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길을 걷다가 갑작스런 여름 소나기를 만난다. 건물 처마밑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비가 그치길 기다린다. 그러나 비는 좀처럼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들이치는 비에 옷이 젖는 것도 난감하다. 마침 서있던 남자 하나가 자신의 외투를 우산 삼아 쓰라고 건넨다. 여자는 고맙다고, 옷을 꼭 돌려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자리를 뜬다. 영화 초반부에 이런 설정이 나왔으면 옷을 돌려주는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뭐 이런 이야기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말렌 쿠시예프(Marlen Khutsiev) 감독의 1967년작 '7월의 비'는 그런 관객의 기대를 크게 비켜간다. 남자가 전화를 하긴 했다. 그런데 여자는 마침 일하던 중이라 남자에게 다시 연락달라고 하고서는 끊는다. 그러고서 그 남자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 상당히 특이하다.

  영화는 시작부터 남다르다. 길거리의 사람들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쇼트들이 이어진다. 배경음으로 깔리는 것은 주파수가 바뀌면서 들리는 라디오의 다양한 채널 소리다. 클래식 음악부터 스포츠 중계에 이르기까지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소리가 흘러 나온다. 지나가는 일반인들이 카메라를 낯설게 응시하는 장면도 찍힌다. 그러는 가운데 주연 여배우가 등장한다. 그런데 배우가 카메라를 자꾸 의식하면서 여러 번 바라본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본듯한 느낌인데...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60)'가 보인다. 이 영화에는 동시대의 영화 사조인 누벨바그의 흔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주인공 레나의 집은 공동 주택인데 복도에 전화가 있다. 레나가 남자 친구의 전화를 다른 날 여러 번 받는 장면에서는 점프컷으로 연속해서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말을 싣고 가는 트럭을 보여줄 때는 말 울음소리에 맞추어 오펜바흐의 '지옥의 오르페오'에 나오는 캉캉 음악이 흘러나온다. 스윙글 싱어즈(Swingle Singers)의 'Jazz Sebastian Bach', 루이 암스트롱이 연주하고 노래하는 '장밋빛 인생'도 나온다. 음악도 아주 감각적으로 잘 썼다.

  주인공 레나는 서른 즈음의 여성으로 인쇄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비슷한 나이의 남자 친구 제냐는 국영 연구소에 근무하는데, 친구들이 많은 그는 자주 모임을 갖는다. 레나도 제냐를 따라 모임에 참석한다. 영화는 7월에서 이듬해 5월에 이르는 시간 동안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담는다. 여름비가 쏟아지던 7월, 레나가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는 가을, 그리고 남자 친구의 청혼을 거절하는 봄에 이르기까지 레나의 마음은 그렇게 일렁거린다. '7월의 비'에는 극적이라고 할 만한 서사가 없다. 제냐의 친구들 모임에서 쏟아지는 여러 대화들은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강 근처 교외에서 고기 구워 먹는 장면에서는 케밥(kebab)의 기원이 어디냐를 두고 티격태격한다. 남아메리카 원주민이 독화살촉에 쓰는 개구리독 큐라레(curare)이야기며, 끝말잇기 놀이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는 그렇게 무의미하게 넘치는 대화들 속에서 진정으로 소통하기 보다는 이리저리 부유하며 외로워하는 현대인의 마음 속 풍경을 보여준다.

  말렌 쿠시예프 감독은 이 영화에서 인위적인 것 대신에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다. 세트 촬영을 배제하고 대부분 야외 촬영에 중점을 두었다. 여기에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영향도 보인다. 실제로 쿠시예프 감독은 '자전거 도둑(1948)'을 처음 보았을 때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모스크바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전차와 버스가 오고가는 장면, 거리의 사람들, 어느 대사관 앞에서 찍은 장면은 각국의 외교관들이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풍경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당시를 살았던 러시아인들은 1966년의 모스크바를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그 시절은 안온하고 평화로웠던 해빙기의 끝무렵이었다. 흐루시초프 집권기였던 1953년에서 1964년에 이르는 시기는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자유가 허용되었다. 이른바 '해빙기'라고 불리던 시대는 수구적인 브레즈네프의 등장으로 서서히 막을 내린다. '7월의 비'는 녹았던 얼음이 다시 얼어붙기 시작한 시대에 만들어진 영화였다.

