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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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와 쓰기에 관한 르 귄의 깊고도 너른 사유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르 귄은 책 읽기는 끊임없이 지속될 거라고 말하며 읽기 중독자들을 위로한다. 그러면서 더 읽으라고 강렬하게 유혹한다. 장담하건대, 이 책을 읽으면 언급된 모든 책들이 읽고 싶어서 장바구니가 터져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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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2-14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지갑도 터제버리겠어요. 어슐러 르 귄은 꼭 읽어야겠다 생각만하고 못 읽고 있는데 이 책부터 볼까요? 잠자냥님은 자기만의 독서 취향이 있네요. 개성 뚜렷^^

잠자냥 2021-02-14 18:00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설날 생긴 돈 여기 나온 책 사느라 다 털릴 판이에요. ㅎㅎㅎ

mini74 2021-02-14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ㅠㅠ 포스가 !! 아 저도 어릴 때처럼 세뱃돈 받고 싶습니다 ㅠㅠ

잠자냥 2021-02-15 00:25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렇죠? 제목부터 읽고 싶게 만드는 책!
 
베르가모의 페스트 외 - 옌스 페테르 야콥센 중단편 전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49
옌스 페테르 야콥센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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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일 야콥센의 《베르가모의 페스트 외》 표지 디자인을 했다면, 해골 이미지와 함께 이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보다는 <푄스 부인>이나 <모겐스>를 표제작으로 내세우고, 그에 따라서 표지도 서정적 아름다움이 느껴지게 만들었을 듯하다. 물론 이 책은 코로나 시국으로 카뮈의 <페스트>가 잘 팔리는 때 출간되었으므로, 시기상 페스트를 전면에 내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야콥센을 단지 페스트와 관련한 작품을 쓴 작가로 알리고 말기에는 왠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야콥센을 반드시 읽으라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책은 두 권입니다. 하나는 성경이고, 또 하나는 야콥센의 작품집입니다. 그를 읽으면 하나의 세계가, 세계가 지닌 행복과 부와 파악할 수 없는 위대함이 그대 머리 위로 떨어질 것입니다. 한동안 그 세계에 머물며 배우도록 하십시오. 무엇보다 그 책들을 사랑하십시오. 당신이 그에게 준 사랑이 어떠한 것이든, 그 사랑은 수천 배의 보답을 받을 것입니다.’ 릴케가 이렇게 말하게 된 배경에 <베르가모의 페스트>가 크게 영향을 끼쳤을 것 같지는 않다. <모겐스>처럼 서정적인 작품 때문이 아닐까.

<베르가모의 페스트>는 페스트가 창궐하는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독자들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상황이 그려진다. 페스트가 처음 발발하자 자신들에게 페스트를 옮겼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낯선 인간을 보면 바로 돌을 던져 마을에서 쫓아내거나 미친개처럼 인정사정없이 몽둥이를 휘두른다. 이 모든 게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라고 굳게 믿으면서.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고 마을에 갇히게 된 사람들은 그래도 처음에는 하나로 뭉치고 화합한다. 죽은 사람이 나오면 예를 갖춰 묻고, 건강한 연기가 골목 곳곳으로 퍼질 수 있도록 날마다 장터와 광장에 장작을 높이 쌓아 놓고 태운다. 페스트를 막는 데 효과가 있다는 솔잎과 식초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그러나 병이 나날이 기세를 드높이며 도시를 장악해 가자, 공포는 광기로 변하고 예전의 평화로운 질서와 정의로운 통치는 사라진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은 날마다 교회를 찾아가 신께 기도드린다. 그러나 응답이 없는 신. 인간들은 이제 자포자기 속에 오늘을 즐기고 방탕한 생활에 빠진다. 신을 향한 모독이 판치고, 주술과 미신에 기대 병을 물리치고자 한다. 이제 사람들은 누군가를 동정하지도, 연민을 느끼지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참회자의 행렬이 도시에 찾아온다. 이 참회자의 행렬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베르가모의 페스트>는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그 결말은 조금 뜻밖이다. 이 결말 때문에 나는 야콥센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작품인 <안개 속의 총성>은 사랑의 응답을 받지 못한 한 남자의 증오와 복수심이 부른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을 읽은 뒤부터 아니, 이 작가 괜찮은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헤닝’은 마을 아가씨 ‘아가테’를 짝사랑한다. 그러나 아가테에게는 사랑하는 다른 남자가 있다. 그 사실을 알고도 아가테를 포기할 수 없는 헤닝은 교묘한 말로 아가테와 연인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아가테는 꿈쩍도 않고, 오히려 그런 헤닝을 비열한 남자 취급한다. 그럼에도 아가테를 향한 집착을 끊을 수 없던 이 남자는 급기야 사랑에 눈이 멀어 해서는 안될 짓을 저지르고 만다. 그리고 이 행동은 아가테를 불행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헤닝 자신을 망가뜨린다. 이 작품은 사랑에 눈먼, 이기적인 인간의 집착과 광기, 욕망을 강렬하게 표현한다.



