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티잔(courtesan), 얼핏 보기에 이 단어는 매우 음란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머리에 스치는 이러한 다소 외설적인 상상으로는 이 단어의 함축된 의미를 다 헤아릴 수 없다. 어떤 사전에는 코르티잔을 '부유한 남자들이나 귀족들과 관계를 가진 창부(娼婦)'였다고 하고, 또 어떤 사전을 보면 '정부(情婦)'라고 나와있다. 하지만 코르티잔은 양쪽 모두였거나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코르티잔을 단순히 창부였다고 말할 수 없다.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마담 뒤바리가 한때 상류층 남자들을 상대로 매춘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후에 백작부인이 된 모가도르는 젊었을 때 사창가에서 일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코르티잔이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출세였고 높은 삶으로의 도약이었다. 엄밀히 말해, 코르티잔은 사창가에 살거나 거리로 나가지 않았고, 엄밀히 말하자면 뒤에서 조종하고 착취하는 포주가 없었다. 또 코르티잔들은 정부나 아내에 가까운 좀더 지속적이로 친밀한 역활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받은 대가는 응분의 보상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루이 15세는 마담 드 퐁파두르를 만난 지 얼마 안되서 현재 프랑스 대통령의 거처인 엘리제 궁을 포함하는 사유지를 하사했고 이후에서 여러차례 부동산을 받았다.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이 리자드 윌리스와 12시간을 보내는 화대로 1백만 프랑을 받기도 하였다. 성공한 코르티잔은 그들이 소유한 시내 아파트와 성과 별장에 값비싼 장식을 하고 화려한 드레스와 보석들로 치장을 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이런 패물은 성공의 상징이며 은퇴 후의 자금이기도 했다.


코르티잔은 유부남의 숨겨둔 정부와는 달랐다. 코르티잔들은 그들이 치장하고 다니는 보석과 마찬가지로 자랑거리였다. 그들은 버젓이 연인과 함께 공공장소와 사교장소, 카페, 레스토랑, 무도회장을 드나들었고, 집에서 그의 친구들을 접대하기도 했다. 19세기 실엄가들 사이에서는 코르티잔을 두는 것이 일종의 예의였다. 동성애자들까지도 그렇게 해야 체면이 서는 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정부와 코르티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코르티잔이 유명인사였다는 사실이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인기 연예인인 셈이었다. 그들은 왕, 섭정, 황제, 관료, 자본가, 작가와 화가의 친구로 염문을 뿌리고 다녔고, 그들의 옷차림과 행동은 계속해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끊임없이 주간지의 기삿거리가 되었다.


코르티잔은 수준 높은 교양을 갖추어야 했다. 그들은 상류층의 말투와 옷입는 법, 유행하는 헤어스타일, 우아하게 걷는 법, 춤과 피아노 연주를 배워야 했다. 식사 예절은 물론 궁중의례를 포함하는 여러가지 예법을 알아야 했다. 전에는 글조차 읽지 못했을지라도, 오페라와 문학과 역사에 조예가 깊어야 했다. 실제로 많은 코르티잔들은 뛰어난 지성을 보인다. 모가도르를 비롯한 일부 쿠르티잔들은 소설을 썼고, 툴리아 다라고나는 수필을 발표했으며, 베로니카 프랑코는 시인으로 인정받았다. 또 많은 코르티잔들이 자서전을 집필했다. 그들은 확실히 특출한 인물이었다. 그들이 활약하는 시기, 여성에게는 많은 제약과 통제가 있었다. 그러나 코르티잔들은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말대로 스스로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면서 남자와 거의 동등한 위치에서 여성으로서 유례없는 지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만일 코르티잔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현대 문학이나 현대인의 감성은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보들레르의 시, 발자크, 뒤마 부자, 졸라, 플로베르, 콜레트의 소설에는 코르티잔들이 등장한다. 지금 우리 세대의 미학을 정의하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줄거리의 중심에 한 코르티잔이 있다. 또 다수의 오페라 작품들과 연극 대본들은 모두 코르티잔의 이야기와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 그들은 현재의 시간을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는 한편 상상력의 영역을 확장해 미래를 내다볼 수도 있었다. 어떤 문화가 기존의 틀을 깨고 관습에서 탈피하는 대담한 전환을 할 때마다 종종 코르티잔들이 그 역사에 혼몫을 했다는 사실은, 미래보다 현재에 몰두하는 것이 시간의 진로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특별해질 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추측에는 근거가 있다. 그들이 일찍부터 겪었던 가난과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그러한 극적인 드라마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충격적인 사건들, 상실감 그리고 불행을 겪다보면 인생의 매 순간이 한 방울도 헛되이 흘려 보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동시에 아슬아슬한 탈출과 뜻밖의 행운으로 도식적인 줄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적절한 타이밍이 그토록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치 종교인이 신을 갈구하듯, 또는 무신론자라면 자신의 내면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때처럼 그녀를 원하게 만든다.

