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프라 ff 시리즈 7
조르주 상드 지음, 정희경 옮김 / 꿈꾼문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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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과 연애, 결혼, 이상적인 사회 모습이 이 작품 안에 다 담겨 있다. 연애에 관한 어떤 부분은 오늘날 관점으로도 파격적이다. 이 작품을 읽는다면 상드를 그저 ‘누구의 연인’ 정도로 생각하는 일을 멈추게 될 것이다. 작가이자 사상가로서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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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2-0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이거 낚시...인 거 같은데 알고도 걸리면 아놔....

잠자냥 2021-02-08 14:11   좋아요 0 | URL
월척이다~~! ㅋㅋ
 
로스트 레이디
윌라 캐더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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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잊기 어려운 시절이 있다. 순수하고 밝은, 찬란하게 빛나서 좀처럼 잊기 어려운 그런 시절. 그러나 대개 그런 시절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어떻게든 빛이 바래고 어두운 색으로 물들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주 잠깐일지라도 자기에게 주어졌던 그 찬란한 시절을, 순간을 기억 속에 담고 살아간다. 다시 돌아오지 못해 더 안타까운 그 아름다운 순간을……. 열두 살 소년 에게도 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다. ‘포레스터 부인을 처음 본 그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포레스터 부인과 함께 아무런 걱정 없이 환하게 웃고 떠들던 날들이었을까? 아니면 포레스터 부인으로 말미암아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던 그 모든 날들까지일까? <로스트 레이디>는 한 소년의 첫사랑이었던 어느 여성의 삶을 따라가면서 잃어버린 시절의 아름다움과 그 쓸쓸함을 그려나간다.

 

서부 개척시대가 끝날 무렵 네브래스카의 작은 마을 스위트워터’-이곳에는 지나가는 이들을 융숭하게 대접하며 환대하는 것으로 유명한 특별한 집이 있다. 모두가 포레스터 플레이스라고 부른 그 집은 사실 전혀 특출 나지 않다. 오히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이 집을 실제보다 웅장하고 아름다워 보이게 만들었다. 철도 건설업자로 부를 쌓은 대니얼 포레스터 대령과 그의 아내 포레스터 부인이 그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들이다. 일 년 중 몇 달밖에 이곳에서 지내지 않는데도, 그들 부부는 이곳에 머무는 손님들을 환대하며 특별한 인상을 심어주었고, 특히 포레스터 부인은 자신들의 사유지에 무단으로 들어와 노는 동네 소년들에게도 너그럽기 짝이 없다. 그런 소년들 중 하나였던 닐은 포레스터 부인을 흠모하고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이 대령 부부와 좀 더 가깝게 지내게 된다.

 

엄마 나이뻘 여성을 흠모하는 것일까 싶은데, 사실 포레스터 부인은 대령보다 스물다섯 살이나 어리다. 대령이 재혼한 두 번째 아내로, 오히려 이 십대 소년들과 가까운 나이이다. 그렇기에 포레스터 부인, 메리언은 이 소년들과 허물없이 지내며 그녀가 가진 우아함, 화사함, 젊음, 따스함, 발랄함 등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발산하고, 닐과 같은 소년들은 귀부인답지 않게 자기들을 허물없이 대하는 그녀를 남다른 존재로 받아들이고, 얼마쯤은 우상처럼 받든다.

 

부유하면서도 강직한 마음을 지닌 포레스터 대령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는 인물이다. 자신의 두 번째 아내를 아가씨라 부르며 귀여워하고, 나름 존중하며 사랑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아무래도 쉽게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스물다섯 나이 차이가 그렇다. 서부 개척시대, 스위트워터가 유망한 타운이던 시절에는 이 저택에서 파티가 곧잘 열렸고, 그런 파티에서 메리언은 주위의 찬사를 받으며 파티의 주인공으로 눈부신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이런 생활은 오래 가지 못한다. 세상은 변하고 나이든 대령도 그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해 가는 닐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그려진다.

