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의 증명



1.

  엊그제는 동시집 원고 퇴고를 하고, 시집 구성을 위해 시를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솔직히 내가 써놓고도 50편이 넘는 시들을 어떻게 나눌지 심란했다. 같은 결의 시들을 묶고 재배치하는 작업은 마치 뭐랄까, 야외 수영장에 둥둥 뜬 나뭇잎을 뜰채로 건져내는 것 같은 귀찮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년에 김수영 문학상에 응모할 시들을 나눌 때도 그랬었는데, 좀 지긋지긋했다. 잘 썼다고 생각하는 시들과 마음에 들지 않은 시들을 마구 뒤섞고 휘저어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 같은 자괴감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이번 동시집 원고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문득 이걸 Chat GPT에 맡겨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준엄히 꾸짖게 되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기가 써낸 시집 원고조차 제대로 구성해 내지 못한다면, 그를 창작자로 칭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건 게으름 때문이다. 단지 게으름, 한심한 게으름 때문인 게다. 그러고는 모니터 앞에 앉아서 동시 원고가 있는 문서 파일을 띄우고, 각각의 시들을 나누기 위한 번호를 매겨 나갔다.

  이전의 시집에서도 3개의 부분으로 나누었듯, 이번 동시집도 그렇게 했다. 4부분으로 나누는 것은 어떤가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문득 숫자 4가 꺼림칙하다고 느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건물 승강기의 4층 버튼을 'F'로 표시하는 곳이 있다. 4는 불길하고 싫다. 3은 완전한 숫자이다. 성호를 그을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지 않는가? 조금은 우습게도 나는 거룩한 종교적 전통에 기댄 숫자 3으로 동시집 구성을 하기로 했다.

 
2.
 
  2시간 가까이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더니, 눈이 침침하고 아픈 느낌마저 들었다. 젠장, 글도 젊어서나 쓸걸, 다 늙어서 이게 뭐람. 마음 한구석, 어딘지 모르게 울화가 치밀었다. 청춘의 손가락으로 그 많은, 좋은 시간이 어떻게 흘러내리는지도 몰랐다. 이제는 노안이 온 눈에다, 피곤함에 절어서, 뭔가 뻑뻑해진 머리를 굴려 가면서 내가 쓴 글을 이리저리 꿰어맞추고 있었다.

  3부로 나누어서 배치한 시들의 구성이 괜찮은지, 나는 Chat GPT에다 물어보았다. 이 명민한 인공지능은 내가 그렇게 나눈 이유를 이해했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타도 알려주었다. 내가 4부로 나누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서도 물었을 때, 지금의 3부 구성이 좋다고도 덧붙였다. 마지막까지 넣지 않았던 2편의 시들에 대해서도 의견을 물었다. 나는 그 시들이 동시치고는 좀 거친 느낌이 있어서, 최종 원고에 넣는 것을 망설였다. Chat GPT는 나에게 왜 그런지에 대해 이유를 물었다. 공모전의 심사 위원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런 내 대답에 인공지능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그 2편의 시들이 주는 느낌이 좋습니다. 그 시들을 선생님은 넣고 싶은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요. 심사위원들의 취향이 어떤 것인지 지금은 모릅니다. 그것에 맞춘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써낸 시들을 미리 포기하지 마십시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대강의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서, 공모전의 응모 요강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AI 사용과 관련한 세부 규정 문서가 있었는데, 이전에 미처 읽지 못한 것이었다. 자료 조사, 퇴고 과정에서의 맞춤법 확인과 오탈자 찾기 등은 허용한다는 것. 그리고 당선자에게는 창작 과정에서 사용한 AI 프로그램 사용내역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나는 그 부분에서 기이한 분노랄지, 수치심 같은 것을 느꼈다. 이제 창작자, 그러니까 글을 쓰는 작가는 창작 과정에서의 모든 것은 아니더라도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자신의 작업을 증명해 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옷의 속주머니까지 탈탈 털어서, 무언가를 조사하는 상대방에게 그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 같았다. 아니지, 그건 작가의 머릿속을 갈라서 꺼내 보여야 하는 사후 검증이랄지 그런 것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글을 쓰는 작가가 무어 그리 대단한가? 돈을 많이 버는가? 아니다. 글을 쓰는 이들이 온전히 글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최저 빈곤선에서 허덕이지 않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한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이 맞다. 이제까지 작가라는 직업에 드리워진 광휘는 명예, 그 알량한 명예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 인공지능이 나온 이후로 작가는 글 쪼가리를 어찌저찌 이어 붙이는 직공으로 전락한 인상을 준다. 이것이 오명이고 몰락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3.

