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晩秋), 지망생
1.
묵혀둔 필력, 세상 속으로...
그런 문구가 내걸린, 40세 이상만 응모할 수 있는 문학 공모전이 있다. 매일신문과 교보문고가 주관하는 '만추 문예'가 그것이다. 공모전 정보를 살펴보다가,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런 것이 있었군. 해봐야지. 그런데 응모 요강이 따로 없다. 온라인으로만 응모할 수 있는데, 무슨 파일로 보내는지에 대한 지정도 없다. 참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공모전이다.
2.
9월부터 쓰기 시작한 동시집 원고는 이제 29편이 되었다. 동시집 응모 요건인 50편에서 이제 21편이 남았다. 그런데 내가 쓰고 있는 것이 아이를 위한 동시인지, 아니면 어른을 위한 것인지 솔직히 헷갈린다. 독자가 아이라면 내가 쓴 동시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고, 어른이라면 이게 무슨 동시냐고 타박할지도 모른다. 뭐랄까, 일종의 잔혹 동시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렇다. 50편을 완성해서 공모전에 내기야 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될 것 같다.
나에게 이 공모전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느껴진다. 매번 무언가 기대를 하고 떠나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 있다. 무슨 공모전 응모 기계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나는 '만추 문예'의 접수 메일 주소를 클릭하고, 시와 소설의 원고를 보냈다. 주최 측에서 파일 지정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PDF 파일로 보냈다. 온라인 접수를 받으면서 hwp 한글 파일 지정하는 곳은 짜증부터 치민다. 내가 한글로 원고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hwp가 우리말 파일의 금과옥조도 아니고, 도대체 왜 hwp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최근에는 PDF를 포함해서 그나마 docx 파일 접수를 받는 곳도 생긴 것은 바람직한 변화이다.
'만추 문예'의 응모 요건은 시 분야 3편 이상, 소설은 단편으로 200자 원고지 70매 분량이다. 나는 내가 요새 쓰고 있는 동시 3편과 원고지 150매 분량의 중편 소설 파일을 접수 메일로 보냈다. 보내놓고 보니, 해보나 마나 한 일이었다. 동시 공모전도 아닌데 동시를 보냈고, 단편을 보내야 하는데 중편을 보냈다. 이건 당선이 되고 싶은 사람의 간절한 마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나는 그 '만추'라는 단어가 몹시도 거슬렸던 것이 틀림없다. 40세 이상이라는 응모자의 나이 요건도 그렇거니와, '묵혀둔 필력, 세상 속으로...'라는 우스꽝스러운 구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손가락은 이전의 온라인 공모전에서 그러했듯, 습관처럼 원고 파일을 클릭해서 전송 버튼을 눌렀다.
어쨌든 그렇게 접수 메일을 보내놓고 나서, 이 '만추 문예'의 이전 당선작들과 당선자들을 검색해 보았다. 적어도 이 공모전의 대략적인 개요를 알 필요가 있었다. 사실 그건 원고의 이메일 전송 버튼을 누르기 전에 했었어야만 하는 작업이었다. '만추 문예 당선작'이라고 구글 검색창에 글씨를 입력하자, 검색 결과가 주르륵 떴다. 딱 봐도 할머니처럼 보이는 1회 당선자의 사진이 떴다. 아, 그렇구나. 이 공모전의 수상작은 살아온 인생의 지독한 신산스러움을 글로써 구현해 내는 이에게 주는 일종의 표창장 같았다.
3.
다음날, 나는 족저근막염에 시달리는 발을 질질 끌고서, 산책을 하러 나갔다. 평일 오전, 이 동네의 절반은 아수라장의 소음과 이상한 고요가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한쪽 초등학교에서는 운동회가 열려서, '2학년 1반 나오세요' 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나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마이크 소음을 피해서 얼른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다른 초등학교가 보였다. 그곳은 마치 절간처럼 조용했다. 내가 학교의 정문에 다다랐을 때, 좀 키가 큰 남학생 하나가 마침 나오던 참이었다. 아마 4학년, 아니면 5학년쯤 되었을까? 호리호리한 아이는 오른쪽 옆구리가 아픈지, 그곳에 손을 짚고 있었다.
아이는 나를 보고 수줍게 웃더니, 가볍게 인사를 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인사에 약간 당황했다. 가끔 동네에서 어린아이들이 생판 모르는 나에게 인사를 할 때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 정도 나이의 아이가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어쨌든 나도 미소를 지으면서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에게 뭔가 말을 해줘야 하나 잠시 생각했다.
"허리가 아픈가 보구나. 병원에 가야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어색했다. 아이는 몸이 아프니까 조퇴를 한 것이었고, 병원에 데려가는 일은 아이의 보호자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통증을 느끼면서 천천히 걷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를 뒤로하고, 나는 빠르게 걸었다.
마침내 근처 공원에 도착했다. 이 공원의 오전 시간을 채우는 이들은 모두 늙은 사람들이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 노동 현장과는 동떨어진 잉여 인력의 사람들. 찔레꽃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할머니 하나가 효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가요를 들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공원에 단 한 그루의 찔레꽃 나무가 있기는 했다. 그 찔레꽃이 져버린 지도 이미 오래, 공원에는 스산하고 쌀쌀한 가을의 기운이 느껴졌다.
산책에서 돌아온 다음에 나는 여름 내내 틀었던 선풍기 청소를 하기로 했다. 선풍기의 날개를 분해해서 세제로 깨끗하게 씻었다. 모터 안쪽은 붓으로 먼지를 털어주었다. 회전축에 기름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루에 한 편씩 써야 하는 동시가 있었다. 동시 제목은 '조퇴'였다. 나는 아픈 허리에 손을 대고서 천천히 걷던 그 아이를 떠올렸다. 아이가 걷는 그 길과 돌아갈 집에 대해서, 그 아이의 마음에 대해서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의 동시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