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여연대에 걸린 김제동 사인
참여연대 사무실에 처음 갔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좀 생뚱맞게 걸려있는 김제동의 사인지였다.
음식점같은데에 연예인 사인이 걸려있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참여연대 사무실에 연예인 사인이라니.
그게 생뚱맞아 보이지 않으려면, 좀 많은 연예인의 사인지가 걸려있었어야 한다.
그런데 다른 건 없었다. 달랑 그의 사인이 하나.
그가 어떤 정도로, 어떤 이유로 그곳과 인연을 맺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걸린 그 사인지는, 생뚱맞으면서도 동시에, 참 그.답.다.
2. 정치하는 개그맨?
'그답다'는 이유는 뭐 열심히 설명하지 않아도 요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그가 스타골든벨 MC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을 가지고
정치적 외압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약 50%나 된다는 것 만으로도
그의 행보가 정치판의 눈에 '거슬릴' 여지가 있는 일이었다는 점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는 노무현을 추모하고, 진보신당 일에 참여하며,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를 다니고, 참여연대에 사인지를 남기는, 그런 사람이다.
여당과 정부 입장에서 곱게 보이지 않을 '짓'을 자-꾸 하고 다니니,
스타골든벨 하차문제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3. 스타골든벨 하차, 정치적이거나 말거나
그런데 50% 조금 못미치는 숫자의 사람들이'나'
그의 하차를 정치적 '보복'으로 보는 거라 할 수도 있지만,
사실, '겨우' 50%도 안되는 사람들만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왜 나머지 50%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건...설문응답자의 정치적 입장이 친이, 친여적이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가 사실 '한 물 간'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최근 여러 프로그램에서 제 자리를 못잡고 있었다.
'야심만만-예능선수촌'에서도 하차했고, '노다지'도 곧 폐지된단다.
그 이전에도 '연예가중계', '간다투어' 등의 프로그램이라든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프로그램들 속에
그가 진행자로 끼어 있었던 적이 여러번이다.
거기다 그는 사실 밖에 나가서는 그런 '좌파'적 행보를 함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 내에서는 거의 전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스타골든벨의 하차가 단지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그냥 신선미가 떨어져서, 한물 가서 바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방송계 내에서 '위기', '하락세'의 상황이었다.
물론 그가 스타골든벨에서 하차되는 거, 무척 불쾌한 일이지만,
그 사실에 대한 섭섭함은 손석희의 <100분토론> 하차설에 비하면 그렇게 섭섭한 일은 아니다.
스타골든벨이 그렇게 훌륭한 프로그램도 아니고, 이제 매너리즘에 빠질 만큼 빠졌고
김제동의 자질과 매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포맷도 별로 아니다.(물론 본인 입장에선 섭섭하겠지만)
그래서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오마이텐트>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고난 뒤에는
그깟 스타골든벨, 하차하거나 말거나...란 마음으로 확 바뀌었다.
스타골든벨보다 후어얼씬 그에게 잘 맞는 프로그램, '오마이텐트'를 그가 만났기 때문.

4. 김제동을 위한 프로그램, <오마이 텐트>
(어떤 블로그에 이번 편의 내용을 착실히 소개해 놨길래 링크한다.
http://blog.naver.com/yyetm?Redirect=Log&logNo=120092675059)
이 프로그램은 '여행(캠핑)'과 '토크'가 함께 있는 포맷인 듯 하다.
여행?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를 벤치마킹한거? 아니다.
물론 연예인들이 여행을 떠나 자신들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같은 포맷일테지만
<오마이텐트>는, 한번 보고 속단할 순 없겠지만, '리얼'은 맞는데 '버라이어티'는 아닌 것 같다.
이 프로그램엔 쓸데없는 연예인들의 게임대결도 없고, 화려한 개인기 자랑도 없다.
첫회는 앞으로의 진행자가 될 김제동이 김제동과 떠나는 여행, 즉 혼자 출연했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출연자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 성격이 바뀔 수도 있을 테지만,
김제동의 성격이나, 첫회를 편집, 구성한 방식으로 보았을때
'버라이어티'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지향하고 있는 듯 하다.
김제동은 본인 입으로 말했듯, 쓸데없이 진지하다.
개그맨 되기는 진작에 포기한 것 같고, 진행자로서도 좀 재미가 없는 편이다.
거기다 생각이 너무 많다는 것. 그는 아마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만을 해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한심한 생활(등산+난 기르기)을 하는 걸 보고
주위 친구들이 '벌써부터 명퇴자처럼 사냐?'란 소리를 들었단 말을 해놓고
'아...이것도 명예퇴직하신 어르신들에게 누가 되는 소린 아닌지...'란 걱정을 곱씹고,
자신의 노랫소리가 너무 구슬퍼서 학교 다닐때 음악시간에 <그리운 금강산>을 가창시험보다가
선생님이 '너, 실향민이냐?'란 말을 들었단 소리를 해놓고도
'실향민들께 누가 되는 소리..'일까 고민한다.
그러니, 초스피드와 강공으로 치고 나가야 살아남는 요즘과 같은 방송프로그램의 포맷들 속에서
그가 무슨 말을, 얼마나 할 수 있었겠는가?
고민하는 사이에 타이밍을 놓치고, 저런 고민들로 주저하는 사이에 분위기만 썰렁해진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는 '좋은 사람'이지만, 유재석만큼 '유능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유재석은 몸에 밴 '정치적 올바름'이 있다. 그래서 그는 리얼버라이어티 진행자로는 최상이다.