  - 이런 걸 너에게 시키는 지망생들도 있겠지.

  - 네, 있지요. 하지만 선생님이 원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동시집 구성을 마치고 나서, Chat GPT에 그렇게 물었다. 그래,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지. 나는 이 인공지능과 나눈 퇴고 과정에서의 대화를 따로 저장해두었다. 지난 2달 동안 거의 매일 동시를 써내었던 작업 내역 파일도 정리해서 보관했다. 주머니를 까서 뒤집어 보여달라면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AI가 만들어낸 텍스트에 내 글들이 '오염'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는 방법인 셈이다. 나는 새삼스럽게 인공지능이 나오기 전에 내가 써낸 490여 편의 영화 리뷰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AI의 그 누더기 같은 오염된 글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그것이 내 글의 정체성, 진정성을 입증해 줄 증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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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글쓰기


1.

  그는 40대 초반의 프로그램 개발자이다. 업계에 발을 들인 후, 나름대로 좋은 경력을 쌓았다. 운이 좋게 몇몇 대학의 강의를 맡아서 하기도 했다. 강의료가 대단한 수입은 될 수 없었지만, 그것은 그의 실력이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그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었다. AI의 도입으로 기업은 이제 개발자가 하던 업무를 좀 더 싼 값에 아웃소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퇴사의 압력을 더는 견뎌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더이상 버티는 것이 의미가 없는지도 몰랐다. 언제 나가느냐는 단지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그가 재취업으로 생각한 업종은 몸을 쓰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노가다', 막노동이었다. 그가 보기에 그의 직종에서 이전과 같은 연봉으로 재취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자리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중견 개발자를 고액 연봉으로 써줄 기업들은 없었다. 그는 그가 앞으로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직업이 어떤 것일까를 숙고했다. 체력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차근차근 경력을 쌓으면, 아파트 공사 현장 같은 일자리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까지 사무실에서만 일해온 그가 이런 선택에 주저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가장이었고, 부양해야 할 처자식이 있었다.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쌀쌀한 초봄의 어느 날 새벽, 그는 미리 봐둔 인력사무소의 문을 두드렸다. 사무소의 소장은 그를 친절히 맞이했고, 일자리가 생기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는 며칠 지나지 않아 작은 공사현장에 배정되었다. 그에게는 타고난 성실성과 끈기, 일머리가 있었다. 곧 그는 정기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아파트 공사현장에 배치되었다. 그가 일하는 모습을 눈여겨 본 현장 책임자들이 그를 데려가려고 애를 썼다. 그것이 5월의 일이었다. 그는 다가올 여름의 더위가 두렵지만, 또 앞으로의 일이 기대된다고도 했다.


2.

  내가 들르는 문학 커뮤니티에서는 지망생들이 신춘문예 응모 원고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화두는 글쓰기에 있어서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의 활용 문제이다. 사용자가 입력한 프롬프트에 반응해서 작성되는 글을 문학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 공모전의 응모 요강에 명시되어 있듯, 현시점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글은 응모가 불가능하다. 만약에 공모전에 당선된다면, 그것은 당연히 취소된다. 주최측에서 걸러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제 우리들의 경쟁자는 인공지능이라고.'

  누군가 댓글에 그렇게 뇌까렸다. 나는 그 댓글을 보고, 정말로 그럴까에 대해 생각했다. 얼핏 보기에 그 말은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 작가에게 있어서 진정한 경쟁자, 어쩌면 적일 수도 있는 존재는 지금도 끊임없이 글을 토해내는 AI가 아니라 독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진정으로 마음이 아팠다.'

