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는 오랜만에 집에서 쉬고 있었다. 커피 잔을 탁자에 내려놓은 그녀가 브러시를 손에 들고 애견을 부른다.

  “마루야, 이리 와. 간만에 머리 좀 빗자. 누가 보면 주인도 없는 줄 알겠다.”

  그녀의 부름에 소파 위에 누워 있던 노란 색 리트리버 한 마리가 카펫위에 내려와서는 그녀 앞에 납작 엎드린다. 그녀는 개가 거리의 개인 것처럼 말했지만 개는 언 듯 보기에도 윤기가 흐르는 게 뚜렷한 이목구비하며 제법 좋은 종인 것이 한 눈에 보인다. 다만 하얗게 센 눈 주위의 털이 개의 나이가 적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를 보는 다갈색 눈동자도 깊이가 있어 보이는 게 눈만 보면 꼭 사람 같다.

  “우리 아기를 누가, 머리도 안 빗겨주고.”

  그녀는 시원스레 빗질을 하는 내내 개에게 애정의 말을 건넨다.

  드르륵 드르륵.

  테이블 위에 휴대폰이 요란하게 움직이다. 깜짝 놀란 정아가 반사적으로 휴대폰 폴더를 연다.

  “여보세…….”

  “나야, 급해. 한 열 살쯤 됐고 갑자기 쓰러졌는데 의식이 없어.”

  자신이 누구인지는 얘기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자기 얘기만 하는 건너편의 목소리. 사실 누구인지 얘기하지 않아도 정아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안다.

  “그럼 병원 가.”

  “못 가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급하다고. 어디야? 집으로 좀 빨리 가 있어.”

  “너 지금 1년 만에 전화했어. 그거 알아? 아니, 1년도 넘었지. 그때도 이랬었지 아마. 다짜고짜 환자 차트나 빼달라고,”

  “그래서 해줬어?”

  “아니. 지금도 뭔지 모르지만 싫어. 딴 데 가.”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흘러내린 단발머리를 쓸어 올리며 폴더를 닫으려고 하자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린다.

  “누나, 정말 급해. 앤 애란 말이야. 게다가……. 하여튼 그냥 병원은 안 된다고. 안되니까 이러는 거잖아.”

  그녀는 의아했다.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이기에 싫은 누나 소리까지 하면서 부탁하는 걸까?’

  “집이야. 대충이라도 말해 봐.”

  “10세가량의 여자 애. 얘기 중에 갑자기 가슴을 쥐고 쓰러졌어. 호흡이랑 맥박이 빠르긴 한데 비정상적은 아니고 계속 헛소리를 하는데 의식이 없어.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때렸니?”

  “뭐?”

  정민이 자신이 들은 말이 의심스러운 듯 되묻는다.

  “때렸냐구?”

  “미쳤어? 내가 애를 왜 때려? 아휴, 정말. 끊어. 거의 다 왔어.”

  일방적으로 통화가 끝나자 정아는 휴대폰을 다시 탁자위에 놓고는 검진가방이며 링거 걸이를 자신의 방에 가져다놓는다. 환자의 상태를 모르지만 한시라도 급하다 싶으면 그대로 정민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을 듯싶어 현관을 나가 대문을 향해 정원을 가로지르는데 마침 그녀의 눈에 정민의 차가 보인다. 그녀가 막 대문을 열자 정민이 아이를 안고 들어온다.

  “외상은?”

  “아이씨, 정말, 미치겠네. 나 안 믿어? 안 때렸어. 안 때렸다구.”

  정아쪽으로 고개를 돌려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하다. 이마 위로 땀방울에 적어 달라붙은 머리카락이며 구겨진 바지에, 등 뒤로 새어나온 땀까지. 정아는 무슨 일이 길래 웬만한 일로는 꿈쩍도 안 하는 동생이 이렇게 당황하고 다급해 하는 건지 내심 더 궁금해진다.