 

닐에게 메리언은 첫사랑이자 자기 인생의 아름다운 시절 그 전부였다. 그러나 닐이 메리언을 처음 본 것은 열두 살 때로, 이 어린 소년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가 분명 존재한다. 닐뿐만이 아니라 대령과 대령의 집을 찾아오는 중년 남성들에게 아름다운 꽃과 같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여겨진 포레스터 부인은, 그들의 생각, 아니 기대처럼 불멸하는 예술작품이 아니다. 살아 숨 쉬고 욕망하고 꿈꾸고, 때로는 그 욕망 때문에 부서지는 인간이다. 때문에 당연히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메리언이 지닌 결함은 그녀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녀의 욕망은 어쩔 수 없이 소년 닐을 비롯해, 남편인 포레스터 대령을 상처 줄 수밖에 없다. 사실 닐이 좋아하는 메리언의 모습은 포레스터 대령의 아내일 때가 많다. 닐은 대령의 아내로서 그녀에게 가장 큰 흥미를 느꼈으며 남편과의 관계에 비추어 본 그녀의 모습을 가장 흠모한다(93). 그러나 메리언은 스물다섯이나 많은 남편과 사는 젊고 발랄한 여성으로, 네브래스카에서의 삶을 좌초된 삶이라고 부른다. 포레스터 대령이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 여행을 떠나지 못하게 되고, 스위트워터에 내내 머무는 신세가 되었을 때 메리언은 절망한다. “내년 겨울에도 내후년 겨울에도 계속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해 봐! 내가 어떻게 되겠니, ?”하고 묻는 메리언의 목소리에는 공포가, 두려움이 배어 있다. 이곳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그녀는 스케이트를 타지 않는다. 콜로라도스프링스에서 끊임없이 열리는 댄스파티에서 겨울에도 늘 춤을 췄다. “난 여든 살이 될 때까지 춤출 거야. 왈츠를 추는 할머니가 될 거라고!”(92) 외치는 메리언에게 대령과 그와 함께 보내는 네브라스카에서의 삶은 좌초가 아닌 절망 그 자체일 것이다.

 

닐은 성장하고, 메리언은 나이 들어간다. 서부 개척시대 끝자락, 닐이 본 것은 이미 찬란한 빛을 소진한 황혼의 여운’(193)이다. 대령의 몰락과 함께 메리언은 스스로 살아남고자 안간힘을 쓴다. 닐이 사랑했으나 좀처럼 이해할 수는 없었던 여인 메리언은 자기 안에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직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에 그걸 되찾고자, 그것 때문에 이 구덩이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그런데 그 방법은 닐이 사랑했던 그녀의 모습과 많이, 너무도 많이 어긋나 있기에 닐은 상처받고 당혹해한다. 그런 메리언의 모습을 보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하나를 잃었다고, 이슬이 미처 마르기도 전에 아침이 망가졌다고,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모든 아침도 망가졌다고 그는 씁쓸하게 되뇐다. “썩은 백합은 잡초보다 악취가 역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메리언이 썩은 백합인지, 잘못 이식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고자 온갖 방법으로 애를 쓴 강인한 잡초였는지 판단하는 것은 이 책을 읽는 이의 몫이리라.

 

<로스트 레이디>에서는 닐과 포레스터 부인의 이야기 외에 뜻밖으로 묘한 감동을 주는 인물들이 있다. 닐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메리언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존재로 여겨진 포레스터 대령의 인간다운 면모(특히 마지막 후반부에 밝혀지는), 소년들 가운데 제 나름으로 포레스터 부인에게 존경심과 충성심을 표현한 그 인물이 그렇다. 특히 끝부분에 장례식에 참석하지는 못해도 풍성한 노랑 장미를 갖고 온 그 소년. 온종일 창백한 얼굴로 침착함을 유지하던 포레스터 부인이 그 꽃다발을 보고는 와르르 무너졌듯이 나 또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그 옛날 메리언의 비밀을 목격하고도 침묵을 지켰던 소년이 아니었던가. 아마도 그 소년에게도 포레스터 부인과 포레스터 대령은 삶에서 꽃처럼 피어난 존경심과 충성심을 바칠 드문 사람들이었을 테고, 그는 그것을 제 나름대로 지켜간 것이었으리라. 언젠가 꽃은 시들고, 그 아름다운 모습도 향기도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지라도, 아침에만 느낄 수 있는 꽃의 신선함처럼 영영 사라질 지라도 마음속으로는 그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박제해 두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닐이 눈부신 나날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전부 사라졌다고 회한에 찬 말을 하더라도, 한때 그가 사랑했던, 매혹 당했던 우아함, 다채로움, 사랑스러운 목소리, 검은 눈동자 속에서 빛나던 즐거움과 환상. 이 모든 것들은 영원히 잊히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마음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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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2-0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달에 살까말까 망설였는데...