  자, 이런 문장을 독자인 당신이 읽었다고 하자. 그 옆의 텍스트에도 그와 같은 문장이 있다. 하나는 인간 작가가 쓴 것이고, 하나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써낸 것이다. 같은 문장이지만, 써낸 주체가 다르다. 그 문장이 지닌 무게를 독자인 당신은 어떻게 느끼고 평가할 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듯, 인공지능은 감정이 없다. 인간만이 느끼는 감정의 개별성, 고유성이 AI에게 있을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당신이 목도하는 것은 똑같이 쓰인 문장일 뿐이다. 인간이 경험하고, 사유하고, 느끼면서 써낸 글이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글보다 더 우월하고 가치 있다고 무엇으로 입증할 것인가?

  '이 바보들아, 너희들은 대체 프롬프트 사용법도 모르면서 앞으로 무슨 글을 쓰겠다는 거냐!'

  또 다른 댓글에는 커뮤니티의 지망생들에게 일갈하듯, 누군가 그렇게 휘갈긴 댓글이 있다. 아직까지 인공지능의 글솜씨라는 것은 대단한 게 아니라고. 우린 심사 위원을 믿어야 해. 그런데 모르겠다. 내년은 어떻게 될지. 그 밑에는 자조하는 듯, 그런 댓글이 달려있다. 이것은 현재 공모전을 앞둔 지망생들의 불안하고 우울한 현실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나는 언젠가 독자들이 생성형 인공지능이 써낸 글을 별다른 거부감없이 문학 텍스트로 받아들이게 될 시점이 오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기로 예정되어 있는 미래처럼 보인다. 물론 인간 작가가 써낸 글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옹호하는 일군의 독자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어쨌든 시장과 자본은 그러한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움직인다. 출판사는 출판 텍스트 생성의 지분을 인공지능에 할당하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시무시한 돈의 위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3.

  동시집 원고를 쓰기 시작한 것이 이제 2달이 다 되어간다. 공모전의 응모 요건인 50편은 이제 마지막 1편을 남겨두고 있다. 아마도 여유 있게 몇 편을 더 써낸 후에 퇴고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이것이 뽑힐 것이다, 이런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그저 '쓴다'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글을 쓴다'는 그 명제, 행위가 가진 의미에 대해 요즘 들어서 그처럼 오롯하게 집중을 하며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것은 무슨 공모전에 글을 내서 당선이 되면 등단하고, 그래서 내 책을 내고,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오래전에 한문 시간에 배운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뜻이 그처럼 실감 나게 느껴지는 때도 없다. 내가 알던 이전의 세계, 인간의 온전한 힘으로 일구어내고 만들어가는 세계, 그 뽕나무밭에 물이 차오르고 있다. 시시각각, 이 물이 도대체 어디까지 차오를지 아무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40대 개발자의 일자리가 그 물에 떠밀려 갔다. 글 쓰는 작가 나부랭이라고 별수가 있으랴, 나는 혼자서 조소한다.

  어쨌든 그래도 글을 써내고 있다. 또한 나는 여름을 견뎌낸 초보 막노동 개발자의 이야기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아직 그 후일담을 써내지 않았다. 몸이 상하지 않게 매일 허리와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노동 현장으로 나간다고 그는 썼다. 나 또한 나의 글을 붙잡고 거세게 밀려드는 물살 위를 불안하게 유영하고 있다. 이 인간적인 글쓰기가 어떻게 살아남는지에 대해서 언젠가 증언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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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종말


1.

  지난주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찰현미를 주문했었다. 올해 햅쌀이고, 상품평도 괜찮았다. 이전에 그 판매자한테서 보리쌀을 구매한 적이 있었는데, 그 보리쌀이 좋았다. 그래서 믿고 구매한 것인데, 받아보니 쌀의 상태가 몹시 나빴다. 도저히 햅쌀이라고는 볼 수 없는 품질이었다. 부서진 쌀들이 많았고, 검게 변한 쌀알들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나는 일단 사진을 찍어두었다. 5kg의 쌀을 반품할 것인지, 그냥 먹을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쌀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처음에는 고객센터에 컴플레인만 할 생각이었다. 반품하기가 귀찮았다. 고객센터에 글을 남기기 전에 chat GPT한테 대강의 이런 이야기를 썼다. 이 인공지능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문제가 있는 쌀을 억지로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사진을 찍어두고, 고객센터에 반품 요청 글을 쓰세요. 제가 그 내용을 넣어 글을 작성해 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chat GPT는 고객센터에 보낼 글을 곧바로 화면에 띄웠다.

