떨어져서, 한물 가서 바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방송계 내에서 '위기', '하락세'의 상황이었다.
 

물론 그가 스타골든벨에서 하차되는 거, 무척 불쾌한 일이지만,
그 사실에 대한 섭섭함은 손석희의 <100분토론> 하차설에 비하면 그렇게 섭섭한 일은 아니다.
스타골든벨이 그렇게 훌륭한 프로그램도 아니고, 이제 매너리즘에 빠질 만큼 빠졌고
김제동의 자질과 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포맷도 별로 아니다.(물론 본인 입장에선 섭섭하겠지만)
그래서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오마이텐트>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고난 뒤에는
그깟 스타골든벨, 하차하거나 말거나...란 마음으로 확 바뀌었다.
스타골든벨보다 후어얼씬 그에게 잘 맞는 프로그램, '오마이텐트'를 그가 만났기 때문.

 

 

 

 

 

 

 

 

 

4. 김제동을 위한 프로그램, <오마이 텐트>

(어떤 블로그에 이번 편의 내용을 착실히 소개해 놨길래 링크한다.

http://blog.naver.com/yyetm?Redirect=Log&logNo=120092675059)

 
이 프로그램은 '여행(캠핑)'과 '토크'가 함께 있는 포맷인 듯 하다.
여행?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를 벤치마킹한거? 아니다.
물론 연예인들이 여행을 떠나 자신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같은 포맷일테지만
<오마이텐트>는, 한번 보고 속단할 순 없겠지만, '리얼'은 맞는데 '버라이어티'는 아닌 것 같다.
이 프로그램엔 쓸데없는 연예인들의 게임대결도 없고, 화려한 개인기 자랑도 없다.
 

첫회는 앞으로의 진행자가 될 김제동이 김제동과 떠나는 여행, 즉 혼자 출연했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출연자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 성격이 바뀔 수도 있을 테지만,
김제동의 성격이나, 첫회를 편집, 구성한 방식으로 보았을때
'버라이어티'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지향하고 있는 듯 하다.

 
김제동은 본인 입으로 말했듯, 쓸데없이 진지하다.
개그맨 되기는 진작에 포기한 것 같고, 진행자로서도 좀 재미가 없는 편이다.
거기다 생각이 너무 많다는 것. 그는 아마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만을 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한심한 생활(등산+난 기르기)을 하는 걸 보고
주위 친구들이 '벌써부터 명퇴자처럼 사냐?'란 소리를 들었단 말을 해놓고
'아...이것도 명예퇴직하신 어르신들에게 누가 되는 소린 아닌지...'란 걱정을 곱씹고,
자신의 노랫소리가 너무 구슬퍼서 학교 다닐때 음악시간에 <그리운 금강산>을 가창시험보다가
선생님이 '너, 실향민이냐?'란 말을 들었단 소리를 해놓고도
'실향민들께 누가 되는 소리..'일까 고민한다.
그러니, 초스피드와 강공으로 치고 나가야 살아남는 요즘과 같은 방송프로그램의 포맷들 속에서
그가 무슨 말을, 얼마나 할 수 있었겠는가?
고민하는 사이에 타이밍을 놓치고, 저런 고민들로 주저하는 사이에 분위기만 썰렁해진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는 '좋은 사람'이지만, 유재석만큼 '유능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유재석은 몸에 밴 '정치적 올바름'이 있다. 그래서 그는 리얼버라이어티 진행자로는 최상이다.
그는 재치있고 순발력있게 치고 나가 자기 멘트를 던지지만
그가 구설수에 한번도 오른 적이 없다는 것. 그게 그의 능력을 말해준다.
유재석은 고민하지 않아도 나쁜 말을 안하고, 거기다 재미있기까지 한 것이다.

 
반면에 김제동은 나쁜 말은 안하지만, 좀 늦고, 덜 재미있다.
요즘처럼 집단MC체제가 대세를 이루는 분위기에선 그러니 살아남기 힘들다.
누구도 그가 바르고도 재미있는 말을 잘 골라내어 할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거기다 그의 진지함은, 재미만을 위해 내면 없이 막말을 던져대는 다른 MC들 사이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는 애' 취급만 받는다.

