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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에디는 아주 오래된 놀이 공원에 정비반장입니다. 낡고 손이 많이 가는 온갖 놀이기구에서 나는 ‘삐그덕’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몸에서도 들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자기 몸을 볼트로 조이고 기름칠을 할 수는 없을 터. 그는 그냥 하루하루를 그런 놀이 기구들과 그 기구들을 즐기러온 사람들 틈에서 조용히 자신의 일만을 합니다.
저는 은행원입니다.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점심시간에는 다른 동료들과 도시락을 먹습니다. 월말이 다가오면 밤에 잠을 자기가 힘들고 추운 에어컨 바람에도 식은땀이 납니다. 제에게는 하루와 한 주와 한 달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손가락에 파스를 붙이고 자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맛있게 먹은 점심식가가 얹히는 날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에디에게도 부모가 있었습니다. 형제와 친구들이 있고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이제 그는 혼자입니다. 그는 그들을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랑하기에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원망합니다. 그 속에는 물론 그를 혼자만 남겨둔 서운함도 있겠죠. 그래서 그는 어쩌면 그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많이 그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에게도 가족과 친구들이 있습니다. 나도 에디처럼 가족을 사랑하지만 또 원망하기도 합니다. 에디가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는 것처럼 나도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느끼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기도 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직장을 옮긴 것도 마음껏 놀지 못 하고 집에서 한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 조카를 돌보는 것도 다 제가 원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내 삶속에서는 마치 나는 없는 듯합니다. 그래도 가족이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기에 그냥 그 자리를 지킵니다. 그래도 이 자리처럼 편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어느 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에디 일상이 단 한 순간에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천국에 와 있습니다. 자, 이제부터 그가 왜 이 세상에 살았는지 바로 이 곳 천국에서 알게 될 거라는데요. 그는 처음부터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천국이 그런 곳이었나요?
저는 다행히 아직 숨을 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은 모릅니다. 오히려 제가 끝나지 않고 계속 되풀이되는 이 일상을 더 두려워했다는 것을. 그리고 도망치려고 할 때마다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아서 결국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저와 그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군요. 그는 죽었습니다. 앞서 죽은 많은 사람들처럼. 그리고 저는 살아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처럼. 그러나 여기서도 그와 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단지 그가 조금 먼저 죽었다는 것이죠. 죽지 않는 사람이, 혹은 생명체가 어디 있습니까? 결국 다 죽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국 에디는 천국에서 그가 살아 온 삶의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하게 되죠. 그는 이제 평안합니다.
저는 아직 완벽한 의미에서는 편안하지 않습니다. 아직 불안하고 불완전하죠. 여기서 에디가 제게 하는 말이 분명합니다. 지금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고 또 사랑하라고. 그리고 결코 의미 없는 삶은 없다고. 그러나 저는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하루아침에 그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알면서도 평생 못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제게는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또는 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제가 저 자신을 향해 들이대고 있는 증오의 굽은 칼날을 내려놓고 나 자신을 행해 휘두르지만 않는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좋아질 듯도 싶습니다.
그래도 단 한 가지에서 만큼은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경험했던 것을 언제가 저도 경험할 수 있겠죠? 과연 저는 누구를 만날까요?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기다리게 될까요? 확실히 책을 읽고 나서는 사소한 것에 더 많은 신경이 쓰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바나나 껍질을 줍기도 하고 -누군가가 밟고 미끄러질까봐- 무단횡단을 하는 횟수도 -혹시 나 때문에 사고 날까봐-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어느 날은 서류틈사이로 뾰족하게 나온 박음쇠 심 부분에 정성스레 테이프를 붙이기도 합니다.
“너 뭐하니?”
옆에 있는 언니가 묻습니다.
“어... 누가 서류보다 다칠까봐요. 혹시 파상풍으로 죽을 수도 있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