아, 그는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던가! 정말 미친 듯이 뜨겁게 사랑했다. 하지만 남자가 아니라 개처럼 사랑했다. 성화(聖畵)앞에 무릎을 꿇듯 그녀의 발밑에 개처럼 엎드려 사랑했다. 둘이 언젠가 정원에 함께 있을 때였다. 그녀는 나무에 자기 이름을 새기고 있었다. 그때 바람이 불어 그녀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는 몰래 다가가 그녀의 나풀거리는 머리에다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며칠 동안 행복해했다. 그의 사랑에는 남성적인 용기와 기쁜 희망이 한 번도 없었다. 그는 모든 점에서, 그러니까 사랑이든, 희망이든, 증오든 모든 점에서 노예였다. (<안개 속의 총성>, 34쪽)


‘남자가 아니라 개처럼 사랑’했다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실제로 헤닝의 짝사랑은 인간다운 면이 없다. 자기 혼자 욕망하고 그 욕망이 어그러지면 사랑한다는 상대의 행복을 무참히 망가뜨린다. 그런 관점으로 보자면 오늘날에도 헤닝처럼 일그러진 모습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이들 모두가 남자, 또는 여자, 그러니까 한 인간으로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개처럼’, 즉 동물적으로만 상대를 욕망하는 것이리라. 헤닝의 그 ‘개처럼’ 사랑하는 모습은 그 다음 문장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몰래’ 다가가 나풀거리는 머리에 입을 맞추고 혼자 며칠 동안 좋아하지만 자기의 행복이 깨지는 순간, 그 행복을 깨뜨린 상대,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까지 무참히 깨버린다. 모든 점에서 노예와 같은 사랑이다. 그렇게 파국을 불러오고도, 그는 아가테 때문에 자기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증오한다. ‘그의 영혼이 밑바닥까지 추락한 것도 그녀에 대한 사랑 때문’이며 ‘삶의 행복도 사랑 때문에 망가졌고, 마음의 평화도 사랑 때문에 파괴’되었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녀를 더 증오하게 만든 이유는 따로 있다. 그들 두 사람이 만들어 낸 이 고통과 불행에 대해 정작 아가테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얼마나 인간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다가 <푄스 부인>을 읽고는 깜짝 놀랐다. 이 작품 줄거리는 간단하다. 푄스 부인은 첫사랑이 있지만 가난한 그와 맺어지지 못하고 부모가 원하는 남자와 결혼해 아들, 딸 낳고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런데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을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녀는 우연히 여행길에서 예전의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다. 놀랍게도 두 사람의 마음은 그 옛날처럼 굳건하다. 이런 애정을 확인한 푄스 부인은 그와의 새로운 삶을 꿈꾸고, 고민 끝에 자식들에게 자기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다 큰 자식들은 맹렬히 반대한다. 심지어 아들 ‘타게’는 결혼을 앞두고 있고, 딸 ‘엘리노르’ 또한 한 남자를 사랑했다가 실연의 아픔을 겪은 뒤이다. 그러나 딸도 곧 또다시 자기만의 사랑을 찾아 가리라. 그런데도 이 이기적인 자식들은 마치 사랑은 자기들, 청춘에게만 허용된 것이라는 듯, 제 어머니에게는 사랑을 하는,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존재라는 듯, 한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어머니’로서 있어주기만을 요구한다. 푄스 부인은 어머니로서만 존재하기를 강요하는 자식들의 말을 ‘청춘의 오만한 요구이자 뻔뻔한 폭정’이라고 느낀다. ‘사랑은 오직 우리의 일이고, 삶은 우리의 것이고, 당신네들의 삶은 오로지 우리를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그런 청춘의 오만한 요구’(79쪽)라고. 고백한 뒤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바뀌었음을 깨닫는 푄스 부인. 이런 이기적인 자식들과 자기 삶에 대한 그녀의 인식은 놀라우리만큼 날카롭다.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 마치 죽은 아버지만의 자식인 양 굴었다. 게다가 자신의 가슴속 감정이 오로지 아이들에게 향해 있지 않음을 깨닫자마자 얼마나 쉽게 자신을 떠날 준비를 하던지! 그러나 자신은 타게와 엘리노르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한 인간이었다. 아이들과 상관없이 자기만의 삶이 있었고, 자기만의 희망이 있었다.(<푄스 부인>, 78~79쪽)