  정민이 정아에게는 묻지도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현관으로 들어서서는 아이를 그녀의 침대 위에 눕히자 그녀가 재빠른 동작으로 아이에게 와서는 동공을 살피고 맥을 짚고는 청진기를 가방에서 꺼낸다. 가슴 여기저기 청진기를 대던 그녀가 정민에게 묻는다.

  “애한테 무슨 짓을 했어? 그냥 얘기만 한 거 갖고 애가 쓰러지니? 시실대로 말해. 경찰에 신고 할 거니까.”

  그녀는 정민이 애한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부러 그의 속을 뒤집는다.

  그때까지도 침대 앞에 서서 숨을 몰아쉬고 있던 그가 그제야 침대모서리에 걸터앉으며 대답한다.

  “그냥 몇 가지 물어만 봤어. 진짜야. 근데 애 괜찮은 거지? 그리고 경찰이 코앞에 있는데 경찰을 부른다는 게 말이 돼? 나도 다 체크 해 봤단 말이야.”

  “그럼 그냥 병원에 가지 뭐 하러 싫은 소리까지 하면서 나한테 왔어?”

  정민은 아이에게 링거를 꽂는 정아의 옆으로 다가서서는 말없이 아이의 얼굴을 본다.

  “나도 아직 잘 몰라. 나도 지금 정리가 다 안 된다고. 어쨌든 일어나기는 하는 거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놀란 거 같아. 쇼크 상태랑 비슷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의식이 있어. 단지 아이가 일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저녁까지는 기다려보겠지만 그래도 깨어나지 않는다면 병원으로 데려 갈 꺼야.”

  정아가 단호하게 말하자 정민은 조금 고른 숨을 더 크게 한번 내 뱉는다.

  “그럼, 그땐 내가 먼저 데려 갈 거니까, 그런 적정은 하지도 마. 방금 전까지 얼마나 팔팔했는데.”

  “말 안 할 거야?”

  정아가 설명을 재촉하자 정민이 방을 나가버린다.

  “아, 몰라. 좀 기다려. 고반장님 오실 거야. 그리고 제 만 놀란 줄 알아? 나도 놀랬단 말이야. 나도 숨 좀 돌리자고.”

  그는 대충 대답하고는 소파 깊숙이 몸을 기대며 눈을 감는다. 마루가 소파 위로 올라와서는 그에게 꼬리를 흔들며 아는 척을 한다. 그가 눈을 뜨고 곁눈질로 마루를 한 번 쓱 보고는 다시 정아가 있는 방을 슬쩍 쳐다보고 이내 또 눈을 감는다.

  “차라리 개가 훨 낫네, 누. 구. 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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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성경 해설찬송가 - 색인, 지갑식
성서원 편집부 엮음 / 성서원 / 1996년 2월
절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9장 38-39절>
-252쪽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지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 전서 13장 3-13>-279쪽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 3장 19절>-1305쪽

"내가 환난 중에 다닐찌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시편 138장7절>-9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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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속에 애장판 1~8(완결) 박스세트
강경옥 지음 / 애니북스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7월부터 내내 8월이 되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몇 년을 기다렸는데 그 며칠이 왜 그리 더디 느껴지는지……. 그런데 얼마 전에 그 기다림이 더 길어 질 거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조금 더 연장……. 화가 날 만도 한데 전혀 화가 나지 않았어요. 그냥 속으로 ‘다행이다. 취소된 건 아니구나. 다행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럼 시이라도 레디온도 볼 수 있겠구나.’라고 안심했습니다.

