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손을 내게 내밀렴. 내 안에서 빛나는 너의 신뢰의 빛을 받으며 걸을 수 있도록
-하난 칸
교실 생활을 개선하려면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가? 아이들에게 대응하는 방법을 점검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아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교사는 아이의 가슴을 사로잡아야 한다. 건전한 감정을 느끼기만 하면 아이는 건전한 생각을 할 수가 있다.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이것이다.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라. 성격과 인격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마라:”
분노가 치밀 때, 노련한 교사는 상황에 충실한 태도를 취한다. 자신이 목격하고 느끼고 기대하는 것을 말로 설명한다. 문제에 대해서 조치를 취하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는 ‘나는’이라는 메시지를 사용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학생들을 감싼다.
교사의 좌우명은 분노는 표현하되, 모욕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화가 나더라도 아이들을 윽박지르지는 않아요. 내 자신에게 말해요. 지금은 아무것도 얻는 게 없겠지만, 손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어! 어쩔 수 없이 다툼이 일어나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만들지는 않겠다고 다짐해요.
문이 열렸네-스스로 결론을 내리게 함으로써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저항을 완화하고, 협력을 얻을 수 있다.
잡무를 처리하는 동안 아이들이 질문을 퍼부어댈 때 - 너희들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구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바로잡아 줌으로써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바로잡아 줌으로써 도움을 주려면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결과나 인격에 대해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감성적인 동기가 없으면 학습은 불가능하다. 교사가 감성을 무시하고 지루한 논리적 설명에 의존할 때마다 학습은 절름거리며 중단된다.
칭찬할 때는 특정한 행동을 인정해야 한다. 인격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행동에 판결을 내리는 칭찬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격에 대해서 판결하지 않을 때나 성격을 평가하지 않는 칭찬을 할 때에만, 아이는 안심하고 두려움 없이 실수도 저지를 수 있고, 불안감 없이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
판결을 내릴 때 사용하는 상투적인 표현을 쓰지 않기로 하면(착하다, 대단하다, 어마어마하다. 뛰어나다) 인정하고 감사를 표시하는 박력있고 활기 있는 언어를 개발할 수 있다.
문학적인 언어로 설명하고 기술하는 칭찬은 아이들에게 생각과 추론을 유도한다. 잔물결처럼 찰랑거리는 설명의 여운은 아이에게 반향을 자극하며, 자신의 실제 모습에 부합하는 결론을 내리도록 강요한다. 그런 칭찬은 아이의 기억 속에 확고하게 각인되어,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의식을 강화해 주고, 자기 이미지를 고양시켜 준다.
효율적인 훈육을 하려면 위기의 순간에 간명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긴 설명과 논쟁에는 힘이 실리지 못한다. 권위는 간명함을 요구한다. 간명한 것이 확고한 것이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은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는 뜻이야.”
“방금 그 말 때문에 너무나 화가 나서, 너하고 더 이야기할 기분이 아니야.”
“피터, 이렇게 쓰레기장을 만들어 놓으면 난 마음까지 어수선해지더라. 얼른 치우는게 좋겠어.”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흠을 잡고,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벌을 주지 않는다. 교사들은 충돌을 방지하는 전문가, 위기를 예방하는 달인,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명인이 된다. 가르침의 과정은 가치를 전수하고, 통찰력을 제공하며, 자존심을 강화하는 기회가 된다.
교사들은 가끔 심리학자들에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공부를 하도록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지 묻는다. 대답은 “아이들이 마음놓고 실패를 저지를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학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두려움이다. 실패할 까봐, 비난을 받을 까봐, 바보처럼 보일까 봐 두려워한다. 유능한 교사는 아이가 벌을 받지 않고 실수를 저지를 수 있게 한다. 두려움을 제거해 주면 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난다. 실수를 허용하는 것이 바로 배움에 대한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이다.
어떤 과목을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노력하면 쉬울 거야”하고 말하면, 이와 비슷한 논리를 구사할 것이다. “아, 그래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난 쉬운 것을 해냈다는 것밖에 증명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실패하면 정말 치욕이 되는 거예요. 난 멍청하며, 쉬운 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니까요.”
‘하기 싫은데 수학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야. 어쩌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아이의 성격이나 지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이 문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다른 방법으로 설명해 보자.” 이렇게 말하면 학생이 당황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교사가 자신을 변명하지 않고, 또 아이를 꾸짖지 않을 때 학생은 최선을 다하고 싶은 의욕을 느낀다.
난 어머니 아버지가 시키면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요. 내가 연습을 하려고 하면, 어머니는 곧잘 이렇게 소리를 질러요. “보비, 너 연습 안 했잖아. 클라리넷 연습할 시간이야.”하고 말이에요. 그런 소리를 듣고 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연습을 해도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위해서 하는 것 같아요.
부모가 “선생님이 내 경우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하고 직접적으로 물어올 때에도 교사라면 당장 자기 주장을 당연하게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의 특수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경험에 간접적으로 의존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하게 했더니 도움이 되더라고 하던데요. 당신이 보기에는 어떤가요? 당신이 처해있는 상황에도 통하겠어요?”
부모는 잘 해야 ‘감정적인 속풀이’를 하고 난 뒤에야 충고를 받아들여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실컷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그 생각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된 뒤에야 충고를 받아들인 다는 말이다. 상대가 자기를 존중해 주고 이해해 줄 때에야 비로소 부모들은 교사에게서 받고 싶었던 충고를 넌지시 입에 올린다.
“지미는 한 번도 제 시간에 등교한 적이 없어요. 숙제도 해오지 않아요. 공책은 엉망이고, 걸핏하면 싸워요.” 노련한 교사는 그런 말을 하기보다는 개선이 필요한 점들을 구체적으로 기술한다. “지미가 고칠 점은 제 시간에 등교하고, 집에서 수학 숙제를 하고, 공책 정리를 깨끗하게 하고, 다툼이 있을 때 말로 해결하는 거예요.”
어느 학교에서는 숙제를 관리하는 효율적인 절차를 마련했다. 숙제를 하지 못했거나 집에 두고 온 아이는 무엇을 못했는지,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를 정식으로 진술서에 기록해야 한다. ‘이유’는 묻지 않는다. 당연히 아이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억지로 믿을 만한 변명과 그럴듯한 거짓말을 꾸며내지 않아도 된다. 진술서는 한 곳에 모아두었다가, 아이가 숙제를 다 해오면 돌려준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아이는 자신의 진술서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성실함ㅇ나 부족함에 대한 증거가 자기 손으로 쓴 글씨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아이에게 더 좋은 성적을 얻고자 하는 동기와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어느 날 어머니는 방법을 바꿨다. 위협하는 대신에, 선택을 하게 했다. 이렇게 말했다. “브루스, 이렇게 하자. 방과 후에 곧바로 하거나, 저녁 먹은 뒤에 하거나, 텔레비전 보기 전에 숙제를 하는 거야. 결정은 네가 해” 브루스는 저녁 먹고 나서 숙제하는 길을 선택했다.
귀담아 듣는 놀이 - 자기 의견을 말하기 전에, 바로 자기 앞에 발언했던 사람의 발언 요지를 그가 만족할만큼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인명 사전 - 학생들마다 서로 다른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어떤 교사는 사전을 만들었다. 우리 반에서 누가 무엇을 잘하는가를 알려주는 사전이었다. 인명 사전은 학생들끼리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고, 교실에서 모든 학생들이 명성과 영향력을 골고루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성적이 나쁜 학생을 개인 교사로 -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의 취약점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이 상태를 참작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 있다. 도와주는 과정에서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가장 많이 도움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