  '7월의 비'는 소련 당국에 의해서 무분별하게 서구 사조의 영향을 받은, 반동적인 작품으로 매도되었다. 영화 산업을 국가가 관리 감독하던 시대에 이 영화는 혹독한 비판을 받고, 짧은 개봉 기간에 이어 영화사 창고에 처박히는 운명을 맞았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된 부분은 영화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장면이었다. 주인공 레나는 화창한 봄날의 전승절(5월 9일, 2차 대전에서 소련이 독일에 승리를 거둔 날로 가장 큰 국가적 경축일이다) 행사가 치뤄지는 거리를 걷는다. 참전 군인들은 서로 얼싸안으면서 기쁨을 나누는데, 그에 반해 젊은 세대들의 얼굴 표정은 다소 심드렁하게 보인다. 젊은이들은 떠들썩한 전승절 행사에 별 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그 사이로 소년이 얼굴을 수줍게 내미는 장면이 영화의 끝을 장식한다. 말렌 쿠시예프는 서로 다른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화합이나 희망의 메시지 보다는 단절과 무관심을 담아냈다. 그 장면이 소련 당국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이 영화는 한동안 차가운 어둠 속에 머물게 된다.   

  솔직히 나는 '7월의 비'를 보면서 1967년에 소련에서 이런 영화를 만든 감독이 있었다는 데에 놀랐다. 말렌 쿠시예프는 당대의 사조를 수용하면서도, 자신만의 확고한 작가적 관점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무척 매력적이고 도전적이기도 했다. 창작의 자유가 여유롭게 넘쳤던 평화로운 시절은 끝나가고 있었다. 주인공 레나가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슬퍼할 때, 같은 층에 사는 소년이 사과 한 알을 건네는데 레나는 그 사과에 깃든 위로를 고마워 한다. 전승절 날, 레나는 노점상에서 산 사과를 먹으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이제 곧 따뜻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시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화 '7월의 비'는 다시 시작될 춥고 긴 겨울의 날들 앞에 선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바쳐진 시처럼 보인다.



*사진 출처: newlit.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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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최근에 남동생을 잃었다. 남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인간은 경찰이 사고사로 결론내렸다며 뻔뻔하게 나온다. 남자는 분노의 눈물을 삼키지만 별 다른 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놈이 찾아온다. 남자에게 자신의 복싱 스승이 되어달라고 간청한다. 남자는 전직 복서로 체급 챔피언의 자리에 있었으나 갑작스레 시합을 포기하고 복싱을 그만 두었다. 아내와 딸도 버리고 오직 도베르만 한 마리만을 돌보며 산다. 전단지를 붙이며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사는 삶. 그런 그가 원수 같은 놈을 위해 그 청을 수락할까? 테라야마 슈지 감독의 1977년작 '복서(The Boxer)'는 기이한 복싱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1976년에 개봉한 영화 '록키(Rocky)'는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 수익을 냈다. 일본에서도 크게 흥행한 이 영화를 보고, 도에이 영화사는 비슷한 권투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감독은 테라야마 슈지, 주연 배우로는 당시 일본의 떠오르는 인기 배우였던 시미즈 켄타로, 야쿠자 영화에서 이름을 떨치던 스가와라 분타가 낙점되었다. 과연 이 조합은 성공적이었을까? 영화를 보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시나리오였다. 테라야마 슈지는 원래 시나리오를 쓴 이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뜻대로 시나리오를 전면 재수정했다. 일본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로서 문학, 연극, 영화에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를 한 테라야마 슈지가 제작사의 뜻대로 상업성에 촛점을 두고 썼을까? 천만에, 이 영화는 결코 일본의 록키 영화가 될 운명은 아니었다.