  지금도 두 사람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서로 사랑했고 서로를 간절히 지키기를 바랬는데……. 도대체 어디까지가 신의 의도였고 계획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한 것에는 절대 아무런 간섭도 없었다고……. 시이라가 레디온을 사랑한 것도 레디온이 결국 시이라를 사랑하게 된 것도 누구의 간섭이나 예정 없이 그냥 사랑 한 것뿐이라고. 단지 서로가 서로를 서로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뿐이지 감정이 그 운명이라는 결정을 따라가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래도 “별빛 속에”에는 제가 아직도 풀지 못한 많은 의문들이 여전히 절 잠 못 들게 만들곤 합니다. 아직 남아 있는 생각과 의문들은 다시 이 책을 들었을 때, 다시 정신 못 차리고 밤을 새며 읽고 또 읽었을 때 천천히 곱씹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전 이 기다림이 짜증나지 않습니다. 책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너무 크리라는 걸아니까요.

  근데 좀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아직 어렸을 때라 책 자체도 순수하게 받아들인 만큼 반응도 순수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제 반응이 어디로 튈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지금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그때처럼 울 수 있을지…….또 며칠 밤을 설치고 잠 못 들며 밤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을지…….

  책은 그대로인데 제가 변해서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어쩌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좀 바꿨을 수도 있지만 전보다 더 넓고 깊게 반응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나이를 먹는다는 건 또 그만큼 더 많은 감정을 경험하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요.

  하지만 역시 결과는... 책을 읽어봐야 알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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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우는 은의 울음소리에 당황해서 세 사람은 순간 정지된 화면처럼 멈춰 서서는 모두 은만 바라본다.

  “아앙~~~. 아니야. 흑흑. 말 안 했단 말이야. 나 정말, 흑흑……. 아무 말도 안했단 말이야. 어엉~~~.”

  은이 거짓말 하는 것은 아니다. 확실은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록 온몸이 말하고는 있었지만…….

  “야, 됐어. 시끄러우니까 울지나마. 그리고 아저씨도 이거 놔. 말로 하자고, 말로.”

  아이가 뒤에서 꽉 안고 있는 정민의 품에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치지만 정민은 아이를 풀어주지 않는다.

  “애가……. 야, 니 눈에 내가 아저씨로 보이냐? 그리고, 너 나 알아? 애가 언제 봤다고 나한테 반말이야? 애, 아주 웃기네.”

  정민은 자신보다도 나이가 많은 어른한테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을 하는 아이가 기가 막힌다.

  “정민아”

  고반장이 정민을 조용히 부르자 정민이 아이를 풀어주고는 바로 아이의 옆에 서서 한쪽 팔을 잡는다. 아이가 인상을 쓰며 정민을 째려보자 두 사람의 시선이 처음으로 마주친다. 정민은 새삼 놀란다. 눈이 마주치고도 지지 않고 쳐다보는 아이의 맹랑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처음 마주 친 아이의 눈빛이 뭐랄까, 맑으면서도 탁하다.  마치 소나기 후 웅덩이의 고인 빗물처럼, 금방이라도 가라앉은 흙탕물이 위로 올라올 듯 위태로워 보인다. 순간 짧지만 아주 예리한 것이 정민의 가슴을 관통한다. 실제로 “앗‘하는 통증이 느껴지지만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그냥 모른 체 하고는 먼저 시선을 피한다.

  ‘뭐야, 이런 조그마한 꼬맹이한테. 뭐가 무섭다고…….’ 

  고반장이 떨어진 아이의 모자를 주워 털고는 아이 앞으로 가 내민다. 아이가 모자를 쳐다볼 뿐 받아들지 않자 그는 아이를 마주보며 한 쪽 무릎을 굽히고 아이와 키를 맞춘다.

  “난 일산경찰청에 고반장이고 이쪽은 노정민, 그리고 저기 울고 있는 아이가 내 딸 은이다.”

  고반장이 간단히 이름만으로 소개를 마친다. 잠시 말을 쉬던 그가 아이에게 다시 모자를 내밀며 묻는다.

  “그래, 넌 이름이 뭐니?”