푄스 부인이 사랑하는 사람과 살겠노라 고백한 뒤로 어색해진 가족 관계는 되돌리기 어렵다. ‘그들은 마치 서로 함께 있는 동안만 잠시 즐기다가 곧 헤어질 사람들처럼 대화’해 나간다. ‘떠나려는 사람은 이미 다음 여행 목적지만 생각하고 있었고, 남으려는 사람은 예전의 일상으로 어떻게 다시 돌아갈까만 생각’한다(80쪽). 이런 상황이 그려졌을 때, 솔직히 나는 아, 그래서 이 부인은 이기적인 자식들의 요구를 들어줘서 사랑하는 사람을 또다시 떠나보내고, 다 큰 자식들의 어머니로서, 남편을 잃고 아직 따라죽지 못한 여인, 말 그대로 ‘미망인’으로서 거의 절반은 죽은 상태로 남은 생을 살아가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야콥센은 푄스 부인에게 자유를 준다. 부인은 절연을 각오하고 자식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뿌리친다. 자기의 행복을 찾아 나선다. 와우! 이 전개에 정말 깜짝 놀랐다. 야콥센은 1847년 덴마크에서 태어나 38세에 요절한 작가로, 19세기를 살다간 남성 작가이다. 그런데 푄스 부인에게 가정에 머물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찾아 떠나는 자유를 준 게 아닌가. 나는 이 작품을 잃고 작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이 책 마지막에 실린 <모겐스>(1872)는 야콥센의 첫 작품으로 한 청년의 첫사랑과 상실, 그에 따른 슬픔과 절망, 자포자기적인 방탕의 삶, 그리고 다른 사랑을 만나 치유되는 과정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필치로 그려진다. 내가 홀딱 반한 <푄스 부인>(1882)은 야콥센의 마지막 작품이다. 작가로서 활동한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그가 남긴 작품은 장편 두 편과 이 책에 실린 중단편 여섯 편을 비롯해 시 몇 편이 전부라고 한다. 고작 여섯 편이지만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 인간 심리에 대한 섬세하고 내밀한 묘사, 그리고 신(神)도, 운명도, 인습도 아닌 인간 그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을 강조한 시대를 앞선 정신 등이 ‘옌스 페테르 야콥센’ 그의 이름을 깊이 되새기게 한다. 그를 더 알리고자 릴케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한다.  “그를 읽으면 하나의 세계가, 세계가 지닌 행복과 부와 파악할 수 없는 위대함이 그대 머리 위로 떨어질 것입니다. 한동안 그 세계에 머물며 배우도록 하십시오. 무엇보다 그 책들을 사랑하십시오. 당신의 사랑은 수천 배의 보답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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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1-02-1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흥미로울 것 같아요. 읽어볼게요.

