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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
도정일.박원순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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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나은 세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민주주의 하고 있는가? 하루하루 사는데 급급하지 않고 사유하고 사는가? 문제를 문제로 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잠시 멈췄던, 정신이 행동이 번쩍 눈을 뜨게 하는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말빨 끝내주는 논객들이 교육, 사회, 여성문제, 복지, 정책 등에 대해 밀도 높은 이야기로 생각의 창을 열어준다.  
 
   
 

 강대한 문명은 자기 힘에 대한 과신과 그 과신이 빚어낸 오만 때문에, 그 오만에 취하고 젖어,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보지 않는다.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는' 것이다. 문제를 보지 않기로 하는 것은 문제를 보지 못하는 것 이상의 중병이다. 보지 못하는 것이 소극적 무지라면, 문제를 보지 않고 위기에 눈 감는 것은 무의식적 선택과 집단적 의지에 의한 무지, 곧 적극적 무지이다.  
(.... 중략......) 
문제를 보지 않으려는 그 적극적 기피의 경향이 한 사회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사회가 '사유의 정지' 현상을 보일 때이다. 사회가, 더 구체적으로는 사회의 다수 구성원들이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거부하며 생각한다는 행위 자체를 증오하는 것이 사유의 정지이다. 사유의 정지는 사회를 실패의 위기에 빠뜨리는 위험한 병리적 현상이다. 
- 13p <여는 글, 도정일>

 
   

 강대하지도 않은 문명이 오만에 취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보지도 못하고, 보지도 않는 것. 문제를 보지 않곡 적극적으로 기피하는, 사유의 정지가 리더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면. 이러한 상황이 민주주의를 다시 봐야하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상황까지 끌고 갔다. 힘을 합해 방향을 바꾸어야 하기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하기에. 지도자가 괴물이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각계에서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국민의 동의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와 국가기관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고, 권력을 등에 얹고 괴물이 되어 국민을 공격하는 비이상적인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위기는, 우리의 저항으로 나타나고 있고 우리의 문제 의식은 또 다른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인 현상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말하는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얼마 전 'CEO 대통령' 담론이 유행하면서 이 담론에 의해 정부가 교체되는 걸 봤습니다. 그런데 이 담론은 지금 우리가 공부하려는 국가 이론에 비추어보면 성립할 수 없는 언어조합이에요. 철학에서는 이를 수행모순performative contradictoin이라고 하죠. 특정한 언어 조합이나 행동 조합이 출발부터 모순을 갖는 겁니다. 수행을 하면 할수록 모순은 더욱 심화되지요. 대통령의 어원은 사회자, 조정자, 균형자란 뜻이에요. 여러 대립되는 측면과 이익, 주장들 앞에 서서 조정한다는 뜻으로, 사회자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래서 여러 견해와 이익을 조정하고 균형을 잡는 공공성의 표상이에요.
그런데 CEO란 바로 사익의 표상입니다. CEO는 사적 기업의 최고 경영자로서 경쟁사를 제압하고 시장을 얼마나 더 확대할 것이며 얼마나 더 많은 이윤을 낼 것인가를 목적으로 하죠. 그래서 CEO의 역할을 키우면 키울수록 대통령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요. 반대로 공공성의 표상으로서 대통령의 역할을 하려면 할수록 CEO의 역할은 줄어들어야 되죠. 결국, 'CEO 대통령'이라는 표현은 모순일뿐더러, 국가와 공공성의 표상인 대통령을 모욕하는 말이죠. 그런데도 우리의 보수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를 자랑스럽게 쓰고 있어요. 
- 82p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를 다시 생각하다 - 박명림>

 
   


괴물 지도자를 만들어 낸 것은 결국, 우리였다. 이런 모순되고 말도 안 되는 위치를 설정하고 그에 부응한 것도 우리였다. 모순된 지도자를 만들어 놓고, 우리는 세월을 역행하는 많은 사건을 접하게 된다. 민주주의라는 체제도 흔들릴 정도의 사건들. 그리고 지금 우린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된다. 사적인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를 뽑아 놨으니,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은 하려 하지 않고, 부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만 더 불려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내린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그 속에서 고통받는 시민들, 괴물의 존재를 물리치고 다시 바로 설 수 있는 방법. 우리의 권리를 제대로 행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논의와 관심이 이루어져야 한다. 포기하지 말고, 끝없는 시도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강자에 대한 동일시와 욕망, 약자 또한 약하다고 인식되는 가치에 대한 경멸과 혐오. 저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 집단 심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 작은 현상 중 하나가 부자는 철저히 계급 투표, '유물론 투표'를 하는데, 가난한 사람은 '욕망 투표'를 한다는 겁니다. 사회적 약자가 자기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동일시하고 싶은 사람에게 투표하면, 양극화는 약자의 동의 아래 철저히 합리화되겠죠. 저는 이걸 전반적으로 탈식민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을 누구의 시각으로 볼 것인지가 문제라는 거예요. 자신을 억압하는 자의 시선으로 볼 때 민주주의는커녕 개인의 행복도 불가능하죠.
- 127p <국가에 대한 명예훼손? 이 시대 소수자가 만들어지는 방식 - 정희진>