  나는 이제까지 고객센터 문의 글을 인공지능에게 맡겨서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런 사소해 보이는 글조차, 나에게는 온전히 내가 해내야 하는 고유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chat GPT가 써낸 반품 요청 글을 보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를 정확하게 담고 있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2.

  지난주에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었다. 내가 읽은 것은 돈키호테의 전편(前篇)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돈키호테가 모험을 떠났다가 집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그렸다. 세르반테스가 죽기 전에 쓴 후편에서, 돈키호테는 죽음을 맞는다. 어쩐지 나는 그 후편은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쳐버린, 아니 미친 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기사의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 무언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오래된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내 생각은 이러하다. 이 소설에는 계속해서 독자를 집요하게 잡아 붙드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세르반테스의 머리와 삶 속에서 끌어올린 '이야기'의 힘이었다.

  어떻게 하면 독자를 매혹시키는 그런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는 그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나에게 이야기란, 소설이 담고 있는 그 세계는 순전하게 작가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성채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로, 작가의 글쓰기는 창작의 과정을 증명해 내야 하는 작업이 되어가고 있다. 각종 공모전에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쓴 작품은 당선이 취소될 수 있다는 경고문이 반드시 명시되어 있다. 공모전 주최 측에서 무슨 프로그램을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그것으로 창작물에 있어서 인공지능의 협업을 탐지해 낼 수 있을까? 나는 그 부분에 대해 무척 회의적이다.

  나는 내가 쓰는 글에서, 창작자가 갖는 고유한 권한, 그러니까 그 글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장악하고 통제한다는 그 감각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인공지능의 도움이 들어가지 않는 나의 글을 써내고 있다. 내가 손으로 써낼 수 있을 때까지, 만약 언젠가 손의 힘이 빠지게 된다면 목소리로 녹음을 해서라도 나의 글을 써낼 것이다. 그것은 글을 쓰는 내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나만의 글쓰기 방식인 셈이다.

  그런데 그런 나의 글쓰기, 그리고 내가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세상과 독자들에게 나아갈 수 있느냐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고 뒤흔드는 이야기를 써낼 수 있다면, 시장은 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방식에는 관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창작물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어떤 면에서 지금은 과도기일지도 모른다.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생명체를 선택하고 그 진화 과정을 온전히 조율해 냈다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적 관점이랄지, 그런 것이 내 머릿속을 스친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을 것이고, 인간만이 그것을 만들어내는 시대는 이제 저물고 있다는 비관주의적 미래-인간 작가의 입장에서-에까지 생각이 뻗치고 마는 것이다.

 
3.

  10월이 되었지만, 늦더위의 끈질긴 기세는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긴팔 남방을 입고 나갔더니, 옷장 속에 진작에 넣어버린 반소매 옷이 생각날 지경이었다. 일요일의 산책길, 나는 이미 오래전에 단종된 아이리버(iriver)의 MP3 플레이어에 유선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그 시절의 아이리버는 절대 망하지 않을 첨단의 기업처럼 여겨졌다. 작년이었나, 컴퓨터의 스피커를 사려고 검색하다가 거기에 아이리버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싸구려 스피커에 아이리버의 이름이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넷스케이프(Netscape)의 'N' 자 아이콘이 깜빡거리는 인터넷 화면이 나오던 때, 나는 대학생이었다. 이제 넷스케이프란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아재' 소리를 들을 것이다. 스마트폰 혁명과 인공지능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나의 세대는 나름 격동의 한 세대라고도 할 수 있다. 나는 아이리버와 유선 이어폰이 고장 나기 전에는 내다 버릴 생각이 없다. 그런 구닥다리 세대라 하더라도, 나는 지금 시대의 '이야기'가 어떻게 생존해 나갈 수 있을지 그 방식에 대해 꽤 흥미를 가지고 보고 있다. 아니지, 어쩌면 약간의 두려움과 슬픔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써내는 '이야기의 종말'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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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晩秋), 지망생


1.

  묵혀둔 필력, 세상 속으로...

