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1
안애경 지음 / 나무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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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에 감동을 받았다'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있는 그대로를 중요시하는 나라 핀란드. 일상 속에서 디자인을 추구하고 영감을 떠올리고 단조로워 보여도 디자인에 감동을 담는 나라가 바로 핀란드인 것 같다.

환경과 자연을 사랑하는 디자인. 그것은 삶의 철학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작가가 핀란드를 산책하듯 누비고 핀란드 삶 곳곳에 있는 디자인을 소개한다. 직접 체험하고 이해하는 디자인. 상품이 되기 위해 디자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디자인이 존재한다. 그게 경이롭다.

디자인의 시대. 모두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새로운 것, 기발한 것, 창의로운 것을 원한다. 디자인은 돈이 되고, 디자인은 가치가 된다. 하지만 핀란드에서 디자인이란 문화이고 삶 그 자체다. 절제하는 삶을 담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어릴 적 유년을 담는다. 절제된 디자인이지만 감동을 담는다.
 
푸른 빛이 가득한 겨울. 건물의 빛은 삶의 빛을 표현했다. 도시의 빛은 계산되어 있지만 넘치지 않는다. 디자이너 미꼬 빠까넨의 메두사 조명은 재미와 빛을 결합한 빛의 유희다. 해파리의 수축과 팽창을 연상시키는 조명, 빛의 감정을 담는다. 길쭉한 형광등의 빛이 아니라, 빛에 재미를 담는 디자인.

커피를 즐기는 여유를 갖는 핀란드에서는 일회용 컵이란 없다. 자작나무를 연상 시키고 루돌프 사슴 불을 연상시키는 커피잔. 소비자의 취향과 일상을 고려한 담백한 커피잔들. 커피를 즐기는 여유에도 디자인을 담는다.

오이바 또이까의 겨울 철새를 담은 유리 디자인은 당장에라도 손에 쥐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새 한 마리에게도 디자인의 영감을 받는다. 자연은 디자인이고 디자인은 자연이다. 자연을 디자인의 소재로 삼는 게 자연스러운 핀란드에서는 진정한 에코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병원 수술복, 군복, 공사판에서 쓰던 가림막은 또 다른 디자인으로 탄생한다. 쓰레기라도 분류된 천조각에서 자유로운 스타일과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이 나온다.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꽃. 디자인이 되고 브랜드가 된다. 폐타이어가 의자가 되고 가방이 된다. 자연과의 공존, 균형, 재활용이 자연스럽게 디자인과 연결된다. 소비성 디자인이 아닌 환경을 살리는 디자인이 인상깊다.

<핀란드의 디자인 산책>에서는 핀란드의 디자인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문화와 정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뭉쳐 디자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도 천천히 느리게 언제 끝날지 모르게 조심스럽게 한다. 돌 하나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대상으로 삼기에 함부로 부시거나 새로 짓지 않는다. 있는 것의 변형이 자연스럽다.

아이들의 놀이터에도 흙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아이들의 심리도 파악한 놀이기구가 가득하다. 재활용해 만든 놀이기구들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환경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다. 버스 표지판, 벤치 하나도 튀지 않고 풍경이 되게 하는 디자인. 시뻘건 십자가가 가득한 우리 도시와 달리 교회가 교회가 아닌 듯 머무르는 곳. 먹을 만큼 재배하고 욕심내지 않는 삶. 자연스러운 질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광화문 광장이나, 한강 르네상스가 부끄럽다. 현란한 빛을 내뿜는 건물과 위험한 먹을거리가 부끄럽다. 시멘트로 메워버린 보도블록이 부끄럽다. 자연과 공존하는 도시. 도시와 공존하는 자연. 지금 당장의 편리함보단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는 아름다움을 먼저 생각하는 핀란드.


디자인이 상업이 아니라 생활이 되는 나라.
디자인을 산책하듯 즐길 수 있는 나라.

디자인도 눈앞에 편리함과 돈만 중요시하는 나라.
디자인이 공해가 되는 나라.

아,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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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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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린 여자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풍성하다.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어디를 바라보는 것일까? 우리는 가끔, 아니 종종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 누군가 내 곁에 있는데도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적막함이 나를 감싼다. 그 아스라함은 나의 입을 막고,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존재에게 거리를 두게 한다. 