  고의가 아니었다고 해도 사고로 남동생을 죽게 만든 텐마의 복싱 스승이 되기로 한 하야토는 열심히 복싱을 가르친다. 그가 텐마의 청을 받아들인 것은 가난하고 신체적인 핸디캡(텐마는 발목에 문제가 있었다)을 가진 텐마가 복싱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열망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아무런 생의 의미도 찾지 못하고 벽보나 붙이며 살아가던 이 전직 복서는 갑자기 생의 활기를 되찾는다. 이 기이한 관계의 스승과 제자는 차근차근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선다. 마침내 텐마가 챔피언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시합의 날이 왔다. 경기 중 텐마의 고질적인 발목 문제가 걸림돌이 된다. 과연 텐마는 승리할 수 있을까? 하야토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어지러움증을 느끼며 텐마의 경기를 지켜본다.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전형적인 하층민들이다. 싸구려 여관방에서 술에 절어 사는 하야토. 텐마를 응원하는 동네 음식점의 단골들은 또 어떤가? 길거리 매춘부, 담배 피우는 어린 꼬마, 너절한 하류 인생들의 면면들이 모인다. 하야토는 텐마에게 복싱은 증오하는 자만이 하는 것이라면서, 무엇을 미워하느냐고 묻는다. 텐마는 부모와 세상 전부를 증오한다고 말한다. 신체적인 결함을 가진데다, 가난하고 별 볼 일 없는 루저로서 텐마는 자신의 존재를 복싱을 통해 증명하고 싶어한다. 하야토는 그런 텐마와 한 팀이 된다. 테라야마 슈지는 이 기묘한 스승과 제자에게 승리를 안겨줄 생각은 별로 갖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유독 특징적으로 보이는 쇼트들은 부감 쇼트이다. 하야토의 방에서 수직으로 높게 내려다 보는 쇼트를 비롯해 등장 인물들은 전지적 존재의 관점에서 압도당하는 보잘 것 없는 약자임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텐마의 스승인 하야토에게는 수수께끼 같은 과거가 있다. 그는 정상의 자리에서 갑자기 시합을 포기한다. 스스로 패배를 선택한 것이다. 텐마는 하야토에게 왜 분명히 이길 수 있었는데 경기를 포기했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하야토는 대답 대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일본 복싱 챔피언들의 이름들을 줄줄이 나열한다. 하야토의 삶에는 그 어떤 목적도 없다. 그리고 그가 남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텐마를 가르치는 이유도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텐마가 하야토의 고등학생 딸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음에도 하야토는 텐마를 용인한다. 심지어 복싱으로 최고가 되고 싶다는 텐마조차도 정말 치열한 목적의식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되는대로 사는 진흙탕 속의 삶. 그들은 모두 인생이라는 사각의 링에 갇힌 낙오자들처럼 보인다.
 
  테라야마 슈지는 제작사 도에이에 일본의 록키 영화 대신 테라야마 슈지 표 복싱 영화를 선물했다. 흥행은 실패했다. 강동원의 젊은 시절 미모를 빼닮은 시미즈 켄타로의 인기에 기댔던 제작사는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사실 감독 자신에게도 이 영화는 썩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니었을 듯하다. 제작사의 상업적 요구와 뭔가 어정쩡하게 타협한 티가 나는 애매한 서사는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복서'에는 테라야마 슈지의 작가적 관점이 드문드문 각인처럼 찍혀있음을 보게 된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더 가혹한 인생을 복싱의 링에 비유한 테라야마 슈지는 그 갇힌 공간에서 이탈하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하야토의 가출한 딸은 가방을 들고 끝없이 펼쳐진 해변을 걷는다. 시름시름 앓던 하야토의 도베르만은 기력을 찾고서는 주인을 떠나 한없이 기찻길을 따라 간다. 결코 승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루저 인생들에게 이탈과 방랑만이 유일한 삶의 출구처럼 보이는 장면이다. 마지못해 제작을 허락했던 도에이의 사장은 분명 후회했겠지만, 이렇게 세월이 흐른 뒤에 관객은 독특한 복싱 영화를 한 편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진 출처: acuview.aucf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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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러시아 1891~1991
올랜도 파이지스 지음, 조준래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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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EBS 클래스e에서 조영남 선생이 강의한 '중국 엘리트 정치'를 아주 흥미롭게 보았다. 집단 지도 체제로 국가를 운영하는 중국 공산당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혁명의 러시아 1891-1991'을 보면서 중국의 집단 지도 체제는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그 기원은 소련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공산주의 혁명의 종주국이었던 러시아의 근대 100년사를 다룬다. 제목만 들으면 꽤 어렵고 읽는데 시간이 걸릴 것 같은 인문서적 같다. 그 선입견을 저자 올랜도 파이지스는 가볍게 깨버린다. 그는 복잡하고 딱딱한 혁명의 역사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풀어내서 들려준다. 총 20개의 챕터로 나누어진 작은 주제의 이야기들은 독자를 러시아 혁명의 역사 한 가운데로 초대한다.

  저자는 자세하고 방대한 역사적 사실에 주요 인물들의 개인사를 효과적으로 배치했다. 역사적 인물들의 서간과 전기, 자서전에서 발췌한 자료들은 이 책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자칫 건조하고 지루하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는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재미를 더한다. 러시아 혁명의 단초가 되었던 제정 러시아 말기의 상황을 설명할 때, 니콜라이 2세와 황후, 라스푸틴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흥미있게 펼쳐진다. 레닌과 스탈린 체제를 설명할 때는 그 두 사람의 인간적 특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정치 상황을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기술한다. 이런 미시사적 관점이 개입된 역사 서술은 이제는 역사 관련 서적에서 부인할 수 없는 대세인듯 싶다.