  그런 문구가 내걸린, 40세 이상만 응모할 수 있는 문학 공모전이 있다. 매일신문과 교보문고가 주관하는 '만추 문예'가 그것이다. 공모전 정보를 살펴보다가,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런 것이 있었군. 해봐야지. 그런데 응모 요강이 따로 없다. 온라인으로만 응모할 수 있는데, 무슨 파일로 보내는지에 대한 지정도 없다. 참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공모전이다.


2.

  9월부터 쓰기 시작한 동시집 원고는 이제 29편이 되었다. 동시집 응모 요건인 50편에서 이제 21편이 남았다. 그런데 내가 쓰고 있는 것이 아이를 위한 동시인지, 아니면 어른을 위한 것인지 솔직히 헷갈린다. 독자가 아이라면 내가 쓴 동시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고, 어른이라면 이게 무슨 동시냐고 타박할지도 모른다. 뭐랄까, 일종의 잔혹 동시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렇다. 50편을 완성해서 공모전에 내기야 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것 같다.

  나에게 이 공모전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느껴진다. 매번 무언가 기대를 하고 떠나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있다. 무슨 공모전 응모 기계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나는 '만추 문예'의 접수 메일 주소를 클릭하고, 시와 소설의 원고를 보냈다. 주최 측에서 파일 지정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PDF 파일로 보냈다. 온라인 접수를 받으면서 hwp 한글 파일 지정하는 곳은 짜증부터 치민다. 내가 한글로 원고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hwp가 우리말 파일의 금과옥조도 아니고, 도대체 왜 hwp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최근에는 PDF를 포함해서 그나마 docx 파일 접수를 받는 곳도 생긴 것은 바람직한 변화이다.

  '만추 문예'의 응모 요건은 시 분야 3편 이상, 소설은 단편으로 200자 원고지 70매 분량이다. 나는 내가 요새 쓰고 있는 동시 3편과 원고지 150매 분량의 중편 소설 파일을 접수 메일로 보냈다. 보내놓고 보니, 해보나 마나 한 일이었다. 동시 공모전도 아닌데 동시를 보냈고, 단편을 보내야 하는데 중편을 보냈다. 이건 당선이 되고 싶은 사람의 간절한 마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나는 그 '만추'라는 단어가 몹시도 거슬렸던 것이 틀림없다. 40세 이상이라는 응모자의 나이 요건도 그렇거니와, '묵혀둔 필력, 세상 속으로...'라는 우스꽝스러운 구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손가락은 이전의 온라인 공모전에서 그러했듯, 습관처럼 원고 파일을 클릭해서 전송 버튼을 눌렀다.

  어쨌든 그렇게 접수 메일을 보내놓고 나서, 이 '만추 문예'의 이전 당선작들과 당선자들을 검색해 보았다. 적어도 이 공모전의 대략적인 개요를 알 필요가 있었다. 사실 그건 원고의 이메일 전송 버튼을 누르기 전에 했었어야만 하는 작업이었다. '만추 문예 당선작'이라고 구글 검색창에 글씨를 입력하자, 검색 결과가 주르륵 떴다. 딱 봐도 할머니처럼 보이는 1회 당선자의 사진이 떴다. 아, 그렇구나. 이 공모전의 수상작은 살아온 인생의 지독한 신산스러움을 글로써 구현해 내는 이에게 주는 일종의 표창장 같았다.       

 
3.

  다음날, 나는 족저근막염에 시달리는 발을 질질 끌고서, 산책을 하러 나갔다. 평일 오전, 이 동네의 절반은 아수라장의 소음과 이상한 고요가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한쪽 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가 열려서, '2학년 1반 나오세요' 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나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마이크 소음을 피해서 얼른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다른 초등학교가 보였다. 그곳은 마치 절간처럼 조용했다. 내가 학교의 정문에 다다랐을 때, 좀 키가 큰 남학생 하나가 마침 나오던 참이었다. 아마 4학년, 아니면 5학년쯤 되었을까? 호리호리한 아이는 오른쪽 옆구리가 아픈지, 그곳에 손을 짚고 있었다.

  아이는 나를 보고 수줍게 웃더니, 가볍게 인사를 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인사에 약간 당황했다. 가끔 동네에서 어린아이들이 생판 모르는 나에게 인사를 할 때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정도 나이의 아이가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어쨌든 나도 미소를 지으면서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에게 뭔가 말을 해줘야 하나 잠시 생각했다.