도서관에 신착도서로 누군가 신청해
두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순서를 기
다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빨랑 만나 보고 싶습니다.

잠자냥 2021-02-02 14:08   좋아요 0 | URL
윌라 캐더 <우리 중 하나>를 사 읽어보려던 참에, 폴스타프 님의 리뷰(번역 관련) 읽고 그 책은 안 읽기로 했거든요. 그러던 중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레샥매냐 님께 빨리 순서가 오길~ ㅎㅎ

단발머리 2021-02-02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근사한대요. 잠자냥님 리뷰 읽고 나니까 마음이 막 조급해지네요.
사실, <티끝 같은 나> 대기하고 있거든요. 잠자냥님과 공쟝쟝님의 그러니까, 잠자쟝님들의 2020 최고의 책이요.
이거 읽어야 다음책 읽는데, 우아! 포레스터 부인, 저도 만나고 싶어요 @@

잠자냥 2021-02-02 14:11   좋아요 1 | URL
하지만 그러나 저는 <티끌 같은 나>부터 읽으시라고 하고 싶습니닷!! 잠자쟝들의 최고의 책!

다락방 2021-02-02 14:20   좋아요 0 | URL
단발님 일단 티끌 같은 나 먼저 읽으세요. 왜냐하면 저 아직 이 책 안샀으니까, 이건 제가 책을 산 다음에...(왜?)

잠자냥 2021-02-02 14:23   좋아요 0 | URL
그럼 단발머리 님은 3월 이후에 이 책을 사셔야 하네요. 또르르.. T.T

다락방 2021-02-02 14:25   좋아요 0 | URL
그건...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흠흠..

잠자냥 2021-02-02 14:26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 망설이는 동안에 <그녀들의 이야기> 절판 됐어요!!!! 아니, 작년에 나온 책이 이게 무슨 일이지?? 판권 때문인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0539628

단발머리 2021-02-02 14:37   좋아요 0 | URL
어머나 이를 어째 ㅠㅠㅠ
일단 저는 티끌부터 시작해야할텐데요🥺

유부만두 2021-02-02 18:2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맘이 막 급해져요. 아, 내가 정말 서재 끊든지 해야지, ...

Falstaff 2021-02-0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달 말이나 담 달 초에 예정 잡혀 있는 책이라, 내용은 걍 휘리릭 날려 읽고 마지막 문단은 잘 읽었습니다.
캐더 책들에서 볼 수 있는 선량하고 곧은 사람들 이야기인 것 같아 안심이 되는군요.
아, 난 울면 안 되는데.... ㅋㅋㅋㅋ

잠자냥 2021-02-02 15:19   좋아요 0 | URL
그럼요, 읽을 책은 줄거리 휘리릭~ 넘어가는 게 현명하지요.
네, 딱히 악한 인물은 없다고 봅니다. ㅎㅎ

blanca 2021-02-02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너무너무 좋죠! 잠자냥님, 헉 저는 대충 읽었나 봐요. 그 비밀 지켜줬던 소년이랑 마지막에 부인 죽음 전달해 준 사람이 동일인이군요!! 세상에나...

아, 윌라 캐더 너무 좋아요. 지금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대기중이랍니다. 잘 읽고 갑니다.

2021-02-02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2-02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자냥 님, 리뷰 읽으니 핏츠제럴드 생각이 너무 나네요. 그의 단편 중에 <겨울 꿈> 이요. 그 단편이 너무 겹쳐져요!!