  아무 표정 없이 고반장에 말을 듣던 아이의 얼굴이 일순 굳어진다. 아이는 고반장의 시선을 비켜서는 뒤에 있는 은을 응시한다. 은은 아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벽에 기대서 훌쩍거리고 있다. 잠깐 동안 은만 보던 아이가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히히, 아~~~. 알았어. 경찰 아빠라... 경찰 아빠를 데려왔다 말이지.”

  예상치 못한 아이의 반응에 아이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고반장이나 정민이나 금방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아이가 고개를 다시 들고 은과 눈을 마주친다. 아이의 표정이 서릿발처럼 차다.

  “넌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그랬는데 결국 너도 똑같았구나! 하~……. 하기야 내 주제에 무슨……. 내가 바보지. 근데 경찰이라니 좀 웃긴다. 왜? 내가 네 개를 그 세차장에 데려다 줬을 것 같아? 결론은 그것 밖에 없는 것 같아서, 그래서 경찰 아빠까지 데려 온 거야? 대답해 봐. 그런 거냐고?”

  말을 하는 아이의 이가 점점 다물어 지더니 결국 마지막 물음이 악 물고 있는 아이의 잇 사이에서 힘들게 뺏어진다. 훌쩍이며 아이의 말을 듣고 있던 은의 울음이 순간 딱 그쳤다. 울음은 한 순간에 그쳤지만 은의 얼굴은 전보다 더 이상해졌다. 눈은 더 커지고 입은 뭐라고 할 것처럼 벌어지긴 했는데 말은 나오지도 않고 마치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굳어져 버렸다.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 챈 고방장이 조심스럽게 아이의 고개를 자신에게로 돌린다. 아이는 고반장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아니야. 난 아니라고, 아저씨."

  아이가 고반장에게 말한다.

  “그래, 알아.”

  고반장이 짧게 대답하곤 아이를 향해 보일 듯 말 듯 웃는다.

  아이는 조금 놀랍다는 듯이 그를 다시 쳐다본다.

  잠시 고민하던 고반장은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는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아이 얼굴 앞에 내민다.

  “이 강아지 지금 어디 있는지 아니?”

  아이는 시선을 피할 새도 없이 사진과 정면으로 마주친다. 순식간에 아이의 표정에 놀라는 기색이 떠오른다. 아이는 표정을 이내 숨기고는 거칠게 사진을 쳐내지만 이미 호흡이 흐트러졌다. 정민은 아이의 전신이 조금씩 떨리는 것을 아이를 잡고 있는 팔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고반장은 밀쳐진 팔을 들어 숙여진 아이의 고개 아래로 사진을 다시 내밀었다.

  “하아~”

  아이가 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전보다 더 심하게 몸을 떨자 놀란 정민이 아이를 잡은 팔을 놓고는 아이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정민도 고반장도 소리를 내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정말 뭔가를 아는 듯 했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두 사람 모두 너무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아이만 보고 있기를 몇 초. 그새 더 가쁜 숨을 내쉬던 아이가 두어 발자국을 움직여 정민쪽으로 몸을 튼다.

  “헉!”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숨만 쉬던 아이의 몸이 일순간에 펴지더니 아이가 숨이 막히는 것처럼 가슴에 손을 갖다 댄다.

  “안 돼.”

  정민의 눈이 무언인가 공포로 가득 찬 아이의 눈과 마주친다. 하지만 뭐가 안 된다는 건지 물을 틈도 없이 아이의 몸이 그에게서 서서히 멀어진다. 마치 화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지만 아이가 멀어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런, 제길…….”

  그제야 아이가 뒤로 쓰러지고 있다고 느낀 정민이 재빠르게 아이의 한쪽 어깨를 끌어보지만 균형을 잃고는 같이 넘어지고 만다. 다행히 땅에 닿기 직전에 정민이 아이를 품으로 안아 아이가 다치지는 않았지만 잘못했으면 머리를 그대로 땅에 부딪힐 뻔 했다.

  “정민아”

  고반장이 넘어진 두 사람 쪽으로 급히 몸을 숙인다.