  "허리가 아픈가 보구나. 병원에 가야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어색했다. 아이는 몸이 아프니까 조퇴를 한 것이었고, 병원에 데려가는 일은 아이의 보호자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통증을 느끼면서 천천히 걷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를 뒤로하고, 나는 빠르게 걸었다.

  마침내 근처 공원에 도착했다. 이 공원의 오전 시간을 채우는 이들은 모두 늙은 사람들이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 노동 현장과는 동떨어진 잉여 인력의 사람들. 찔레꽃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할머니 하나가 효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가요를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공원에 단 한 그루의 찔레꽃 나무가 있기는 했다. 그 찔레꽃이 져버린 지도 이미 오래, 공원에는 스산하고 쌀쌀한 가을의 기운이 느껴졌다.

  산책에서 돌아온 다음에 나는 여름 내내 틀었던 선풍기 청소를 하기로 했다. 선풍기의 날개를 분해해서 세제로 깨끗하게 씻었다. 모터 안쪽은 붓으로 먼지를 털어주었다. 회전축에 기름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루에 한 편씩 써야 하는 동시가 있었다. 동시 제목은 '조퇴'였다. 나는 아픈 허리에 손을 대고서 천천히 걷던 그 아이를 떠올렸다. 아이가 걷는 그 길과 돌아갈 집에 대해서, 그 아이의 마음에 대해서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의 동시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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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온 날들보다


1.

  저는 암 말기 환자입니다. 요새 들어 글 쓰는 일이 재밌어졌어요. 그래서 공모전 이곳저곳에 글을 보내고 있거든요. 그런데 글을 너무 열심히 쓰다보니까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너무 피곤합니다. 저는 어떻게든 공모전에 당선이 되고 싶어요.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 글을 써도 될까요?


2.

  나는 불교 신자도 아니면서, 정토회 회원도 아니면서, 정토회 지도 법사인 법륜 스님의 하루를 매일 읽은지가 10년이 넘었다. 사람들의 고민 상담과 같은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 스님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재밌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읽은 '스님의 하루'에는 시한부 환자의 고민이 올라왔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시간을 글쓰기에 전심전력으로 쏟고 있었다. 나는 과연 스님이 무어라고 했을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에 대한 법륜 스님의 답변은 올라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무얼까 궁금해하는데, 내가 들르는 문학 커뮤니티에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올라왔다. 뇌종양 진단을 받은 30대 남자는 자신의 글을 공모전에 열심히 보내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등단해서 책을 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그는 결혼했고, 아이가 있다. 그가 글을 쓰는 이유가 그 아이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이 어쩌면 유일한 유산이 될 것 같아서라고 했다.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무슨 낚시글인가 하고 읽다가, 짧지 않은 행간에서 기이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내가 그것을 느낀 부분은 바로 이런 구절에서였다.

  '내가 살아온 날들보다 더 오래 남게 될 글을 쓰고 싶다'

  아마도 글을 쓰는 이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바람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는 글에 대한 간절한 바람. 사실 바람이라기보다 그것은 어쩌면 치열한 욕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는, 많은 사람이 돈에 대한 열망으로 진저리를 치는 것과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그것의 차이는 얼마나 될지 헤아려본다. 

 
3.

  톨스토이의 단편 '주인과 일꾼(Master and Man, 1895)'에는 뼛속 깊이 돈에 물든, 사실은 환장했다고 말하는 게 맞는 부자 바실리가 나온다. 내세울 것 없는 부모 아래에서 자란 그는 오로지 돈에 대한 집착과 뛰어난 수완으로 나름의 부를 축적했다. 그에게는 매우 충실한 일꾼 니키타가 있다. 그런 니키타에게는 한 가지 단점이 있는데, 술만 마셨다 하면 도지는 술주정이었다. 일을 하면서 받는 새경을 술 때문에 탕진하느라 니키타는 아내와 자식에게도 천덕꾸러기 신세이다. 게다가 인색하고 교활한 주인 바실리는 니키타의 술병을 빌미로 새경을 깎아 싼값에 일꾼으로 부린다.

