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에 내려오는 뒷간 얘기는 다 도깨비 얘기였지만 무서운 도깨비는 아니고 조금은 못나고 유쾌한 도깨비였다. 코가 막혀 냄새를 못 맡는 도깨비가 뒷간에서 밤새도록 똥으로 조찰떡을 빚는다고 했다. 재를 콩고물이나 팥고물인 줄 알고 맵시있게 빚은 조찰떡을 재에다 굴리기를 되풀이하면서도 아까워서 한 입도 맛을 안 보다가 새벽녘에 다 빚고 나서 비로소 맛을 보고는 퉤퉤, 욕지기 하면서 홧김에 원상태로 휘젓고 간다는 것이다. 만일 한창 그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기침을 안 하고 뒷간문을 열면 도깨비는 들킨게 무안해서 얼른 "조찰떡 한 개만 잡수." 하면서 그 중에서 제일 큰 걸 내놓는데 안 먹으면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시골애들은 심심해서 어떻게 살까 불쌍하게 여기는 건 서울내기들의 자유이지만 내가 심심하다는 의식이 싹트고 거기 거의 짓눌리다시피 한 것은 서울로 오고 나서였다. 서울 아이들의 장난감보다 자연의 경이가 훨씬 더 유익한 노리갯감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일종의 호들갑일 뿐, 그 또한 정말은 아니다.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 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 한다.
만약 그때 엄마가 내 도벽을 알아 내어 유난히 민감한 내 수치심이 보호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감하다는 건 깨어지기가 쉽다는 뜻도 된다. 나는 걷잡을 수 없이 못된 애가 되었을 것이다. 하여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에 수없는 선악의 갈림길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텃밭에는 먹을 게 한창일 때였다. 당장 따서 쪄낸 옥수수의 감미를 무엇에 비길까. 더위가 퍼지기 전 이른 아침 이슬이 고인 풍성한 이파리 밑에 수줍게 누워있는 애호박의 날씬하고도 요염한 자태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또 어떻고. 못생긴 걸 호박에 비기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사람들이 지어 낸 말이다. 늙은 호박에 비한 거라고 해도 그건 불공평하다. 사람도 의당 늙은이하고 비교해야 할진대 사람의 노후가 늙은 호박만큼만 넉넉하고 쓸모 있다면 누가 늙음을 두려워하랴.
승리의 시간은 있어도 관용의 시간은 있어선 안 되는게 이데올로기의 싸움의 특성인 것 같다.
그 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 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