잠자냥 2021-02-10 14:14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은 6편만 실렸는데도 ‘중단편 전집‘ 이랍니다. 왠지 소장각입니다.ㅎㅎ

syo 2021-02-10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조차 처음 들어봐요! 잠자냥 님의 서재에서 만나는 많은 책들이 그렇듯이.....🙄

잠자냥 2021-02-10 23:18   좋아요 0 | URL
국내 초역이라 그럴 거에요. ㅎㅎ 한 번 만나보세요~~

camiue76 2021-02-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읽어보고 싶을 뿐만 아니라, 만들어보고 싶기까지 하네요! 잠자냥님 서평은 정말 마력이 대단함

잠자냥 2021-02-16 15:46   좋아요 0 | URL
ㅎㅎ 좀 더 널리 알려져도 좋을 작가 같습니다. <푄스 부인>은 웬만한 페미니즘 소설 못지 않고요. <모겐스>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누구나 공감할 한때를 그리고 있어요.
 
베르가모의 페스트 외 - 옌스 페테르 야콥센 중단편 전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249
옌스 페테르 야콥센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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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섬세한 표현, 자연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점 등이 인상 깊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 또한 매력적이다. 표제작보다는 데뷔작인 <모겐스>와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푄스 부인>이 훨씬 좋다. 릴케가 강렬하게 반할만 한 듯. 장편 <닐스 뤼네>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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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상드. 그이의 이름은 알아도, 그가 쓴 작품을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상드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드의 이름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쇼팽이나 뮈세 또는 리스트 등 수많은 남성 예술가를 떠올리리라. 상드는 그렇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어떤 남성의 ‘연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 오래전에 남장을 했고, 줄담배를 피웠던 여인, 작가라고는 하는데 정작 어떤 작품을 썼는지는 잘 알 수 없는, 그저 화려한 남성편력으로 유명한 여인 조르주 상드. 아니 ‘오로르 뒤팽’-

나 또한 상드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여느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쓴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작품으로 상드를 가늠해 볼 기회도 없었다. 번역된 작품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한몫한다. 그런 가운데 최근 출간된 <모프라>는 조르주 상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모프라’라는 제목부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무슨 의미일까. 아하, ‘에드메 모프라’와 ‘베르나르 모프라’, 두 주인공의 성(姓)을 지칭한다. 아니, 그럼 주인공들은 남매라는 말인가? 흥분하지 마시라. 모프라 가문에는 직계와 방계가 있다. 베르나르는 모프라 집안 직계 후손으로, 에드메는 베르나르에게 나이 어린 당고모뻘이다. 연배가 같은 그 둘은 모두 열일곱 살 꽃다운 나이이다. 베르나르와 에드메는 그냥 서로 ‘사촌’이라고 부른다. 뜨거운 열정으로 수많은 연애사를 남긴 조르주 상드이니, 이 꽃다운 청춘들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를 써내려갔는가 싶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작품은 꽤 색다르다.  



“나는 모프라이고, 불굴의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남자의 독재를 참지 않을 거예요. 연인의 폭력은 물론이고 남편의 모욕도 마찬가지죠. 애원할 때 거절한 것을 힘으로 누른다고 굴복하는 것은 노예근성, 비겁한 성격에 속할 뿐이죠.” (<모프라>, 198쪽)


에드메 모프라의 이 당찬 말을 듣노라면, <모프라>를 통해 상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뚜렷이 알 수 있다. 작품의 줄거리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화자인 베르나르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와 삼촌들의 손에 양육된다. 말이 좋아 양육이지, 거칠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 학대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며 자라난다. 심지어 베르나르의 직계는 “수 세기 동안 프랑스 전역을 뒤덮고 폐해를 끼친 보잘것없는 봉건 독재자들 족속”의 잔당들로 작은 성 로슈-모프라에 숨어 강도짓을 일삼아 살아간다. 이런 환경 속에서 베르나르는 짐승이나 다름없는 야만스러운 생활을 한다. 우연히(실은 베르나르 삼촌들의 잔악한 간계로) 에드메는 로슈-모프라에 오게 되고, 베르나르에게 먹잇감처럼 던져진다. 삼촌들도 에드메에게 군침을 흘리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위기의 순간에 에드메를 만난 베르나르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에드메를 구출한다. 때마침 강도 소탕 작전이 벌어지고, 이 틈에 베르나르와 에드메는 로슈-모프라를 벗어나 에드메의 집인 생트-세베르성에 무사히 도착한다.