  “젠장, 애 왜 이러는 거야? 정말 뭘 본거야? 이런 미치겠네. 제기랄.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이게 말이 되냐고?”

  그는 연신 혼잣말을 내 뺏으면서도 이래저래 아이를 살펴보고는 아이의 호흡을 듣고 손목을 잡고는 맥을 짚는다. 아이는 몸을 웅크린 채 여전히 거칠게 숨을 쉬고 있기는 하지만 어디가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의식이 없다는 게 정민의 마음에 걸린다. 정민이 아이를 조심스레 안아 올린다.

  “다친 데는 없어. 괜찮은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아.”

  “으아앙~~~”

  너무 놀라서 이때까지 석상처럼 굳어 모든 상황을 보고만 있던 은이 다시 울기 시작한다. 고반장이 달려가서 은을 안아들고는 다시 정민에게 온다.

  “정민아, 애 황보박사에게 데려가라. 난 은이 집에 데려다 주고 갈게. 황보박사에게 될 수 있으면 병원 말고 집에서 보자고 해. 정민아, 애... 그냥 병원은 안 돼. 알지? 내 말 무슨 말인지.”

  선뜻 내키지 않는 다는 듯 대답이 없던 정민이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고는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정민이 아이를 안고 차를 향해 뛰어가자 은이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운다.

  “은아, 울지 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괜찮을 거야. 아빠가 황보언니네 집에 도착하면 집으로 전화할게.”

  고반장이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서두르며 은을 달래지만 은은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은은 정말이라도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전보다 더 서럽고 아프게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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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 (2disc) - 할인행사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 키아누 리브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비디오 가게에 갔다. 이것도 보고 싶고 저것도 보고 싶고, 보고 싶은 영화가 참 많았는데 어째 하나같이 빈 케이스뿐이다. 한참을 방황하다 빈손으로 나오기 억울했던 난 결국 바로 이 영화 <콘스탄틴>을 들고 나왔다.

  사실 난 공포영화를 싫어한다. 좋지 않은 여운이 너무 오래 가는데다가 시간이 지나서 무서운 장면들을 내가 잊어먹었다고 해도 이미 내 머리나 마음이 받은 충격은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건 단지 슬픈 영화를 보고 마음이 아픈 것과는 다르게  영혼을 상하게 만들어서 보지 않기 전으로 돌릴 수 없다. 그럼에도 <콘스탄틴>을 들고 나온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배우들 중 몇 안 되는 잘생긴 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출연하는데다가 영화의 소재가 ‘퇴마’이기 때문이다. 퇴마는 내가 좋아하는 소재인데다가 선과 악의 구조가 분명하고 끝에는 꼭 등장인물들 중 한 명의 ‘희생’이라는 부제를 넣어서  단순히 사람을 죽고 죽이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리고 그 ‘희생’이 <콘스탄틴>에서도 역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다만 주인공이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퇴마’라는 일에 조금 덜 투철(?)하고 주인공이 보여준 ‘희생’이 다른 영화와는 성질과 동기가 좀 많이 다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얘기하면 영화에서의 결말을 얘기하는 것과 같기에 영화의 줄거리나 다른 영화와 구별되는 점은 피하는 게 좋겠다.

  <콘스탄틴>을 보고 먼저 느낀 건 장르가 장르인 만큼 DVD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질이나 음향도 생생하고 그래픽도 어색하지 않았으며 전체적으로 악의 세계인 불의 붉은 빛과 촉매의 역할을 하는 물의 투명한 특성을 잘 매치해서 적당히 음침하고 무서운 분위기를 촌스럽지 않게 표현했다. 특이한 점은 공포영화지만 무서운 장면이나 소름이 돋을 정도의 긴장감, 순간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이 영화 <콘스탄틴>에는 없다. 그런 재미를 기대하고 영화를 본다면 좀 실망할 것이다. 반대로 난 영화의 처음부터 무서운 장면이 나오자 괜히 빌렸다 싶었다가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반대로 건진 게 더 많았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솔직히 <콘스탄틴>은 공포 영화를 못 보는 내가 봐서도 별로 무섭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이유가 쉽게 짐작이 가겠지만  이건 앞에서 언급한 주인공의 캐릭터와도 연관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선한 쪽도 악한 쪽도 너무 싱거워서 부딪히는 매력이 감소한 것. 어쩌면 주인공 안에 진정한 ‘선’ 이 없으니 영화 속에도 ‘악’ 다운 ‘악’이 없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에 영화에서 얘기하는 메시지를 생각해 볼 때 이 점은 정말 아쉬운 점이다.

