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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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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변하지 않았다

2년 전, <4천원 인생>을 읽고 난 후 느꼈던 우울이 <노동의 배신>에서 재현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쓰여졌던 이 책은 2012년이 되어서도 유효하다. 노동은 더욱 궁핍해졌고, 나아진 것이 없다. 그게 더 우울하고 충격적이면 충격적이랄까? 세상은 발전하고 있고 좀 더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빈곤의 늪은 더 넓어졌다.

 

2년 전, <4천원 인생>에서 4가지 노동을 만났다. 식당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아줌마의 노동, 마트라는 거대 자본에 그림자가 되어가는 젊은이의 노동,  온갖 궂은 일을 도맡하 하면서도 불법이라는 그늘에 갇혀 살아야 하는 불법 체류자들의 노동, 사람이 기계가 되는 기계적인 노동. 이 4가지의 노동을 4명의 기자들이 경험했다. 비인격적이고 부당한 대우에도 입을 열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그들을 밟아 누르고 '발전'을 향해 나아가는 기업과 사회. 그 누구도 그들의 권리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고, 관심도 없다. 기자 4명이 관심을 갖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고, 그들의 노동에 대해 폭로했지만 지금 변한 게 무엇인가? 마트에서 일하던 젊은이들의 삶과 노동은 더 나아졌을까? 식당에서 일하며 떳떳하게 휴일도 요구하지 못하고 사장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했던 아줌마, 아니 엄마들의 삶과 노동은 나아졌을까?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하지 않는 일들을 도맡아 해주는 불법 체류자에 대해 더 따뜻한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기계보다도 천대받는 삶을 사는 기계적인 노동을 했던 이들의 삶은 어떻고?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한숨소리뿐. 4명의 기자들이 '몸으로 때우며' 보여줬던 노동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도 말한다. 이 책을 쓰고 난 후, 10년이 지났어도 나아진 것이 없다고. 경제불황으로 일자리는 더욱 없어졌고, 중산층이었던 사람들도 어느날 갑자기 저소득층이 되면서 노동의 공급은 많아졌고, 수요는 부족하다. 2000년도는 경제가 호황이었음에도 그 지경이었는데, 경제 불황에 맞닥드린 현재는 더해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변하지 않는 노동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은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다. 노동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국가도 사회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노동은 변하지 않았다.

 

노동을 경험하다

그녀는 그동안 누렷던 삶을 포기하고 저임금 노동에 뛰어든다. 아주 엉뚱한 계기였지만, 시작하자고 마음을 먹자 철저하게 규칙을 세운다.

1. 자신이 받은 교육이나 원래의 직업으로 배운 기술에 의존해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다.

2.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임금을 제일 많이 주는 일자리를 택하고, 그 일자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3. 어느 정도 안전과 사생활이 보장되는 선에서 제일 임대로가 싼 방을 구한다.

규칙을 정하긴 했지만, 후에 이 규칙들을 하나도 지키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삶이 아니라, 경험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던 것인지 모른다. 사실 그녀가 해온 저임금의 노동들을 따라가고 있자면, 내 감정도 그녀와 함께 폭발하곤 했다. 아마 나 또한, 그것이 삶이 아니라 바라보는 입장이었기에 그러한 감정들을 분출했는지도 모른다. 정작, 그 노동들을 진짜 생활, 삶으로 받아들이고 사는 노동자들은 부당한 대우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가 경험한 노동은 다양하다. 식당 웨이트리스,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판매 직원. 그녀는 그러한 노동을 경험하면서 의식주 때문에 고민하고, 1~2달러 사이에서 고뇌한다. 저임금으로 살아가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임금이 낮기 때문에, 그에 맞춰 값 싼 음식을 찾아야 하며 시도 때도 없이 굶어야 하고, 주거 문제로 고민해야한다. 임금이 낮기 때문에 투잡을 해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녹록하지 않다. 모든 게 몸을 사용해야 하는 일이기에, 건강은 극도로 나빠져간다. 사실 몸만 힘든 거라면 뭐가 대수겠냐마는, 비상식적으로 인격과 권리를 무시해대는 통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 대해 그녀만 분노한다.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것은 언제나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고, 그보다 심한 일도 비일비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용주는 주는 것보다 더 부려먹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노동자는 살아남기 위해 아픈 것도 참아야 한다. 하루를 쉬면, 하루를 살아내지 못한다. 임신도 반갑지 않다. 입이 하나 더 늘 뿐이다. 노동은 '생존' 싸움이고, 사투였다. 그녀의 감정들은 오르락내리락. 읽고 있는 내 감정 또한 오르락내리락. 경험하지 못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정신 싸움이었다.