에드메는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베르나르에게 결혼을 약속한다. 이 약속을 철석같이 믿은 베르나르는 생트-세베르성에 도착하자마자 결혼을 종용하는데, 뜻밖에도 에드메에게는 약혼자인 ‘드라마르슈’가 있다. 그러면서도 에드메는 ‘네가 교육을 받는다면 결혼할 수도 있다’면서 베르나르에게 공부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한다. 설상가상으로 에드메의 아버지 ‘위베르’도 암흑과 같은 소굴에서 벗어난 베르나를 진심으로 환영하며, ‘모프라’ 가문에 걸맞은 교육을 받으라고 부추긴다. 지식이나 교양과는 담쌓고 살아온 짐승남 베르나르에겐 이 모든 상황이 환장할 노릇인데, 거참 이상하다. 이 방계 모프라 집안이 사는 성 분위기는 이제까지 자신이 살던 세계와는 너무도 다르다. 교육받아 현명하고 너그러우며 공정하기 짝이 없는 위베르를 비롯해 저 당차고 똑똑한 에드메, 계몽사상 영향을 받은 ‘오베르’ 신부, 농부이자 철학자인 ‘파시앙스’ 등 귀족, 신부, 농부, 평민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평화롭게 뒤섞여 살고 있다. 폭력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저 번지르르한 귀족 나리 드라마르슈가 거슬릴 뿐이다. 베르나르는 과연 공부를 하고, 저 느글거리는 귀족 녀석을 제치고 에드메와 결혼할 수 있을까? <모프라>의 가장 큰 재미는 공부하라고 ‘명령’하는 에드메와 명령을 순순히 따르자니 어쩐지 성미에 맞지 않는 베르나르가 주고받는 ‘밀당’에 있다.

생트-세베르성에 도착했을 때만하더라도 ‘사람이라기보다는 곰, 오소리, 늑대, 솔개, 뭐 그런 것들’과 비슷한 상태였던 짐승남 베르나르. 이 거칠기 짝이 없는 야생미 넘치는 소년은 에드메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을 속였다면서 길길이 날뛰며 질투한다. 단 한 번도 에드메를 소유한 적 없으면서도 마치 이미 제 사람인 것처럼 군다. 그런 베르나르를 에드메는 비웃으며 차갑게 한마디 한다. “그것 참 야릇한 질투네. 10시에 애인을 소유하려 들고, 자정에 여덟 명의 취한 사내들에게 그녀를 넘겨주고, 내일 길바닥 진흙보다 더 더러워진 그녀를 돌려받을 질투라니.”(94쪽) 캬, 이 얼마나 통쾌한 말인가. ‘능동적이고 용감하고, 우아함과 섬세한 아름다움’을 갖췄으며,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건강이 주는 에너지가 결합한, 상냥하고 부드러운 성의 여주인인 동시에 자부심 강하고 대담한’ 이 아가씨. 베르나르에게는 매우 고고하고 거만하게 굴지만 파시앙스를 비롯해 그 지역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늘 겸손하고 너그럽게 행동하는 이 완벽한 아가씨 에드메는 좀처럼 베르나르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난 결코 당신 게 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말과 태도와 감정을 바꾸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지금 그대로의 당신,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당신이 착하고 너그럽게 보였을 때는 반은 두려워서, 반은 공감해서 당신에게 몸을 맡길 수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을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된 그 순간부터 이제 당신이 무섭지 않아요. 태도를 고치세요. 공부를 하세요. 그러면 우리는 알게 되겠죠.”(164쪽) 베르나르에게 끊임없이 공부하라고 ‘명령’하고, 에드메를 너무나 원하는 베르나르는 명령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만일 그래도 행복할 수 없다면 복수하겠다고 참으로 찌질하게 말하기도 한다. 그때도 이 당찬 아가씨는 차갑게 응수한다. “맘대로 복수하세요. 그러면 당신을 멸시하게 되고 말 테니.”(164쪽) 아, 너무나 속 시원하고 짜릿하지 않은가.

