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우는 은의 울음소리에 당황해서 세 사람은 순간 정지된 화면처럼 멈춰 서서는 모두 은만 바라본다.
“아앙~~~. 아니야. 흑흑. 말 안 했단 말이야. 나 정말, 흑흑……. 아무 말도 안했단 말이야. 어엉~~~.”
은이 거짓말 하는 것은 아니다. 확실은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록 온몸이 말하고는 있었지만…….
“야, 됐어. 시끄러우니까 울지나마. 그리고 아저씨도 이거 놔. 말로 하자고, 말로.”
아이가 뒤에서 꽉 안고 있는 정민의 품에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치지만 정민은 아이를 풀어주지 않는다.
“애가……. 야, 니 눈에 내가 아저씨로 보이냐? 그리고, 너 나 알아? 애가 언제 봤다고 나한테 반말이야? 애, 아주 웃기네.”
정민은 자신보다도 나이가 많은 어른한테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을 하는 아이가 기가 막힌다.
“정민아”
고반장이 정민을 조용히 부르자 정민이 아이를 풀어주고는 바로 아이의 옆에 서서 한쪽 팔을 잡는다. 아이가 인상을 쓰며 정민을 째려보자 두 사람의 시선이 처음으로 마주친다. 정민은 새삼 놀란다. 눈이 마주치고도 지지 않고 쳐다보는 아이의 맹랑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처음 마주 친 아이의 눈빛이 뭐랄까, 맑으면서도 탁하다. 마치 소나기 후 웅덩이의 고인 빗물처럼, 금방이라도 가라앉은 흙탕물이 위로 올라올 듯 위태로워 보인다. 순간 짧지만 아주 예리한 것이 정민의 가슴을 관통한다. 실제로 “앗‘하는 통증이 느껴지지만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그냥 모른 체 하고는 먼저 시선을 피한다.
‘뭐야, 이런 조그마한 꼬맹이한테. 뭐가 무섭다고…….’
고반장이 떨어진 아이의 모자를 주워 털고는 아이 앞으로 가 내민다. 아이가 모자를 쳐다볼 뿐 받아들지 않자 그는 아이를 마주보며 한 쪽 무릎을 굽히고 아이와 키를 맞춘다.
“난 일산경찰청에 고반장이고 이쪽은 노정민, 그리고 저기 울고 있는 아이가 내 딸 은이다.”
고반장이 간단히 이름만으로 소개를 마친다. 잠시 말을 쉬던 그가 아이에게 다시 모자를 내밀며 묻는다.
“그래, 넌 이름이 뭐니?”
아무 표정 없이 고반장에 말을 듣던 아이의 얼굴이 일순 굳어진다. 아이는 고반장의 시선을 비켜서는 뒤에 있는 은을 응시한다. 은은 아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벽에 기대서 훌쩍거리고 있다. 잠깐 동안 은만 보던 아이가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히히, 아~~~. 알았어. 경찰 아빠라... 경찰 아빠를 데려왔다 말이지.”
예상치 못한 아이의 반응에 아이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고반장이나 정민이나 금방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아이가 고개를 다시 들고 은과 눈을 마주친다. 아이의 표정이 서릿발처럼 차다.
“넌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그랬는데 결국 너도 똑같았구나! 하~……. 하기야 내 주제에 무슨……. 내가 바보지. 근데 경찰이라니 좀 웃긴다. 왜? 내가 네 개를 그 세차장에 데려다 줬을 것 같아? 결론은 그것 밖에 없는 것 같아서, 그래서 경찰 아빠까지 데려 온 거야? 대답해 봐. 그런 거냐고?”
말을 하는 아이의 이가 점점 다물어 지더니 결국 마지막 물음이 악 물고 있는 아이의 잇 사이에서 힘들게 뺏어진다. 훌쩍이며 아이의 말을 듣고 있던 은의 울음이 순간 딱 그쳤다. 울음은 한 순간에 그쳤지만 은의 얼굴은 전보다 더 이상해졌다. 눈은 더 커지고 입은 뭐라고 할 것처럼 벌어지긴 했는데 말은 나오지도 않고 마치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굳어져 버렸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 챈 고방장이 조심스럽게 아이의 고개를 자신에게로 돌린다. 아이는 고반장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아니야. 난 아니라고, 아저씨."
