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 O.S.T. - SBS 드라마
Various Artists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연인’에 ‘연’을 맨 끝으로 보내면 ‘인연’~~~, ‘인연’에 ‘인’을 맨 끝으로 보내면 ‘연인’~~~”


  제가 요새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입니다. ‘파리의 연인’에서 ‘프라하의 연인’을 거쳐 마지막 ‘연인’까지. 유종의 미라고 할까요? ^^;;

  앞에 두 편도 상당히 재미있고 신선했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연인’도 그에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시청률은 앞에 두 편에 비해 못 한 듯 하지만…….

  그리고 세 편의 제목 모두에 들어가는 말, 연인. 제가 아주 좋아하는 단어에요. 거꾸로 말해도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 되거든요. 연인(사랑하는 관계)과 인연(맺어지는 관계). 두 말 다 참 예뻐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말이어서.^^   

  O.S.T.는 드라마 시작하고 얼마 있다 바로 구입했는데 상당히 좋은 편이에요. ‘자물쇠’나 ‘고해’는 강재랑 ‘처음사랑’과 ‘For my love’은 미주와 잘 어울리죠. 테마곡들도 각각의 인물들을 잘 표현했고요.

 사실 요새 좀 걱정입니다. 강재가 죽으면 여파가 오래갈 것 같아서요. 미주에게 가려고 죽을힘을 다하고 있다는 강재가 참 부럽고 멋있게 보였는데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이 O.S.T. 지금보다 더 애절할 듯싶네요. 드라마의 결말은 O.S.T.에도 영향을 주죠. 그게 바로 O.S.T.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아, 싫다! 강재 죽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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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1-04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강재를 사랑하시는군요!
아니면 아라님이 지금 밀애중이시면....좋을텐데..응원 팍팍 해 드릴텐데..^^

아라 2007-01-04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강재를 사랑하는거였군요!
이렇게 누군가 알려주어야지만 제 감정을 확인할 수가 있으니 제가 여태 연애를 못 하는건가봐요. 흑흑흑~~~ ^^;;
 
랍비의 고양이 1 - 나는 말하는 고양이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조안 스파르 지음, 심지원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다르다!’

  책의 표지부터 전체적은 느낌이며 분위기가 그동안 보아왔던 그림과는 많이 달랐다. 한 마디 더하자면 대사는 더하다. 물론 나의 편독과 유대문화에 대한 짧은 지식도 한 몫 하긴 했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끝까지 참 이국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책  장을 덮을 때는 책을 읽었다는 느낌보다 여행에서 돌아왔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처음에는 좀 낯설었지만 볼수록 매력 있고 신기하다고 할까?  

  물론 말하는 고양이 무즈룸도 만만치 않다. 주인아저씨의 스승과 얘기할 때 느껴지는 탐구심이나 ‘신’에 대해 묻는 의문도 재치가 있지만 인간의 위선과 나약함을 이해하는 부드러움도 지니고 있다. 거기다 마지막 부분에 당나귀와 벌이는 열띤 논쟁에서 느껴지는 종교관까지! 두루두루 모양새는 다 갖추었다.

  하지만 ‘말하는 고양이’보다 더 중요한 건 ‘고양이가 하는 말’일진대, 사실 그 말이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재미있고 기특한 고양이인 것 같지만 ....... 조금 고루하다. 서로 각자의 차이를 이해하고 평화롭게 같이 길을 걷자(랍비인 주인아저씨와 아랍인 길동무처럼)는 게 책의 주제라면 말 그대로 그게 다다. 반전은 없다. 무즈룸이 중간에 말을 못하게 된 것이 반전에 들어간다면 또 모를까. 그 부분에서는 솔직히 적지 않게 놀랐다. 말을 하나 안 하나 별 차이가 없어서 또 놀라긴 했지만. 결국 「말문이 트인 건방진 고양이가 세상에 던진 질문들」은 내 흥미를 끌기에 조금 부족했다.

  그래서인지 그림에 눈이 더 많이 간다. 특히, 나무 위에서 풀을 뜯는 염소나 아랍인과 같이 보낸 밤풍경은 정말 훌륭하다. 표현력도 좋지만 무엇보다 그림에 유머와 여유가 있다. 평면적인 그림이지만 상황마다 선의 느낌이나 세기에 변화를 주고 분위기에 맞는 색감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시간의 흐름과 인물의 감정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글보다 그림이 더 빛을 발하는 책이니, 그림소설임에 확실하다.