잠자냥 2021-02-02 23:07   좋아요 1 | URL
오, 놀라우신 분! 안 그래도 이 작품을 읽고 피츠제럴드가 윌라 캐더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아무래도 자기 작품이 당신의 작품 몇몇 구절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거 같다, 표절처럼 보일 거 같아서 설명하려고 한다 뭐 그런 편지요. 윌라 캐더는 너그러운 답장을 보냈는데 이 책 말미에 그 둘이 주고받은 편지도 실려 있습니다. ㅎㅎ

다락방 2021-02-03 05:47   좋아요 0 | URL
그 단편에 그런 문장 나오거든요. ‘꿈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 문장이 완전 겹쳐요!!

2021-02-10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0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6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16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스트 레이디
윌라 캐더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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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화려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그래서 오래 갈 수 없었던 시절, 또는 그런 그 무엇에 관한 이야기. 책장을 덮고서도 한동안 아련하고 쓸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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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1-31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2월에 책 안살건데요..🥺🥺🥺🥺

잠자냥 2021-01-31 22:49   좋아요 0 | URL
3월에 사요~ ㅎㅎ
 
노멀 피플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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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수록 짜증나는 작품은 또 오랜만이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도 아니고 서로 마음 확인하는 데 그렇게 돌아가야 하는지. 사랑이 서로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코넬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는데 메리앤에게 남은 건? 그저 평범한 사람되기? 결말도 짜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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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1-31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면에서 짜증났었어요 ㅠㅜㅜ

잠자냥 2021-01-31 09:59   좋아요 0 | URL
하 진짜 책 다 읽고 너무 울화통 ㅜㅜ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
한나 렌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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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내 생각대로 다스릴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고통도 상처도 받지 않는다면, 이 세계에 모든 불화와 다툼, 전쟁이 사라진다면 그런 ‘매끄러운 세계’는 정말 행복하기만 할까? 한나 렌의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첫 문장부터 아리송하다. “찌는 듯한 더위에 잠이 깨, 커튼을 열고 창밖으로 눈 풍경을 바라보았다”라는 이상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고생 ‘하즈키’는 등교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아버지와 함께 아침을 먹는다. 그런데 집을 나서는 하즈키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오늘 아버지 기일이니까 일찍 들어와.” 그제야 하즈키는 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지 벌써 4년 지났지 한다. 대체 무슨 소리야? 이 아이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나? 현실과 꿈이 뒤섞인 세계인가? 알쏭달쏭하기만 한데, 하즈키가 학교로 가는 길은 더 가관이다. 30도 가까운 열기에 달궈진 아스팔트인데 벚꽃이 흐드러지고, 중간부터는 길가의 철 이른 낙엽이 바스락거리고, 얼어붙은 수면이 공존하는 세계. 수업 중 창 밖을 보니 더운데 눈이 내리고 있다. 기상이변인가?

아, 이곳은 무한한 평행 세계를 의식만으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승각’이라는 독자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무한대 현실’에서 마음에 드는 현실을 선택해 넘나들 수 있다. “할아버지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묻고 싶은 얘기가 아직 남았어. 할아버지가 살아 계신 현실로 가자.” 라는 대화가 당연하다는 듯이 오가며, 회피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즉시 다른 시공간의 자신에게로 옮겨갈 수 있다. 팔다리를 다치든. 시각이나 청각, 혹여 가족을 잃어도, 이곳에선 사는 세계를 슬쩍 바꾸면 그만이다. 괴로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고, 돌아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즈키가 죽은 아버지와 아침상을 즐겁게 함께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지 않은 세계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 ‘매끄러운 세계’ 사람들은 모두 절대적인 이상향에서 살고 있다. 고통이나 슬픔을 느껴도 그것들이 없애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실제로도 언제든 그 가능성을 이룰 수 있다.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받는 현실로 가면 되고, 영원한 생명을 원하면 그것을 이룬 현실로 옮겨가면 된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매끄러운 세계’에도 ‘적’은 있다. 하즈키의 학교로 전학 온 ‘마코토’는 매끄러운 세계에 사는 여느 사람들과 달리 반항적이면서도 부정적인 기운을 내뿜는다. 분명히 하즈키와 어린 시절 친구였는데 마코토는 싸늘하게 모르는 척, 냉정하기만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알고 보니 마코토는 사고를 당해 다른 ‘일반인’들과는 달리, 오직 하나의 현실만을 평생 살아가야만 하는 ‘승각장애’를 갖게 되었다. 이 장애가 있으면 모든 도망이 불가능하다. 승각장애자의 세계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확률이 낮은 어떤 가능성이 실현된 현실을 인식할 수 없기에 한 여름에 눈을 보기 어렵고 벽을 통과하는 일은 말도 안 된다. 지금까지 그런 능력이 있었던 인간에게는 괴로운 일일 것이다. 하즈키는 그제야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이 평화로운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잔인하기 짝이 없을 수 있음을.