아이가 고반장에게 말한다.
“그래, 알아.”
고반장이 짧게 대답하곤 아이를 향해 보일 듯 말 듯 웃는다.
아이는 조금 놀랍다는 듯이 그를 다시 쳐다본다.
잠시 고민하던 고반장은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는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아이 얼굴 앞에 내민다.
“이 강아지 지금 어디 있는지 아니?”
아이는 시선을 피할 새도 없이 사진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순식간에 아이의 표정에 놀라는 기색이 떠오른다. 아이는 표정을 이내 숨기고는 거칠게 사진을 쳐내지만 이미 호흡이 흐트러졌다. 정민은 아이의 전신이 조금씩 떨리는 것을 아이를 잡고 있는 팔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고반장은 밀쳐진 팔을 들어 숙여진 아이의 고개 아래로 사진을 다시 내밀었다.
“하아~”
아이가 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보다 더 심하게 몸을 떨자 놀란 정민이 아이를 잡은 팔을 놓고는 아이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정민도 고반장도 소리를 내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정말 뭔가를 아는 듯 했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두 사람 모두 너무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이만 보고 있기를 몇 초. 그새 더 가쁜 숨을 내쉬던 아이가 두어 발자국을 움직여 정민쪽으로 몸을 튼다.
“헉!”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숨만 쉬던 아이의 몸이 일순간에 펴지더니 아이가 숨이 막히는 것처럼 가슴에 손을 갖다 댄다.
“안 돼.”
정민의 눈이 무언인가 공포로 가득 찬 아이의 눈과 마주친다. 하지만 뭐가 안 된다는 건지 물을 틈도 없이 아이의 몸이 그에게서 서서히 멀어진다. 마치 화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지만 아이가 멀어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런, 제길…….”
그제야 아이가 뒤로 쓰러지고 있다고 느낀 정민이 재빠르게 아이의 한쪽 어깨를 끌어보지만 균형을 잃고는 같이 넘어지고 만다. 다행히 땅에 닿기 직전에 정민이 아이를 품으로 안아 아이가 다치지는 않았지만 잘못했으면 머리를 그대로 땅에 부딪힐 뻔 했다.
“정민아”
고반장이 넘어진 두 사람 쪽으로 급히 몸을 숙인다.
“젠장, 애 왜 이러는 거야? 정말 뭘 본거야? 이런 미치겠네. 제기랄.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이게 말이 되냐고?”
그는 연신 혼잣말을 내 뺏으면서도 이래저래 아이를 살펴보고는 아이의 호흡을 듣고 손목을 잡고는 맥을 짚는다. 아이는 몸을 웅크린 채 여전히 거칠게 숨을 쉬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가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의식이 없다는 게 정민의 마음에 걸린다. 정민이 아이를 조심스레 안아 올린다.
“다친 데는 없어. 괜찮은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아.”
“으아앙~~~”
너무 놀라서 이때까지 석상처럼 굳어 모든 상황을 보고만 있던 은이 다시 울기 시작한다. 고반장이 달려가서 은을 안아들고는 다시 정민에게 온다.
“정민아, 애 황보박사에게 데려가라. 난 은이 집에 데려다 주고 갈게. 황보박사에게 될 수 있으면 병원 말고 집에서 보자고 해. 정민아, 애... 그냥 병원은 안 돼. 알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선뜻 내키지 않는 다는 듯 대답이 없던 정민이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고는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정민이 아이를 안고 차를 향해 뛰어가자 은이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운다.
“은아, 울지 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괜찮을 거야. 아빠가 황보언니네 집에 도착하면 집으로 전화할게.”
고반장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서두르며 은을 달래지만 은은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은은 정말이라도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전보다 더 서럽고 아프게 울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