  거기다 책을 다시 펼치면서 드는 호기심을 하나 더 보태자면 ‘무즈룸이 말을 못하게 된 이유는 정말 금기를 깨서 벌을 받은 건가? 아니면 소화가 다 된 앵무새의 말발이 거기까지?’

  궁금하면 읽어보세요. 혹시 다른 이유가 있다면 알려주시고요. 꼭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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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1-04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즈룸이 더 이상 말을 못하게 된 이유를 저는 알아요.
사랑하는 아가씨의 결혼소식에 충격을 먹어서!....라고 맘대로 생각합니다.
아라님의 냥이는 잘 있나요?^^

아라 2007-01-05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충격도 한 몫 했군요.^^
고양이들은 잘 있어요. 매일 보는 애들은 한 6마리 정도. 어미가 늘 새끼들을 먼저 먹이는 거 보면 그 무리가 한 가족인 것 같아요. ^^ 사실 요새는 고양이 밥 따로 생선가게에서 마련 할 정도에요. 그리고 이제 밥 주는데 도망도 안 가요. 경계심이 없어져 밥 먹는 모습 보여주는 건 좋은데 그만큼 들킬 확률이 늘어서 줄 때마다 심장이 얼마나 뛰는지...... 그래도 먹는 모습보면 참 예뻐요. 제법 많이 컸거든요.^^
 

 

난 2002년 2월 22일 경기도 경찰청장이 발급한 운전면허소지자다.

그리고 올 4월, 차를 구입했다.

…….

힘들다.^^;;


그런데 도대체 내 차 옆에 타려는 사람이 없다.

장가 간 오빠도 운전할 때면 당연하다는 듯이 차 키를 달라고 하고,

엄마도 집 근처 마트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어디 좀 가자”라는 말씀을 꺼내시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어디를 가자고하면 은근히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모두가 다 짠 것처럼 없던 약속들이 생겨난다.


그나마 우리 집, 밍키 만이 내 차 타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운전 하는 차!


밍키는 아빠나 오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미친 듯이 발버둥치고 끙끙거리며 열린 창문 밖으로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자세를 취한다.

그런데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면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로 윤기 나는 코를 벌렁거리며 바깥 경치를 즐긴다.


왜 이 각기 다른 두 ‘종’은 같은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걸까?


왜 우리 집 식구들은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지 않을까?


왜 우리 집 강아지는 내가 운전하는 차만 타려고 할까?


그리고 누구(?)의 판단이 더 정확할까?


궁금하지만 양쪽 다 말이 없다.

한쪽은 시선회피로, 또 다른 쪽은 통역불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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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1-07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밍키가 아라님 차를 타는 이유는요, 아라님이 가장 만만해 보여서 그런거?
아이, 이게 아니구요. 아라님이 가장 편안하게 잘 해줘서 그런거겠죠^^

아라 2006-11-07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파란여우님도 언제 한 번 탑승 가능하신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구판절판


헤드라이트 빛 속에서만 내리는 이 겨울비처럼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었다. 그를 만난 후 나는 그것을 알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10쪽

생을 두고, 설사 그것이 유치하고 어리석으며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결말로 끝난다고 해도, 그렇게 모든 것을 걸수 있는 대상을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7쪽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같은 말들을, 그냥 건성으로 하는 거 말고 진정 그 말이 필요할 때, 그 말이 아니면 안 되는 바로 그때에는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31쪽

누군가가 간절히 내가 이 세상에 있어주기를 바란다고 생각하자 마음 한구석으로 둔중한 쓰라림 같은 것이 지나갔다. -68쪽

죽는다고해서 모든 것이 그만, 이라는 것은 어쩌면 틀린 생각이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수녀님의 내복은 따뜻했습니다.-73쪽

한 마디로 그들은 생과 정면으로 마주칠 기회를 늘 잃고 있는 셈이었다. -119쪽

누구에게나 슬픔은 있다. 이것은 자신이 남에게 줄 수 없는 재산이다. 모든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있지만 자신만은 남에게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이 소유한 비극은 있다. 그 비극은 영원히 자신이 소유해야 할 상흔이다. 눈물의 강, 슬픔의 강, 통곡의 강, 슬픔은 재산과는 갈리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분배되어 있다. 박삼중 스님. -126쪽

죽고 싶다는 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다시 거꾸로 뒤집으면 잘 살고 싶다는 거고 ...... 그러니까 우리는 죽고 싶다는 말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말해야 돼.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건, 생명이라는 말의 뜻이 살아있으라는 명령이기 때문이야......-159쪽