  책의 초반부에는 니콜라이 2세의 보수적이고 완고한 정치적 관점이 어떻게 혁명의 불쏘시개로 작동했는지에 대해 기술되어 있다. 그가 좀 더 유연하고, 민중을 생각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면 러시아는 급진적 혁명에 이르는 대신에 입헌 군주국의 형태, 또는 좀 더 유화적인 정치 체제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무의미하다. 레닌은 제정 러시아 말기부터 축적된 여러 문제들이 터지는 비등점의 시기를 포착했고, 그 기회를 잘 이용할 줄 알았다. 그가 러시아 민중들과 이루어낸 혁명의 과정에는 단지 러시아 내부의 요인만 작동하지 않았다. 1차 세계 대전이라는 외적 요인이 혁명의 위기 상황을 넘기는데 기여했다. 그것은 레닌의 사후에 권력을 용의주도하게 차지한 스탈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스탈린의 독재 체제가 견고하게 구축될 수 있도록 도운 것은 2차 세계 대전이었다. 스탈린은 국내 정치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어려움들을 '전쟁'이라는 외적 요인으로 돌려서 소련 국민들의 불만을 억누를 수 있었다.

  저자는 스탈린 사후에 권력을 차지한 흐루시초프의 명암도 세밀하게 조명한다. 흐루시초프는 스탈린 격하 운동으로 스탈린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소련 국민들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의 변덕스럽고 전문성이 결여된 정치 능력은 집단 지도 체제 내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마침내 1964년, 브레즈네프가 흐루시초프를 밀어내고 권력을 잡는다. 그는 새로운 변화를 필요로 하는 시대적 열망과는 동떨어진 수구적 인물이었다.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시장 경제의 도입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도, 그 시기를 놓침으로써 소련은 기나친 경제 침체에 들어간다. 나에게 다소 충격적인 사실로 다가왔던 부분은 브레즈네프 시기에 소련의 주류(보드카)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부분이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더해, 그 어떤 희망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의 정치는 소련 사람들의 일상에 술이 큰 부분을 차지하게 만드는 데에 기여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정치는 러시아 역사에서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저자는 그 한계도 명확히 지적한다. 고르바초프는 그 모든 변화와 개혁의 정책을 '소련'이라는 국가 체제 안에서 이루어낼 수 있다고 믿은 것이 문제였다고 본다. 기존의 소비에트 연방 체제는 이미 수명이 다했는데도, 고르바초프는 지나친 낙관주의와 미봉책으로 급격한 체제 붕괴를 가져왔다. 그 시기는 또한 공산당원과 지배 계층들이 국가 자산을 심각하게 유용함으로써 경제적인 혼란과 부정부패가 시작된 때이기도 했다. 탐욕스럽고 무능력한 옐친은 운좋게 그 혼란기를 틈타 러시아의 수장이 되었다. 그는 새로운 러시아를 보여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 책은 그렇게 러시아 혁명의 100년사를 다룬다. 푸틴은 피와 절망, 실패들로 얼룩진 혁명사의 맨 나중에 등장한 인물로 이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읽고나면 오늘날 러시아에서 어떻게 푸틴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지 그 기원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 그는 제정 러시아 말기의 민족주의와 스탈린의 공포 정치를 절묘하게 결합한 자신만의 독재 체제를 구축했고, 그것은 러시아 국민들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왜 대다수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을 반대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늘 궁금했다. 이 책은 그에 대해 놀라운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러시아 혁명사에 관심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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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db를 둘러보다가 재미있는 코너가 눈길을 끌었다. 1969년도 영화 가운데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작품을 투표해달라는 코너였다. 투표 목록에 올라온 영화들 가운데, 아주 낯선 영화가 눈길을 끌었다. '다이아몬드 팔(Brilliantovaya ruka, The Diamond Arm)'. 찾아보니 구소련 시대 영화였다. 그러고 보니 러시아 영화를 찾아서 본 것이 꽤나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니드 가이다이(Leonid Gaidai) 감독은 구소련 시절에 코미디물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던 감독이다. 이 영화 '다이아몬드 팔'은 러시아 영화 역사상 기록적인 흥행 기록을 가지고 있다. 흥행 수익이 오늘날로 환산하면 영화 '타이타닉(1997)'의 그것과 견줄 정도라고 하니 그야말로 소련 영화로 기념비적인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의 영화였길래 그토록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것일까?

