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한창우 감수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이런 경이로운 책을 봤나! 이 책이 경이로운 이유는 바로 이 공식 하나로 우주 탄생과 소멸을 설명한다는 것. 물론 100%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충분히 감탄할 만하다. 자, 그렇다면 이 공식이 어떻게 우주 탄생과 소멸을 설명한다는 것일까. 키워드는 바로 에너지와 질량이다. E와 m.
아인슈타인 이전의 과학자들은 에너지의 세계와 질량의 세계를 분리해서 보았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 질량 보존의 법칙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
"내가 이 우주 안에 X만큼의 에너지를 불어넣으리라. 그러면 별들이 점점 타올라서 폭발하고 행성들은 자기 궤도를 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멋진 도시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그 도시들을 파괴하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또다시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게 될 것이다. 불이 있을 것이고 수레를 끄는 말과 소가 생겨날 것이며, 석탄과 증기 기관과 공장과 강력한 기관차도 생겨날 것이다. 때로 에너지는 인간과 동물의 근육 속에 있는 열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때로 폭포의 용솟음이나 화산의 폭발로도 나타날 것이다. 이 모든 다양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의 총량은 변함없을 것이며, 100만분의 1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p39
"내가 이 세상에 이만큼의 질량을 불어넣으리라. 별들은 점점 커지다가 폭발할 것이고 바람과 빙하에 의해 산들이 만들어졌다가 서로 충돌하여 사라져갈 것이다. 금속은 녹슬고 부서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온갖 변화에도 내가 이 세상에 불어넣은 질량의 총량은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 100만분의 1그램도, 겁의 시간이 흐른다 할지라도. 설령 한 도시가 공격받아 무너지고 건물이 불타버렸다고 하더라도, 모든 연기와 재와 부서진 파편들과 벽돌들을 모아 무게를 잰다면, 처음과 달라진 바가 없으리라. 그 무엇도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으며 가장 미세한 먼지의 무게만큼도 변하지 않으리라." -p54
에너지와 질량을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등한 것으로 보게 된 데에는 빛의 속도의 역할이 컸다. E와 m에 c가 더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c는 어떻게 발견, 측정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하고 왜 하필이면 이 공식에 c가 들어가게 됐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속도의 극한치는 빛의 속도이다. 그 무엇도 빛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이를 기반으로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이 공식을 설명한다. 성능이 아주 뛰어난 우주선이 빛의 속도와 비슷하게 날고 있다고 가정할 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엔진에 연로를 가하면 속도가 증가해야 하지만 빛의 속도에 거의 근접하게 되면 더 이상 빨리 나아갈 수 없게 된다. 조종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빛의 속도를 능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때 가해진 연로, 즉 에너지는 어디로 간 것일까. 바로 압축되어 질량이 된다. 빛의 속도에 근접하게 되면 연로로 가해진 에너지는 더 이상 속도를 증가시키지 못하고, 이 에너지들은 압축되어 오히려 우주선의 질량을 증가시키게 되는 것이다. 즉,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질량으로 전환되었을 뿐이다. 새로 얻어진 질량의 양과 잃어버린 에너지의 양은 정확히 일치하며 서로 균형을 이룬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증명한 라부아지에와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증명한 패러데이. 이 둘은 각각의 세계를 보았지만, 그 세계를 다른 세계와 연결시키지 못했다. 질량의 세계와 에너지의 세계를 연결한 것은 바로 아인슈타인이었고, 이 두 세계를 연결한 것은 바로 빛의 속도였다. 질량을 꾸준히 연구하다가, 에너지를 꾸준히 연구하다가 얻은 깨달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에서부터 얻은 불현듯 한 깨달음. 집에서, 종교를 통해서, 학교를 통해서 배웠던 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 이런 사고를 가능하게 했으리라. 이 시대에는 종교관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크게 영향을 주는데 제곱의 발견에도 신의 유무가 관여했다.