제 아무리 인생을 깊이 들여다본다고 해도 모두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 221p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中


누구에게 이해받기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런 사실을 잊는다. 사람과 어울려 사는 삶은 즐겁기도 하지만, 때때로 나를 피곤하게 한다. 이해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이해시키려고 온 시간을 쏟아붓고 나면, 허무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나 또한 종종 누군가를 오해하고 이해하지 못해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결국,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크나큰 폐를 끼치고 있는다. 이해와 오해 사이에는 소통과 침묵이 가로막고 있다. 그 소통과 침묵은 약과 독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 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 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다, 좋고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나날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81p <세계의 끝 여자친구> 中


 
우리는 타인의 생각을 '발견'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살아온 그 시간 속에서는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깨닫기도 한다. 타인의 생각을. 아무리 가까운 부모, 자식,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더욱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 때가 있다. 사랑의 자만심에서 비롯된다. 언젠가는 수긍할지 모르나, 당장은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소통을 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침묵하게 된다. 그리고 마음을 닫게 된다. 내 쪽에서 그쪽의 생각을 '발견'하게 될 때까지 말이다. 그리고, 결국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이야기다. 이 우주의 90퍼센트가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것들로 이뤄져 있지만, 결국 케이케이의 어린 몸도, 그 몸을 사랑했던 내 세포들도 달리 갈 곳은 없을 것이다. 나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그걸 보지 못할 뿐이다.
11p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 봤어> 中



이미 나의 세포들은 모두 나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 세포들이 가진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하기란 무의미하며, 소모적이다. 그랬을 뿐이다. 나를 이해해달라고 애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가진 기억들과 내 삶의 조각들은 '너'가 아닌 '나'에게 감동적인 것이다. 그 감동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그걸 모두 말로 설명해야 하지는 않은가. 침묵으로 일관해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말하지 않고 숨겨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가끔은 그런 것들을 알아주면 얼마나 좋단 말인가? 타인에 대한 궁금증, 지나치면 서로에게 상처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내가 간직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인정해주면 좋을 텐데.

 
힘든 건 마음이 힘든 거고, 고통은 몸이 고통스러운 거 아닐까?
126p <모두에게 복된 새해> 中


누군가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마음은 힘들어졌다. 누군가를 오해하기 시작하면서, 오해하는 만큼 내 마음은 힘들어졌다. 결국, 오해였고 타인으로부터 전해들은 어떤 말들은 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침묵하고 있어서 몰랐다고 말하는 것은 가끔 변명이 된다. 모른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침묵이 길어지기도 한다.


미래를 바라봐온 십대, 현실과 싸웠던 이십대라면, 삼십대는 멈춰서 자기를 바라봐야 할 나이다. 이젠 좀 솔직해져도 괜찮은 나이다.
96p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中


솔직해지기 위해 평생을 싸운다. 그 정점이 되었을 때조차도. 솔직함 때문에 상처를 받고 상처를 준다. 그렇게 겪어 낸 시간들이 우리에게 소통의 부재를 가져온다. 서른 살, 나는 얼마나 변할까? 2010년 나의 서른 살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변할 것인가. 나이가 들수록 입을 다물 일들이 많아진다. 남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고, 내 인생을 참견하면 목소리가 높아진다. 마음을 열지 못한 게 아니라 굳어진 가치관들의 충돌이 쉼 없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난 220V인데 110V로 바꾸려 하는 일들을 겪게 되면서 날이 서고 칼을 벼른다. 나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삶은 결국 쓰레기보다 못하다는 걸 깨닫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모두 이기적이 되고, 자만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이야기'란 목소리와 목소리 사이, 기침이나 한숨 소리, 혹은 침 삼키는 소리 같은 데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인생이 바뀌는 순간의 망설임이나 두려움은 릴테이프를 돌려가며 그녀가 가위로 오려낸 조각들과 함께 사라졌다.
237p <달로 간 코미디언> 中


어쩌면 침묵은 침묵이 아닐 것이다. 고요함에서부터 소통이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를 것이다. 그 시점을 알아내기만 한다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좀 더 편안해질 것이다.

 
듣는 사람이 없으면 말하는 사람도 없어. 세계는 침묵이야. 암흑이고.
249p <달로 간 코미디언> 中


외로움은 자신을 외롭게 하는 자에게 찾아온다. 결국 침묵과 암흑은 자기가 만들어낸 모든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깨닫게 될 때쯤 인생을 접는다. 소통과 침묵은 쳇바퀴 돌듯 돌고 돌고 멈추었을 때 세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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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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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뭐랄까? 범접할 수 없는 독자적인 영혼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성적인 인간을 폭풍같이 변화시키며, 감정적인 제어를 불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사랑은 참으로 어렵다.