 
따라서 그런 그에겐 누군가와 같이 MC를 보는 프로그램은 잘 안맞는다.
여러명이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자기가 얘기할 기회가 명시적으로 배분되어있는 프로그램일 경우에만 살아남는다.
<스타골든벨>이나, <환상의 짝꿍>처럼 말이다.

 
그리고 일반인들과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더 잘 맞는다.
그는 진솔하고,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마주치면
참 정감가는 인간적 모습을 보여 보는 사람들을 훈훈하게 한다.
거기다 그는 다른 '튀는' 연예인들보단 덜 웃기지만, 일반인들보다는 확실히 더 웃긴다.
그래서 일반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따뜻함과 웃음, 뿐 아니라 감동과 눈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유재석보다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오 마이 텐트>에서 그가 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이라든가 다른 캠퍼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던 장면들은 요절복통할 웃음은 없어도 계속 비실비실 웃게 만들었다.
보는 1시간 내내 흐뭇했다.

  


5. <강심장>과 <오마이 텐트>

<오마이텐트>를 보며 최근 시작한 <강심장>이 생각났다.
강호동의 최초 본격 토크쇼로 홍보된 <강심장>은, 앞으로 둘 중 하나의 길을 갈 것이다.
하나는 프로그램의 조기 폐지, 하나는 포맷의 전면 수정.
난 강호동이 언젠가 이런 자기 이름을 건 토크쇼를 할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무릎팍 도사>의 포맷과 비슷할 줄 알았다.
지금으로선 전혀 생각도 못했을 만큼 너무 산만하고, 매우 진부하다.

 
토크 배틀의 형태로 서로 '독한' 얘기를 쏟아내는 포맷, <서세원쇼>나 <예능선수촌>에서
이미 할 만큼 해먹었던 것이고,
이 프로그램의 타겟 시청자를 누구로 삼았는지 알기 힘들게 무질서하고 많은 출연진
특히 아이돌 그룹 스타들을 무더기로 데려다가 홍보장소로 삼는 '노골성'

 
거기다, 결정적으로 그 프로그램 안에는 '강.호.동.이. 없.다.'
오히려 이승기가 선전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승기는 순간순간 반응하고 상황에 맞는 똘똘한 멘트를 치지만, 
강호동은 무대포식으로 출연자들에게 무언가를 추궁하거나, 억지로 무언가를 시킨다.
그것 외엔 그는 하는 일이 없다.

 
그 프로그램은(사실 다 합쳐서 30분 봤을까? 계속 보고 있기 힘든 프로그램이다)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해서 잠깐 틀었다가 보고 있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프로그램의 산만함과 불필요한 화려함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어쩌자고 그런 시대착오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혹시 <박중훈쇼>를 '과도하게' 반면교사로 삼았나?
진지하고 조용한 토크쇼는 이제 안먹힌다는?

 
좀 딴 얘기지만, <박중훈쇼>가 망한 이유는 진지해서가 아니다. '가짜'여서지.
그 쇼는 하나도 진정성이 안느껴졌다. 앵무새같은 진행자와 역시 앵무새 내지 철면피같은 초대손님.
우리는 그들의 '연극', 식상할 대로 식상한 '질문과 답변'을 보고 있는 게 싫어서
그 프로그램을 외면했던 것이지, 조용해서나 진지해서가 아니다.

 
나는, <박중훈쇼>의 진지하고 차분한 쇼라는 처음 시도는 매우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 없었던 진솔함, 진정성, 리얼-
그걸 찾아 줄 프로그램이 이제서야 탄생한 것이다. <오 마이 텐트>
그리고 그걸 맡기에 적격인 김제동이라는 진행자까지.

 
 

6. 삼림욕 같은 토크+(다큐)멘터리

지끈거리는 TV속 쇼프로그램들의 홍수에서 벗어나
삼림욕을 하듯 마음이 맑아지는 프로그램이었다.
앞으로 어떤 초대손님들과 계속 이런 '정화'의 느낌을 만들어갈지 기대된다.
이 프로그램은 분명 잘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사실, 많이 지쳐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가끔은 잔잔한 웃음과 위로를 받고 싶다.
그런 마음을 달래주기에 '토크'+'(다큐)멘터리' <오마이텐트>는 좋은 포맷을 갖췄다.