그녀는 '노동을 하며' 분노를 참아내야 했다. 끝까지 가보겠다는 생각, 이러한 경험과 기록들을 멈출 수 없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안간힘에도 종종 한계에 도달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100만 달러짜리 콘도에 갔는데, 주인은 나를 부부 침실로 데리고 들어가서는 샤워실 때문에 아주 속상하다고 했다. 샤워 부스의 대리석 벽에서 '피가 나듯' 물이 새 놋쇠로 만든 수도꼭지 손잡이에 떨어져 녹이 슬고 있다면서 대리석 사이의 이음새를 특별히 박박 밀어서 하얗게 만들어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당신의 대리석 벽이 피를 흘리는 게 아닙니다. 저것은 전 세계의 노동자 계급, 즉 대리석을 캐 나른 노동자들, 당신이 아끼는 페르시아산 카펫을 눈이 멀 때까지 짠 사람들, 당신이 가을을 주제로 아름답게 꾸며 놓은 식탁 위의 사과를 수확한 사람들, 쇠못을 만들기 위해 강철을 제련한 사람들, 트럭을 운전한 사람들,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이 집을 청소하려고 허리를 굽히고 쪼그리고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입니다." - 본문 129쪽

 

그녀가 청소부로 일했을 때 경험한 일이다. 삶은 비현실적이다. 한 사람은 비현실적인 육체적, 감정적 노동을 강요받아야 하고, 한쪽은 강요한다. 청소는 적나라하다. 사람의 똥부터 체모까지 감당해야하고 참아내야 한다. 때로는, 감시라는 덫에 걸려야하고 청소 일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도둑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아야 한다. 사회는 그렇게 비현실적인 일을 강요하고 있으며, 노동하는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참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동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알고보면 모두 적이라는 것이다. 고되고 힘든 일 속에서 서로가 힘이 되어줄 것 같지만, 천만에 말씀. 그 안에서도 권력이 존재한다. 권력을 가진 자의 삶이 그다지 더 나아보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들이 작은 권력에도 눈치를 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자존감의 상실 때문이다. 아무도 그들을 칭찬하지 않으며, 아무도 그들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 고용주는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만든다. 동료를 고자질하고, 내가 좋은 위치를 선점할 수도 있다. 노동의 늪은 생각보다 깊었다.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였다.

 

피트의 말대로 일은 우리가 사회에서 '왕따'로 전락하지 않도록 구원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왕따의 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역겹기까지 했다. 경비원, 청소부, 단순노동자, 성인의 기저귀를 갈아 주는 사람들. 이들은 신분제가 존재하지 않는 민주 사회의 불가촉천민들이었다. 그리하여 테드 같은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카리스마가 부여된 것이다. 그는 탐욕스럽고 무뚝뚝하고 잔인했지만 더 메이즈에서는 유일하게 더 나은 세상,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사복을 입고 직장을 나가고, 주말에는 재미로 쇼핑을 하는 세상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청소하는 집이 모자라면 그는 직원들을 ('정말 좋다'는) 자기 집으로 보내 일을 시켰다. - 본문 164쪽

 

실상, 사회는 그들을 저임금 노동으로 몰아내며 '왕따'를 시키고 있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며 내일을 걱정해야 하고, 절약을 생활화하느라 술은 물론 옷도 제대로 사입지 않았다. 통조림이나 질나쁜 음식으로 하루를 버티기도 했다. 버는 돈의 대부분은 집세로 지출되고 있었고, 남은 돈으로 그야말로 '생존'을 해야했다. 뭔가 다른 삶은 꿈에 꿀 수도 없었다. 돈도 없었지만,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야말로 일, 일, 일을 반복하는 삶이었다. 그 사이에 무엇인가 끼어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노동은 아프다

열심히 살아도 변하지 않는 삶과 만나야 한다는 것. 가난과 어깨동무하고 늪으로 빠져야 한다는 것. 노동이 삶을 나아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은, 희망을 품고 사는 이들에게는 좌절을 양산한다. 하지만, 그녀가 본 노동자들은 좌절할 겨를도 없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고민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그들의 삶이다. 수없이 많은 시간을 노동과 씨름한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 그 참혹함이다.

노동은 아프다. 고통의 연속이다. 노동을 사는 사람들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값을 지불하지 않는다. 그들의 노동은 필요할 때 쓰고, 필요하지 않을 때 버려진다. 그 상황 속에서 항상 불안을 느껴야 한다. 덤으로, 사회가 둘러 놓은 불안정한 울타리 때문에 안전을 보장받을 수도 없다. 시장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매몰차다. 그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들의 노동도 배려받지 못한다. 국가는 불균형적인 시장에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받을 수 있는 혜택마저도 빼앗아 간다. 노동자들을 보호해야할 국가는 시장의 편에 서 있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이 책에 나와있는 모든 상황과 경험들은 미국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미국을 모델로 삼고 숨가쁘게 쫓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벌어질 일이다. 아니 벌어지고 있을 일이다. 진실은 그늘에 가려져 있다. 그늘은 타오르는 태양을 잠시 피해갈 수 있게 해준다. 태양이 물러나고 가면, 그늘을 모른척한다.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잊혀져 간다. 밤은 그늘을 삼킨다.

우리의 그늘은 어디쯤 있을까? 우리의 노동자들은 어디쯤 있을까? 아무렇지 않게 쓰여지고, 버려지는 노동자들은 절규하고 죽어간다. 그래도 모른척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함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필요한 일이다. 내가 언제, 그 늪으로 빠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늪지대를 수월하게 탈출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없앨 수는 없어도 바꿀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노동에 배신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날이 오길 바란다. 가난한 노동도 없고, 노동의 늪도 사라지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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