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비의 컴백 

최근 가수 아이비가 컴백했다. 여러 기사들에서 그녀의 컴백을 두고 왈가왈부하고 있고, 또 그 기사들에는 어김없이 많은 댓글들이 달려있다. 그녀는 2년여 전에 생긴 일로 그 '성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었다. 그리고 돌아온 자신에 대한 세간의 여러 눈을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완전히 뻔뻔해 질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동정심을 호소할 수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찾은 돌파구가, 성녀 이미지를 버린 좀더 적극적인 섹시녀 컨셉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 덧붙여, 인터뷰를 할 때는 "그동안 성숙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나름 '파격'적인 변신을 했고, '성숙'이라는 포장을 했음에도 대중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시원치 않은 듯하다.

그녀에 관한 기사들을 보다가 그녀가 했던 한 인터뷰를 보면서, 참 딱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름 큰 이슈였으니, 나도 대충은 그때의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들었었지만, 사실 그녀가 뭐 크게 잘못했는지를 일단 모르겠다. 양다리를 걸친 게 잘못인가? 물론 두 남자에겐 미안해할 일이겠다. 그러나 양다리를 걸치는 연인보다 더 나쁜 건, 폭력적인 연인이 아닌가? 그녀가 갑자기 떠나려했건, 양다리를 걸쳤건 그건 두 사람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상대방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 놓겠다는 앙심을 품고(나는 동의할 수 없지만, 우리 나라사람들이 하기 좋아하는 표현으로는) '공인'인 연인과의 잠자리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하다니, 누가 더 황당한 것인가? 

2. 복수를 권하는 사회?

그런 꼴을 보다가 문득 <아내의 유혹>이나 <천사의 유혹>이 떠올랐다. 세상에 자신이 받은 상처를 상처를 준 자에게 되돌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다. 용서,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무 문제에 대해서나 복수를 하진 않는다.  

앞에 <막장드라마> 얘기할 때도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그래, 나한테 이런 짓을 하고, 네가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지 두고보겠다."같은 한 서린 마음을 가져볼 뿐 결국엔 그냥 '당하고(?)' 넘어가고, 또 그러다보면 어느날인가엔 그들이 내게 준 상처를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용서하거나 화해하기도 한다. 영화 <애자>에서와 같은 엄마와 딸 사이의 상처와 화해과정. 그런 게 사실 (더 값진) 인생 아닌가? <애자>에서처럼 가족이 아니더라도, <용서>라는 다큐멘터리(SBS)에서처럼 심지어 자신의 자식을 죽인 살인자임에도 용서하기도 하는 훌륭하고 성숙한 인격의 인간들도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회는 받은 대로 돌려준다는 '복수'의식이 들끓고 있는 듯하다. <아내..>, <천사..>의 '유혹' 시리즈는 참으로 가관이다. <천사..>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아내..>의 '남자판'이란다. 참..그걸 내세우며 드라마 홍보를 하다니, 세상은  '복수심'은 들끓는 대신 '수치심'은 많이들 버린듯하다. 문화판 뿐이겠는가. 이 정도가 더 심한 정치판도 있다.  

얘기가 한참 빗나갔는데, 하여간, 복수심때문에 택한 그 상대남의 저열한 행동이 사실 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의 '협박'은 규칙위반이다. 복수를 하더라도, 연인간에, 그런 식의 복수는 정말 치졸한 짓이다.

3. 여성 연예인의 동영상 유포 사건 

여성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동영상 유포 사건에 연루되어 한동안 연예계를 떠나야 했던 연예인들이 처음은 아니다. 그 이전에 두 명의 유명 여성 연예인이 진짜 나쁜 놈들때문에, 정말 황당한 손가락질을 받았다. 손가락질을 하는 자들이여, 왜 손가락질하는가? 어쩌다 손가락질을 하게 됐는가? 아, 그거 보셨군요? 그걸 본 주제에 손가락질이라고? 웃기고들 있다. 

여성들은, 여성연예인들은 연애하면, 섹스하면 안되나? '(그들 식으로 말해)미혼'인데 '혼전관계'를 맺은게 잘못이라서 손가락질하는 건가? -어느 시대 분이세요? 아님, 그녀들의 동영상이 너무 야하고 적나라해서 문제인가?-누가 그거 보랬냐?  너 보라고 찍었는줄 아니? 욕먹어야 할 것들은 그걸 유포한 그 놈들과, 그걸 보고 욕하고 있는 모순된 대중들이다.

근데 그런 황당한 비난에, 그녀들은 울면서 사죄의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한동안 '자숙'하며 지내야 했다.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 그게 우리 나라의 여성연예인에 대한 태도의 실체이다.  

그들에 비하면 아이비 문제는 그렇게까지 비화되진 않았고, 아마, 거기까지 갔더라도, 예전보다는 좀 덜 문제가 됐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조금씩은 변화하니까. 그러나 여전히 여성 연예인들에 대한 대중의 눈은 싸늘하다. 아이비가 이렇게 '굴욕적'으로 컴백해야했던 것처럼. 

  

4.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여성 연예인들이여, 진짜, 당신들 잘못인가? 