 
김제동이여, 이제 스타골든벨은 잊어라.
당신을 위한, 당신에 의한, 당신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혹, 이번에도 잘 안되더라도,
부디, 용기 잃지 말고, 오래오래, 당신만의 '착한' 색깔로,
당신의 자리를 구축해나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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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30% 이상의 시청률을 획득한 드라마는 '대박' 드라마로 취급된다. 예전에 <허준>이나 <사랑이 뭐길래>의 경우는 시청률이 50~60%까지도 나왔다고 하는데, 그건 아직 케이블 채널이 활성화되기 이전의 일이다. 오늘날처럼 케이블TV 뿐 아니라 IPTV까지 TV채널 시장에 진출한 시기에는 30%대의 시청률을 얻은 드라마만 해도 엄청난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30% 이상의 드라마는 다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오늘은 일단 첫번째 유형에 대해서만 얘기해 보기로 한다. 그 첫번째 유형이란 어제 종영한 <솔약국집 아들들>로 대표되는 '안온감'을 주는 '주부 선호적' 드라마들이다.  

 <솔약국집 아들들>은 제목을 듣는 순간 예상할 수 있듯 "아들들의 장가 보내기 프로젝트"를 줄거리로 하는 드라마이다. 큰아들이 하는 '솔약국'을 위시로 네 명의 아들들이 장가도 안 가고 엄마 등골만 빼먹으며 살다가, 드라마 마지막회에는 짝짓기에 성공하면서 끝나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유형의 드라마이다. 드라마 홈페이지를 가보라. 처음 홈페이지를 만들면서부터 이미 어떻게 짝짓기가 될지를 '첫째 커플'  '둘째 커플' 식으로 이미 명명해 놓고 있다. 

http://www.kbs.co.kr/drama/sol/index.html

 그런데 이 드라마의 종영날 시청률은? TNS의 경우 48.6% 좀 짜게 나오는 닐슨의 경우도 44.2%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시청률인지는, 최근 이승기 신드롬과 한효주의 광고시장 점유 등 스타배출로 화제 속에 종영한 <찬란한 유산>의 최종회 시청률이 TNS 47.1%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건 2009년 드라마중 최고치이다. 현재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선덕여왕>도 아직까지 넘어서지 못한 벽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신 적이 있는 분들은 알 것이다. 이게 <찬란한 유산>이나, <선덕여왕>, <태양을 삼켜라>같은 드라마랑 비교해서 얼마나 '저렴한' 드라마인지. 

 저렴하다는 건, 그야말로 저예산이라는 뜻이다. 이 드라마의 대부분은 세트 촬영이라서 시간도 돈도 많이 절약했을 것이고, 나오는 배우들도 초호화 스타는 없다. 약간 한물 갔거나, 이제 겨우 뜨기 시작했거나. 대신에 연기력은 누구 하나 거슬리지 않는 '중견', 또는 '똘똘한 신인' 배우들이다.  내용은 앞서 말한 대로 너~~~무 뻔하다.(사실, 그래서 나도 매회 챙겨볼 의지도, 이유도 없었다. 가끔씩 봐도, 아니, 예고편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다 알 수 있는 그런 드라마이다.)

 그런데 어떻게 최고의 스타들을 데려다 쓰고, 예쁜 화면들로 시청자를 사로잡으며  화제를 몰고 다녔던 <찬란한 유산>이나, 스케일 면에서 <솔약국집 아들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거창한 <선덕여왕>, 해외로케를 해가며 찍은 블로버스터 드라마 <태양을 삼켜라>보다도 높은 시청률을 얻을 수 있었을까?  

 일단은 편성 시간대도 좋았다. 주말8시 드라마는 전형적인 가족시청 시간대다. 그리고 가족들이 다같이 보기에 부담없어야 하며, 내용도 복잡하지 않은 편이 가족들이 '노가리를 까며' 보기에 좋다. 딴 짓하며 봐도 다 이해되고, 적당히 씹을 거리와, 가끔 몰입할 흠잡을 데 없는 짠한 감동의 연기, 전혀 마음 불편함 없이 볼 수 있는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가 이러한 드라마로 채널을 고정하게끔 한다. 부모형제아들손자며느리 다 같이 모여 보아도 아무런 부담이 없다.  

