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밥 대신에 커피를 먹는 내 동생, 널 위해 준비했다. LG family카드! 사이즈 하나씩 올려주니까 500원 아낀다고 작은 거 먹지마라.”
울 오빠가 카드를 내밀었다. 포인트 카드. S커피전문점에서 그 카드를 보여주면 사이즈를 업그레이드해서 먹을 수 있단다. 이게 웬 횡재야! 카푸치노 사준다면 모르는 사람도 따라가 볼까 생각하는 나. 이게 웬 떡이냐 싶어 괜찮다는 시늉 한번 없이 날름 받았다.
사실 커피는 내가 즐기는 몇 안 되는 스트레스 해소법 중에 하나다. 난 술도 못하고 나이트클럽과도 거리가 먼데다 가장 결정적으로 남자친구가 없다. 뭐, 스트레스가 쌓이면 음악을 듣고 산책도 하며 나름대로 푸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카푸치노 한잔만 내 손에 있으면 이것만큼 효과 빠른 처방전이 없다. 그래서 밤이라도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가끔 지하철역으로 뛰쳐가곤 하는데, 그럼 한 손에 커피 들고 산책하며 음악듣기까지 한 번에 OK! 커피는 내가 누리는 유일한 사치면서도 또 좋은 친구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2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하고 들어온 오빠. 밍키도 본체만체 부엌으로 온다.
“도대체 커피를 얼마나 마시는거야? 너 그러다 위 아프다고 새벽에 또 응급실 가려고 그러지?”
이럴 때는 오리발을 내미는 게 좋다.
“아니야. 나 요새 커피 별로 안 마셔. 하루에 한 잔도 안 마실 때도 있는데.”
물론 이건 날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절대 아니라는 걸.
“거짓말마. 엄마 핸드폰에 다 찍혔어. 내가 한 보름은 그냥 넘어가겠는데 어떻게 주는 게 아니라 더느냐? 밖에서 두 잔씩 마시고 집에서 저녁 먹고 마시고 또 요새 가끔 산책한다고 나가서 또 한잔 마시지? 너 그러다 정말 탈라.”
오빠가 카드를 준 게 7월이었는데 사실 그게……. 이래저래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 좀 많이 마시기는 했다. 근데 난 몰랐다. 카드를 쓸 때마다 그 정보가 핸드폰으로 날아간다는 걸. 아마도 엄마가 핸드폰에 자꾸 이상한 게 뜨니까 오빠한테 물어봤나보다. 안 그래도 위가 뒤집혀서 새벽에 응급실에 몇 번 실려 간 전적이 있는데 커피를 하루에 4-5잔씩 마시면 누가 잘 한다고 하겠는가?
“어째 좀 보태려고 카드 줬는데 내 생각에는 영 보탬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오빠! 알겠어. 하루에 한 잔만 마실 게 아니 일주일에 두세 번. 진짜야.”
“정말이지?”
“응.”
힘차게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인다. 어쨌든 카드를 지켜야 한다.
#3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오늘도 드라이 카푸치노 톨 사이즈로 주문하실거예요? 밖에 상당히 더운데. 아이스로 드세요.”
“아니에요. 그냥 따뜻한 거주세요.”
습관처럼 카드를 내미는 순간,
“저기요, 잠깐만요. 저 이 카드 쓰면 메시지 날아가죠?”
“네. 포인트 차감되는거요.”
“네? 포인트도 차감되는거에요?”
“네.”
“저 카드 그냥 주시고 현금으로 다 계산해주시겠어요?”
그냥 family카드여서 혜택이 있는 줄 알았는데 포인트가 차감되는거였다. 어쨌든 난 오빠가 열심히 쌓은 포인트를 야금야금 긁어먹고 있었던 셈.
#4
그날 밤.
“오빠 그거 포인트 없어지는 거 알고 있었어?”
“그럼 그걸 모르냐?”
“오빠........................ 사실은 포인트가 아까웠던거지?”
“얼씨구. 엄마, 오늘도 그거 떴어?”
“아니, 오늘은 안 떴어.”
“안 마신다고 했잖아. 이제 많이 안 마신다니까.”
“그렇다고 네가 안마시겠냐? 그 좋아하는 커피를. 조금만 마시라고. 하루에 한두 잔 정도만.”
“알겠어. 알았다고. 근데 오빠? 정말 포인트 아까워서 그러는거지?”
“그래 포인트가 아까워서 그런다.”
카드가 나한테 있어서 자기는 쓰지도 못할 거면서도 포인트가 아깝다는 우리 오라버니.
그런 의미에서 이 카드는 나에게 100% 떡은 아니다. 그래서 가끔은 카드를 쓰지 않고 돈을 다 내고 사 먹는 센스가 필요하다.^^
하지만 난 요새 울 오라버니 때문에 S커피전문점을 자주 그냥 지나간다. 그럴 때면 커피를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따뜻하고 고소한 향이 느껴진다. 마치 방금 만든 카푸치노 한 잔의 첫 한 모금을 마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