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우리집은 그야말로 동물 농장이었다
어머니께서 워낙 동물을 좋아하신데다 그뿐 아니라 잘 기르기까지 하셔서
심지어 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들까지도
우리집에 오면 닭이 되어 날라다니는 묘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게다가... 새끼의 새끼...정말 소형 동물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업둥이들이 많았었다
어느날 같이 성당에 다니셨던 어머니 친구분께서
쓰레기차 위에서 악을 쓰고 있는 고양이 새끼를 한마리 발견하셨는데
가여워 데리고 왔으나 고양이를 싫어하셨던 아주머니께서는
그걸 우리집에 버리고 가신 일이 있었다.
어머니, 전화를 받고서야 그 사실을 알고 나가봤더니
세상에... 그때가 한겨울이었는데도 집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는지
그 녀석은 그 추운데 오들오들 떨면서도 울지를 않더라셨다.
어쨌든 사연 많은 그 고양이는 유난히 총명하고, 속 깊고, 또 씩씩했다.
난 그 고양이가 너무도 이뻤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 녀석은 너무 총명하고 속이 깊었으니...
어릴때부터 총명하기 그지 없어
이내 똥오줌을 가리더니, 문을 혼자 여는 법도 터득하더니
TV끄는 법등 인간이 하는 짓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옆집 아이가 귀찮게 하면 어떻게 아이라는 걸 알았는지
꼬리를 잡아 끌거나 귀를 뜯어도
절대 할퀴거나 화내지 않고 그저 피할뿐이었다.
물론 어른이 그러면 엄청나게 화를 내며 대들었다.
볼수록 묘한 놈 이었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날 꾸중하고 계셨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이 넘...
어찌나 어머니께 성을 내는지 어머니께서는 어이가 없으셨는지
허허 웃으시며 더 이상 나를 혼내지 못하셨다.
생각할수록 웃기는 넘이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부엌에서 또 이상한 음식을 만들어 내던 나는
부엌창을 통해 밖을 무심코 내다 봤는데
그 넘이 있었다.
그래서 반가워서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근데 이 넘이 갑자기 그 높은 부엌창을 향해 뛰어 오르지 않는가.
그러더니 계속 떨어지고 또 달려와 뛰어오르고...
난 어이가 없었다.
그 똑똑한 넘이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그 넘은 우리집뿐 아니라 우리동네 지리도 꿰고 있는 넘이었다.
그러더니 기어코 부엌창에 오른 넘
골골거리며 내 품에 뛰어든다.
"야, 이 밥팅아 왜 그랬어?"
그러나, 난 풀이랑 흙이 뒤범벅이 된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골골거리는 그 넘을 보며
그때 처음 깨달았다.
사랑이란 머리를 쓰는 것도 아니고, 지가 망가지는 것도 신경 쓰는 것이 아닌
상대를 향해 무조건 달리는 거라는 걸 말이다.
가끔 생각난다. 이사올 때 결국 남에게 주고 온 그 고양이...
어머니께서 가자고 했더니 말없이 그 집에 순순히 따라갔다던 그 넘
어머니께서는 고양이는 터가 중요하니 이웃집에 넘겨야한다고
다른 고양이를 얻어다 준다고 하셨지만....
내게 앞으로 고양이는 많을 수 있다 해도 내게 사실 고양이는 하나뿐임을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아직도 고양이라고 말하면 그 넘이 생각난다.
내가 책을 읽고 있으면 엉덩이를 내 다리에 붙인채 꼬리를 마루에 척척 쳐대던 그 넘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