한편 여러가지 설정들은 걱정 없이 보게 만드는 요소들로 가득 찼다. 청춘남녀들은 신체건강하고 건전한(?) 정신을 소유한 처녀총각들로, 손 한번 잡는 것에 부끄럽고 설레하는 순진둥이들이다. 엄마아빠는 가정을 지키며 전통적 성역할을 잘 분담한다. 가계는 딱히 찢어지게 가난하지는 않아서 보면서 불편하거나 걱정스럽지 않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평범한 소시민의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사실 네 명의 아들들 중 재수를 하는 막내를 제외한 셋은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들이며, 그들의 아내도 최상위 계급의 여성들이다. 이건, 사실 매우 기분 묘해지는 대목이다. 

첫째 아들은 제목의 주인공 답게 약사로, 혜화동에 약국을 운영한다. 둘째 아들은 소아과 의사로 서울대 의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셋째 아들은 방송국 기자로 7개국어를 자유자재로 하고 교양과 지식이 넘치는 전도유망한 기자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흔치 않은 초엘리트들인 것이다.  

 그럼 그들의 '짝꿍'들은 어떠한가? 첫째의 짝은 미국에서 로스클을 나온 국제변호사이고, 둘째의 짝은 처음엔 미련한 간호사인척 하더니 알고보니 굴지의 종합병원 원장 딸이자 존스홉킨스 의대를 나온 신경외과 전문의였다. 셋째는 잘나가는 탤런트인 방송국 국장의 딸이다.  제목과 주요 무대가 되는 혜화동 어느 골목의 단독주택집의 '소시민적' 이미지와 비교할 때, 좀, 배신감 들지 않는가?

우리는 이러한 이력을 가진 인물들과 비슷한 사람을 한 명이라도 알고있나 떠올려 보자. 서울대 의대 수석한 친구? 탤런트 친척? 약사 선배? 국제변호사 언니? 한 명을 알고 있기도 힘든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무더기로 나오는, 사실 '트렌디 드라마'들보다 더한 '그들만의 리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드라마는 이러한 이들의 이력을 함부로 부각시키지 않는다. 평소 그들이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과정에서는 이들의 화려한 스펙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연애와 결혼으로 일관한다. 김밥을 싸온 여자에게 감동하고, 공기놀이를 하며 사랑을 싹틔우고, 곰인형 하나에 감동하는...'소시민'스러운 척 살아간다. 

또한 이 네 아들의 부모가 보여주는 소박함, 평범함, 단순무식함으로 그러한 부모의 모습이 곧 이들의 모습인 듯 위장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드라마를 우리들의 삶과 비슷하다 착.각.한.다. 

불쾌하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속는' 다는게. 그러나 아마 이 드라마를 즐겨 본 시청자들에게 물으면, 이 세쌍의 커플 주인공들이 이런 대단한 스펙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는 답을 듣게 될 것이다. 이 드라마의 시청자들은 그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왜? 그들의 '스펙'은 매우 중요한 거니까. 

 이게 '드라마 매혹'의 한 축이다. 이렇게 '잘난' 인물들이 나오는 것. 주위에선 보기도 힘든 이런 엘리트들을 떼거지로 등장시키면서, 한편으론 그들의 엘리트성을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결정적인' 순간에 그 스펙을 들이밀어 이들의 짝짓기에서 초래되는 갈등 해결을 손쉽게 한다.  