  국영 어업 연구소 직원인 세미욘(유리 니쿨린 분)은 터키로 짧은 크루즈 여행을 떠난다. 여행팀에는 지하세계를 주름잡는 '보스'의 부하 게샤(안드레이 미로노프 분)가 있는데, 세미욘과 게샤는 서로 친해진다. 게샤는 터키에 가는 은밀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비싼 보석과 금을 밀수하기 위한 것. 터키에서 조직원과 접선하려는 게샤의 계획은 틀어지고, 세미욘을 게샤로 착각한 터키의 조직원은 세미욘에게 밀수 보석을 건넨다. 그들은 세미욘의 팔을 부러뜨린 후, 석고 깁스에 보석을 숨긴다. 얼떨결에 밀수꾼이 된 세미욘. 게샤는 자신의 동료 롤리크와 함께 세미욘에게 접근해 보석을 되찾으려고 하는데, 세미욘은 번번이 그들의 시도를 무산시킨다. 세미욘의 다이아몬드 팔 속에 감춰진 보석들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이 영화는 매우 흥겹다. 주연 배우 유리 니쿨린과 안드레이 미로노프는 영화 속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데, 아주 잘 부른다. 그 시절 소련의 영화 배우들은 기본적으로 춤과 노래 실력을 갖춘 이들이 많았다. 세미욘 역의 유리 니쿨린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관객의 웃음을 유발하는데, 영화 '핑크 팬더(1963)'의 배우 피터 셀러스 특유의 무표정 연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니쿨린은 서커스 단원으로서의 경력도 가지고 있어서인지 몸놀림이 매우 유연하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주된 동력은 슬랩스틱이다. 세미욘에게 접근해서 보석을 되찾으려는 게샤와 롤리크, 두 사람은 마치 덤 앤 더머처럼 어처구니없는 실수들을 연발한다. 번번히 실패하는 그들의 시도들은 무성 영화 시절의 정교하고 순수한 슬랩스틱으로 재현된다.

  '다이아몬드 팔'은 주연 배우들의 노래, 슬랩스틱 연기에 더해 나름의 잘 짜여진 서사도 갖고 있다. 세미욘은 경찰에 정보를 주고, 경찰은 세미욘을 미끼로 지하 밀수 조직의 보스를 잡아들이려고 한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 세미욘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아내와 아파트 자치위원들의 추적, 이에 맞서 지하 세계 보스는 세미욘에게 미인계로 접근하려고 한다. 그들이 함께 펼치는 포복절도의 합동 공연은 영화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이미 50년 전의, 그리고 다른 문화권의 유머 코드를 갖고 있음에도 이 영화는 확실한 웃음을 선사한다. 누군가 이 영화를 두고 쓴 평에 '시간의 힘을 견뎌낸 영화'라는 표현을 했는데, 정말 그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 팔'속에 보이는 구소련의 일상 풍경들은 무척 화사하고 밝다. 2차 대전 종전 이후, 19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면서 소련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영화 속의 풍요롭고 안정된 체제의 모습은 결코 연출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영화관에서 이 유쾌한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당시의 소련 관객들은 나름의 삶의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이후 1970년대의 경제 침체기를 겪게 된다. 구소련 시절에 이 영화가 만들어낸 기록적인 흥행은 좋았던 시대의 끝자락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 세미욘이 아내와 두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보여준 여유로운 미소는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1969년의 구소련 사회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사진 출처: allofcinema.com 주연 배우 안드레이 미로노프와 유리 니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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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소를 그 무엇보다 애지중지했다. 소를 씻기는 일이며, 소가 여물 먹는 것을 보는 일, 소와 함께 하는 그의 일상은 무척 행복했다. 남자가 키우는 암소는 새끼까지 가져서 살림밑천도 늘어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느 하루 바깥 일을 보고 돌아왔더니, 소가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남자의 소가 도망갔다고 했다. 남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상심이 너무도 큰 나머지, 남자는 소 우리에 머물며 식음을 전폐한다. 그러다 소 울음 소리를 내면서 여물까지 먹기 시작한다. 걱정이 되어서 찾아온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은 '하산'이라는 사람이 아니라 '소'라고 말한다... 이거 어디서 본 이야기 같다. 카프카의 '변신' 이야기 아닌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어느 날 벌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리우스 메흐르지(Dariush Mehrjui) 감독의 1969년작 '소(The Cow)'는 아끼던 소를 잃고 미쳐버려서 자신이 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문명 세계와 단절된 외딴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시작은 마을의 바보를 마구 때리고 놀리는 장면에서부터이다. 바보라는 이유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온갖 비웃음과 학대의 대상이 되는데, 마을 사람들 가운데 동정과 연민을 보이는 이는 별로 없다. 이런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불한당들이 있는데, 그들은 마을을 수시로 침입해서 가축들을 훔쳐가는 도적질을 한다. 하산은 자신의 소가 도망갔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에 소가 있다고 믿으며, 그 소를 훔치려는 도적놈들을 막으려고 지붕에 올라가서 지낸다. 그러나 사실 소는 하산이 집을 비운 사이에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었고, 마을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 하산을 염려해서 우물가에 묻어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하산은 미쳐버린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골람 후세인 사에디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작가이다. 아제르바이잔 지역에서 출생한 그는 고향땅이 이란에 편입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이란 사람이 되었다. 정신과 의사이기도 했던 그는 맑시스트였다. 이 영화가 서구의 평론가들에게 눈길을 끈 것은 하산이 소가 되었다고 믿고 소처럼 행동하는 부분이었다. 이를 맑스의 소외 이론을 적용해서 인간이 주변 여건에 의해 자신의 본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려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사에디의 지적 배경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러나 영화 '소'를 단순히 인간 소외의 현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이 영화가 지닌 다층성을 외면하는 일이다.