‘인생에 옆길도 샛길도 없다’는 승각장애를 지닌 마코토에게는 또 하나의 엄청난 공포가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내가 있는 쪽으로 가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 전에는 평범한 이 세계의 일원이었던 마코토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유한한 생명도 유한한 가능성도 아니다. 자신들을 계속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다는, 아마도 이 세계의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현실이다. “달리기도 인생도 이젠 나 혼자 해쳐나갈 생각이야. 나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니까.”(52쪽)이라는 마코토의 말은 그래서 애잔하다. 이 절대고독에 놓인 마코토를 위해 손을 내민 하즈키는 과연 마코토를 구원할 수 있을까?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과 <홀리 아이언 메이든>은 인간의 감정을 조작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린다. <미아하에게 건네는 권총>의 세계에서는 뇌 조작을 통해 인간에게 불멸의 사랑을 선사한다. 이곳에서는 언젠가 서로 사랑이 식어갈 것을 두려워하는 커플이 영원한 사랑을 위해 임플랜트로 자신들의 감정을 조정할 수 있다. 특정 인간을 영원히 사랑하기 위한 장치인 총 ‘웨딩나이프’의 발명으로, 과학은 흔들림 없는 사랑, 불멸의 사랑을 인간에게 선사한다. 배우자에 대한 사랑, 자식, 이웃에 대한 사랑 등등 반응 회로는 다양하다. 이 기술의 응용으로 인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이 깃든 가슴으로 마주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결혼을 앞둔 사람들은 너도나도 이 웨딩나이프로 서로에게 총을 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영원한 사랑을 거부하는 이는 동반자로 선택할 수 없다’는 사상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다. 만일 이런 총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떨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이 총을 쏠까? 나도 총에 맞기를 주저하지 않을까? 그렇게 뇌 조작을 통해 박제화한 사랑, 감정은 진짜 감정일까?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사랑의 화살을 쏘는 큐피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으면 누구나 눈앞의 상대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 사랑은 진짜 감정일까? 조작된 감정은 아닐까? 사랑이라는 감정에는 질투나 의심, 권태 등등의 부정적인 감정도 따르기 마련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랑이 계속 유지되든지, 아니면 끝나든지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웨딩나이프’는 애정의 방향을 영원히 식지 않는 한 방향으로만 고정시킴으로써 다른 감정이 생겨날 가능성, 그런 인격들을 사전에 모두 차단한다. 이 사랑을 과연 진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홀리 아이언 메이든>의 세계에서는 한 번 포옹만으로 증오와 미움을 가진 사람들도 모두 올바른 심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 포옹을 받고 올바른 심성을 가진 인간이 된다하더라도 그 올바름이 과연 나 자신의 것일까? 게다가 자기가 가진 힘으로 다른 이의 마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래서 세계의 대부분을 나에게 찬동하는 올바른 마음을 지닌 사람들로 만들 수 있다면 과연 나는 그런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까?