이 짝짓기에서 초래되는 갈등이 이 드라마 매혹의 두 번째 요소이다. 사실 이 드라마의'아들들'은 자신의 스펙은 매우 훌륭하지만, 집안은 '소시민'인 게 맞다. 그런데 이들이 결혼한 세 여성은 또 좀 다르다. 첫째의 부인은 그나마 평범한 미국 이민1.5세대 출신이고, 둘째의 부인은 앞서 말했듯 종합병원 원장의 딸이며, 셋째는 방송국 국장의 딸이다. 이런 대단한 집안의 딸들과 평범한 집안의 남성들이 짝을 짓는 게 쉽게 가능한 이유는 이들이 '비룡클럽'(개천에서 용난 자식들)엘리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이란 그런 것이다. 이 계급의 차이로 생길 수 있는 결혼 과정의 잡음을 이들의 스펙은 일소해 버린다는 것. 그래서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조마조마한 마음 없이 짝짓기 과정의 알콩달콩한 스토리를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또 하나의 '매혹'적 요소. 그것은 이들 '짝' 여성들이 사실 계급만 높았지, 모두 '결핍'된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이 '아들들'이 채워준다는 데 있다. 이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성공요인 중 하나이다. 첫째의 아내 수진(박선영분)에게는 사고뭉치 오빠가 있다. 오빠는 암으로 요절한 올케언니 대신 혼자 두 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다. 그래서 수진은 결혼후에도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오빠와 조카들을 위해 이리저리 고군분투하다가, '너그러운' 시어머니 덕에 조카들이 좀더 클때까지만 오빠네 집에 들어가 살며 조카들을 돌볼 수 있게 된다. 

둘째의 아내 복실(유선 분)은 시부모님과 함께 살긴 하지만, 둘째아들 대풍은 오랜 앙금으로 화해하지 못했던 복실의 부녀지간과 이복자매간을 화해시켜 복실의 가정에 행복을 가져다 준 사람이다. 또한 딸의 결혼으로 적적해진 대풍의 장인에게 대풍의 아버지는 주기적인 술친구가 되어 준다.  

셋째의 아내 은지(유하나)는 외동딸이어서 은지가 시집간 뒤 은지의 부모는 우울증에 시달린다. 이러한 은지 부모를 위해 선풍(한상진 분)의 부모는 선풍을 데릴사위로 보내버린다. 자신들에겐 아들이 넷이나 있다는 게 이유이다. 연애나 결혼을 하는 관계로 발전하진 않았지만, 넷째마저도 자신의 친구 애인이자 오갈 데 없는 미혼모 모녀를 집에 불러들여 거둬준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알고 보면) '딱한' 사정이 있는 여성들이, '솔약국집 아들들'에 의해 '구원'을 받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특히 그 '구원'의 내용이 여성들의 가족을 위한 것들이어서, 이 드라마를 보는 여성들은 흐뭇하고 뿌듯했을 것이다. 그러니...이 드라마가 30~40대 여성들에게 가장 선호되었던 것은 당연하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한국의 가부장제 내에서 어떤 '상실감'을 맛볼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이 드라마는 사실 엄청난 '판타지'이다. 재투성이 아가씨가 왕자님을 만나는 <찬란한 유산>류의 트렌디 드라마보다 훨씬 더 탐나는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드라마들이 주는 '열심히 안 봐도 해피엔딩'일 거라는 안온함, 안도감, 그리고 이 드라마들에 '티 안나게' 들어있는 계급상승의 욕망, (사실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말도 안되고 거추장스럽기까지 한-미련곰퉁이 '김간' 복실이가 사실 존스홉킨스 대를 나온 신경외과 전문의인 닥터 제니퍼 킴이라는 설정은 그 최고봉이다.-)엘리트주의, 그리고 여성들이 보기에 곱씹을 수록 뿌듯한 '개량된 가부장제'의 판타지는 '주부선호형' 드라마로서의 미덕이다. 여기에 고루 안정적인 연기자들의 연기로 말도 안되는 내용이 나와도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만들었던 점도 크게 한 몫 했다. 

 <솔약국집 아들들>의 성공은 매우 단순하고 정공법적인 드라마 제작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일깨워준다. 드라마는, 사실 꿈이고 만화고 판타지고 거짓말이다. (대부분의) 드라마와 같은 세상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판타지라면 요즘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판타지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그 시청자들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솔약국집 아들들>은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짝짓기 이야기에. 주부여성들의 꿈-시집'가지' 않고 친정'가고' 싶은-을 가미하여 새로움을 만들어 낸 드라마이다. 이런 드라마이기만 하면, 초호화 스타가 나오지 않아도(괜히 그러면서 연기 못하는 애들은 드라마를 말아먹을 수 있으므로 금물), 해외로케를 하지 않아도,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붓지 않아도, 거대한 서사를 다루지 않아도 2009년(현재) 최고 시청률의 드라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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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9-10-13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지나가다가 몇분씩만 봤는데, 이런 배경이 있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