  이 덕목은 이론보다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좀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코르티잔들의 인생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적절한 타이밍의 예 말이다. '웃음을 파는 여인‘으로 알려진 만큼 코르티잔들은 적절한 타이밍으로 남자를 웃게 해줄 수 있어야 했다. 또한 옷을 잘 입기 위해서도 어떤 옷을 언제 입어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절묘하게 때를 맞춰서 희롱을 걸어야 했다. 이처럼 코르티잔들이 하는 거의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요구되었다.

 

♠ 흔히들 코르티잔들이 부유한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치장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많은 여인들이 미를 창조하고 소유하기 위해서 부를 추구했다.


♠ 당돌함은 허세나 오만함이 지니게 마련인 단점과는 거리가 멀다. 허세가 그 밑에 감추고 있는 두려움을 암시하고, 오만함은 씁쓸하고 불쾌한 원망을 담고 있지만 당돌함에는 그런 어두운 울림이 없다. 그보다는 순간적으로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또 분위기를 살리기도 한다.


♠ 당돌함이 진정한 매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은 지성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해리엇은 단순히 무례한 것이 아니라 예의의 목적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대에게 적절한 예우를 갖추도록 요구했다.


♠ 그런 보잘것없는 삶은 사람들의 사기를 꺾어놓을 수 있다. 그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고 서서히 진행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 직면하면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체념해 버린다. 일만 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자포자기해서 자기 안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하다 해도 그런 운명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자면 사회에서 받은 크고작은 모욕과 수치와 냉대에 대한 반동으로 생길 수 있는 예리한 통찰력과 비상한 의지가 필요하다.


♠ 빛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고들 말한다. 아마 그 이유는 사랑을 하면 종종 빛으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얼굴이 빛나는 지도 모른다. 스탕달은 그러한 심리 상태를, 나뭇가지를 암염 갱 속에 던져두었다가 두세 달 후에 꺼내면 ‘반짝이는 결정에 덮여서’원래의 나뭇가지는 더 이상 알아볼 수 없게 되는 과정에 비유했다. 그런 점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빛의 근원일 뿐 아니라, 상대방의 욕망과 눈부신 에로스의 아름다움을 반사하는 거울이 되는 것 같다.

 

♠ 그녀의 사랑스러운 미소에 루이 왕은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청순하고 천진난만해서 어려웠던 지난 날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 당돌함과 매력이라는 덕목을 비교하자면 후자가 좀더 강력하다. 잔느의 미소는 대단히 매력적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미소는 순진함을 넘어서 순결하게까지 보였다. 하지만 순진함만으로는 왕을 유혹할 수 없었다. 그녀는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듯이 보였지만 알고 있는 것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성적 지식은 침대에서뿐 아니라 몸가짐과 눈의 표정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미소가 번질 때 일어나는 표정의 미묘한 변화를 비롯한 사소한 동작 하나하나에서 그녀가 육체적인 경험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것이다.


♠ 변화에 대한 대응책, 또는 방치되고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외로움에 대한 반동으로 고집이 세졌을 것이다. 그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기도 했는데, 이것 역시 외로움 때문이었겠지만 그녀는 그 시대의 젊은 아가씨로서는 보기 드물게 독립심이 강했다.


♠ 부정적인 용어들이 종종 그렇듯이, 여기에도 이상한 아이러니가 생겨났다. ‘몰라토’, ‘쿼드룬’, ‘옥타룬’이라는 단어들은 강력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했다. 그 단어들이 어떠한 금기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양도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 이 책에서 필자는 모든 사회적 편견 속에서도 그렇게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그녀들의 능력을 시대와 순간을 민감하게 인식하는 시간 감각,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 허례허식을 무시해 버릴 수 있는 당돌함, 뛰어난 지성, 생을 즐길 줄 아는 쾌활함, 우아한 몸가짐, 사람을 끌어당기는 신비스러운 매력으로 분류하고 있다. 아름다운 외모조차 타고난 조건보다는 미를 추구하는 열정과 창조적 재능으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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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2-0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젊은느티나무 2005-02-08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물만두님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