그는 재치있고 순발력있게 치고 나가 자기 멘트를 던지지만
그가 구설수에 한번도 오른 적이 없다는 것. 그게 그의 능력을 말해준다.
유재석은 고민하지 않아도 나쁜 말을 안하고, 거기다 재미있기까지 한 것이다.
반면에 김제동은 나쁜 말은 안하지만, 좀 늦고, 덜 재미있다.
요즘처럼 집단MC체제가 대세를 이루는 분위기에선 그러니 살아남기 힘들다.
누구도 그가 바르고도 재미있는 말을 잘 골라내어 할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거기다 그의 진지함은, 재미만을 위해 내면 없이 막말을 던져대는 다른 MC들 사이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는 애' 취급만 받는다.
따라서 그런 그에겐 누군가와 같이 MC를 보는 프로그램은 잘 안맞는다.
여러명이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자기가 얘기할 기회가 명시적으로 배분되어있는 프로그램일 경우에만 살아남는다.
<스타골든벨>이나, <환상의 짝꿍>처럼 말이다.
그리고 일반인들과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더 잘 맞는다.
그는 진솔하고,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마주치면
참 정감가는 인간적 모습을 보여 보는 사람들을 훈훈하게 한다.
거기다 그는 다른 '튀는' 연예인들보단 덜 웃기지만, 일반인들보다는 확실히 더 웃긴다.
그래서 일반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따뜻함과 웃음, 뿐 아니라 감동과 눈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유재석보다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오 마이 텐트>에서 그가 장에서 만난 할머니들이라든가 다른 캠퍼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던 장면들은 요절복통할 웃음은 없어도 계속 비실비실 웃게 만들었다.
보는 1시간 내내 흐뭇했다.
5. <강심장>과 <오마이 텐트>
<오마이텐트>를 보며 최근 시작한 <강심장>이 생각났다.
강호동의 최초 본격 토크쇼로 홍보된 <강심장>은, 앞으로 둘 중 하나의 길을 갈 것이다.
하나는 프로그램의 조기 폐지, 하나는 포맷의 전면 수정.
난 강호동이 언젠가 이런 자기 이름을 건 토크쇼를 할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무릎팍 도사>의 포맷과 비슷할 줄 알았다.
지금으로선 전혀 생각도 못했을 만큼 너무 산만하고, 매우 진부하다.
토크 배틀의 형태로 서로 '독한' 얘기를 쏟아내는 포맷, <서세원쇼>나 <예능선수촌>에서
이미 할 만큼 해먹었던 것이고,
이 프로그램의 타겟 시청자를 누구로 삼았는지 알기 힘들게 무질서하고 많은 출연진
특히 아이돌 그룹 스타들을 무더기로 데려다가 홍보장소로 삼는 '노골성'
거기다, 결정적으로 그 프로그램 안에는 '강.호.동.이. 없.다.'
오히려 이승기가 선전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승기는 순간순간 반응하고 상황에 맞는 똘똘한 멘트를 치지만,
강호동은 무대포식으로 출연자들에게 무언가를 추궁하거나, 억지로 무언가를 시킨다.
그것 외엔 그는 하는 일이 없다.
그 프로그램은(사실 다 합쳐서 30분 봤을까? 계속 보고 있기 힘든 프로그램이다)
어떤 프로그램인지 궁금해서 잠깐 틀었다가 보고 있는 내내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 프로그램의 산만함과 불필요한 화려함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어쩌자고 그런 시대착오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혹시 <박중훈쇼>를 '과도하게' 반면교사로 삼았나?
진지하고 조용한 토크쇼는 이제 안먹힌다는?
좀 딴 얘기지만, <박중훈쇼>가 망한 이유는 진지해서가 아니다. '가짜'여서지.
그 쇼는 하나도 진정성이 안느껴졌다. 앵무새같은 진행자와 역시 앵무새 내지 철면피같은 초대손님.
우리는 그들의 '연극', 식상할 대로 식상한 '질문과 답변'을 보고 있는 게 싫어서
그 프로그램을 외면했던 것이지, 조용해서나 진지해서가 아니다.
나는, <박중훈쇼>의 진지하고 차분한 쇼라는 처음 시도는 매우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에 없었던 진솔함, 진정성, 리얼-
그걸 찾아 줄 프로그램이 이제서야 탄생한 것이다. <오 마이 텐트>
그리고 그걸 맡기에 적격인 김제동이라는 진행자까지.
6. 삼림욕 같은 토크+(다큐)멘터리
지끈거리는 TV속 쇼프로그램들의 홍수에서 벗어나
삼림욕을 하듯 마음이 맑아지는 프로그램이었다.
앞으로 어떤 초대손님들과 계속 이런 '정화'의 느낌을 만들어갈지 기대된다.
이 프로그램은 분명 잘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사실, 많이 지쳐있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가끔은 잔잔한 웃음과 위로를 받고 싶다.
그런 마음을 달래주기에 '토크'+'(다큐)멘터리' <오마이텐트>는 좋은 포맷을 갖췄다.
김제동이여, 이제 스타골든벨은 잊어라.
당신을 위한, 당신에 의한, 당신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혹, 이번에도 잘 안되더라도,
부디, 용기 잃지 말고, 오래오래, 당신만의 '착한' 색깔로,
당신의 자리를 구축해나가길,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