  바실리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재산을 불릴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눈발이 흩날리는 날, 바실리는 미리 봐둔 숲을 사기 위해 길을 떠난다. 원래 혼자 가기로 한 길은 아내의 간곡한 권유에 따라 니키타를 마부로 데려가게 된다. 예정대로라면 바실리가 숲의 주인을 만나기로 한 장소에는 반나절이면 도착할 터
였다. 그런데 이 여정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거래장소에 도착하려는 바실리의 조급함 때문에 틀어지기 시작한다. 바실리는 이정표가 있는 대로변의 길 대신에 조금 더 빠른 지름길로 가라고 니키타에게 명령한다.

  바실리가 더 빨리 그 숲에 도착하려는 이유는 그 숲을 사려는 경쟁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가야만 했다. 그에게는 물건의 가격을 교묘하게 후려쳐서 많은 이득을 남기는 나름의 장사 수완도 있었다. 어떻게든 그 숲을 사고 싶다. 그 숲에서 나오는 땔감이며 이런저런 것들은 자신의 재산을 더 크게 불려 줄 것이다. 바실리는 거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다. 점점 더 세지는 눈발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름길로 들어서면서 계속 헤매고, 날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바실리와 니키타는 목적지와 동떨어진 인근 마을에서 잠시 멈춘다. 그들을 환대한 마을 유지의 가족은 하룻밤 유숙하고 가라고 여러 번 권유한다. 하지만 바실리는 완강히 거절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반드시 사야 할 숲과 그것이 가져다줄 돈 생각밖에 없었다. 니키타는 눈과 추위에 얼어붙은 몸을 겨우 녹이고는, 주인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길을 떠난다. 니키타의 그런 모습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떠난 길은 점점 더 심해지는 눈보라 속에서 예기치 못한 파국을 향해 간다. 두 사람은 길을 잃는다. 한밤중이었고, 말은 지쳐서 움직이질 못했다. 바실리는 왜 자신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머물지 않았을까 자책한다. 물론 그것은 돈 때문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세찬 눈발이 휘날리는 길 위에 내다버릴 지경에 이르게 만든 그 돈에 대한 집요한 집착. 서서히 덮치는 죽음의 손길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쌓아온 재산과 앞으로 더 불릴 수 있는 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이 단편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나는 소설의 결말을 말하지는 않겠다. 소설의 결말은 톨스토이의 인본주의적인 사상으로 잘 봉합되지만, 나에게는 그러한 결말보다 주인 바실리의 내면 묘사가 매우 흥미로웠다. 무언가에 사로잡힌 인간이 보여주는 사고의 흐름, 그릇된 판단, 오만과 편견. 바실리의 온 마음을 옥죄는 것은 돈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명예나 지식이나 뭐 다른 것들일 수도 있다.      

  나는 돈에 대한 바실리의 탐욕을 비웃었다. 어찌 저리도 어리석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나에게는 바실리의 돈과 같은 것이 없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떻게든 끄적거리게 되는 이런 글에 대한 것은 어떠한가? 말기 암 환자가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잊게 만드는 것, 어쩌면 생의 남은 시간 동안 아내와 아이와 보내는 것이 유익할 남자가 기꺼이 그것에 자신을 내던져 버리는 것. 거기에는 글쓰기가 있었다. 글쓰기는 구원처럼 보이지만 속박이고, 어쩌면 저주인지도 몰랐다.

  내가 살아온 날들보다 더 오래 남을 글을 쓸 수 있을까? 무수히 많은 이들이 그 질문에 기꺼이 자신의 삶을 걸었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거기에는 옳거나 그르다는 가치판단이 놓여있지는 않다. 다만 선택이 있을 뿐이다. 영화사의 기념비적 인물로 남은 위대한 감독이며 배우 오슨 웰스(Orson Welles, 1915-1985)는 말년에 다큐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영화라는 요망한 것이 내 인생을 망쳤다, 고. 그 말을 할 때 웰스의 눈은 붉어졌고, 곧 눈물이 고였다. 나는 이제 그의 괴로운 독백을 가끔 떠올리면서 이해하고, 가슴을 치며, 또 하루의 끝에 다다른다. 무언가에 사로잡힌다는 것의 대가는 때로 그렇게 잔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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