베르나르 입장에서 에드메는 ‘나쁜 년’일 수도 있다. 자기를 구해주는 대가로 결혼을 약속하더니, 버젓이 약혼자가 있고, 그러면서도 결혼 약속을 파기하지 않은 채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면 결혼해 주겠다며, 그 지긋지긋한 공부를 하라고 잔소리니 얼마나 얄밉기 짝이 없는가. 어떨 땐 자기를 사랑하는 것 같은데 또 어떨 땐 완전히 싸늘해져서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다. 그럴 때 베르나르는 나를 사랑하기는 하느냐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냐고 다그치기도 한다. 그때 에드메는 말한다. “당신을 사랑했어요. 혐오스러운 원칙들과 관대한 마음씨 사이에서 고민할 때 정의와 정직 쪽으로 기우는 당신 모습을 보았으니까. 지금도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나쁜 원칙들을 물리치고, 몹쓸 충동이 지나가자 훌륭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까요.” 사실 그렇지 않은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언제나 100% 늘 똑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좀 더 마음에 들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못 견디게 싫은 부분이 많아지면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때문에 에드메가 베르나르에게 자기가 사랑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요구일 것이다. 그러나 에드메가 요구하는 ‘교육’은 그저 지식이 많아, 그 지식을 뽐내는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교양인은 아니다. 그녀는 베르나르에게 “나쁜 습관을 고칠 것, 유익한 충고에 귀를 기울일 것, 도덕의 가르침에 마음을 열 것”을 요구한다. 베르나르에게 “당신은 야만인”이라고 서슴없이 말하지만, “내가 당신에게서 거슬리는 것은 인사할 때의 서투른 태도나 찬사를 전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걸”(168쪽) 명심하라고 한다.

베르나르는 아무리 야만인처럼 길러졌어도, 영특하기는 해서 에드메가 요구하는 게 그저 한낱 “재치”가 아님을 깨닫기도 한다. 물론 그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자신의 재치 없음을 한탄하며 “당신은 드라마르슈 씨를 사랑하죠. 그는 나라면 얼굴을 붉힐 헛소리를 할 줄 아니까.”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드라마르슈보다 더 사랑받기 위해 재치를 배워야 한다면 단호히 거부할 자존심도 있다. 심지어 그런 요구는 지독하게 비겁한 짓이라고도 말하는데, 그가 생각하기에 “왜냐하면 착한 마음씨 때문이 아니라 근사한 재치 때문에 한 남자를 사랑하느니 마느니 하는 여자는 애써 사랑할 가치가 없기 때문”(170쪽)이다. 퉁명스럽게 내뱉지만, 무엇이 중요한지는 정확히 아는 남자, 베르나르, 귀여운 이 청년을 에드메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처럼 <모프라>에는 에드메와 베르나르가 주고받는, 깨알 재미 넘치는 대화들이 아주 많은데, 그중에서도 압권은 다음과 같다.


“권리를 얻었다고 나한테 으스대지 말고요. 애정은 명령한다고 해서 생기지 않아요. 애원하거나 불러일으켜야죠. 내가 늘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행동해줘요. 내가 억지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마요.”
“그런데 왜 이따금씩 내게 복종을 강요하는 듯이 말하는 거요? 오늘 밤만 해도 왜 내게 음주를 금하고 공부를 명령한 거요?”
“존재하지 않는 애정에게는 명령할 수 없지만, 적어도 존재하는 애정에게는 명령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내가 당신의 애정을 확신하고 있기에 명령하는 거랍니다.”
“맞소!” 나는 흥분해서 외쳤다. “그러니 나도 당신의 애정에 명령할 권리가 있는 거요. 당신은 그게 확실히 존재한다고 했으니……. 에드메, 내게 입맞춤하라고 명하는 바요.”(171쪽)



으아, “입맞춤하라고 명하는 바요” 미쳐ㅋㅋㅋㅋ 아, 진짜 현기증 나게 좋지 않은가? 이 열일곱 꼬꼬마(?) 들이 주고받는 대화, 어쩜 이렇게도 찰지면서, 사랑의 권력관계를 꿰뚫어 보고 있고, 그러면서도 연인 사이라면 마땅히 서로 존중해야 할 지점들이 명확히 제시되어 있는지, 그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마도 상드가 다년간의 연애를 통해서 얻은 성찰일 것이다. 사실 상드는 자신의 실패한 결혼 생활을 거울삼아 <모프라>를 썼다. 상드는 18세 때 지방 귀족인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박학다식한 상드에 비해 뒤드방은 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고, 상드의 요구로 책을 집어 들기는 했으나, 몇 글자 읽자마자 곧 잠이 들어버리는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상드는 남편과 풍요로운 대화를 나누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자신의 실패한 결혼 생활을 바탕으로, 연인, 나아가 부부 사이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고 싶었으리라.