  '소'를 만든 감독 다리우스 메흐르지는 이란의 중산층 출신으로 미국 UCLA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그런 그가 고국에 돌아와서 바라본 이란 사람들은 고립되고 낙후된, 종교적 신념과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뭉쳐있었다. 영화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모든 안좋은 일들을 마을 바깥에 존재하는 도적들 때문이라고 여긴다. 늘 도적들 탓만 했던 그들의 문제 해결 능력은 소가 되었다고 믿는 하산의 광기를 대하는 데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치렁치렁한 검은 차도르를 입은 마을 여자들은 신의 노여움 탓이라며 자숙하며 회개하는 종교의식을 행한다. 그것은 실제로 메흐르지와 사에디가 이란의 시골마을을 탐방하는 과정에서 목격한 일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무당의 굿에 해당하는 그런 종교의식은 마치 민속지학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의식으로도 하산의 광기는 낫지 않는다. 마을 촌장은 하산을 근처 도시의 병원에 데려가기로 하는데, 하산이 미쳐 날뛰자 온몸을 줄로 묶어서 소처럼 끌고 간다.

  "가, 가라구, 이 짐승아!"

  하산이 끌려가는 것을 거부하자, 촌장은 채찍질을 하며 그렇게 외친다. 마을의 바보에게 행해졌던 잔인함이 이제는 소가 되어버린 하산에게 똑깥이 반복된다. 이해할 수 없고, 걸리적 거리는 골칫덩이를 대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비합리적이고 잔혹한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하산은 스스로 진흙탕에 몸을 던져 죽음을 택한다. 인간으로도, 소로도, 그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없었다. 하산의 비극은 훗날 이란 혁명으로 신정국가가 되어버린 이란의 폐쇄성과도 맞닿아 있다. 외부 세계와 차단된 채, 종교적 신념을 우선에 두고 인간 본연의 본성을 잃어가게 만드는 이란 사회의 모습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는 이란 혁명으로 국가 최고 지도자가 된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극찬을 받으면서 이란 영화 산업의 존속을 보장하게 만들었다. 다리우스 메흐르지는 1980년대 초반에 이란 영화 산업의 선봉에 서면서 '어용 영화인'이란 비판까지 받기도 했다.

  영화 '소'는 서구식 영화 교육을 받은 영화인이 바라본 이란의 현실을 그려냈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 사에디의 독창적 발상과 더불어 이 영화는 음악도 매력적이다. 토착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절묘하게 표현하는데,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호르모즈 파르핫도 UCLA에서 공부한 음악가였다. 당시 이란의 예술 엘리트들이 모여서 만든 이 영화는 보편성과 이국성이 공존한다. 영화는 소에 미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본성의 소외를 다루었을 뿐만 아니라, 다가올 이란 사회의 어두움과 혼란까지 담아내고 있다.           



*사진 출처: highonfilm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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