동영상 사건뿐 아니라 여성 연예인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거나,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어야 하거나, 아예 연예계를 떠나야 하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아니,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 여성연예인들도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무엇이 그들을 그곳으로 몰아갔는가? 아마 '남성적'이고 '보수적'이고 '이중적'인 대중들의 시선과 그걸 조장하는 언론권력 등이 주범일 것이다. '찌라시기자'들은 그런 '먹잇감'을 절대 놓치는 법이 없고, 그들의 여론조작질에 대중들 역시 폭주해가며 마녀사냥을 해댄다. 그럴때 여성 연예인들은 아직도 울거나, 잠적하거나, 죽는다. 

이젠 그만들 좀 당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받고 있는 비난들 중 많은 부분은 사실 타당하지 않은 것들이다. 비난을 하는 자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아서, 무턱대고 해대는 비난들이 훨씬 많다. 그들 앞에서 당신들은 왜 그렇게 작아지는가? 그러지 말아라. 

그러지 않는 첫 걸음은  묻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난 이 사태에서, 당신은 정말 '죄'를 지었는가? 지금 일어난 일이 '도덕적', '법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잘못'이 맞는가? 특히 '도덕적'이라고 할때는 좀더 깊이 생각해보고 답을 찾자. 남자들이 만든 '유교적 윤리'가 그대로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만인에게 평등하고 공정한 윤리기준에 따른 도덕성의 잣대로서 당신이 잘못한 일인지,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 질서에 따른 유교적 룰에 따른 억압에 의해 비난받고 있을 뿐인지, 정확히 따져보라.

그런 뒤에 필요한 태도는 거짓말하지 않는 것. 자신이 했던 일이라면 솔직하게 말하자.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당신 역시 그들의 잘못된 논리 앞에 굴복하는 꼴이니까. 그걸 오래 끌면 사실이 밝혀졌을 때 '거짓말을 한 게 문제'라는 '가중처벌'만 받는다. 침묵은 괜찮다. 대응할 가치가 없고, 해명할 필요가 없는 당신의 지극히 사적인 문제라면, 그냥 생까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거짓말은 당신에게 불리하다. 

그리고 세번째는 그 '자신이 한 일'이 그들의 비난을 받는게 부당하다면, 당당히 맞서라. 왜 당신들이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그들이 잘못된 눈으로 당신을 보고 있을 뿐인데. 그러면서 오히려 그런 기회에 세상을 바꾸는 데에 힘을 보태자. 편견, 이중잣대, 보수성, 남성성...이것들은 누가됐든 앞장서서 바꿔나가야 하는 이 사회의 '악'이다. 그것을 당신에게 닥친 이 '위기'를 통해 오히려 조금이라도 고쳐나간다면, 당신에게뿐 아니라 나같은 여성들에게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떠한 경우라도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나는 그래서 그 예전의 동영상 유포 사건에 연루되었던 두 여성 연예인이 현재처럼 연예계에서 잘 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무척 뿌듯하다.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던 여성연예인들, 싱글맘인 여성 연예인들, 연애후 결별이나 이혼 등의 문제로 주목을 받았던 여성연예인들, 성상납의 권력구조속의 피해 여성 연예인들, 무차별 악플과 허위소문의 피해자들 등...당신들 모두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고 최진실씨가 굴곡진 삶속에서도 다시 연기대상을 받는 등 자살 전 활발한 활동을 했던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고, 그런만큼 그녀의 자살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5. 여성연예인들이여, 페미니즘을 공부하자. 

나도 여성이고, 여성주의에 나름 관심이 있다고는 하지만, 현실 속에서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일은 사실 말처럼 쉽진 않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투쟁'에는 직접 도움이 안되더라도, '자기를 지키는 일'에는 나름 소용이 된다. 남성들과 싸워 세상을 바꾸는 것? 강남부자들을 강북으로 다 이사가게 만드는 것 못지 않게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페미니즘은, 적어도 내가 당하고 있는 지금의 대우가 '차별적인 것', '부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그러한 차별, 부당한 대우에서 '내사(內射)적'인 여성들, 즉 자신의 잘못으로 환원시키는 여성들에게 "이것은 내 탓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게 해줄 수 있고, 자책감과 자괴감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러므로 맞서 싸우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당신들은 아마도 잘만 한다면 여성부 장관이나 페미니즘 학자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명감'으로 잘못된 세상에 맞서, 당당해진다면, 그건 더더욱 좋은 일이다. 최근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동영상 유포 사건에 연루되었던 그 여성 가수가 여성민우회와 많은 일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그 사건이 일어났을때 여성민우회로부터 사태에 대한 여성주의적 해석과 해결방안을 듣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여성민우회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단다. 이런 게 진짜 멋진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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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11-09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주셨어요. 추천 버튼을 안 누른 게 생각나서 다시 왔답니다.^^

somun 2009-11-09 23:14   좋아요 0 | URL
아, 마노아님, 또 들러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추천도 해주셨다니 더더욱 감사..^^사실 저 글에서 못다룬 이야기도 있는 것 같긴 합니다. 그들은 남성적 시선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또 최대의 '수혜자'이기도 하니까요. 그게 그들의 '굴레', '업보'같은 거겠지요. 그 얘기까지 하기 시작하면 너무 길 것 같아 못했지만, 하여간, 그들이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