학고재 주간 손철주 선생님을 만나서 받은 <D에게 보낸 편지>는 많은 사람이 환상처럼 어렴풋이 느끼는 꿈인,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실재일지도 모르는 두 남녀 간의 부럽디 부러운 사랑이야기다. 아니, 길고 긴 한 남자의 연가라고 해야할까?

어쨌든, 이 둘은 너무도 사랑했던 것 같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

아내가 정신적인 협력자이며, 삶의 동반자라면.
아니 나의 배우자가 그런 위치에서 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면 삶은 참으로 풍요로울 것이다.
운명처럼 만나, 죽는 순간까지 일체가 되어 살 수 있다면, 사는 내내 행복이겠지. 앙드레 고르는 도라를 만나 그랬던 것 같다. 앙드레 고르는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글을 쓰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도라는 인식시키고 또 인식시킨다. 인식시키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의 든든한 지원자가 된다.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정신적인 곤궁을 느껴야 할 때도, 그를 한없이 지지하는 도라가 있어 그는 힘을 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도라가 병에 걸리고, 오랜시간 그를 간병하고,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함께했던 앙드레 고르. 그녀없는 삶은 그에겐 아무 의미도 없었던 것일까?
그녀가 죽고, 자살로 그녀를 따른다.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없이 그녀를 따를 수 있었던 그의 용기는 사랑의 완성이 아닐까?

단지, 결혼이라는 법제화된 사회적 구속 속에서 아웅다웅하며 서로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어떠한 이유들 때문에 억지스럽게 묶인 상태로 불행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결혼과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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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로 올라오세요, 창문을 통해
마이라 산토스 페브레스 외 14인 지음, 클라우디아 마시아스 엮음, 우석균 외 6인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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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 문학이나 프랑스, 일본, 중국 문학 등은 나름 익숙하게 다가오지만, 라틴아메리카 문학은 접해보기도 어렵고, 그들의 정서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15개의 단편을 읽으면서, 얼마나 숨이 찼던지.

<아우렐리아를 위한 묘약>, <트로이로, 엘레나여>, <미국의 숙녀들>, <짧은 작별>, <코끼리에 관한 우화>, <스케이트 타는 남자의 침묵> 등은 인상에 남는 단편이었다.

<짧은 작별>이나 <트로이로, 엘레나여>는 인간 안에 잠재되어 있는 이기적인 욕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짧은 작별>에서 느껴지는 광기와 폭력, 생존의 욕구는 잔인하다 싶지만, 인간 본성에 숨겨져 있는 이기심을 잔혹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았나 싶다. <아우렐리아를 위한 묘약>과 <코끼리에 관한 우화>는 신비스럽고 매혹적이었다. <아우렐리아를 위한 묘약>은 소설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향수>에서의 '후각'과 <아우렐리아를 위한 묘약>의 '촉각'은 주술처럼 신비로웠다. 단편에서 보여주는 집착과 전문성이 변형되어 나타나는 기이한 행동은, 인간의 전형적인 행태가 아닌가 싶다.

나는 라틴아메리카 단편선을 읽으면서, 인간의 본성에 집중하여 읽었다. 그것은 그들의 문화에 대해 아는 지식이 부족했고, 그때문에 이해력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의 다른 형태와 전개방식을 발견했고, 캐릭터를 풀어내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그것은 눈이 보이는 사람이 손으로 더듬더듬 점자를 읽어나가듯 서투르게 이해하면서도 얻은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이 부족하여 이해되지 않는 단편들도 있었고, 희미하게 이해하는 단편들도 있었다. 글이란 것은, 참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기에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욕망은 참으로 헛된 것같다.

'침실로 올라오세요, 창문을 통해'라는 단편집을 읽으면서 내가 얻은 성과는, '낯선 것들에 다가가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낯선 것들을 익숙하게 만드는데는 나의 노력이 필요하겠다.

2009년 첫 해를 여는 책은, 도전적이고 실험적이었다. 올해는 나에게 그런 해가 되지 않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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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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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날것같은 삶을 그대로 토해내는 명랑 고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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