  무섭지도 않고 주인공도 약한 <콘스탄틴>에서 뭘 건질까 싶지만 이 영화에는 정말 중요한 메시지 하나가 있다. 몇 개 안되는 간단한 문장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성경책이 갖고 있는 주제의 요약이기도 하고 나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물음이기도 하다. 바로 인간과 선택이다.

  영화에서 가브리엘이 말한다.

  “너희는 크나 큰 은총을 받았어. 주의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은총을……. 살인마든 강간범이든 회개만 하면 주의 품에 안길 수 있지. 우주만물 중 인간만이 그런 큰 혜택을 받았어.”

  대사를 하는 가브리엘을 보면 느낄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대천사 가브리엘조차 인간을 질투하는 것처럼 얘기한다. 마치 영화<트로이>에서 브래드 피트가 신들은 실상 인간을 질투한다고 말하는 부분과 묘하게 비슷하기도 하다.

  어쨌든 이 말은 사실이다. 사실 종교를 떠나서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살고 있는 생명체는 세상에 인간밖에 없다. 오로지 인간만이 의지를 갖고 선택할 수 있으면 또 자신이 선택한 것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 인간만이 갖는 이 혜택이 얼마나 큰가하면 이 선택 안에는 신도 들어가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세상엔 종교의 자유가 있다. 이는 헌법에도 명시된 것이다. 어떤 종교든지 신이 창조주이고 인간이 피조물이거늘 피조물이 창조주를 선택하다니! 이보다 더 큰 선택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가브리엘의 말처럼 바로 이 선택이 완전히 인간의 몫이어서 항상 바른 길로만 갈 수 없다는 것. 아무리 어렵고 중대한 결정이라도 신조차 나를 대신해서 나에게 어떠한 것이든 어떠한 방법으로든 어느 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이건 나의 권리일 뿐만 아니라 결과도 책임져야할 의무이다. 그래서 세상을 사는 건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만약에 무엇이든지 가야할 길만을 날 대신해서 알려주는 신이 있다면 우리는 그 신의 꼭두각시일 뿐 그 신이 사랑하는 주체인 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내가 신이 보여준 최선의 길을 알고서도 내가 다른 것을 선택했을 때조차 날 버리지 않고 그 의사를 존중받을 때 비로소 난 인형이 아닌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이다. 창조주조차 이렇듯 소중히 아끼고 존중하는 ‘나’이고 ‘너’인데 세상에 사람만큼 귀한 것이 또 있겠는가!

  그렇지만 역시 영화의 마지막에 콘스탄틴이 얘기한 것처럼 신의 뜻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그건 마치 내가 하늘을 보는 것과 하늘이 날 보는 것이 같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난 눈에 보이는 하늘만 보이겠지만 하늘은 나와 다른 것과 모든 것이 다 보일 것이다. 여기서 콘스탄틴은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고 했지만 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선택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어떠한 것이든 내가 선택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사실 나도 나의 신을 생각 할 때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은 걸 주는데도 받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면 주는 쪽은 오죽 답답하겠는가! 그럼에도 난 나의 신이 날 사랑한다는 걸 알기에 나도 사랑하기로 선택한다.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우리는 누구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기에…….

  사랑하기로 ……. 자신조차 선택 안에 넣으신 ....나의 조물주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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