<모프라>는 에드메와 베르나르의 연애만을 다루는 것에 그치지는 않는다. 프랑스대혁명 직전 구체제 아래의 정치 사회상과 그 무렵 미국독립전쟁, 프랑스혁명 이후의 사회변혁 등이 간간이 삽입되어 상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 오롯이 그려진다. 상드는 본명인 ‘오로르 뒤팽’에서 ‘조르주 상드’로, 남편이나 아버지, 또는 협업자에게 속한 이름이 아닌, 주체적 이름을 스스로 만들어 붙였다. 그 오래전부터 바지를 입고, 파리 거리를 활보했던 누구의 시선에도 주눅 들지 않았던 자유로운 여인 상드의 모습은 <도시를 걷는 여자들>에서도 여러 차례 소개된다. 그 책에 따르면 상드는 사회가 뿌리부터 바뀌어야만 여성이 권력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상드는 이 근본적인 변화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상드는 먼저 가정에서 평등을 획득한 다음에 바깥세상에서 평등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상드는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있는 사회주의적 프랑스’를 꿈꿨고, 프랑스혁명의 열기는 상드에게 “광대한 사랑, 숭고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다정함”(<도시를 걷는 여자들>, 293쪽)을 일깨웠다. 이 ‘광대하고, 숭고하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다정한 사랑’은 에드메의 모습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연인, 부부 사이의 평등, 나아가서는 귀족과 평민이 격의 없이 평등하게 함께하는 사회. 프랑스혁명조차 이루지 못한 완전한 유토피아가 <모프라>에는 존재한다. <모프라>에는 시대를 앞선 여인 상드의 이상과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분명 작가로서 그이의 이름을 각인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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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2-08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교보문고 가서 책 사면서 [모프라] 들었다놨다 들었다놨다 하다가 결국 놓고 왔거든요. 이 리뷰 읽어보니 저는 조만간 다시 교보문고를 가서 그 책을 들고 와야겠어요. 새삼 빡치고 있습니다. 이런 여성이 누구의 연인으로만 기억되고 있었다는 사실이요. 저는 아주 오래전에 진짜 오래전에, 아마도 중학생 이었을 때였던 것 같은데, 그 때 [쇼팽의 푸른노트] 라는 영화 소개에서 상드의 이름을 처음 들었어요. 그 영화는 보지도 않았고 아마도 영화 소개프로그램에서 줄거리만 들었던 것 같은데, 소피 마르소가 주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읽어 볼래요, 조르주 상드의 소설!

잠자냥 2021-02-08 13:32   좋아요 0 | URL
연휴에 서점 나들이 하셔서 한 권 집안에 들여놓으세요. 이런 여성을 누군가의 연인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정말... 상드에게도 우리에게도 억울한 일입니다.

난티나무 2021-02-08 2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름신이 내린다아~ 샤라랄랄 라랄라~~~~~~~~~
인용구 좋아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야금야금 하나씩 상드 작품 사야 겠습니다~~~~!!!!!

잠자냥 2021-02-09 09:30   좋아요 0 | URL
네 기꺼이 지름신을 맞이하소서... ㅎㅎ
 
사브리나
닉 드르나소 지음, 박산호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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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해 보이는 그림과는 달리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 때문에 시종 긴장하게 된다. 가짜 뉴스와 음모론에 환장하는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초상화. 읽고 나면 찜찜하고 불쾌한 기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림체도 기분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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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2-08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불쾌했어요. 무섭고요. ㅠ ㅠ

잠자냥 2021-02-08 09:34   좋아요 0 | URL
보고 나서 기분 나빠가지고.... 홧김에 별 1개 줄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