마지막 작품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는 우리나라 독자라면 쉽게 읽어 넘기기 어려울 작품인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즐겁게 읽어나가다가 마지막 작품에서는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았다. 한 고등학교 졸업식 장면이 그려진다. 그런데 그해 졸업생은 이상하게도 단 두 사람뿐이다. 기노카미 사립 고등학교 제47기 학생들은 3년 전 4학급 117명으로 입학했는데, 오늘 1학급 2명으로 졸업식을 치르는 것이다. 이때부터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러다가 “47기 졸업생 여러분을 엄습한 것은 역사상 초유의 재해였습니다. 거기에 휘말리지 않은 두 학생도, 학부모 여러분도 아직 받아들이기 힘드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루하루 세월은 흐르고 있지만 여러분의 마음은 여전히 그날에 갇힌 채 시간이 멈춰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부디 우리 어른들이 결코 잊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라는 졸업식 축사에서는 그만 울컥해진다.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졸업생석에 앉을 예정이었던 친구들 2학년 D반, 115명은 끝내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체 이 고등학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역사상 초유의 재해’란 무엇일까?

모든 학생들은 현재, 인솔 교사와 함께 수학여행을 갔던 도쿄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최근 600 여 일 동안’이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그들은 아직도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신칸센이 갑자기 멈춰버렸다. 열차만 멈춘 것이 아니라 그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도, 열차가 멈춘 순간 하던 동작 그대로 모두가 멈췄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다가 멈춘 아이, 게임을 하다가 멈춘 아이, 웃다가 그대로 멈춘 아이 등등. 이 기묘한 사건을 조사하다가 사람들은 신칸센이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열차 안에서도 시간은 흐른다. 열차가 움직이기는 한다. 다만 열차 안의 시간이 1초 경과하는데, 밖의 시간으로 약 2600만초가 필요하다. 그 안의 시간은 밖의 시간의 약 2600만 분의 1로 열차 안의 인간은 그 속도로 생각하고, 숨 쉬고, 땀 흘리며 평상시처럼 살아간다. 열차의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결론적으로 이 열차는 다음 정차역인 나고야 역에 반드시 도착한다. 서기 4700년 무렵에.

그러니까 그날, 수학여행을 떠나지 못한 다른 두 명의 학생이 사건이 발생한지 600여 일이 지나, 졸업식을 하기에 이르렀을 때도 그 열차 속 아이들은 아주아주 느리게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나라에서는 신칸센을 움직여 보려고 온갖 수를 다 써보지만 열차는 꿈쩍도 하지 않고, 열차 유리창을 깨고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세월은 흘러 졸업식을 치른 두 학생은 어른으로 자라, 사회인이 되어간다. 언론과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았다가, 제 나름대로 ‘소비’하고 그러다가 점점 잊어간다. 이제는 국가 공무원들이 이 열차가 그간 얼마나 움직였는지 그 너무도 미진한 속도를 형식적으로 기록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가족들, 나라에서 ‘유족’이라고 부르는 그들은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아이들은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돌아오더라도 가족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일 텐데. 이 기다림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빛보다 빠르게, 느리게>는 저속화된 신칸센을 가정하고 이를 둘러싼 두 가지 의문, 왜 두 학생은 저속화된 신칸센에 탑승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저속화된 신칸센에 갇힌 사람들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지를 풀어나간다.

《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감정도, 현실도 마음대로 통제해서 평화롭고 행복하게만 살아갈 수 있는 너무나 매끄러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나 그곳에는 당연하게도 그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또는 스스로 거부하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싸우고, 자기가 처한 조건을 제 자신이 지배하려고 애쓴다. 설령 그로 인해 더 나쁜 소멸의 길을 거치게 된다 하더라도 그 또한 인간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행동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 행동의 동기는 ‘나의 행복’이 아닌 ‘너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물론 그건 결국 나의 진정한 행복을 찾는 길이 된다. 사실《매끄러운 세계와 그 적들》은 여러 의미에서 내게는 가까이 하기 먼 당신이었다. 나는 SF라는 장르를 그리 즐기지도 않고, 이 책은 표지가 전하는 느낌도, 현대 일본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도, 심지어 정세랑이나 천선란의 극찬에 가까운 추천사도 내게는 전혀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한번 읽어보고 싶었고, 읽기를 마친 지금은, 그 모든 ‘편견’에 가까운 꺼려지는 이유들을 제쳐두고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SF는 현실 세계를 빗대어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은 어떤 세계인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하곤 하는데, 이 책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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