내 생애에서 나의 말에 온 존재를 모아 귀 기울여주었던 사람을 내가 가진 적이 있었을까.-200쪽

모두들 얼마간 행복하고 모두들 얼마간 불행하다. 아이, 이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간 불행한 사람과 전적으로 불행한 사람 이렇게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행복한 사람들이란 없고 다만, 행복에 관하여 마음이 더, 혹은 덜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218쪽

그게 남이든 자기 자신이든 아프려면 바라봐야 하고, 느껴야 하고, 이해해야 했다. 그러고 보면 깨달음이 바탕이 되는 진정한 삶은 연민없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민은 이해없이 존재하지 않고, 이해는 관심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관심이다. ...... 그러므로 모른다, 라는 말은 어쩌면 면죄의 말이 아니라, 사랑의 반대말인지도 모른다. -248쪽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고, 존댓말을 쓰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기 때문입니다. ...... 사랑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고, 용서 받아본 사람만이 용서 할 수 있다는 걸 ...... 알았습니다. -288 - 289쪽

온기가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라면, 인간의 영혼에서 온기가 사라지는 순간 또한 죽음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도 한때, 그것도 모르고 살면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이미 죽음이었는지도 모르고.-294쪽

어떤 인간도 본질적으로 선하지 않고, 어떤 인간도 본질적으로 악하지 않기에 우리는 늘 괴로운 하루를 보낸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본질적으로 한 가지 같은 것도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죽음에 맞서서 싸운다는 것이다. -300쪽

하지만 이제 한 가지는 안다. 그래도 산다는 것, 죽을 것 같지만. 죽을 것 같다, 이건 사는 게 아니야, 라고 되뇌는 것도 삶이라는 것을. 마치, 더워 죽겠고 배고파 죽겠다는 것이 삶이듯이,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삶이듯이, 그것도 산 자에게만 허용되는 것, 그러므로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제 죽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잘 살고 싶다고 바꾸어서 말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303쪽

사랑은 그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견디는 것이고, 때로는 자신을 바꿔낼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을 나는 윤수를 통해서 깨달았던 거였다.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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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종로를 나갔다.


일산에서 종로를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하철을 타는 것.


난 지하철이 싫다. 답답하고 숨쉬기는 힘들고 옆으로 가는 느낌도 영 적응이 안 되지만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점은 낯선 사람과 마주보고 있으면서 얼굴을 돌리거나 눈을 감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치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는 것처럼.

그것도 여러 명이 나란히 앉아서는 …….


슬펐다. 달아나야 했다. 책을 꺼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지는 못 했다.

왜 그랬을까?

그게 울만한 일은 아니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났을까?

울컥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참느라 목이 아팠다.

 

눈을 감았다.


어찌어찌하여 결국 종로에서 영화 한 편 보고 밥 먹고 다시 지하철을 탔다.

언제 울었냐는 듯 친구랑 수다 떨기에 바빴다.

서로 어깨를 맞대고 얼굴만이라도 마주보려 불편한 자세로 고개만 돌린 채 얘기하길 50분.

친구가 먼저 지하철에서 내렸다.

다시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조용해진 주위가 어색했다.

이때까지 정신없이 수다 떤 것이 좀 창피하기도하고.

어떻게 하나?


웃었다.

그냥 웃음이 났다. 그냥 눈물이 났던 것처럼.

그런데 마주보고 있는 아저씨도 웃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아줌마도.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내리 누르자니 배가 아팠다.

눈을 감았다.


‘적어도 두 가지는 눈치 채셨을 거야. 서른이 넘었다는 것과 아직 미혼이라는 것. 이런, 이런 …….’


그래도 싫지 않았다.

옆으로 가고 있는 것도, 내 목소리를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었다는 것도, 그리고 낯선 사람과 마주 보고 있다는 것도.


내가 먼저 웃는다면 그 중에 몇은 같이 웃어 줄 거다.

그리고 혹시 내가 운다면 누군가 한 명은 자신의 가방을 뒤지며 건넬 것을 찾겠지.

 

감았던 눈을 떴다.


지하철도 가끔은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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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10-30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아라님!
저에게도 웃어 주세요^^

아라 2006-10-30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돼요, 여우님한테는 울어만 드릴거에요.
여우님 기쁘실 때 저도 같이 기뻐서 울고
여우님 슬프실 때 저도 같이 슬퍼서 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