 
   

 강자를 뽑아 놓으면, 우리도 강자처럼 될 거라는 어리석은 욕망. 그러한 욕망이 결국은 강자만 배불리는 지도자를 탄생시켰다. 내가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약자의 편을 들지 않는다. 그런 모순된 행동들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 어느 나라와 우리 나라를 비교하며, 왜 우리는 그런 복지를 하지 못하냐,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냐. 그것은 결국,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가 아닐까? 더 좋은 사회를 원하고, 더 좋은 삶을 원하면서 행동은 반대로 하고 있으니. 약자, 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강자의 사고방식과 똑같이 행동하니. 결국, 우리는 먼 길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위치를 재정비하는 사유. 생각해볼 문제다. 

기형적인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의 현상들, 변화. 그 속에서 고통받는 20대, 10대. 결국, 쌓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삶을 쌓아가는 것은, 또 다른 세상을 살 그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닥친 하나만 생각한다. 20대에게는 40평 짜리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 허구가 되고, 아이를 못 나을 세상이 되고, 꿈보다는 안정이 중요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폴 비릴리오에 따르면 외연적 속도와 내포적 속도가 있답니다. 쉽게 말해서 산업화에서 정보화로 넘어갈 때는 외연적 속도를 내포적 속도로, 기계적 속도를 전기적 속도로, 눈에 보이는 신체의 속도를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과 상상력의 속도로 바꿔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도 전前 시대에 묶여 있다는 겁니다. 그나마 지난 두 정권에서는 앞으로 가는 듯 했는데, 지금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으니 회복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걱정됩니다. 
정치로 넘어가게 되면 산업혁명 당시와 정보화 혁명 당시의 인터페이스는 다릅니다.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원리가 달라요. 산업혁명 당시에는 기계가 상수입니다. (... 중략...) 그런데 정보화 혁명 시대가 되면 인간이 상수예요. 인간에 맞춰서 기계를 디자인해요. 햅틱폰 같은 촉각 인터페이스가 바로 그 예입니다. 인간을 상수로 놓는 거거든요. 즉 정보화 시대에는 전 국민이 권력자를 따라 배우는 게 아니라 거꾸로 권력자가 국민한테 맞춰줘야 되는 겁니다. 그러자면 민주주의를 더 확대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거꾸로 가고 있잖아요. 이른바 법치를 주장하지만, 자신들은 법을 전혀 안 지켜요.  
- 265p <미디어 패러다임에 서서 민주주의를 기획하다 - 진중권>

 
   


우리가 뽑은 지도자들이 세상을 바로 보려고 하지 않는 것. 자신들이 생각해온 것들만 맞다고 생각하는 것. 국민의 말은 귀기울이지 않고, 척도 안 하는 것. 민주주의의 파괴를 자신들이 먼저 하고 있는 것. 이 사회 현상에서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는 것. 그것이 안타깝고 분하고 화가 나지만, 결국 끊임없는 논의와 노력, 작은 행동이 모여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이 우주의 중심이다."라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엘리 위셀의 말처럼, 가장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이 중심이 되어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제가 전 세계를 다녀보니까 나라마다 자본주의의 색깔이 다르더라고요. 또 민주주의의 온도도 달라요. 북유럽과 영국이 다르고, 영국과 프랑스가 달라요. 프랑스와 미국이 또 다르고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절대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그나마 이렇게라도 온 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여기 계신 여러분이 피땀을 흘렸기 때문이죠. 세상에 공짜는 없거든요. 노력하는 만큼 얻는 게 아닐까요? - 375p <창조적 시민들, 대안을 실천하다 - 박원순>

 
   


이 책의 결론이다. 많은 이야기와 분석, 비판, 문제제기, 해결해 나갈 방법, 행동하라는 설득 등 각성을 부르는 말들이 있었다. 행동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박원순의 유하면서도 명쾌한 결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노력하는 만큼 얻을 것이다. 그렇다. 이 모든 논의가, 그리고 우리의 저항의 흔적들은 우리를 여기에 서 있게 했다. 이쯤에서 다시 민주주의를 논의하는 것도, 뭔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방향을 다시 바로잡기 위해, 우리만의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모두 노력하고 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귀기울이고 듣고, 마음을 다잡는 것도 결국, 우리가 원하는 색을 가진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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