뉴턴은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하지만 유신론자들에 의해 거의 뉴턴의 이론은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예를 들어 mv와 mv제곱. 현대에는 mv제곱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과거에는 mv가 절대적이던 시절도 있었다. 뉴턴에 따르면, 마주 오던 자동차가 충돌했을 경우 자동차의 덩어리만 남고 두 자동차가 가지고 있던 v는 사라지게 된다. 서로 상쇄되는 것이다. 두 자동차가 한때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신이 등장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이렇게 상쇄된 에너지만큼 누군가가 시계 태엽을 감듯이 조정해 주는 것이다. 바로 이 신의 유무가 mv와 mv제곱의 세계를 갈랐다. 제곱의 세계에서는 두 자동차는 충돌한 후, 에너지는 상쇄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금속 조각들을 퉁겨나가게 하고 바퀴를 뜨겁게 달구며 어지러운 소음을 울리면서 그 존재를 유지하게 된다. 이는 신의 손길 따위는 필요 없다, 세상은 스스로 움직인다는 걸 의미했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당시에는 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던 것들. 과학자들은 스스로 신의 존재에 눌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고 간혹 다른 생각을 했던 과학자들은 쉽게 세상 속에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래도 시간은 만병통치약인 듯. 시간이 흐르며 과학적 증거 앞에 많은 부분들이 바로 잡혔고, 누군가가 자신의 앞길을 막았을 경우에는 그 사람이 죽을 때까지 끈질기게 버틴 후, 자신의 연구를 계속해 나가기도 했다.
질량 보존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 이 둘은 별개가 아니라 서로 동등하다. 그리고 빛의 속도. 빛의 속도 제곱. 아인슈타인의 공식은 바로 앞선 사람들이 연구해 온 업적들을 그의 눈부신 통찰력으로 한데 묶어낸 것에 다름없었다. 그 누구도 이를 한데 묶어내지 못했을 뿐. 아인슈타인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의 공식을 통해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낸다. 바로 원자 폭탄이다.
이 공식이 어떻게 발전해 나가는지를 설명하는 장에서는 원자 폭탄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양성자니, 중성자니 하는 것들도 나오는데 원리는 간단하다. 질량을 에너지로 전환시켜라! 사람들은 핵 속을 들락거릴 수 있는 중성자라는 것을 발견했고 이 중성자를 입자들이 과포화 상태인 원자 속에 투입하여 핵 전체를 흔들어 놓아 결국에는 폭발로 이르게 만들 수 있었다. 사라진 질량은 빛의 속도의 제곱이라는 엄청난 환산인자의 힘을 받아 꼭 그만큼의 거대한 에너지가 되어 나타난다. 아직 과학기술이 따라주지 않을 뿐, 작은 종이 한 장으로도 무시무시한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말미엔 우주 창조와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태초의 우주는 엄청나게 조밀했고 엄청나게 압축되어 있었다. 에너지만이 존재하던 그때, 그 높은 밀도는 거대한 양의 방사선을 E=mc2의 E에서 m쪽으로 밀어 넣어졌고 그 결과 질량으로 대변되는 우리 세계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태양이니 지구니 하는 것들도 언젠가는 모두 폭발하여 산산이 부서지고 그 부서진 조각들은 블랙홀 속으로 압축되어 들어간다. 그렇게 우주의 모든 것을 먹어치운 블랙홀은 언젠가는 그마저도 소멸해 버리고 최후의 질량은 에너지만을 남겨두고 사라져 버리게 된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막대한 공간 위에 흩어져 있는 방사선. E가 m이 되었던 여행은 m이 다시 E가 되면서 끝나게 된다.
여기서 질문, 정말 끝나게 될까? 우리 우주는 정말 E->m->E의 여행으로 끝나게 될까? 글쎄..오히려 뫼비우스의 띠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여행이 E->m인지, m->E인지, 이 둘의 무한 반복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여행. 시작은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그 끝은 없는 그런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